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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사전 - 칠 본문

어휘놀이터/어휘사전

어휘사전 - 칠

건방진방랑자 2020. 6. 3.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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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

 

 

칠가(漆痂)

옻이 오른 것을 말한다.

 

칠거(七擧)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丹楹縹壁 紫柱虹梁 桶榱朱綠 藻稅玄黃……

 

칠거지악(七去之惡)

아내를 내쫓을 7가지 조건으로 부모님께 순종하지 않는 것(不順父母).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無子), 질투하는 것(嫉妬), 간음하는 것(不貞), 몹쓸 병에 걸리는 것(惡疾), 수다(多言), 도둑질하는 것(竊盜)’을 말한다.

 

칠격(七激)

현종(顯宗)이 현사(顯士)를 예우하지 않는 과실을 풍간(諷諫)한 것을 말한다.

 

칠견(七蠲)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寒門丘子 有疾玄野 子謂之曰 藍沼淸池 素波朱瀾 金鉤芳餌 纖繳梁緡 沈魚浮薦……

 

칠계(七啓)

조식의 칠계서(七啓序), “매승(枚乘)ㆍ부의(傅毅) 등이 지은 칠발(七發)ㆍ칠격(七激)이 모두 명문(名文)이므로 그를 본받아 칠계를 짓는다.” 하였다.

 

칠관(七款)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奇宮閑舘 廻庭洞門 井幹廣望 重閣相因

 

칠관혼돈증개규(七官混沌曾開竅)

남해와 북해의 제왕들이 중앙의 제왕인 혼돈(混沌)의 덕에 보답할 목적으로, 사람처럼 일곱 개의 감각 기관을 만들어 주기 위하여 하루에 한 구멍씩 뚫어 주었는데, 일주일이 되던 날 혼돈이 그만 죽고 말았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

 

칠교(七校)

한 나라 때 일곱 종류의 무관(武官) 교위. 곧 중루(中壘)ㆍ둔기(屯騎)ㆍ보병(步兵)ㆍ월기(越騎)ㆍ장수(長水)ㆍ석성(射聲)ㆍ호분(虎賁)등이다.

한 무제(漢武帝)가 백월(白粤)을 평정하고 나서 증설한 7교위(校尉)를 말한다. 한서(漢書)』 「형법지(刑法志)

 

칠귀(七鬼)

포박자(抱朴子)』 「지진(地眞)신명(神明)을 통하려 한다면 마땅히 금()ㆍ수()의 형체가 나눠져야 한다. 형체가 나눠지면 자기 몸의 삼혼 칠백(三魂七魄)을 절로 볼 것이다.”에서 나온 것이다.

 

칠귀(七貴)

() 나라 때 외척(外戚) 및 귀족으로 권세를 누린 칠성(七姓). 곧 여씨(呂氏)ㆍ곽씨(霍氏)ㆍ상관씨(上官氏)ㆍ왕씨(王氏)ㆍ조씨(趙氏)ㆍ정씨(丁氏)ㆍ부씨(傅氏)들을 말한다. 소학감주(小學紺珠)氏族 七貴

 

칠규혼돈착(七竅混沌鑿)

혼돈은 중앙의 신()이었는데, 남해의 신인 숙()과 북해의 신인 홀()이 그를 위하여 보고 듣게 하려고 하루에 하나씩 구멍을 뚫어 7개의 구멍을 뚫었다. 장자(莊子)』 「응제왕(應帝王)

 

칠금(七擒)

제갈량(諸葛亮)이 위()를 치고자 출사하기 전에 뒷 염려를 없애기 위하여 먼저 남만(南蠻)을 쳐 그 왕 맹확(孟穫)을 사로잡았다가 그가 열복(悅服)할 때까지 도로 놓아주기를 무릇 일곱 번 했으니,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이다.

 

칠난감(七難堪)

삼국 시대 위() 나라 혜강(嵇康)이 당시 집권자인 사마소(司馬昭) 등을 싫어했는데, 그 일당인 산도(山濤)가 그를 벼슬에 추천하자, 일곱 가지의 감당할 수 없는 사유를 들어 거절하면서 산도와 절교하였다. 흔히 시문에서 자신의 게으름이나 무능력을 일컫는 말로 쓰인다.

