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 월
월(鉞)
도끼인데, 옛날에 출정하는 장군이나 지방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는 뜻으로 임금이 손수 주었다.
월견폐괴(越犬吠怪)
월(越) 나라 지방은 기후가 따뜻하여 눈이 잘 오지 않으므로 그 지방의 개(犬)들은 눈을 보면 이상하게 여겨 마구 짖어댄다는 데서 인용한 말이다.
월관(越冠)
① 인재가 적재 적소에 쓰이지 못함을 비유한 말이다. 『회남자(淮南子)』에 이르기를 “노(魯) 나라 사람이 자신은 관(冠)을 잘 만들었고, 자기 아내는 신(履)을 만들 줄 알았는데, 그들이 월 나라로 옮겨가서는 대단히 곤궁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쓰임이 있는 것을 가지고 쓰이지 않는 고장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② 하는 일이 시의(時宜)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송(宋) 나라 사람 중에 장보관(章甫冠)을 사 가지고 월 나라로 팔러 간 사람이 있었는데, 월 나라 사람들은 모두 단발(斷髮)을 하고 문신(文身)을 새겼으므로 소용이 없었다[宋人資章甫而適越, 越人斷髮文身, 無所用之].” 하였다.
월광(月光)
① 석가가 과거 세상에 월광태자(月光太子)였으므로 그를 가리킨다.
② 천축(天竺) 마갈타국 사람으로 부처를 신봉하였던 월광 동자(月光童子)를 말하는데, 월광 동자는 항상 천태산(天台山)에 있으면서 신선이 산다는 숭고산(嵩高山)의 동남쪽 큰 바위 밑 동굴 속에 늘 왕래하였다 한다. 『선경(仙經)』 「숭산기(嵩山記)」
월굴(月窟)
소강절(邵康節)의 시(詩)에, “「건괘(乾卦)」가 손괘(巽卦)를 만나면 월굴(月窟)이요, 곤괘(坤卦)가 진괘(震卦)를 만나면 천근(天根)이다.” 하였고, 주자(朱子) 소강절찬(邵康節贊)에, “손으로 월굴을 더듬고 발은 천근을 밟았도다[手探月窟 足躡天根].”하였는데, 그것은 『주역(周易)』의 이치를 알았다는 뜻이다.
월굴(月窟)
① 소강절(邵康節)의 시에 “건(乾)이 손(巽)을 만나면 월굴을 본다”고 하였다. 단오(端午)는 5월 5일인데 5월은 건상손하(乾上巽下)인 구괘(姤卦)로서 음효(陰爻)가 처음 생기므로 월굴이라고 말한 것이다. 『주역총목(周易總目)』
② 전설에 달이 나오고 들어가고 한다는 굴로, 서쪽에 있다고 한다. 극서(極西) 지역을 가리킨다.
월궁(月宮)
천상(天上)에 있다는 광한궁(廣寒宮)을 말하는데, 이곳은 언제나 시원하여 ‘광한궁’이라 이름하였다 한다. 일사(逸史)에 “나공원(羅公遠)이 지팡이를 허공에 던져서 은교(銀橋)를 화현(化現)시키고 명황을 안내하여 월궁에 들어갔다. 이에 선녀(仙女) 수백 명이 다 하얀 명주옷 차림으로 넓다란 궁정(宮庭)에서 춤추는 광경을 보고 그 곡(曲)을 묻자 예상우의(霓裳羽衣)라고 했다.” 하였다.
월녀(越女)
① 서시(西施)처럼 아름다운 미녀(美女)를 말한다. 예로부터 월(越) 나라와 제(齊) 나라 지방에서 미녀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매승(枚乘), 「칠발(七發)」
② 월나라 여자. 옛날에 월나라에는 미녀가 많았다는 데서 월녀라고 하면 미인을 말한다. 대표적인 미녀로 서시(西施)가 있는데, 월나라에서 정략적으로 오(吳)나라 왕 부차(夫差)에게 바쳐, 그를 향락(享樂)에 빠뜨려 정치에서 멀어지게 해 결국 오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한다.
