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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129. 범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129. 범

건방진방랑자 2020. 4. 1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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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

범나라. 창범(刱凡)과 같다.

 

범간(帆竿)

물가에 세워둔 배의 돛대.

 

범경(泛梗)

물에 뜬 나무 장승(木梗). , 정처 없이 떠도는 인생을 말한다. 전국(戰國) 때 제() 나라 맹상군(孟嘗君)이 진() 나라에 가려 하자 문객(門客)이 들어와 제가 올 때 치수(淄水)를 지나오다 흙으로 만든 허수아비와 목경이 말하는 것을 들었는데 목경은 흙허수아비에게 자네는 원래 흙으로 허수아비가 되었으니, 큰 비가 와 홍수가 나면 반드시 무너질 것이다.’ 하자 흙허수아비는 나는 허물어지면 나의 참모습을 되찾는다. 그러나 자네는 동원(東園)의 복숭아 나무로 목경이 되었으니, 장마로 홍수가 나면 반드시 자네는 끝없이 떠내려 갈 것이다.’ 하였습니다.” 하였다. 전국책(戰國策)齊 第三

 

범공오매(范公烏昧)

범공은 송 나라 범중엄(范仲淹)을 가리키고 오매초(烏昧草)는 풀 이름이다. 송 나라 인종(仁宗) 명도(明道) 2년에 범중엄(范仲淹)굶주린 백성들 가운데는 오매초를 먹는 자가 있으니, 그 풀을 뜯어다가 진어(進御)하소서. 그리고 이를 육궁(六宮)의 귀척들에게 보이어 그들의 사치스러운 마음을 경계시키소서.” 하였다. 속자치통감(續資治通鑑)宋仁宗 明道 2

 

범공징청(范公澄淸)

후한(後漢)의 범방(范滂). 그는 지방 수병들의 탐오(貪汚)를 적발하는 임명을 받고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으며 개연(慨然)히 천하를 맑힐 뜻이 있었다.

 

범관(范寬)

() 나라 때의 화가이다.

 

범관설보(范寬雪譜)

범관은 송() 나라 때 사람으로 특히 산수화(山水畫)에 능했다. 그의 저서 중에 설보(雪譜)가 있으므로, 여기서는 곧 두보(杜甫)의 열() 시에 궁전 북쪽의 쌓아둔 눈에 바람 부는 문이 서늘하게 열렸음을 상상하노라[想見陰宮雪 風門颯沓開].” 한 고사에 비유하여, 설보만 보아도 서늘함을 느낄 수 있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두시비해(杜詩批解)卷十七

 

범국(泛菊)

음력 99일 즉 중양절(重陽節)에 국화를 술잔에 띄워 마시는 잔치를 말한다. / 유사어: 범국회(泛菊會), 범국진(泛菊辰), 중구일(重九日)

 

범노(范老)

소범 노자(小范老子)의 준말로, () 나라 범중엄(范仲淹)을 가리킨다. 그가 용도각 직학사(龍圖閣直學士)로 있다가 섬서 경략사(陝西經略使)로 나가 수 년 동안 변방을 지킬 때에, 강족(羌族)이 그를 존경하여 용도 노자(龍圖老子) 혹은 소범 노자(小范老子)라고 부르면서, “그의 흉중에 수만 갑병(甲兵)이 들어 있다.”고 두려워하여 감히 침범하지 못했던 고사가 있다.

 

범도화(泛桃花)

무릉도원(武陵桃源)의 고사(故事)를 연상한 것인데, “어부(漁父)가 냇물에 복사꽃이 떠 오는 것을 보고 물을 따라 올라가서 선경(仙境)을 발견하였다.” 한다.

 

범두선(犯斗仙)

()나라 장건(張騫)이 대하(大夏)에 사자로 갈 때, ()를 타고 하()의 근원까지 갔는데, 전설에 그가 은하수에 올라 직녀(織女)를 만나서 지기석(支機石)을 받아 엄군평(嚴君平)에게 보였더니, 그가 말하되, “아무날 객성(客星)이 두우성(斗牛星)을 범하더니 그대가 은하에 올랐었군.” 했다 한다.

 

범람(氾濫)

물이 흘러넘친다. 여기서는 뜬구름이 뭉게뭉게 떠가는 모양을 말한다.

