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7. 의
의가(宜家)
『시경(詩經)』 주남(周南) 「도요(桃夭)」에 “야들야들 복사꽃, 열매가 주렁주렁. 이분 시집감이여, 가실 화순케 하리로다.[桃之夭夭 有蕡其實 之子于歸 宜其家室]”라고 하였다.
의가재교초(宜家在敎初)
“부인은 처음 시집올 때 잘 가르쳐야 하고, 아들은 나이가 어릴 때 잘 가르쳐야 한다[敎婦爲初來 敎兒爲孀孩].”는 말이 있다. 『안씨가훈(顔氏家訓)』 「교자(敎子)」
의갈부(衣褐夫)
중산은 지명으로 품질 좋은 붓을 생산하던 곳이고, 의갈부란 털옷을 입었다는 뜻으로 즉 토끼를 의인화(擬人化)하여 이른 말이다.
의감(醫鑑)
동의보감(東醫寶鑑).
의개조란(倚蓋鳥卵)
모두 하늘의 형상에 대한 주장인데, 『진서(晉書)』 「천문지(天文志)」에는 “하늘은 우산을 기울인 것 같다.”고 하였고, 서경(書經) 순전(舜典)의 선기옥형(璿璣玉衡) 대목의 소(疏)에는 “혼천설(渾天說)에 의하면 하늘의 형상은 새의 알과 비슷한데 하늘이 땅의 바깥을 싼 것이 마치 알이 노른자를 싼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의갱명환(蟻坑名宦)
세상의 부귀영화가 꿈결처럼 허무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문집(異聞集)에 “당(唐) 나라 때의 순우분(淳于棼)이 어느 날 술에 취하여 집 앞 느티나무 밑에서 잠이 들었다가 괴안국왕(槐安國王)의 사신이라는 자를 따라가 괴안국왕으로부터 남가군수(南柯郡守)를 임명받아 20여 년 동안 영화를 누렸는데, 깨어나니 한바탕 꿈이었고 나무 아래를 보니 굴은 텅 빈 개미굴로, 왕개미 한 마리가 있었다.”고 하였다.
의거(義渠)
고대 중국의 이민족 이름으로 서융(西戎)의 일족이다. 지금의 감숙성 서북의 경수(涇水) 일대에 분포되어 살았다. 춘추 때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진나라와 매년 충돌하여 싸움을 벌열다. 진소양왕 37년인 기원전 270년에 비로소 진나라에 의해 병합되었다. 의거왕과 통정한 선태후가 의거왕을 감천궁으로 유인하여 살해하고 후에 군사를 일으켜 의거를 멸하였다. 「흉노열전(匈奴列傳)」
의경(意境)
문예 작품에 표현되어 나온 정조(情調)와 경계(境界)로, 명(明) 나라 주승작(朱承爵)의 『존여당시화(存餘堂詩話)』에 “作詩之妙 全在意境融徹 出音聲之外 乃得眞味”라는 말이 있다.
의고(擬古)
고시(古詩)를 본떠서 짓는 일종의 시체이다.
의골(義鶻)
송골매가 멀리 먹이를 구하러 나간 사이에 백사(白蛇)가 둥지에 기어 올라와 새끼들을 해치자 기어코 물어뜯어 백사를 죽였던 이야기가 두보(杜甫)의 시 의골행(義鶻行)에 실려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6
의공신(衣功臣)
광해군 때 왕에게 옷을 바친 공으로 왕이 특별히 포장한 것을 지적하여 옷을 바친 정창연(鄭昌衍)을 부른 말이다.
의관괘신무(衣冠掛神武)
양(梁) 나라 때 도홍경(陶弘景)이 의관을 신무문(神武門)에 걸고 사직(辭職)한 고사로, 전하여 고사(高士)가 벼슬에서 은퇴하는 것을 말한다.
의관두곡(衣冠杜曲)
명문 출신의 사대부들이라는 말이다.
의관미어월(衣冠迷於越)
송(宋) 나라 사람이 중국의 의복을 팔려고 월 나라에 갔는데, 그곳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깎고 나체에 문신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복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
의관미적월(衣冠迷適越)
하는 일이 시의에 맞지 않는다는 말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송(宋) 나라 사람 중에 장보관(章甫冠)을 사 가지고 월(越) 나라로 팔러 간 사람이 있었는데, 월 나라 사람들은 모두 단발(斷髮)을 하고 문신(文身)을 새겼으므로 소용이 없었다.”고 하였다.