 

칠덕(七德)

당 태종(唐太宗)이 지은 칠덕무(七德舞), 당 태종이 무왕(武王)의 일곱 가지 덕, 즉 금포(禁暴), 집병(戢兵), 보대(保大), 정공(定功), 안민(安民), 화중(和衆), 풍재(豐財)에 기반하여 지은 악곡(樂曲)을 말한다.

 

칠덕가(七德歌)

당 나라 태종(太宗) 때 지은 노래로, 태종이 주() 나라 무왕(武王)의 일곱 가지 덕, 즉 금포(禁暴), 집병(戢兵), 보대(保大), 정공(定功), 안민(安民), 화중(和衆), 풍재(豐財)에 기반하여 지은 악곡(樂曲)을 말한다.

 

칠덕무(七德舞)

당 태종(唐太宗)이 무()의 칠덕(七德)에 기초하여 만든 무곡(舞曲) 이름인데, 칠덕은 바로 금포(禁暴)ㆍ즙병()ㆍ보대(保大)ㆍ정공(定功)ㆍ안민(安民)ㆍ화중(和衆)ㆍ풍재(豐財)이다.

 

칠도신(漆塗身)

남이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몸에 옻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예양(豫讓)이 조양자(趙襄子)를 죽여 지백(智伯)의 원수를 갚기 위해 남이 알아보지 못하도록 몸에 옻칠을 해서 문둥이로 변장했다.” 하였다. 사기(史記)86 자객열전(刺客列傳),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

 

칠등(漆燈)

귀인의 무덤은 칠등(漆燈)으로 장치한다.

 

칠략(七略)

() 나라 유향(劉向)이 아들 유흠(劉歆)과 함께 작성한 서적분류목록(書籍分類目錄)으로서 즉 집략(輯略)ㆍ육예략(六藝略)ㆍ제자략(諸子略)ㆍ시부략(詩賦略)ㆍ병서략(兵書略)ㆍ술수략(術數略)ㆍ방기략(方技略)을 합칭한 말인데, 전하여 옛 서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칠령팔락(七零八落)

나무나 풀이 산산이 어울어 떨어짐과 같이 세력이 떨어지고 연락이 끊기어 형편없이 됨을 말한다.

 

칠로회(七老會)

백거이(白居易)가 만년에 낙양(洛陽)9명의 친구를 초청하여 잔치를 벌였을 때, 호고(胡杲)ㆍ길교(吉皎)ㆍ정거(鄭據)ㆍ유진(劉眞)ㆍ노진(盧眞)ㆍ장혼(張渾)ㆍ백거이의 나이가 모두 70살을 넘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 인용: 雙明齋詩集序(이인로)

 

칠륜선(七輪扇)

일곱 개의 바퀴를 움직여서 부치는 부채로, 장안(長安)에 사는 어떤 공인(工人)이 이 부채를 만들었는데, 이 부채를 부치면 온 집안이 다 시원하였다고 한다. 서경잡기(西京雜記)1

 

칠리뢰(七里瀨)

절강성(浙江省)에 있는 여울로, 두 산의 골짜기 사이로 동양강(東陽江)이 흐르는데, 빠른 물살이 7리나 되게 흐르므로 칠리뢰라고 이름하였으며, 엄릉뢰(嚴陵瀨)라고도 한다. 북쪽 강안(江岸)에 있는 산이 부춘산(富春山)인데, 동한(東漢)의 엄광(嚴光)이 이곳에 은거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양가죽으로 만든 갖옷을 입고 낚시질을 하였다고 한다. 후한서(後漢書)卷八十三 일민열전(逸民列傳)

 

칠리탄두객(七里灘頭客)

한 광무(漢光武)의 간곡한 만류도 다 뿌리치고 부춘산(富春山)에 숨어살면서 칠리탄(七里灘) 머리에 낚시를 담그고 일생을 마친 엄광(嚴光)을 이른다.