 

범래무(范萊蕪)

후한(後漢) 환제(桓帝) 때 범염(范冉)이 내무(萊蕪)의 장관으로 부름을 받고도 응하지 않고, 그 뒤 누차 태위부(太尉府)와 시어(侍御)로 임명받았어도 나아가지 않은 채, 적빈(赤貧)을 감수하며 살았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시루 속에 먼지 나는 범사운이요, 솥 속에 물고기 헤엄치는 범래무로다[甑中生塵范史雲 釜中生魚范萊蕪]”라고 노래하였다 한다. 사운(史雲)은 범염의 자()이다. 후한서(後漢書)111

 

범려(范蠡)

춘추시대(春秋時代) ()의 대부로 자는 소백(少伯).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 적국인 오()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획으로 서시(西施)라는 미인을 오왕 부차(吳王夫差)에게 바치니, 부차는 서시에게 고혹되어 정치를 돌보지 않다가 끝내 월에게 망하였다. 공을 이룬 다음 큰 명예 밑에는 오래 있기 어렵다.” 하고는 오궁(吳宮)에 있던 서시를 데리고 오호(五湖)에 배를 띄워 제() 나라에 가서 치이자피(鴟夷子皮)라고 변성명하고 많은 돈을 벌었다. 제 나라에서는 그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승상(丞相)을 삼으려고 했지만, 그는 재물을 흩어버리고 다시 제 나라를 떠나 도()란 곳에 머물러 살며, 도주공(陶朱公)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 그는 도에서도 많은 돈을 벌어 큰 부자로 살다가 그 곳에서 천명으로 죽었다 한다.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

 

범려주(范蠡舟)

범려(范蠡)춘추시대(春秋時代) () 나라 사람인데, 일찍이 월왕(越王) 구천(句踐)을 도와서 오() 나라를 멸망시키고, 그 후에는 벼슬을 그만두고 월() 나라를 떠나 미인 서시(西施)를 데리고 오호(五湖)에 떠 놀았다 한다.

 

범련(泛蓮)

훌륭한 막료(幕僚)로 등용됨을 이른다. () 나라 때 유고지(庾杲之)가 재상 왕검(王儉)의 막료가 되었을 적에 소면(蕭緬)이 왕검에게 보낸 편지에 성부(盛府)의 원료(元僚)는 실로 잘 가려야 할 자리인데, 유경행(庾景行)은 마치 푸른 물에 떠서 연꽃에 의지한 것[泛綠水依芙蓉]과 같으니, 어쩌면 그리도 화려하단 말입니까.”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남사(南史)』 「유경지전(庾杲之傳)

 

범련인(泛蓮人)

상부(相府)의 막료(幕僚)를 이른 말이다.

 

범로(范老)

()의 범중엄(范仲淹)을 말한 것. 중엄이 재주가 높고 뜻이 원대하여 늘 천하를 자기 책임으로 삼아왔으며, 이미 현달한 뒤에는 더더욱 선을 좋아하고 베풀기도 좋아하여 의전(義田) 제도를 만들어 두고 주위의 겨레붙이들을 돌보아 모두 요부하게 만들었음. 송사(宋史)314

 

범로요주(范老饒州)

범로는 북송(北宋) 시대의 범중엄(范仲淹)을 높여 이른 말이다. 범중엄(范仲淹)이 일찍이 재상 여이간(呂夷簡)과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여이간에 의해 조정에서 쫓겨나 지요주(知饒州)로 좌천되었었다. 송사(宋史)卷三百十四

 

범로흉리갑(范老胸裡甲)

() 나라 범중엄(范仲淹)이 토벌에 나섰을 때, 원호(元昊)의 반란군들이 뱃속에 수만의 갑병이 들어 있다[腹中自有數萬甲兵].”고 하면서 무서워했다고 한다. 명신전(名臣傳)범중엄(范仲淹)

 

범망(凡亡)

춘추시대(春秋時代)에 범 나라는 아주 작은 나라였는데, 초왕(楚王)과 범군(凡君)이 서로 만난 자리에서 초왕의 신하가 범 나라는 망한다.’는 말을 세 번 되풀이하자, 범군이 말하기를 범 나라가 망하더라도 나의 존재는 잃게 할 수 없다. 범 나라가 망하여도 나의 존재를 잃게 할 수 없고 보면, 초 나라의 존재함도 존재함이 되기에 부족하다. 그렇다면 범 나라는 애당초 망한 것이 아니요, 초 나라도 애당초 존재한 것이 아니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

 

범방비(范滂轡)

난세(亂世)에 정치를 혁신하여 천하를 안정시키고자 하는 뜻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당고열전(黨錮列傳)범방(范滂), “이때 기주(冀州)에 기근이 들어서 도적떼가 일어났는데, 범방이 청조사(淸詔使)가 되어 안찰하게 되었다. 범방은 수레에 올라타 말고삐를 고쳐 잡고는 개연히 천하를 맑게 할 뜻을 품었다.” 하였다.