의관엄야대(衣冠掩夜臺)
황제(黃帝)가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가자 신하들이 그 의관(衣冠)을 수습하여 장사 지내었다는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교사지(郊祀志)」 上
의관장세(倚官丈勢)
관리가 직권을 남용하여 민폐를 끼침. 세도를 부림.
의구(衣篝)
향(香)을 불태워 의류(衣類)에 향취를 들이는 제구이다.
의구(衣狗)
‘세상일이나 세태가 수시로 변하는 것’을 가리킨다. 두보의 시 「우탄(又歎)」에 “하늘 위의 뜬구름 흰 옷과 같더니만, 잠깐 사이 변하여 푸른 개와 같구나[天上浮雲如白衣 斯須改變如蒼狗].”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의국수(醫國手)
나라의 병을 치료하여 완쾌시킬 수 있는 큰 경륜의 소유자라는 말이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진(秦) 나라의 명의(名醫) 의화(醫和)가 “나라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이 첫째가는 의원이요, 사람의 병을 고치는 사람이 그 다음가는 의원이다[上醫醫國 其次疾人].”라고 말한 고사가 있다. 『국어(國語)』 「진어(晉語)」 8
의국순우분(蟻國淳于棼)
옛날 순우분(淳于棼)이라는 사람이 자기 집 남쪽에 묵은 괴화나무[槐]가 있었는데 술에 취해 그 밑에 누웠다가 잠이 들어 꿈에 개미 나라인 괴안국(槐安國)에 이르러서, 개미왕에게 쓰임을 받아 대관(大官)이 되어 무려 20여 년 동안이나 부귀공명을 누렸으나 깨어 보니 꿈이었다는 고사로, 곧 세상일은 모두 꿈과 같다는 말이다. 『이문집(異聞集)』
의국주기부(醫國走岐柎)
아무리 명수라도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나라가 병들어 있음을 이른다. 기부(岐柎)는 옛날 황제(黃帝)시대의 명의(名醫)였던 기백(岐伯)과 유부(楡柎)이다.
의금경의(衣錦褧衣)
비단 옷을 입고 그 위에 안을 대지 않은 홑옷을 또 입는다. 군자가 미덕을 갖추고 있으나 이를 자랑하지 않음을 비유한 말이다. 의금경의(衣錦絅衣)로도 쓴다. 『중용(中庸)』 33장
의금사귀(衣錦思歸)
한생(韓生)이란 사람이 항우(項羽)에게 관중(關中)에 도읍을 정하기를 권하니, 항우가 말하기를 “부귀(富貴)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아니하면 비단옷 입고 밤에 길을 걷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고, 고향을 생각하면서 한생의 기특한 계책을 듣지 않았다. 한생이 나와서 말하기를 “남들이 말하기를 “초 나라 사람은 원숭이에게 갓을 씌워 놓은 것(소견이 없다는 뜻)이라 하더니 과연 그렇구나.”라고 하였더니 항우가 듣고 한생을 삶아 죽였다.
의금상경(衣錦尙絅)
좋은 것이 가리워져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중용(中庸)』 33장에 “시(詩)에 이르기를, ‘비단옷을 입고 또 홑옷을 입는다.[衣錦尙絅]’고 하였으니, 이는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의기(欹器)
교만하지 않고 항상 중도(中道)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단속하는 것을 뜻하는 고사이다. 노 환공(魯桓公)이 의기를 항상 옆에 두고 있었는데, 뒷날 공자가 사당에서 그 의기를 보고는 “내가 듣건대, 의기라는 그릇은 속이 비어 있으면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적당히 채워져 있으면 반듯하게 서 있고, 가득 차면 엎어진다[虛則欹 中則正 滿則覆]고 하였다. …… 어찌 이 세상에 가득 차고서도 엎어지지 않는 것이 있겠는가[惡有滿而不覆者哉].”라고 탄식한 기록이 전해진다. 『순자(荀子)』 「유좌(宥坐)」
의기소침(意氣銷沈)
의기(意氣)가 쇠하여 사그러짐.
의기양양(意氣揚揚)
의기(意氣)가 대단한 모양. 기운이 차있는 모양으로 우쭐대고 으스대는 모습.
의기충천(意氣衝天)
‘의기(意氣)가 하늘을 찌른다’는 뜻이다.
의난개혁업(猗蘭開奕業)
의란은 의란전(猗蘭殿)으로 한(漢) 나라 무제(武帝)가 태어난 곳이다. 「동명기(洞冥記)」 1 / 두보(杜甫)의 시 가운데 “仙李盤根大 猗蘭奕葉光”이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卷2 冬日洛城北 謁玄元皇帝廟
의남(宜男)
아들을 잘 낳는다는 말이다.