 

칠리탄두방객성(七里灘頭訪客星)

광무제의 옛 친구 엄자릉(嚴子陵)이 동강(桐江) 칠리탄에서 낚시질을 하였다.

 

칠매손(七枚飡)

서왕모(西王母)가 복숭아 일곱 개를 가지고 내려와 두 개는 자기가 먹고 다섯 개는 한 무제(漢武帝)를 주었는데, 한 무제가 그 씨를 심으려 하자 서왕모는 이 복숭아는 3천 년 만에 한 번씩 여는 것이라, 인간에서는 심지 못한다.” 했다는 말이 한무고사(漢武故事)에 전해진다.

 

칠명(七命)

제후의 옷.

② 『진서(晉書)』 「장협전(張協傳), “屛居草澤 守道不競 以屬詠自娛 作七命辭……라 하였다.

 

칠묘(七廟)

천자(天子)의 나라의 사당. 제후(諸侯) 나라는 오묘(五廟). 7()는 원래 중국 천자의 종묘 제도이고, 조선은 제후국으로서 5묘의 제도를 채택했으나, 서경(書經)함유일덕(咸有一德)에서 일곱 대의 묘를 통해 그 나라의 덕을 볼 수가 있고, 만인의 어른 되는 사람을 통하여 그 나라의 정치를 볼 수가 있는 것이다[七世之廟 可以觀德 萬夫之長 可以觀政].”라고 말했다.

 

칠민(七閩)

중국 복건성(福建省) 지방을 가리킨다. 옛날 숙웅(叔熊)의 자손이 칠종(七種)으로 나뉘어 살았기 때문에 일컬어진 말이다.

 

칠발(七發)

매승이 칠사(七事)를 들어 초 태자(楚太子)를 계발(啓發)하고 양 효왕(梁孝王)을 풍간(諷諫)하던 것으로, 8수의 문()이 전해짐.

일곱 가지 사항으로 왕자를 깨우침. ()의 매승(枚乘)이 문장 솜씨가 능했는데, 양 효왕(梁孝王)을 섬기면서 우의(寓意)가 담긴 7개 항의 글을 써서 모반(謀反)을 말도록 풍간(諷諫)을 하였다. 한서(漢書)卷五十一

 

칠변(七辯)

()ㆍ부()ㆍ영헌(靈憲)ㆍ현도(縣圖) 30편의 저서 중의 하나. 후한서(後漢書)』 「장형전(張衡傳)

 

칠보산(七寶山)

유사(遺事)명황이 근정루(勤政樓)에 칠보로 일곱 자 높이의 산좌(山座)를 만들어 놓고 여러 학사들을 불러 경의(經義)와 시무(時務)를 강론케 하여, 우승한 이만이 그 산좌에 올라앉도록 했는데, 장구령(張九齡)의 의론이 마치 바람이 일듯 잇달아 나왔으므로 산좌에 오르게 되었고 다른 사람은 어림도 없었다.” 하였다.

 

칠보시(七步詩)

삼국 시대 위()의 조식(曹植)이 지은 칠보시(七步詩)를 말한다. 조식은 뛰어난 문재(文才)가 있었는데, 이것을 시기한 형인 문제(文帝; 曹丕)는 일곱 걸음을 걷는 동안에 시를 짓게 하고 만일 못 지으면 벌을 주려고 하였으나 그는 과연 칠보 동안에 콩대로 불을 지펴 콩을 볶으니 콩알이 솥 안에서 서글피 우네. 본디 한 뿌리에서 생겨났거늘 어찌하여 무참히 볶아대는지[煮豆燃豆箕 豆在釜中泣 本是同根生 相煎何大急].”라고 연두시(燃豆詩)를 지었다. 문사(文思)가 민첩한 것을 말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

 

칠보지재(七步之才)

일곱 걸음을 옮기는 동안 시를 지을 수 있는 재주. 아주 뛰어난 글재주.

 

칠부(七扶)

일부(一扶)는 네 손가락을 펴서 이은 길이로서, 칠부는 대략 일척 오촌(一尺五寸) 되는 높이를 말한다.

