기칠 맥탄(其七 麥灘)
舂白趁虛市 殺靑充夜餐
용백진허시 살청충야찬
麥嶺斯難過 如何又麥灘
맥령사난과 여하우맥탄
每歲麥熟之時, 民食甚艱, 故謂之麥嶺, 言其難過也. 熟者舂而賣之市, 未熟者擣而炊之, 謂之殺靑.
해석
舂白趁虛市 殺靑充夜餐 | 흰 것을 찧어서 빈 저자에 나가고 푸른 것을 죽여 밤 반찬 충당하네. |
麥嶺斯難過 如何又麥灘 | 보리고개 이에 지나기 어려우니 어떻게 또 보리여울 가려나? |
每歲麥熟之時, 民食甚艱, 故謂之麥嶺, 言其難過也.
매년 벼가 익을 때 백성의 음식은 매우 보잘 것 없기 때문에 보릿고개라고 하고 지나기 어렵다는 말이다.
熟者舂而賣之市, 未熟者擣而炊之, 謂之殺靑.
익은 것은 찧어서 저자에 팔고 익지 않은 것은 두드려 불 피우기에 푸른 것을 벤다고 말한다.
해설
이 시는 61세에 함경도 지역을 유람하면서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의 고단한 생활상과 풍속을 노래한 것이다.
위의 시는 보리여울[麥灘]이라는 곳을 지나면서 지명(地名)을 활용하여 목격한 농민들의 힘겨운 생활상을 읊고 있다.
익어서 하얗게 된 보리는 찧어서 살 사람이 없는 텅 빈 시장에 나아가 팔고, 아직 익지 않은 푸른 보리는 먹을 것이 없이 그것이나마 베어서 저녁을 때운다. 보릿고개도 넘어가기 어려운데, 이떻게 또 보리여울을 건너갈까?
조수삼은 많은 여행을 하였는데, 그러한 경험을 통해 풍속 세태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러한 관심이 기속시(紀俗詩)를 창작하게 된 것이다. 그의 「북행백절」은 최고의 현실주의적 성과로 인정되는 작품으로, 「북행백절 병서(北行百絶 幷序)」에 다음과 같이 이 시를 쓰게 된 배경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나는 장성한 이후로 사방에서 노니는 것을 즐겨하여 지금 머리가 하얗게 셈에 이르러도 그칠 수 없었으니, 이것은 유독 병일 뿐만 아니라 또한 혹시 이른바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임오년(1822년)에 관북지방을 여행하였는데, 늦은 봄에 떠나 초겨울에 돌아왔다. 날수로 치면 거의 이백 일이요, 거리는 만여 리를 헤아렸으니, 생각해보니 내 평생 유람이 이와 같이 멀고 오래인 적은 없었다. 또 더구나 궁벽한 바다와 산골, 험한 곳을 두루 돌아다니며 교룡ㆍ호랑이ㆍ표범, 도깨비 귀신 괴물이 있는 곳, 가죽옷 입고 사투리 쓰는 일과 요사한 도적의 일 등을 몸소 가서 밟아보고 듣고 보지 않은 것이 없다. 또한 때로는 나무 열매를 먹고 풀숲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다. 이것이 더욱이 젊은이들도 해내지 못할 터인데, 나같이 노쇠한 늙은이가 다행히도 무사히 돌아온 것이다. 여행 도중에 날마다 듣고 본 사실을 가려서 시 100편에 담아 「북행백절」이라 이름하였다. ……드디어 한가한 때에 눈을 감고 생각을 가다듬어 선가(仙家)에서 출신한 듯하니, 지난날 여행 중 보고들은 것이 역력히 다시 내 눈과 귀에 되살아났다. 이와 같이 하기를 몇 날 몇 밤이나 거듭하는 동안 그 기쁘고 슬프고, 놀랍고 기막히고, 우습고 화나고, 눈물 흘려 통곡할 만하며 길게 탄식할 만한 일들이 또렷이 내 마음을 움직여서 내가 시 100편을 종이에 적어냈다. 비록 몸이 다시 관북에 가서 시를 다시 쓰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나이가 젊고 총명한 사람들도 그렇게 하기가 어려운데, 하물며 나처럼 노쇠한 자에게 있어서랴. 돌아보건대 역시 생각을 오로지 하고 마음속에서 찾아내기를 부지런히 한 결과라 하겠다[余自束髮 喜遊四方 訖今白首而未能息 是非獨有其癖也 抑豈有所謂命數者存焉哉 歲壬午 作關北之行 行以暮春 歸以初冬 費日殆二百 道里計滿萬 則念余平生之遊之遠之久 無此若也 又况窮絶海山 跋履深險 蛟龍虎豹 魑魅鬼恠之所 皮服侏音 奸究盜賊之事 無不躬造脚踏 耳聞目擊 而亦有時食其樹而寢其草 此尤少壯人所不能也 以余衰老者而幸善返也 其在道日 以所聞見者 裁爲小詩百篇 欲命之曰北行百絶 盖用錢起江行故事 而道中無紙筆 故記之在心 旣歸有家室之事 未遑於筆硯 初春又客于新安 卒卒益無暇 及至季秋 公舘少事 始欲出稿 則茫然已若隔世事矣 遂於燕坐之時 閉目凝念 如仙家出神 而往日之經行見聞 歷歷復在吾耳目 如是者累夜彌日 凡其可喜可哀可驚可愕可笑可罵可以痛哭流涕長太息者 森然動吾心 而吾詩百篇列于紙 雖謂之身再行而詩再作 未爲不可也 此又年少聰敏之所難能也 况余衰老者乎 顧亦思之專而求之勤也已 昔杜子美入蜀以後詩益奇壯 人以謂得山川之助也 今吾詩不過俚語瑣事碌碌無可觀者 是又可愧也夫 粤明年癸未季秋 秋齋老人 叙于新安舘中].”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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