의남초(宜男草)
망우초(忘憂草)의 이칭이다. 임신부가 그 꽃을 차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본초기(本草記)』
의니(旖旎)
성(盛)한 모양, 구름이 피어오르는 모양, 깃발이 펄럭이는 모양.
의담농(宜淡濃)
소식(蘇軾)의 서호(西湖)시에 “만약에 서호를 서자(西子)에게 비할 양이면, 묽은 단장 짙은 단장 모두 다 알맞아라.”라 한 구절이 있다. 그것은 비올 때는 짙은 단장이요, 갠 날은 담장(淡粧)에 비유한 것이다.
의당집봉(議堂集鳳)
청명(淸明)한 정치를 펴는 조정이란 뜻이다. “정사가 태평스러우면 봉황이 동산에 모여든다.[其政太平 則鳳集於林菀]”는 말이 있다. 『태평어람(太平御覽)』 卷915
의도시옥(擬陶詩屋)
청 나라 주학년(朱鶴年)의 서옥(書屋) 이름이다.
의돈(猗頓)
도주공에게 상술(商術)을 배운 뒤 목축업으로 거부(巨富)가 되었다 한다.
의란(猗蘭)
난(蘭)의 일종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아직 태어나기 전에, 어느날 경제(景帝)의 꿈에 붉은 돼지 한 마리가 구름 속에서 내려와 방란각(芳蘭閣)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방란각을 의란전(猗蘭殿)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뒤에 그 부인이 여기에서 무제를 낳았다는 고사가 있다.
의란조(猗蘭調)
공자가 지은 금곡(琴曲)의 이름이다. 공자가 위(衛) 나라로부터 노(魯) 나라에 돌아와 향란(香蘭)을 보고는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했음을 마음 아프게 여겨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의란조(猗蘭操)
금곡(琴曲)의 이름인데, 공자(孔子)가 스스로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마음 아프게 여겨, 향란(香蘭)이 중초(衆草)의 틈에 끼어서 유독 무성한 것을 자신에 비유하여 지은 노래라 한다.
의로인거(義路仁居)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上, 『맹자(孟子)』 「이루(離婁)」 上에 “인(仁)은 사람의 안택(安宅)이요, 의(義)는 사람의 정로(正路)이니라[仁, 人之安宅也; 義, 人之正路也].”라고 하였다.
의료(宜僚)
성은 웅(熊). 춘추시대(春秋時代) 초(楚)의 용사(勇士)로 구슬을 잘 다루어, 여덟 개는 늘 공중에 떠 있고 한 개만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 어느 때 초와 송(宋)이 싸우게 되었는데, 그가 가슴을 헤치고 칼을 맞고도 군전(軍前)에 서서 구슬을 놀리므로 송의 군사가 싸움을 잊고 구경하다가 패하게 되었다.
의루(倚樓)
① 누각의 난간에 기대다. 기다림의 뜻으로 많이 쓰는 표현이다.
② 조하(趙嘏)가 지은 장안추석(長安秋夕)이라는 칠언율시의 제4구에 나오는 말인데, 두목(杜牧)이 바로 그 구절을 무척이나 좋아하였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조하를 조의루라고 칭하기까지 하였다. 참고로 그 시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雲物凄涼拂曙流 漢家宮闕動高秋 殘星數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 紫艶半開籬菊淨 紅衣落盡渚蓮愁 鱸魚正美不歸去 空戴南冠學楚囚”
의루명(倚樓名)
뛰어난 시인의 명성을 말한다. 당(唐) 나라 시인 조하(趙嘏)의 시 ‘조추(早秋)’에 “몇 점 남은 별빛 속에 기러기는 변방을 질러가고, 한가락 피리 소리 속에 사람은 누대에 기대 있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두목(杜牧)이 이 표현을 너무도 좋아한 나머지 그를 조의루(趙倚樓)라고 불렀다는 고사가 전한다. 『당척언(唐摭言)』 知己
의루인(倚樓人)
당(唐) 나라 조하(趙嘏)의 시에 “몇 점 희미한 별 떠 있는 변방 하늘에 기러기 날아가고, 어디선가 들리는 구슬픈 피리 소리에 한 사람 누각에 기대어 섰네[殘星幾點雁橫塞 長笛一聲人倚樓]”라는 구절이 있는데, 두목(杜牧)이 이에 탄복한 나머지 조하를 조의루(趙倚樓)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부터, 조씨(趙氏) 성을 가진 사람을 의루인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전당시화(全唐詩話)』, 「척언(摭言)」
의릉(懿陵)
경종(景宗)의 능(陵)을 말한다.