 

칠불감(七不堪)

() 나라 때 혜강이 자기에게 벼슬을 하라고 권유한 산도(山濤)에게 보낸 절교서(絶交書)에서, 자신이 관직 생활을 감당할 수 없는 일곱가지 조건(七不堪)을 내세운 것을 이르는데, 그 일곱 가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을 열거한 데에 의하면 누우면 늦게 일어나기를 좋아하는데, 문지기가 끝없이 불러대는 것이 첫째로 감당할 수 없는 일이요 …… 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혜중산집(嵇中散集)卷二

 

칠불사(七佛寺)

북성(北城) 밖에 있는 절 이름으로, 일곱 명의 승려가 수() 나라 군대를 강물 속으로 유인하여 몰살시켰다는 전설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52 안주목(安州牧)

 

칠사관잠(七事官箴)

수령칠사(守令七事)’와 같은 말로, 훌륭한 수령이 갖춰야 할 일곱 가지 조목이다. 농상성(農桑盛), 호구증(戶口增), 학교흥(學校興), 군정수(軍政修), 부역균(賦役均), 사송간(詞訟簡), 간활식(奸猾息)을 말한다. 경국대전(經國大典)吏典 考課 / 인용: 牧民心書序(정약용)

 

칠상(七相)

7인의 재상을 말한다. () 나라의 차천추(車千秋)ㆍ황패(黃霸)ㆍ왕상(王商)ㆍ왕가(王嘉)ㆍ위현(韋賢)ㆍ평당(平當)ㆍ위상(魏相)이다.

 

칠상고분유벽초(七相古墳惟碧草)

인생의 허무함을 뜻하는 말이다. 칠상은 일곱 재상, 즉 한() 나라 때의 차천추(車千秋)ㆍ황패(黃霸)ㆍ왕상(王商)ㆍ왕가(王嘉)ㆍ위현(韋賢)ㆍ평부(平富)ㆍ위상(魏相)을 가리킨다.

 

칠석(七釋)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潛虛丈人 違世遁俗 恬淡淸玄 渾沌淳樸 薄禮愚學 無爲無欲 均同死生 混齊榮辱……

 

칠설(七說)

환린(桓驎)의 아들 환빈(桓彬)의 저작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칠성(七姓)

후량(後梁)ㆍ요()ㆍ후당(後唐)ㆍ후진(後晉)ㆍ후주(後周)ㆍ송() 7국을 말한다.

 

칠성미(七聖迷)

길 잃은 것을 말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황제(黃帝)를 모시는 일곱 성인(七聖)이 양성(襄城)의 들판에서 길을 잃었다.” 하였다.

 

칠성미양야(七聖迷襄野)

황제(黃帝) 등 일곱 성인이 대도(大道)를 찾으러 떠났다가 양성 들판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중 목마 동자(牧馬童子)를 만나 천하를 다스리는 법을 얻어듣고는 천사(天師)라고 절을 하고서 물러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장자(莊子)』 「서무귀(徐无鬼)

 

칠시(七始)

() 나라 때의 음악 이른다. 음률(音律)을 천()ㆍ지()ㆍ인()ㆍ춘()ㆍ하()ㆍ추()ㆍ동() 일곱 가지의 시작에 비긴 것이다.

 

칠신탄탄(漆身呑炭)

몸에 옻칠을 하고 불붙은 숯을 삼킨다는 뜻으로, 복수를 위하여 몸을 괴롭힌다는 뜻의 고사성어다.

 

칠실(漆室)

신분에 지나친 근심을 함을 이른다.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 칠실읍(漆室邑)에 사는 한 여인이 나라일을 걱정하였다는 데서 온 말이다.

 

칠실우(漆室憂)

춘추시대(春秋時代) 노 나라 칠실이란 마을에 미가녀가 있었는데, 기둥을 안고 울었다. 이에 누가 묻기를 시집을 못 갔기 때문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어찌 그렇겠는가. 나라를 걱정하기 때문이다.”고 했다는 고사. 열녀전(列女傳)仁智 魯漆室女傳

 

칠십이구(七十二鷗)

추사 김정희(金正喜)의 당호(堂號)이다.