 

범범(氾氾)

물에 둥둥 뜨는 모양. 널리 대중을 사랑하는 모양

 

범범(汎汎)

물에 표류하는 모양, 물이 넓게 차란차란 흐르는 모양

 

범범(泛泛)

표류하는 모양, 가득 차는 모양, 들떠서 침착하지 못한 모양

 

범범(渢渢)

중용의 소리, 알맞은 소리

 

범부무곤(范婦無褌)

범씨는 진() 나라의 은자 범선(范宣)을 가리킨다. 그는 집이 무척 가난하였는데, 한번은 예장 태수(豫章太守)가 많은 비단을 보내 주었으나 하나도 받지 않았다. 태수가 두 길쯤 되는 비단을 끊어주면서 어찌 부인으로 하여금 속옷이 없게 할 수 있단 말인가.” 하자 그는 그제야 웃으며 받았다.

 

범부생진(范釜生塵)

범염(范冉)의 솥 안에 먼지만 쌓이다.

 

범비(范轡)

후한(後漢) 때 지사(志士) 범방(范滂)이 청조사(淸詔使)로 기주(冀州)에 내려갈 적에 수레에 올라 고삐를 잡고는, 흐린 세상을 한번 징청(澄淸)시키려는 개연(慨然)한 뜻을 두었다.

 

범석호(范石湖)

범성대(范成大). 석호는 호(). () 나라 오현(吳縣) 사람. 문장으로 유명하고 34권의 석호집(石湖集)이 전해짐. 임금이 석호(石湖)’ 두 글자를 친필로 써주니, 성재(誠齋) 양만리(楊萬里)가 시를 지어 칭찬하였다.

 

범성대(范成大)

() 나라 시인. 자는 치능(致能), 호는 석호 거사(石湖居士). 시에 능하여 양만리(楊萬里)와 병칭됨. 저서에 석호집(石湖集)ㆍ오선록(吳船錄)이 있다.

 

범수(范睢)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사람으로 진 소왕(秦昭王)을 섬겨 승상(丞相)이 되고, 응후(應侯)의 봉작(封爵)까지 받았다가, 자기와 가까운 왕계(王稽)가 죄를 져 죽음을 당하자, 채택(蔡澤)을 추천하여 자기를 대신하게 하고 벼슬을 그만두었음.

 

범숙(范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위() 나라 사람 범수(范睢)를 이른다. 범수는 수가(須賈)의 고자질로 매를 맞고 진()으로 망명하여 뒤에 진의 재상이 되었다. 뒤에 수가가 진에 오자 범수는 복수할 마음을 갖고 일부러 한미한 차림으로 변장을 하고 수가를 만났는데, 수가는 그의 한미한 모습을 보고 측은한 생각이 들어 두꺼운 옷 한 벌을 그에게 주었고, 그로 인하여 범수도 수가를 달리 대하였다고 한다. 사기(史記)79 범수열전(范睢列傳)

 

범숙한편고(范叔寒偏苦)

전국시대(戰國時代) () 나라 범수(范睢)의 자()가 숙()이다. 그는 중대부(中大夫)수가(須賈)를 섬기다가 진() 나라로 도망하여 이름을 장록(張祿)으로 고치고 재상이 되었다. 그 후 수가가 위 나라 사신(使臣)으로 진 나라에 갔는데, 범수가 낡은 옷을 입은 누추한 모습으로 찾아가자 수가가 동정하여, “범숙은 늘 추위에 떠는 것이 이와 같은가.” 하면서 제포(綈袍)를 주었다 한다. 사기(史記)』 「범수열전(范睢列傳)

 

범십삼(范十三)

범씨(范氏)로서 자기 배항(輩行) 가운데 13번 째에 해당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범씨당감(范氏唐鑑)

당감은 송()의 범조우(范祖禹)가 찬한 것으로 모두 24권인데, 당 고조(唐高祖)에서부터 소제(昭帝)ㆍ선제(宣帝)까지의 역사에 대하여 기록한 다음 아울러 평론을 가하였다.

