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식
식객병주리(食客屛珠履)
문객(門客)들을 후히 접대하였음을 비유한 말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초(楚) 나라 춘신군(春申君)의 문객들이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었던 데서 온 말이다.
식괴(植槐)
송(宋)나라의 왕우(王祐)가 뜰에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는, “자손 중에 반드시 삼공(三公)의 벼슬이 나올 것이다” 했는데, 과연 그 아들 단(旦)이 정승이 되었다.
식교상우(息交尙友)
식교(息交)는 세상 사람들과의 교제를 그만두는 것을 말하고, 상우(尙友)는 거슬러 올라가 옛날의 어진 사람들을 벗으로 삼는 것을 말한다.
식금(食芩)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의 노래. 『시경(詩經)』 소아(小雅) 「녹명(鹿鳴)」에 귀빈을 사슴에 비유하여, “머머 우는 사슴은 들의 금풀을 먹누나[呦呦鹿鳴 食野之芩].”라고 노래했다.
식덕(食德)
선인(先人)이 남긴 은택을 향유하는 것을 말한다.
식로(息老)
고려 중기의 문인으로 호가 식암(息菴)인 이자현(李資玄)을 가리킨다.
식마간(食馬肝)
말의 간[馬肝]은 본디 독성이 있어 사람의 생명을 해치는 것이라고 하는데, 한 경제(漢景帝) 때 원고생(轅固生)과 황생(黃生) 두 선비가 경제 앞에서, 탕(湯)과 무왕(武王)이 걸(桀)ㆍ주(紂)를 주멸하고 자신들이 천자가 된 데 대하여 시비(是非)를 격렬하게 쟁론하자, 경제가 이르기를 “고기를 먹되 말의 간은 먹지 않아도 맛을 모르는 게 되지 않고, 학문을 논하는 자가 탕과 무왕의 수명(受命)에 관한 것은 말하지 않아도 어리석음이 되지 않는다.” 한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卷一百二十一
식마간(食馬肝)
임금을 잘못된 길로 유도하는 신하를 풍자한 것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죽은 이부인(李夫人)을 잊지 못한 나머지, 귀신을 잘 부린다는 방사(方士) 소옹(少翁)을 후대하며 문성장군(文成將軍)에 임명하였는데, 뒤에 그가 속임수를 쓴다는 사실을 알고 처형하고 나서, 이를 숨기기 위해 그가 독성(毒性)이 강한 마간(馬肝)을 먹고서 죽었다고 둘러대었다. 『사기(史記)』 卷28 「봉선서(封禪書)」
식마불음주상인(食馬肉不飮酒傷人)
너그러운 마음으로 은혜를 베푼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식면(識面)
얼굴을 서로 아는 사이를 말하고, 정신은 권력 있는 사람에게 자신을 천거해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말하는데, 송(宋) 나라 때 손변(孫抃)이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어 평소 얼굴도 모르는 당개(唐介) 등을 천거하여 대관(臺官)으로 삼자, 혹자가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대뜸 천거하는 것이 무슨 까닭이냐고 물으니, 그가 대답하기를 “옛 사람은 정신어사(呈身御史)를 부끄럽게 여겼는데, 지금 어찌 식면대관(識面臺官)을 구해서 되겠는가.”고 하였다.
식무어(食無魚)
맹상군(孟嘗君)의 식객(食客) 풍환(馮驩)이 노래하기를, “밥에 생선이 없네[食無魚].”라 했다. 『사기(史記)』 실세(失勢)를 말한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사기(史記)』 卷七十五 「맹상군전(孟嘗君傳)」
식무육(食無肉)
소식(蘇軾)의 시에, “밥 먹을 때에 고기가 없을지언정 거처하는 곳에 대(竹)가 없을 수 없다.” 하였다.
식미(式微)
『시경(詩經)』 패풍(邶風)의 편명(篇名)으로,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읊은 시이다. 그 시에, “쇠미하고 쇠미하거늘 어찌하여 돌아가지 아니하는가[式微式微 胡不歸].”하였다. 옛날에 여후(黎侯)가 나라를 잃고 위(衛) 나라에 의탁해 있을 때 그를 수행한 신하들이 가엾은 처지를 슬퍼해서 지었다 한다.
식미지사(食薇志士)
고사리 먹는 지사(志士)는 주(周) 나라 곡식을 먹지 않고 고사리만 캐 먹다가 굶어 죽은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가리킨다.
식미편(式微篇)
『시경(詩經)』 패풍(邶風) 「식미(式微)」은 여후(黎侯)가 나라를 잃고 위(衛) 나라에 우거(寓居)해 있자 그 신하가 여후를 위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식불이미(食不二味)
‘음식이 두 가지 맛이 아니다’라는 말로, ‘음식을 잘 차려 먹지 못함’을 이른다.