월녀일소삼년류(越女一笑三年留)
한창려(韓昌黎; 韓愈)가 후희(侯喜)에게 지어 준 시에, “월녀일소 삼년류(越女一笑三年留)”라는 구(句)가 있었다. 그때에 후희가 월(越)나라 지방에 가서 여인에게 혹하여 3년 동안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한유(韓愈)가 경계한 것이다.
월단평(月旦評)
매월 초하루의 품평. 인물에 대한 비평. 후한(後漢) 여남 사람인 허소(許劭)가 그의 형 정(靖)과 함께 당시에 명사로 이름이 났었는데 그 지방의 인물을 품평하기를 좋아하여 매월 초하루마다 그 대상을 바꿔가며 품평하였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후한서(後漢書)』 卷六十八 「허소전(許劭傳)」
월등(越等)
같은 무리(동료)들 보다 뛰어남
월등삼매(月燈三昧)
부처님이 월광동자를 상대하여 일체법체성평등무희론삼매(一切法體性平等無戲論三昧)의 법문을 말한 것이 월등삼매이다.
월령편(月令篇)
『예기(禮記)』의 한 편명인데, 농가에서 1년 12개월에 걸쳐 그때그때 해야 할 연중행사를 적은 것으로 후세에도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등 이와 비슷한 것이 많다.
월로(月露)
시문을 짓는 것도 월로풍운(月露風雲)을 형용하는 데 불과하다는 뜻에서 온 것으로 가치없는 무용의 문자를 의미한다.
월로풍운(月露風雲)
시문(詩文)을 짓는 것이 달ㆍ이슬ㆍ바람ㆍ구름을 형용하는 데에 불과하다는 뜻에서, 전하여 쓸데없는 문자를 비유한 말이다.
월리계향(月裏桂香)
달 속에 있다는 계수나무의 은은한 향기처럼 주위를 감싸고 도는 달빛을 표현한 것이다.
월만당휴왕독서(月滿當虧枉黷筮)
백제(百濟) 의자왕(義慈王) 때에 땅에서 거북(龜) 한 마리를 파냈는데, 거북 등에, “백제는 동월륜(同月輪)이요, 신라는 신월(新月)이다.”고 씌여 있었다. 임금이 점쟁이에게 물으니, “동월륜은 만(滿)이니 즉 시들어진다”고 풀어 임금이 노하여 점쟁이를 죽였다. 『삼국지(三國史)』
월명(月蓂)
요(堯) 임금 때에 나왔다는 상서로운 풀 명협(蓂莢)을 가리킨다. 초하루부터 보름까지는 하루에 한 잎씩 났다가 열엿새부터는 한 잎씩 떨어져 그믐날에 다 떨어져 버리기 때문에 달력의 대명사로 쓰이게 되었다. 『죽서기년(竹書紀年)』 卷上 「제요도당씨(帝堯陶唐氏)」
월무방진건장개(越巫方進建章開)
한 무제 때 백량전(柏梁殿)이 불탔는데, 월(越) 나라 무당 용지(勇之)가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다시 큰 궁궐을 지어 이를 이겨내야 한다.”고 하자 건장궁을 새로 지었다고 한다. 『삼보황도(三輔黃圖)』 「한궁(漢宮)」
월벽(越璧)
아주 좋은 구슬을 말하는데,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월변횡영옥성최(月邊橫影玉成摧)
달 밝은 밤 강물에 비친 매화나무 가지의 수많은 매화를 옥무더기에 비유한 것.
월부(月賦)
위(魏) 나라 왕찬(王粲)이 진왕(陳王) 조식(曹植)을 위해 지은 것.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의 호이다.
월상(越裳)
남방을 말한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교지의 남쪽에 월상씨가 있다[交趾南 有越裳氏].” 하였다.
월상(越裳)
주(周) 나라 때 안남(安南)의 남쪽에 있던 나라 이른다. 『후한서(後漢書)』 「남만전(南蠻傳)」에 “교지(交趾) 남쪽에 월상국이 있는데,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한 지 6년 만에 천하가 태평해지자 중역(重譯)하여 와서 백치(白雉)를 바쳤다.” 하였다.