의마(倚麻)
쑥대가 삼 속에서 자라면 자연히 곧아진다는 뜻이다. 『순자(荀子)』 「권학(勸學)」에 “쑥대가 삼 속에서 자라면 자연히 곧아지고, 흰 모래가 진흙 속에 있으면 똑같이 검어진다.”고 하였다.
의마(意馬)
‘뜻이 안정되지 못하여 마치 달리는 말과 같다’는 말이다. 『참동계(參同契)』 주(註)에 “의마(意馬)가 사방으로 달린다.” 하였다. / 인용: 意馬(임제), 愁城誌(임제), 義勝記(임영), 의승기의 주제의식 고찰(이연순)
의마심원(意馬心猿)
뜻은 말처럼 날뛰어 다루기 어렵고 마음은 원숭이처럼 이 흉내 저 흉내 다 내어 걷잡을 수 없다. ‘사람의 번뇌와 욕심은 동요하기 쉽고 억누르기 어렵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의마작(倚馬作)
궁중에서 말(馬)에 기대어 승전(勝戰)을 발표하는 노포(露布)라는 글을 빨리 기초하는 민첩한 재주란 말이다.
의마재(倚馬才)
한(漢) 나라 선무제(宣武帝)가 북정(北征)할 때, 의마(倚馬)로 하여금 노포문(露布文)을 짓게 하니, 단숨에 7장(張)의 노포문을 지었다.
의막(依幕)
임금이나 관원이 임시로 머물 수 있도록 마련한 막사. / 인용: 용재총화(성현)
의몽(蟻夢)
남가일몽(南柯一夢)의 이야기이다.
의무려산(醫巫閭山)
중국 요녕성 북진(北鎭)시에 있는 산. 중국 12대 명산 가운데 하나이자 장백산, 천산과 더불어 동북지역 3대 명산이다. 중국 황실에서는 3천 년 전 주나라 시대부터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하늘에 제사지내던 곳이며 수천 년을 내려오면서 불교와 도교의 도량지였다. 우리 역사에서 보면 고구려 광개토왕비에 나오는 ‘부산(富山)’이 의무려산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은 아사달-평양-백악산 아사달-장단경-아사달로 옮겨갔다가, 아사달에서 산신령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고조선이 도읍지를 여러 번 옮겨 다녔다는 이야기이며 그중 백악산 아사달이 의무려산(醫巫閭山)을 말한다고 한다. 또한 홍대용의 「의산문답(醫山問答)」이 탄생한 곳이다. / 인용: 梨花庵老僧行(최성대)
의무산(毉巫山)
요녕성(遼寧省) 북진현(北鎭縣) 서쪽에 있는 음산산맥(陰山山脈)의 지산(支山)으로, 순(舜) 임금이 이곳의 12산(山)을 봉해서 유주(幽州)의 진(鎭)으로 삼았었다. 『속사방여기요(讀史方輿紀要)』 山東 遼東都指揮使司 廣寧左衛
의문(倚門)
어머니가 문에 기대어 자식의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던 데서 온 말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6
의문려(倚門閭)
집에 계신 어머니가 아들의 돌아옴을 기다리는 마음. 전국(戰國) 시대 제(齊) 나라 대부 왕손가(王孫賈)의 어머니가 아들에게 “네가 아침에 나가 늦게 돌아오면 나는 문에 기대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늦게 나가 돌아오지 않으면 마을 어귀에 나가 기다린다.”고 한 말에서 온 것이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6
의문망(倚門望)
전국시대(戰國時代) 제(齊) 나라 왕손가(王孫賈)가 나이 열다섯 살에 민왕(閔王)을 섬겼는데, 그 모친이 “네가 아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올 때면 내가 집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고(倚門而望)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을 때면 내가 마을 문에 기대어 너를 기다렸다.(倚閭而望)”고 말한 고사가 있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6
의문지망(倚門之望)
멀리 가 있는 아들을 매일 문에 기대어 기다리는 어머니의 정을 일컫는 말이다. 줄여서 의문(倚門)이라고도 한다. 『전국책(戰國策)』 「제책(齊策)」 6
의미심장(意味深長)
말이나 글의 뜻이 매우 깊음. 복잡하고 깊은 의미를 지녔다는 뜻으로 사람의 행동이나 언어와 문장 등이 여러 가지 해설방법으로 나타나는 것을 이른다.