식성온태위(識聲溫大尉)
진(晉) 나라 사람 온교(溫嶠). 환온(桓溫)이 나서 돌이 못 되어 온교가 보고 말하되, “이 애가 기특한 골상이 있으니 시험하여 울려 보자.” 하고는 그 우는 소리를 듣고 말하기를, “참으로 영물(英物)이로다.” 하였다.
식소사번(食少事煩)
먹는 것은 적은데 할 일은 많은 것, 결국 오래 살지 못한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식속조교장(食粟曹交長)
여기서 곡식 먹는다는 말은 곧 서민이란 뜻인데, 조교(曹交)가 맹자(孟子)에게 “나도 문왕(文王)만큼 키가 큰데 어째서 문왕이 못 되고 곡식만 먹습니까.” 한 데서 인용한 말이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下
식식(式式)
공경하는 모양
식식(湜湜)
물이 맑아 물 밑까지 환히 보이는 모양, 마음을 바르게 가지는 모양
식신(息愼)
숙신(肅愼)과 같음.
식실(飾室)
궁녀가 거처하는 방.
식심방(息心方)
번뇌를 다스려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처방이라는 뜻이다. 중국 선종(禪宗)의 2조(祖)인 혜가(慧可)가 일찍이 달마(達摩)에게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청하자 달마가 그 불안해하는 마음을 가져오라고 하였는데, 혜가가 아무리 찾아도 그 마음을 찾을 수 없다(覓心了不可得)고 하자 달마가 “너에게 이미 안심의 경지를 주었다[與汝安心竟].”고 한 안심법문(安心法門)의 고사가 있다. 『전등록(傳燈錄)』 卷3
식암(息菴)
고려 중기의 문인인 이자현(李資玄)의 호이다. 전국의 명산을 유력하던 중 춘천(春川) 청평산(淸平山)에 들어가 선학(禪學) 연구로 여생을 보냈다. 청평산에 그가 쓴 ‘청평식암(淸平息菴)’이라는 해서체의 글자가 남아 있다.
식암자(息菴子)
벼슬을 버리고 문수사에 들어와 37년 동안 머물렀던 고려 이자현(李資玄)의 호이다. 김부식(金富軾), 「문수원기(文殊院記)
식양(息壤)
저절로 불어난다는 신비한 흙. 식토(息土)와 같은 말로서 모손(耗損)과 감소(減少)를 모르는 땅이다.
식언(食言)
한 번 입에서 나온 말을 다시 입으로 들여보낸다는 뜻이다. 한 번 말한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 / 인용: 溫達
식영(息影)
인위적인 허식을 버리고 자연의 진성(眞性)을 추구함을 말한다. 공자와 어부(漁夫)와의 대화에서 나온 것으로, 공자가 어부에게 묻기를 “나는 잘못한 일도 없이 여러 가지 비방을 받으니, 그 까닭이 무엇입니까?”하자, 어부가 대답하기를, “제 그림자를 두려워하고 제 발자국을 싫어하여 그것을 떼버리려고 달아난 자가 있었는데, 그러나 발을 자주 들수록 발자국은 더욱 많아지고 아무리 빨리 뛰어도 그림자는 몸을 떠나지 않았소. 그래서 그는 아직도 제 걸음이 느려서 그런 줄 알고 더욱 빨리 달리다 마침내는 힘이 지쳐 죽고 말았습니다. 그는 곧 그늘 속으로 들어가 있으면 그림자가 없어지고 조용히 쉬고 있으면 발자국도 멈춰진다는 것을 몰라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장자(莊子)』 「어부(漁父)」
식우기(食牛氣)
호랑이나 표범 새끼는 아직 털 무늬가 이루어지기 전에도 소를 잡아먹는 기상을 지니고 있다[虎豹之駒 未成文而有食牛之氣]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비범한 소년을 비유할 때 쓰는 표현이다. 尸子 卷下
식자우환(識字憂患)
‘글자를 아는 것이 도리어 근심거리가 된다’는 말로, 아는 것이 탈이라는 말이다. 학식이 있는 것이 도리어 근심을 사게 됨을 말한다.
식장(植杖)
지팡이를 땅에다 꽂고서 김을 매는 것을 말한다. 『논어(論語)』 「미자(微子)」에, ‘지팡이를 짚고 대바구니를 멘 장인(丈人)이 공자(孔子)의 행방을 묻는 자로(子路)의 질문에 몇 마디 면박을 주고는 곧장 지팡이를 꽂아 놓고 김을 매었다[植其杖而耘].’는 기록이 있으며, 공자가 흐르는 물을 보고는 “가는 것이 이와 같나니, 주야에 그치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라고 탄식한 고사가 「자한(子罕)」에 실려 있다.