 

칠십이봉(七十二封)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 “태산(泰山)과 양보(梁父)에 봉선(封禪)한 자가 칠십이가(七十二家)였다.” 하였다.

 

칠십이신(七十二神)

72는 천지의 음양 오행(陰陽五行)의 성수(成數)라 하여 수많은 것을 칭한다.

 

칠십장계삼동리(七十長溪三洞裏)

나부산이 유심(幽深)하고, 괴기(塊奇)하여 그 안에 긴 시내가 70군데이고, 동천(洞天)이 세 군데가 있다.

 

칠십진구추(七十眞九雛)

공자(孔子)72제자가 모두 도를 통하여 봉황새처럼 훌륭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공자의 제자3천 명이었는데 직접 육예(六藝)에 통한 자가 72명이었다. 사기(史記)卷四十七 공자세가(孔子世家)

 

칠십칠자(七十七字)

우비(禹碑) 비문의 글자 수. 그 비문이 일흔일곱 자로(子路)되어 있다. 낭야대취편(琅琊代醉編)』 「우비(禹碑)

 

칠애(七哀)

위진(魏晉) 시대 악부(樂府)의 시제(詩題), 후한(後漢) 말의 왕찬(王粲)과 삼국 시대 위() 나라 조식(曹植)과 진() 나라 장재(張載)칠애시(七哀詩)’가 전하는데, 일곱 가지의 슬픈 감정을 담아 내었다는 해제(解題)가 붙어 있다.

 

칠애시(七哀詩)

위진(魏晉) 시대 악부(樂府)의 일종인 시 제목이다. () 나라 왕찬(王粲), 조식(曹植)과 진() 나라 장대(張戴) 등이 칠애시를 지었는데 사회의 동란을 반영하고 슬픈 감정을 표현하는 오언시(五言詩)이다. () 나라 여향(呂向)은 조자건의 칠애시 주에서 칠애는, 아파서 슬프고 의리상 슬프고 느꺼워 슬프고 원망스러워 슬프고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 슬프고 입으로 탄식하여 슬프고 코가 시어서 슬픈 것이다.”라고 하였다. 문선(文選)

 

칠양(七襄)

직녀가 하루 낮 동안에 일곱 번 베틀을 옮겨서 베를 짠다고 한다. 시경(詩經)소아(小雅) 대동(大東), “삼각으로 있는 저 직녀성은 종일토록 일곱 번 자리 바꾸네[跂彼織女 終日七襄].”하였다.

 

칠언래화백량대(七言來和柏梁臺)

한 무제(漢武帝)가 백량대(柏梁臺)를 낙성(落成)할 때에 군신(群臣)을 모아 놓고 모두 운()을 붙여 칠언 연구(七言聯句)를 짓게 했던바, 여기에는 집금오(執金吾)인 중위표(中尉豹)도 끼어 있었다.

 

칠언삼첩(七言三疊)

황정경(黃庭經)閒居蕊州作七言 琴心三疊舞胎仙이란 글귀가 있다.

 

칠역(七繹)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北岳生剗 迹埋名身 聞事盡道畜山扁 東國進士謬與薦焉……

 

칠엽초(七葉貂)

칠엽(七葉)은 칠대(七代)와 같고, 초는 담비꼬리인데 한() 나라 때 시중(侍中)과 중상시(中常侍)가 쓰는 무변(武弁)에 담비꼬리를 꽂았다 하여 고관이 쓰는 관을 가리킨다. 한 무제(漢武帝) 때 흉노(匈奴) 휴도왕(休屠王)의 태자로 한 나라에 귀화했던 김일제(金日磾)가 무제의 사랑을 받아 시중(侍中)을 지냈는데, 자기 자손이 7대까지 계속 시중을 지내 부귀를 누렸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한서(漢書)卷六十八 김일제전(金日磾傳)

 

칠엽초선(七葉貂蟬)

칠대의 고관. () 나라 때 김일제(金日磾)와 장안세(張安世)의 두 집안이 7대 동안 천자(天子)의 좌우에서 천자를 보좌하면서 큰 총영(寵榮)을 누렸던 데서 온 말이다.