의발(衣鉢)
의(衣)는 가사(袈裟), 발(鉢)은 발우(鉢盂)로 선종(禪宗)에서 법통(法統)을 전수(傳授)할 때 신표(信表)로 사용하는 것이다. 달마(達摩)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면서 석가모니가 입던 가사(袈裟)와 밥 먹던 바리때(鉢)를 가지고 와서 법통(法統)을 전하는 제자에게 그것을 전하여 육조(六祖)에까지 전하였다 한다. 『전등록(傳燈錄)』 一
의복(倚伏)
화와 복은 서로 인연이 되어 생기고 없어짐을 말한다. 『노자(老子)』 58장(章)에 “화 속에 복이 의탁해 있고 복 속에 화가 숨어 있나니 누구라서 그 끝이 어딘 줄 알랴[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라는 말이 있다. / 인용: 道康瞽家婦詞(정약용)
의복관이좌(衣服冠而坐)
『예기(禮記)』 「옥조(玉藻)」에 “거센 바람과 맹렬한 천둥과 심한 비가 있을 적에는 밤중이라도 반드시 일어나 옷을 입고 관(冠)을 쓰고 앉아 있어야 한다.”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의복무궁사(倚伏無窮事)
『노자(老子)』 58장에 “화는 복 속에 기대어 있고, 복은 화 속에 엎드려 있으니, 누구라서 그 끝을 알 수가 있겠는가[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라는 말이 있다.
의봉기국척(蟻封驥跼蹐)
개밋둑은 작은 것을 의미함이요, 기마는 훌륭한 솜씨를 비유한 것으로서 곧 ‘좋지 못한 시체를 본받다가 훌륭한 솜씨를 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의봉혈우(蟻封穴雨)
개미가 자기들의 집 구멍을 막으면 큰 비가 올 징조라고 한다.
의불경신하유이고(衣不更新何由而故)
옛것도 새것이었을 때가 있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진(晉)나라의 환거기(桓車騎, 桓沖)는 새 옷 입기를 무척 싫어하여 항상 낡은 옷만 입고 다녔다. 하루는 그가 목욕을 한 후에 부인에게 옷을 가져오라고 하자, 그의 부인은 일부러 새 옷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새 옷을 보자마자 몹시 노하여 빨리 가져라가고 소리쳤다. 부인은 다시 옷을 가져다주며 이렇게 말했다. “옷은 새것이 낡아서 헌옷이 되는 것, 그렇지 않으면 무슨 방법으로 헌옷이 되리요?” 그러자 환거기(桓車騎)는 크게 웃으며 새 옷을 입었다. 『세설신어(世說新語)』 「賢媛(현원)」
의불급물유불향(儀不及物猶不享)
『서경(書經)』에 “향(享)하는 데는 의(儀)가 많아야 하고 의(儀)가 물(物)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향(享)하지 아니하는 것이다[享多儀 儀不及物 曰不享].”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예물보다 예의(禮儀)가 부족하면 대접(享)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맹자(孟子)』 「고자(告子)」
의상(衣裳)
수의상(垂衣裳)의 준말로, 거룩한 임금의 치세(治世)를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下에 “황제(黃帝)와 요(堯)와 순(舜)이 의상을 드리움에[垂衣裳] 천하가 제대로 다스려졌다.”는 말이 있다.
의상초초(衣裳楚楚)
『시경(詩經)』 조풍(曹風) 「부유(蜉蝣)」에 “말똥구리의 날개 빛, 그 의상이 선명토다.[蜉蝣之羽 衣裳楚楚]”라고 하였다.
의소(宜笑)
친하게 웃다.
의소계재상(依所啓宰相)
자기의 주관이 없이 남의 주장만을 따르는 재상을 비웃는 말이다.
의소세손(懿昭世孫)
영조(英祖)의 세손(世孫)이며, 장조(莊祖; 사도세자(思悼世子)임)의 첫째 아들의 묘소를 말한다.
의소우함제(宜笑又含睇)
굴원(屈原)의 「구가(九歌)」 산귀(山鬼)에 “정을 듬뿍 담고서 나를 보고 웃음이여, 산귀(山鬼) 그대도 요조한 나를 좋아하나 봐.[旣含睇兮又宜笑 子慕予兮善窈窕]”라는 구절이 있다.
의수(宜脩)
문장을 짓거나 말을 할 때 ‘수식을 잘한다’는 뜻이다.