식장구(食場駒)
『시경(詩經)』 소아(小雅) 「백구(白駒)」에 “하얀 망아지 우리 장포(場圃)의 벼 싹 먹었네[皎皎白駒 食我場苗].” 한 말이 있는데, 이는 현자(賢者)가 떠나는 것을 억지로 만류하기 위하여 타고 온 망아지가 자기 전원의 곡식을 뜯어먹었다는 핑계로 묶어 놓아, 떠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읊은 것이다.
식재송설(息齋松雪)
식재(息齋)는 원(元) 나라 명필 이간(李衎)의 호이다.
식지동(食指動)
집게손가락(食指)이 절로 움직이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조짐이라는 고사가 있는데, 전하여 욕심이 생김을 비유한 말이다.
식차거(識硨磲)
차거(硨磲)는 서역(西域)에서 생산되는 옥(玉) 종류의 돌로서 그 지방에서는 보배로 여긴다고 한다. 위문제(魏文帝), 「차거완부서(車渠椀賦序)
식채(食菜)
채지(采地)와 같은 것으로, 나라에서 받은 땅을 말한다. 『후한서(後漢書)』 「풍방전(馮魴傳)」에 “풍성(馮城)에 식채(食菜)하여 관향을 삼았다.” 하였는데, 그 주에 “채(菜)는 채(采)로 쓰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식천감대(食薦甘帶)
좋아하고 싫어하는 맛이 각기 달라서 일정하지 않다는 뜻이다. 천은 짐승이 잘 먹는 풀이고 대(帶)는 곧 뱀을 가리키는데,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 “사슴은 천을 먹고 지네는 뱀을 즐겨 먹는다[麋鹿食薦 螂且甘帶].” 하였다.
식초우(食草愚)
『공자가어(孔子家語)』 「집비(執轡)」에 “풀을 먹는 짐승은 달리기를 잘하지만 어리석다[食草者善走而愚].” 하였다.
식토룡건(拭吐龍巾)
이백(李白)이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을 때에 당명황(唐明皇)이 글을 짓게 하려고 부르니 이백이 밖에서 술이 취하여 들어와서는 구토(嘔吐)를 하였다. 임금이 친히 수건으로 그것을 닦아주었다.
식파연(食破硯)
벼루(硯)에 글을 써서 먹고산다는 뜻이다.
식평(食苹)
천자가 군신과 빈객(賓客)에게 잔치를 베푸는 것을 말한다. 『시경(詩經)』 소아(小雅) 「녹명(鹿鳴)」에, “화락하게 우는 사슴의 울음소리여, 들판의 대쑥을 뜯는도다[呦呦鹿鳴 食野之苹].” 하였다.
식형주(識荊州)
한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우러르고 사모하는 사람을 알게 되었다는 말로, 형주는 당 현종(唐玄宗) 때 형주자사(荊州刺史)를 지낸 한조종(韓朝宗)인데, 평소에 숨은 인재를 발탁하길 좋아하여 최종지(崔宗之)ㆍ엄무(嚴武) 등을 조정에 천거하였으므로 당시의 선비들이 그의 인정을 받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생각하였다. 한조종이 형주자사일 때 이백(李白)이 그에게 보낸 편지에 “살아서 만호후(萬戶侯)에 봉해질 것이 아니라 다만 한 번 한 형주를 알기 원한다.” 한 데서 유래하였다. 『고문진보(古文眞寶)』 後集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
식형지원(識荊之願)
훌륭한 사람을 사모하는 말이다. 이태백(李太白)이 형주 자사(荊州刺史) 한조종(韓朝宗)에게 보낸 편지에 “만호후(萬戶侯)를 원치 않고, 다만 한 형주가 한 번 알아주기를 바란다.” 한 말에서 인용한 것이다.
식회(植檜)
송(宋) 나라 소식(蘇軾)이 쌍회(雙檜)를 두고 지은 시에 “……뿌리가 구천에 이르도록 굽은 곳이 없건만, 세간에서는 오직 숨은 용만이 안다오[根到九泉無曲處 世間唯有蟄龍知].” 하였는데, 신종(神宗) 연간에 소식이 어떤 죄로 대리옥(大理獄)에 수감되어 있을 때, 당시의 왕규(王珪)가 임금 앞에 나아가 소식의 이 시구를 들어, 비룡(飛龍)은 자기를 알아주지 않고 숨은 용[蟄龍]만이 자기를 알아준다는 의미이니, 이것은 곧 폐하(陛下)께서 불신(不臣)의 뜻이 있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 참소하자, 신종이 이르기를 ”시인의 말을 어찌 이렇게 논할 수 있겠는가. 그는 스스로 회나무[檜]를 읊었을 뿐인데, 그것이 집의 일과 상관이 있단 말인가. “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소동파집(蘇東坡集)』 卷八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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