 

칠옹(漆翁)

장자(莊子)의 별칭으로 일찍이 칠원리(漆園吏)를 지냈으므로 이렇게 부른다. 장자(莊子)는 기심(機心)을 잊고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생활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칠요(七要)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松旣烟而接漢 竹緣嶺而負筠 哀過鴻於月曉 悲夜猿於霜旻 乃鶴駕之非遠 信羽車之可憐……

 

칠요(七曜)

()ㆍ월()과 수성(水星)ㆍ화성(火星)ㆍ목성(木星)ㆍ금성(金星)ㆍ토성(土星)을 말한다. 낮과 밤, 그리고 계절에 따라 그 운행이 수시로 바뀐다.

 

칠원(漆園)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사상가인 장주(莊周)가 일찍이 몽()이란 땅에서 칠원 리(漆園吏)로 있었으므로, 장주 또는 그의 저술인 장자(莊子)를 보통 칠원으로 부르게 되었다.

 

칠원리(漆園吏)

장자(莊子)를 말한다. 장자(莊子)가 일찍이 몽()이란 땅에서 칠원(漆園 옻나무를 심는 밭)의 벼슬아치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기(史記)』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

 

칠원선리회조궤(漆園仙吏恢弔詭)

칠원의 선리(仙吏)는 곧 일찍이 몽()이란 땅에서 칠원의 벼슬아치를 지낸 장주(莊周)를 높여 이른 말인데,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공자도 그대와 함께 모두 꿈을 꾸고 있다. 또 그대에게 꿈을 꾼다고 말하는 나도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이런 말을 일러 지극히 의문스러운 것이라고 한다[丘也與女皆夢也, 予謂女夢亦夢也. 是其言也, 其名爲吊詭].” 한 데서 온 말이다.

 

칠월편(七月篇)

시경(詩經)빈풍(豳風)의 편명이다. () 나라 시조(始祖)인 농관(農官) 후직(后稷)의 증손자가 되는 공류(公劉)가 처음 빈() 땅에 나라를 세우고 자기 조상인 후직을 본받아 백성들에게 농사를 장려하니, 백성들이 모두 잘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공류의 13대손인 주 무왕(周武王)이 돌아가고 그의 아들 성왕(成王)이 즉위하여서는 나이가 어린 탓으로 선조의 사업을 계승하지 못함으로써 백성들이 살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 시는 그 당시 성왕의 숙부(叔父)인 주공(周公)이 섭정(攝政)을 하면서, 옛날 농사를 장려하여 나라의 부강(富强)을 일삼던 선조 후직과 공류의 풍화(風化)를 진술하여 성왕으로 하여금 잊지 말도록 노래한 것이다.

 

칠유(七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幽遁公子 不遊義路 不入禮門 人主焉得 爲臣公侯 難以爲客 有暴勢大夫 驅美澤之車 策千里之馬 乃至公子之所居……

 

칠유(七喩)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有逸俗先生者 耦耕乎岩石之下 栖遲乎窮谷之峀 萬物不干其志 王公不易其好 寂然不動 莫之能懼……

 

칠의(七依)

()ㆍ부()ㆍ명()ㆍ송()ㆍ달지(達旨)ㆍ주경(酒警) 21편의 문체 중 하나. 후한서(後漢書)』 「최인전(崔駰傳)

 

칠인(七人)

효경(孝經)』 「간쟁(諫諍), “천자(天子)에게는 다투어 간하는 신하가 일곱이 있어야 한다[昔者天子, 有爭臣七人].” 하였다. 여기서는 간원(諫院)을 말한 것이다.

 

칠인작자미상명(七人作者未嘗名)

()은 기()의 뜻으로, 일어나 은거하러 간 사람을 이르는데, 공자(孔子)작자가 일곱 사람이다[作者七人矣].”라고만 말하고 그들의 이름은 말하지 않았던 것을 말한 것이다. 논어(論語)』 「헌문(憲問)

 

칠일복(七日復)

주역(周易)복괘(復卦)에 있는 말이다. 그 주에 ()의 소()가 칠일(七日)에 이르러서 복()한다.” 하였다. 구괘(姤卦)는 양()의 시소(始消)인데 일곱번 변하여 복괘가 된다. 붕은 유()를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양()이 차츰 생기는 것을 의미한다.” 하였다.