 

범씨주(范氏舟)

() 나라의 명상(名相)인 범순인(范純仁)을 가리킨다. 범순인은 범중엄(范仲淹)의 아들로, 자가 요부(堯夫)인데, 일찍이 기근이 들자 위에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상평창(常平倉)의 곡식을 풀어 배로 운반하여 백성들을 구제하였다. 송사(宋史)314 범순인열전(范純仁列傳)

 

범양이가(范楊二家)

범양 이가는 송() 나라 때에 특히 시문(詩文)으로 명성이 높았던 범성대(范成大)와 양만리(楊萬里)를 합칭한 말이다.

 

범염(范冉)

후한(後漢) 때 지사(志士)로 가끔 끼니를 잇지 못하는 때가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시루에서는 티끌이 일고 솥에서는 물고기가 산다는 노래까지 지었다.

 

범영시(泛潁詩)

소동파(蘇東坡)가 조정에서 쫓겨나 영수(潁水)에서 뱃놀이하면서 지은 시로, 그의 시집 34권에 범영(泛潁)이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범옹(范翁)

이수준(李壽俊)의 별호이다. 이제신(李濟臣)의 아들로 자는 태징(台徵), 호는 용계(龍溪)ㆍ지범재(志範齋)이며 성혼의 문인이다. 이수준은 동지사(冬至使)로 명 나라에 다녀오던 중 3월에 봉산(鳳山)에서 죽었는데, 이때 48세였다.

 

범옹(泛翁)

신숙주(申叔舟)의 호이다. 신숙주는 세종 24(1442)에 서장관으로 일본에 갔으며, 이때 본 것을 바탕으로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저술하였다.

 

범왕가(梵王家)

불교 사찰을 말한다.

 

범왕궁(梵王宮)

사바세계를 지키는 색계(色界) 초선천(初禪天)의 대범천왕(大梵天王)의 궁전인데, 여기서는 절을 말한다.

 

범장소거(范張素車)

소거는 흰 천을 씌운 수레이며, 범장(范張)은 후한(後漢) 때 사람인 범식(范式)과 장소(張劭)이다. 범식과 장소는 친하게 지냈는데, 장소가 죽어 장사 지낼 때 범식이 미처 도착하지 못하였다. 마침내 발인하여 폄관(窆棺)하게 되었는데, 상구가 움직이려 하지 않다가 범식이 도착하여 상여 끈을 잡고서 끌자, 이에 상구가 움직여서 장사 지낼 수가 있었다. 후한서(後漢書)81 독행열전(獨行列傳)范式

 

범조(凡鳥)

() 자를 분해하면 범상한 새(凡鳥)가 된다. 세설신어(世說新語)혜강(嵇康)이 여안(呂安)과 서로 친하여 언제나 생각만 나면 천리라도 달려가곤 했었다. 어느 때 여안이 혜강을 찾았으나 집에 있지 않고, 그 아들 희()가 나와 맞이하자 들어가지 아니하고 대문 위에다 봉() 자를 써놓고 갔는데 희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좋아했다.” 하였다.

새 봉[]’자를 파자(破字)한 모양인데, 옛날 여안(呂安)이 친구 혜강(嵇康)을 찾아갔더니 그는 없고, 대신 그 형 혜희(嵇喜)가 반가이 나와 맞이하므로, 문 위에다 ()’자를 써 놓고 돌아갔다 한다. 봉이 아니라 범조, 곧 보통 새라는 뜻으로, 혜희를 폄하하는 말인데 친구 방문의 고사로 흔히 쓰인다.

 

범존초망(凡存楚亡)

옛날 강대국인 초() 나라 임금이 약소국인 범() 나라 임금과 함께 앉아있을 때, 초왕의 신하가 범 나라는 망한다.”는 말을 세 번이나 하므로, 범 나라 임금이 말하기를 우리 범 나라가 망하더라도 나의 존재를 잃게 하지는 못한다. 범 나라가 망하여도 나의 존재를 잃게 하지 못한다면, 초 나라의 존재하는 것 또한 계속 보존할 수는 없는 것이니, 이렇게 본다면 범 나라가 애당초 망한 것도 아니요, 초 나라가 애당초 존재한 것도 아니다.”고 했다는 고사에서 온 말로, 즉 외형적인 존망(存亡)은 진아(眞我)와는 관계가 없음을 말한다.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

 

범중엄(范仲淹)

한기와 쌍벽을 이루었던 송조의 명신. ()는 희문(希文). 송사(宋史)卷三百十四

 

범지화(梵志華)

불법을 구할 뜻을 지닌 자에게 설법하는 것.