의수유사효연명(擬收遺事效淵明)
도연명(陶淵明)이 글을 지을 때, 의희[義熙 동진(東晉) 안제(安帝)의 연호로 이때 동진이 멸망당했음] 이전은 분명히 진대(晉代)의 연호를 기입하고, 남송(南宋)이 시작된 영초(永初 무제(武帝)의 연호) 이후는 갑자(甲子)로만 기록했던 고사가 있다.
의수죽(倚修竹)
두보(杜甫)의 「가인(佳人)」시에 “해가 저문데 긴 대나무에 기대었다[日暮倚修竹]”란 구절이 있다.
의승(疑丞)
아주 옛날 천자를 보좌하던 신하를 이름. 『예기(禮記)』 「문왕세자(文王世子)」
의승신비(義勝身肥)
자하(子夏)가 공자에게 와서 배우는데, 처음에는 몸이 자꾸 파리하여지더니 얼마를 지난 뒤에는 살이 쪘다. 그 까닭을 물으니 그는 대답하기를 “처음에는 부자(夫子)의 앞에 오면 인의(仁義)가 즐겁다가, 나가 보면 부귀(富貴)가 부러워서 두 가지 생각이 마음속에서 싸우느라고 괴로워서 파리하였었는데, 이제는 의(義)가 이겨서 부귀보기를 흙덩이같이 보기 때문에 마음이 편안하여 살이 쪘습니다.” 하였다.
의식족즉지영욕(衣食足 則知榮辱)
의식이 족한 생활의 안정이 있어야만 절로 도덕과 예절을 알게 된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제(齊)나라의 재상(宰相) 관중(管仲)이 “창고가 가득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을 안다[倉廩實而知禮節 衣食足而知榮辱].”고 한 데서 온 말이다. 『사기(史記)』 「화식열전(貨殖列傳)」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생암귀(疑心生暗鬼)의 준말이다. 마음속에 의심이 생기면 갖가지 무서운 망상이 잇달아 일어나 불안해진다는 뜻의 고사성어이다. 어떤 사람이 도끼를 잃어버렸다. 도둑맞았다는 생각이 들자, 그 중에서 이웃집 아이가 수상쩍었다. 그의 걸음걸이를 보아도 그렇고, 안색을 보아도 그렇고, 말투 또한 영락없는 도끼 도둑이었다. 그러나 며칠 후 밭두렁에서 도끼를 찾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웃집 아이를 만났는데, 이번에는 그의 거동이 조금도 수상쩍어 보이지 않았다. 『열자(列子)』 「설부편(說符篇)」, 『여씨춘추(呂氏春秋)』 「유시람(有始覽)」
의심판(疑心板)
사서의(四書疑)를 조금 아는 자를 이르는 말이다.
의안(宜安)
지금의 하북성 석가장시(石家莊市) 동남쪽이다.
의양(宜陽)
① 전국 때 한나라 령으로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 부근의 성읍이다. 한나라의 서남부를 지키는 전략상 중요한 기지다.
② 전국(戰國) 때 한나라가 신정성(新鄭城)으로 천도하기 전의 도성(都城)으로 한(韓)나라의 중요한 요충지다. 진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진무왕이 주나라의 구정을 엿보기 위해 감무(甘茂)에게 명하여 의양성을 점령하도록 했다. 감무가 이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공격했으나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하자 진무왕은 철수명령을 내렸다. 이에 감무는 식양(息壤)에서의 약속을 상기시킴으로써 증원군을 얻어 결국은 의양성을 함락시켜 진무왕이 수레를 타고 주나라에 들어가 구정을 엿보게 한 고사가 있다.(감무열전 참조). 한나라는 건국에서 진나라에 망할 때까지 그 도성을 평양성(平陽城지금의 산서성 임분시(臨汾市)) → 의양성(宜陽城) → 신정성(新鄭城)으로 옮겼다.
의양호로(依樣葫蘆)
옛날 사람의 그린 양식(樣式)에 따라 호로병을 그린다는 뜻으로, 곧 옛사람을 본뜨기만 하고 새로운 생각을 창안(創案)해 내지 못한다는 말이다. 『동헌필록(東軒筆錄)』에 “도곡(陶穀)의 문한(文翰)이 당시 으뜸이었으므로 어떤 사람이 그를 천거하자, 송 태조(宋太祖)가 웃으면서 ‘듣건대, 그가 한림원(翰林院)에서 초제(草制)할 적에 노상 옛사람의 구본(舊本)을 검토하여 사어(詞語)만 이리저리 바꾸어 썼다고 하니, 이것이 이른바 옛사람의 양식대로 호로병을 그린 것이다.’라고 했다.”고 하였다.