월상백치(越裳白雉)
월상(越裳)은 현재의 월남(越南) 남부에 있었던 나라이다. 『후한서(後漢書)』 「남만전(南蠻傳)」에 “교지(交趾)의 남쪽에 월상국이 있었는데, 주공(周公)이 섭정(攝政)했을 때에 통역을 여러 번 거쳐 흰 꿩을 바쳤다.” 하였다.
월상씨(越裳氏)
남해(南海)에 있다고 하는 옛날 나라의 이름이다. 주 나라 성왕(成王) 때 월상씨의 사자가 와서 주공(周公)에게 흰 꿩을 바쳤는데, 주공이 돌아가는 길에 길을 잃을까 염려하여 지남거를 주어서 돌아가게 하였다. 『논형(論衡)』 「회국(恢國)」에, “주(周) 나라 성왕(成王) 때 월상에서 사신이 와서 꿩을 바쳤다.” 하였다. 월상(越常)이라고도 한다.
월서(越署)
서경(署經)에 통과되지 못함을 이른다. 당하관(堂下官)을 임용할 때, 이조(吏曹)에서 피임자(被任者)의 문벌ㆍ이력ㆍ내외 4조(父ㆍ祖ㆍ曾祖ㆍ外祖)와 처(妻)의 4조를 기록하여 양사(兩司; 司憲府ㆍ司諫院)에 제출하면, 양사는 그를 심사한다. 그리하여 결점이 없다고 판단되면, 양사의 대간(臺諫)이 모두 서명하는데 이를 서경(署經)이라 하고, 부당하다고 판단되면 서명을 거부하는데 이를 월서(越署) 또는 월서경(越署經)이라고 하였다. 서경에 통과되어야 직첩(職牒)을 발급하는 것이 법례이므로, 이조(吏曹)는 양사에 3차 서경(署經)을 요구하는데 그래도 통과되지 않을 경우는 부득이 체임(遞任)시켰던 것이다.
월세가(越世家)
『사기(史記)』의 「월왕구천세가(越王句踐世家)」를 말한다.
월속현호거소전(月屬懸弧擧素旃)
태어났던 그달에 죽었다는 말이다. 옛날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문 좌측에 활을 걸어 두었던 풍속이 있었다. 『예기(禮記)』 「내칙(內則)」 흰 깃발은 만장(挽章)을 말한다.
월아(月娥)
월궁(月宮)의 선녀 상아(嫦娥)를 말한다.
월역분신천백억(月亦分身千百億)
부처(佛)가 천백억(千百億)의 화신(化身)을 나타내므로 달을 거기에 비유한 것이다.
월영대(月影臺)
마산(馬山) 서쪽 해변과 창원(昌原) 남쪽 해항(海港)에 있는 대(臺)인데, 최치원(崔致遠)이 놀던 곳이다.
월영즉식(月盈則食)
달이 꽉 차서 보름달이 되고 나면 줄어들어 밤하늘에 안 보이게 된다. 한번 흥하면 한번은 망함을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월왕대(越王臺)
한(漢) 나라 때 남월왕(南越王) 조타(趙佗)가 세운 대인데, 지금 광동성(廣東省) 월계산(越季山) 위에 있다.
월외송(月外松)
소나무의 나뭇결이 곧아서 쪼개기 쉬운 것을 일컫는 말이다.
월운(月暈)
달의 주위를 에워싼 달무리처럼 적에게 포위된 고성(孤城)을 가리킨다. 한 고조(漢高祖)가 평성(平城)에서 포위되었을 때에도 달무리가 섰다는 기록이 있으며,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동래 부사(東萊府使) 송상현(宋象賢)의 시에도 ‘달무리 진 외로운 성[孤城月暈]’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월음(越吟)
고향을 생각하고 고국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슬픈 노래를 말한다. 장석(莊舃)은 월(越) 나라 사람으로 초(楚) 나라에 와서 현달하였다. 초왕(楚王)이 “장석은 월 나라 사람인데, 지금도 월 나라를 그리워하는가?”하니, 중사(中使)가 아뢰기를, “대개 사람이 병이 들면 고향을 그리워하는 법입니다. 장석이 월 나라를 그리워한다면 월 나라의 소리로 신음할 것이고, 월 나라를 그리워하지 않는다면 초 나라의 소리로 신음할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초왕이 사람을 시켜서 알아보니, 장석이 과연 월 나라의 소리로 신음하였다. 『사기(史記)』 張儀列傳 附 「진진전(陳軫傳)
월이명서(月裏名書澤)
감택(闞澤)이 13세 때 자신의 이름자가 달 속에 환히 쓰여 있는 꿈을 꾸었다. 오회계(吳會稽), 「선현전(先賢傳)」
월자(月姊)
‘달 속에 있다는 항아(姮娥)’를 말한다.