 

칠일요중래(七日要重來)

주역(周易)복괘(復卦)단사(彖辭)이레면 되돌아온다[七日來復].”하였다.

 

칠일지복(七日之復)

주역(周易)복괘(復卦)그 도를 반복하여 7일만에 와서 회복되니 가는 것이 유리하다.” 하였는데, 여기서의 7일은 곧 7개월로서 5월에 양()이 처음으로 감소되어 구괘(姤卦)가 되었다가, 11월에 양이 처음으로 생겨 복괘(復卦)가 될 때까지 모두 7개월이 된다는 뜻이다.

 

칠자(七子)

() 나라 때에 문학(文學)으로 이름 높았던 일곱 사람. 전칠자(前七子)와 후칠자(後七子)가 있는데, 전칠자는 이몽양(李夢陽)ㆍ하경명(何景明)ㆍ서정경(徐禎卿)ㆍ변공(邊貢)ㆍ강해(康海)ㆍ왕구사(王九思)ㆍ왕정상(王廷相)이고, 후칠자는 이반룡(李攀龍)ㆍ사진(謝榛)ㆍ양유예(梁有譽)ㆍ종신(宗臣)ㆍ왕세정(王世貞)ㆍ서중행(徐中行)ㆍ오국륜(吳國倫)이다.

후한(後漢) 말기의 이른바 건안 칠자(建安七子), 유정을 비롯해서 공융(公融), 진림(陳琳), 왕찬(王粲), 서간(徐幹), 완우(阮瑀), 응창(應瑒) 등이다.

 

칠저(漆沮)

칠수(漆水)와 저수(沮水)로 이 두 물이 빈() 땅에서 합쳐지므로 빈을 가리킨다.

 

칠저삼(漆沮槮)

칠저(漆沮)는 중국에 칠수와 저수를 이른 말이고, 어리란 곧 물고기가 들어가게 하기 위해 섶나무를 물속에 쌓아 두는 것을 가리킨다.

 

칠전팔기(七顚八起)

일곱 번 넘어졌다가 여덟 번째 일어남. 여러 번 실패해도 굽히지 않고 분투함을 일컫는 말이다.

 

칠전팔도(七顚八倒)

일곱 번 넘어지고 여덟 번째 또 넘어짐. 어려운 고비를 많이 겪지만 꼿꼿하게 다시 도전하는 자세를 말한다.

 

칠절(七絶)

()의 일곱 가지 좋은 점. 첫째 수명이 긴 것, 둘째 잎이 풍성하여 그늘이 짙은 것, 셋째 새의 둥우리가 없는 것, 넷째 좀이나 벌레가 없는 것, 다섯째 단풍 들었을 때의 아름다운 잎, 여섯째 먹음직스러운 고운 열매, 일곱째 낙엽(落葉)이 매우 비대(肥大)하여 글씨를 쓸 수 있는 점이다. 본초(本草)卷三十 果部 柿

② 『이아익(爾雅翼)감나무가 일곱 가지 절이 있다. 곧 첫째 오래 살고, 둘째 그늘이 많고, 셋째 새들이 집을 짓지 않고, 넷째 벌레가 없고, 다섯째 서리 맞은 잎을 구경할 만하고, 여섯째 열매가 아름다워 먹을 만하고, 일곱째 잎이 비대(肥大)하여 글자를 쓸 수 있다.” 하였다.

 

칠절당(七絶堂)

칠절(七絶)은 곧 감()을 말하는데, 감은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그늘이 많으며, 셋째 새의 둥지가 없고, 넷째 벌레가 없으며, 다섯째 단풍 든 잎이 아주 보기 좋고, 여섯째 열매가 아름다우며, 일곱째 낙엽이 비대(肥大)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양잡조(酉陽雜俎)』 「목편(木篇)

 

칠정(七情)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의 감정으로, (), (), (), (), (), (), ()을 말한다.