의여(衣袽)
‘해진 옷’을 말한다. 『주역(周易)』의 「기제(旣濟)」에 주희는 주를 달며 ‘의여는 배에 난 구멍을 막는 도구다[衣袽,所以塞舟之罅漏].’라고 하여, 헌옷으로 배에 난 구멍을 틀어막기에 쓰인 것이다. 이제현(李齊賢) 「송신원외북상서(送辛員外北上序)」에서 “진실로 의(義)를 돛대로 삼고 신(信)을 돛으로 삼으며, 예(禮)를 닻줄로 삼고 지(智)를 닻으로 삼으며 공경과 삼감과 청렴과 부지런함을 의여로 삼는다[苟能檣其義, 帆其信, 纜其禮, 碇其智, 衣袽其敬愼廉勤].”라는 말을 썼다.
의연종유(依然種柳)
벼슬에 매이는 일이 없이 시골에 물러나서 편안하게 살던 때를 말한다. 집 문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어 놓고 즐기며 스스로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고 일컬었던 진(晉) 나라 도연명(陶淵明)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의옥(倚玉)
갈대같이 변변치 못한 인물이 옥수(玉樹)와 같은 훌륭한 인물에게 의지한다는 겸가의옥수(蒹葭倚玉樹)의 준말로, 존귀한 친척의 덕을 보는 데 비유한 말이다.
의왕(醫王)
부처의 별칭이다.
의위(儀衛)
의장병(儀仗兵)을 말하는데, 보통 의(儀)는 문(文)을, 위(衛)는 무(武)를 상징한다. 『송사(宋史)』 「의위지(儀衛志)」
의의(依依)
① 고향을 떠날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말로, 『시경(詩經)』 소아(小雅)의 변방에 오래 있다가 귀향한 병사의 심경을 읊은 시인 「채미(采薇)」의 ‘양류의의(楊柳依依)’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② 나뭇가지가 휘늘어진 모양, 헤어지기 섭섭한 모양, 안타까이 사모하는 모양, 마음이 조마조마한 모양, 멀어서 희미한 모양. 결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모양.
의의(觺觺)
뿔이 뾰족한 모양이다.
의의(儗儗)
식물이 무성한 모양, 어찌할 바를 모름, 당혹함
의의(猗猗)
아름답고 무성한 대밭을 형용하는 말이다. 『시경(詩經)』 위풍(衛風) 「기욱(淇澳)」, 『대학(大學)』 3장
의의(儀儀)
의용을 갖추어 덕이 있는 모양
의의(懿懿)
향기로운 모양, 아름답고 착한 모양
의이(薏苡)
율무. 먹으면 몸을 가볍게 하고 욕심이 적어지고 또 장기(瘴氣)를 이긴다 한다. 한(漢) 나라 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정벌할 적에 남방의 장기(瘴氣)를 막고자 율무죽을 먹었는데, 율무의 낟알이 몹시 큰 것이 아주 좋았다. 정벌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씨로 삼으려고 그 율무를 수레에 싣고 왔는데, 마원이 죽은 뒤에 마원을 중상하는 자가 “지난번에 정벌 갔을 때 싣고 온 것은 모두 남방의 진귀한 물품이다.”라고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卷24 「마원전(馬援傳)」
의이거(薏苡車)
동한(東漢)의 복파 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교지(交趾)를 정벌하고 돌아올 때, 남방의 장기(瘴氣)를 막기 위하여 그곳에서 복용하던 율무(薏苡)를 수레에 가득 싣고 왔는데, 그가 죽고 난 뒤에 사람들이 명주(明珠)와 값있는 가죽을 수레에 싣고 왔었다고 비방하며 참소한 고사가 있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의이방(薏苡謗)
억울하게 참소를 당하는 것을 말한다. 후한(後漢) 마원(馬援)이 교지국(交阯國)에 있을 때 장기(瘴氣)를 이겨내려고 율무(薏苡)를 먹다가 귀국할 때 한 수레 가득 그 씨앗을 싣고 왔는데, 그가 죽은 뒤에 명주(明珠)를 몰래 싣고 왔다고 참소한 자가 있었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의이의(薏苡疑)
마원(馬援)이 교지(交趾) 태수로 있다가 돌아올 때 약용(藥用)으로 율무를 가져왔는데 그가 사망한 뒤에 명주(明珠)와 문서(文犀)를 들여왔다는 참소를 당하였다.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
의이장소골(薏苡長銷骨)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무근의 비방을 듣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후한 때 복파장군(伏波將軍) 마원(馬援)이 교지(交趾)에 있다가 돌아올 적에, 종자(種子)로 삼기 위해 의이실(薏苡實)을 수레에 가득 싣고 왔는데, 당시 사람들이 이것을 남방(南方)의 진괴(珍怪)라고 비방했던 데서 온 말이다.