 

범채(范蔡)

범수(范睢)와 채택(蔡澤)으로 전국시대(戰國時代) 인물들이다.

 

범초(凡楚)

춘추시대(春秋時代) 강대국인 초 나라와 그의 속국인 범 나라를 합칭한 말이다.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초왕(楚王)이 범군(凡君)과 함께 앉았을 때 초왕의 좌우에서 범 나라는 망한다.’고 말하자, 범군이 말하기를 우리 범 나라가 망한다 해도 내 자신의 존재를 잃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초나라가 존재하는 것도 결국 존재하는 것이 되지 못하니, 이것으로 본다면 범 나라가 애당초 망한 것이 아니요 초나라도 애당초 존재한 것이 아니다.’고 했다.” 한 데서 온 말로, 원 뜻은 즉 존망(存亡)의 진리를 판정하기 어려움을 말한 것인데, 여기서는 강자와 약자, 또는 나아가서 온 세상의 뜻으로 쓰인 것이다.

 

범초개호래(凡楚皆蒿萊)

춘추시대(春秋時代) 강대국인 초() 나라 임금과 약소국인 범() 나라 임금이 사생존망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 데서 온 말인데, 여기서는 즉 강자와 약자의 뜻으로 쓴 것이다.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

 

범초존망(凡楚存亡)

초왕(楚王)과 범군(凡君)이 마주 앉아 사생존망(死生存亡)의 진위(眞僞)에 대하여 얘기를 나눈 데서 온 말인데, 자세한 것은 장자(莊子)』 「전자방(田子方)에 나타나 있다.

 

범택부가(泛宅浮家)

배를 집으로 삼아 물 위를 떠돌며 사는 생활을 말한다. 장지화가 안진경(顔眞卿)에게 나의 소원은 배를 집 삼아 물 위에 살면서 소계(苕溪)와 삽계(霅溪)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願爲浮家泛宅 往來苕霅間].”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신당서(新唐書)』 「은일전(隱逸傳)張志和

 

범파정(泛波亭)

강원도 홍천현(洪川縣) 동남쪽의 남천(南川)에 있는 정자 이름이다.

 

범패(梵唄)

부처의 공덕을 찬양하는 노래, 양고승전(梁高僧傳)경사편론(經師篇論), “天竺方俗 凡歌詠法言 皆稱爲唄 至於此土 詠經則稱爲轉讀 歌讚則號爲梵唄라고 보인다.

 

범포한(范袍寒)

전국 때 위()의 범수(范睢 范叔)가 중대부(中大夫) 수가(須賈)의 고자질로 억울하게 매를 맞고 쫓겨나서 진()에 간 뒤에 상국(相國)이 되었는데, 그때에 수가가 진()에 사신(使臣)으로 왔다. 범수는 남루한 옷으로 수가를 찾았다. 그가 보고 가엾게 여겨, “범수 몹시도 춥겠구나.” 하고 자기가 입었던 비단 도포(綈袍)를 벗어 주었다. 사기(史記)』 「범수열전(范睢列傳)

 

범한(范韓)

송 나라 때 범중엄(范仲淹)과 한기(韓琦)가 변방에 나가 서하(西夏)를 막으니 군중에서 그들을 칭송하여 노래하기를, “군중에 한 범이 있으니, 서적이 듣고 놀래어 간담이 깨어지네. 군중에 한 한이 있으니 서적이 듣고 마음과 간담이 서늘하리[軍中有一 范西賦聞之驚破謄軍中有一韓 四賦聞之心膽寒].”하였다.

 

범희문(范希文)

() 나라의 명상(名相) 범중엄(范仲淹)을 가리킨다. 희문은 그의 자이다. 범중엄(范仲淹)악양루기(岳陽樓記)옛날 어진 사람은 사물(事物)로써 기뻐하지 않고 자신의 일로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조정에 있을 적에는 백성을 근심하고, 강호(江湖)의 먼 곳에 있을 적에는 임금을 걱정하는 것이라, 조정에 나아가도 근심이요 물러나와도 근심이니, 그렇다면 어느 때에 즐거울 것인가? 그것은 반드시 천하의 근심은 남보다 먼저 근심하고, 천하의 즐거움은 남보다 뒤에 즐긴다.’는 것이다.” 하였으므로 이른 말이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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