월재생백야(月哉生魄夜)
음력 열엿새(16일)를 가리킨다. 백(魄)은 어둡다는 뜻으로 보름이 지나면 달이 점점 기울기 때문에 이른 말이다. / 유의어: 기망(旣望)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의 호이다.
월정선(月汀先)
호가 월정인 윤근수(尹根壽)를 말한다.
월정시(月征詩)
『시경(詩經)』 소아(小雅) 「소완(小宛)」으로, 날마다 학문 공부에 매진하는 뜻을 읊은 시이다. 그 시에, “저 할미새를 보니, 날면서 곧 우는도다. 내 날로 매진하나니, 너도 달로 나아가라[題彼脊令 載飛載鳴 我日斯邁 而月斯征].”하였다.
월조소남지(越鳥巢南枝)
남쪽 월나라에서 온 새는 언제나 남쪽 가지에 앉는다. 즉 고향을 그리워한다. / 유의어: 호마의북풍(胡馬依北風).
월조장석(越調莊舃)
월조(越調)는 음조(音調)의 이름으로 상성(商聲) 칠조(七調)의 하나인데, 월 나라에서 나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국시대(戰國時代) 월 나라 사람인 장석이 초 나라에 벼슬하여 부귀를 누렸으나 고국을 잊지 못해 병중에 고국을 그리며 월 나라의 곡을 노래하였다.
월조평(月朝評)
인물에 대한 비평. 후한(後漢) 때 허소(許劭)가 그의 향당의 인물들을 매월 초하루에 비평했다 한다.
월중륜(月重輪)
악부슬조곡(樂府瑟調曲)의 이른다. 한 명제(漢明帝)가 태자 시절 뭇 신하들이 태자를 위해 지은 노래로서 일중광(日重光)ㆍ월중륜(月重輪)ㆍ성중휘(星重輝)ㆍ해중윤(海重潤)의 4장(章)이 있었다고 한다. 『악부시집(樂府詩集)』
월지(月指)
『불경(佛經)』에, “손가락으로 하늘의 달(月)을 가리켜서 남에게 알려 주면, 달만 보고 손가락은 잊어야 한다.” 하였는데, 이것은 말로써 진리(眞理)를 설명하여 남에게 알려 주면, 진리를 안 후에는 그 말을 잊어야 한다는 데에 비유하였다.
월지(月支)
일명 월지(月氏)라고도 하는 서역(西域)에 있는 왕국(王國).
월지국(月支國)
월지(月氏)라고도 하는데, 옛날 서역(西域)에 있었던 나라. 본래 돈황(燉煌) 지방에 살았었는데, 흉노(匈奴)에 쫓겨 현재의 인도(印度) 지역으로 이주한바, 명마(名馬)가 생산되었다. 정운(正韻)에 “월지는 대완(大宛)의 서쪽에 있다.” 하였다.
월지두(月支頭)
흉노(匈奴)가 일찍이 월지왕(月支王)의 군대를 격파하고 월지왕의 두골(頭骨)로 술그릇을 만들었던 데서 온 말이다.
월지심(月指尋)
불법(佛法)의 본체(本體)를 깨달을 것이라는 뜻이다. 월지는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다는 뜻이다. 즉 달을 법(法)의 본체에 비유한 말이다. 『능엄경(楞嚴經)』 이(二)에 “어떤 사람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켜 저 사람에게 보이면, 저 사람은 의당 그 손가락을 인하여 달을 보아야 할 것인데, 만일 손가락을 보고 달이라 한다면 그 사람은 어찌 달만 잃은 것이겠는가? 손가락까지 잃어버린 것이다.” 하였다.