의인물사사인물의(疑人勿使使人勿疑)
‘사람을 의심하면 그 사람을 부리지 말고 사람을 부리면 그 사람을 의심하지 말아라’는 뜻이다.
의장(意匠)
문장의 구상. 작문(作文)할 때의 견사(遣辭)와 명의(命意)는 마치 장씨(匠氏)의 구상과 같다는 데서 일컫는 말. 두보(杜甫)의 「단청인증조패장군(丹靑引贈曹霸將軍)」 시에 “경영하는 가운데 의장이 참담하다.[意匠慘淡經營中]”고 하였다.
의전(衣纏)
봄과 가을에 의례 궁인(宮人)들에게 하사하는 포화(布貨)이다.
의전(蟻戰)
송나라 구양수(歐陽修)가 과거(科擧)의 시관이 되었을 때에 시를 짓기를 “1만 개미 다툴 때에 봄날이 따뜻하다.[萬蟻爭時春日暖]”고 하였다. 여러 선비가 과거보는 것을 개미의 싸움에 비유한 것이다.
의제(義帝)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05년에 죽은 전국시대(戰國時代) 초회왕(楚懷王)의 손자인 웅심(熊心)의 제호(帝號)다. 진승(陳勝)이 싸움에서 지고 죽자 그 뒤를 이은 항량(項梁)이 초원에서 양을 기르고 있던 웅심을 찾아 초왕으로 옹립하고 회왕(懷王)으로 칭했다. 기원전 207년 항우(項羽)가 진나라를 멸하고 휘하의 장수들을 제후왕에 봉하고 자신은 서초패왕(西楚覇王)이라고 칭하면서 회왕을 의제로 올린 다음 강남의 침(郴)으로 옮겨 살도록 했다. 후에 다시 항우가 구강왕 영포(英布) 등에게 지령을 내려 의제를 강상에서 살해했다. 항량이 초나라 왕손을 찾아 그의 왕호를 회왕(懷王)으로 한 것은 기원전 299년 진나라에 들어갔다가 억류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은 초회왕을 기려 진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던 초나라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 위해서였다.
의조(儀曹)
예조(禮曹)의 별칭이다.
의종(毅宗)
명 나라의 마지막 황제로서 장렬제(莊烈帝)라고도 불리는데, 그의 연호를 따라 보통 숭정 황제(崇禎皇帝)로 일컬어지고 있다.
의주자약(倚柱自若)
진(晉) 나라 하후현(夏侯玄)이 기둥에 기대어 글을 짓는데, 벼락이 기둥을 때려 옷에 불이 붙었는데도 하후현은 안색이 태연자약하여 글짓기를 그치지 않았다 한다.
의죽(義竹)
유사(遺事)에 “태액지(太液池) 언덕에 한 대나무가 있는데, 그 죽순이 끝내 멀리 떨어져서 나지 않고 마치 한군데에 심어 놓은 듯 그 자리에만 빽빽하게 났다. 임금이 제왕(諸王)들에게 ‘사람은 아무리 부모와 형제 사이라도 각기 이탈하려는 마음을 품고 있는데, 이 대나무는 그 근본을 끝내 이탈하지 않고 있으니, 이를 보는 이는 경계로 삼아야 한다.’고 이르자 제왕들은, ‘예 예’ 하였고, 임금은 이에 ‘의죽’이라 불렀다.”고 하였다.
의죽(猗竹)
무성한 대나무이다.
의중지인(意中之人)
자기 마음속에 있는 사람으로 사모하고 있는 사람.
의진(蟻陣)
편을 갈라 싸우는 개미의 진영으로, 곧 전쟁을 말한다.
의진지변(儀秦之辯)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이 제후에게 유세하였는데 변설이 능하였다. 『사기(史記)』 「장의열전(張儀列傳)」, 「소진열전(蘇秦列傳)」
의천검(倚天劒)
아주 큰 칼을 말한다. 송옥(宋玉)의 「대언부(大言賦)」에 “네모난 땅을 수레로 삼고, 둥근 하늘을 휘장으로 삼으니, 장검이 하늘 밖에서 번쩍인다[方地爲車 圓天爲蓋 長劒耿耿倚天外].”고 하였다.
의헌(儀軒)
당육전(唐六典)에 “황궁(皇宮) 안 북쪽에 의난전(儀鸞殿)이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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