월지요령(月氏要領)
장건(張騫)이 월지국에 도착해서 원래의 목적인 동맹 관계도 체결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사기(史記)』 「대원열전(大宛列傳)에 “월지(月氏)가 대하(大夏)를 정복한 데다가 땅은 넓고 외부의 침략도 없어 안락하게 살 뜻만 지니고 있었고, 또 한(漢) 나라를 소원하게 여겨 흉노를 멸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장건이 끝내 월지로부터 명확한 해답을 받지 못하였다[竟不能得月氏要領].”는 기사가 실려 있다.
월처시지진(刖處始知眞)
어려운 환경을 겪어보아야 인품의 진면목을 알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초(楚) 나라 변화(卞和)가 산중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두 차례에 걸쳐 여왕(厲王)과 무왕(武王)에게 바쳤으나 두 번 다 옥인(玉人)에 의해 박옥이 아닌 돌로 감정되어, 두 번에 걸쳐 좌ㆍ우측 발꿈치를 다 잘리었다가, 문왕(文王)이 즉위한 뒤에야 진짜 박옥임이 밝혀졌던 고사에서 온 말이다. 『한비자(韓非子)』 「화씨(和氏)」
월출산(月出山)
전라남도에 있는 산 이른다. / 인용: 達梁行(백광훈)
월탁(越橐)
‘월 나라 지방의 전대’라는 뜻으로 ‘사신에게 주는 선물’을 말한다. 한 고조(漢高祖) 때 변사(辯士) 육가(陸賈)가 한 나라에 복종하지 않은 남월왕(南越王) 위타(尉他)를 회유하기 위해 사신으로 찾아가 목적을 달성하고 위타로부터 금은보화 등 값진 보물을 많이 받았다는 데서 나온 것으로, 외국에 나간 사신의 여행 경비를 말한다. 육가는 가지고 온 천금(千金)을 그의 아들 다섯에게 2백 금씩 나누어주었다 한다. 『사기(史記)』 卷97 「역생육고열전(酈生陸賈列傳)」 / 인용: 江上女子歌(이광정)
월탁금(越橐金)
한(漢) 나라 문제(文帝) 때 육가(陸賈)가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면서 남월 왕이 주는 재물을 싸 가지고 와서 부자가 되었다. 『사기(史記)』 卷97 「역생육고열전(酈生陸賈列傳)」
월탁련진(越橐連軫)
한 나라 문제(文帝) 때 육가(陸賈)가 남월(南越)에 사신으로 갔다가 오면서 남월의 왕이 천금(千金)을 주는 것을 받아 가지고 와서 그의 아들 다섯에게 2백 금씩 나누어 주었다. 남월의 왕 조타(趙侘)가 한 나라 문제 때 스스로 왕이 되어 무제(武帝)라고 칭하였는데, 문제가 육가를 사신으로 보내어 타이르자 드디어 황제의 호칭을 버리고 신(臣)이라 칭하였다. 『사기(史記)』 卷97 「역생육고열전(酈生陸賈列傳)」
월태화용(月態花容)
달 같은 자태와 꽃 같은 얼굴. 아름다운 여자의 고운 모습과 태도
월파루(月波樓)
황강성(黃岡城) 위에 있던 누각
월평(月評)
월단평(月旦評)으로, 인물(人物)을 품평(品評)하는 것을 말한다. 한(漢) 나라 때 허소(許劭)가 향당의 인물을 논핵하기를 좋아해서 매월 초가 되면 인물을 다시 품평하였으므로, 여남(汝南) 사람들이 이를 두고 ‘월단평’이라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卷68 「허소열전(許劭列傳)」
월하노인(月下老人)
달빛 아래의 노인. 혼인을 맺어 주는 노인.
월하빙인(月下氷人)
월하로(月下老)와 빙상인(氷上人)이 합쳐진 것으로, 혼인은 천생연분이 있다는 고사에서 비롯됨. 남녀의 인연을 맺어주는 사람
월헌(月軒)
고려의 명승(名僧) 나옹(懶翁)이 있던 곳. 나옹이 거기서 입적(入寂)하였다.
월훈(月暈)
허신(許愼)의 말에 “군사(軍事)가 있어 서로 위수(圍守)하고 있으면 달무리가 진다.”고 한 데서 온 말로, 즉 전쟁이 일어날 조짐을 이른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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