 

칠정(七政)

()이 제위(帝位)에 올라 첫 번째 한 일로, 선기옥형(璿璣玉衡)이라는 천체 관측기를 살펴서 칠정(七政), 즉 금()ㆍ목()ㆍ수()ㆍ화()ㆍ토()의 오성(五星)과 해, 달의 운행을 실제와 맞추어 백성들이 농사의 때를 잃지 않게 하였다. 서경(書經)』 「순전(舜典), “在璿璣玉衡以齊七政이라고 보이는데, 그 전()에는, ‘七政 日月五星各異政 舜察天文 齊七政 以審己當天心與否라고 보인다. / 인용: 義勝記

북두칠성을 가리킨다. 사기(史記)천관서(天官書)북두칠성은 이른바 선기옥형으로서 칠정을 주관한다[北斗七星 所謂旋璣玉衡 以齊七政].”고 하였다.

 

칠정선기(七政璿璣)

서경(書經)』 「순전(舜典)선기옥형을 관측하여 칠정을 조정한다.”에서 나온 말로, 칠정은 일ㆍ월과 금ㆍ목ㆍ수ㆍ화ㆍ토 다섯 별인데, 춘ㆍ하ㆍ추ㆍ동ㆍ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인도(人道)라는 설도 있다. 선기옥형은 옥으로 장식한 천체(天體)를 관측하는 기구이다.

 

칠조(七祖)

중국 선종(禪宗)의 초조(初祖)인 달마(達磨)로부터 혜가(慧可), 승찬(僧璨), 도신(道信), 홍인(弘忍), 혜능(慧能)까지를 육조(六祖)라 하는데, 7조에 대해서는 이설이 많으나 보통은 혜능의 제자인 신회(神會)를 꼽고 있다. 참고로 두보(杜甫)의 시에 몸을 쌍봉사에 허락받고서, 문에 들어가 칠조선을 구하네[身許雙峰寺 門求七祖禪].”라는 구절이 있다.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19 秋日夔府詠懷奉寄鄭監審李賓客之芳一百韻

 

칠조대의(漆雕大義)

정자(程子), “칠조개(漆雕開)는 이미 대의(大義)를 보았다.” 하였다.

 

칠종(七縱)

제갈량(諸葛亮)이 남만(南蠻)의 괴수 맹획(孟獲)과 싸워서 일곱 번 놓아 주었다가 다시 일곱 번 잡았다.

 

칠종칠금(七縱七擒)

일곱 번 잡고 일곱 번 놓아줌. 마음대로 잡았다 놓아주었다 함을 이르는 말이다. 제갈공명(諸葛孔明)의 전술로 일곱 번 놓아 주고 일곱 번 잡는다는 말로 자유자재로운 전술.

 

칠중교(漆中膠)

아교와 칠. 이 두 가지는 모두 물건을 붙이는 것이므로, 교제(交際)가 아주 친밀함을 비유한다.

 

칠지군서(七紙軍書)

() 나라 환온(桓溫)이 선비(鮮卑)를 칠 때, 종사관 원호(袁虎)에게 격문을 짓게 하자, 원호가 그 자리에서 일곱 장의 격문을 순식간에 지어냈다는 고사가 전한다. 세설신어(世說新語)』 「문학(文學)

 

칠징(七徵)

칠미(七微)라 부르기도 한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玄虛子耽性沖素雍容 玄泊棄時俗而弗徇 甘釣魚于一壑 乃有通微 大夫怨皇后之失寶 傷鴻誓之後聞榮 玄黃于榛險 憑穴岩而放言……

 

칠착(七鑿)

인간의 감각 기관인 귀ㆍ눈ㆍ입ㆍ코의 일곱 개 구멍을 뚫어준다는 뜻이다.

 

칠첩(漆帖)

옻칠을 한 책갑(冊匣) 등을 이른다.

 

칠칠(七七)

일곱 이레, 칠월 칠석(七夕)을 달리 이르는 말, 七七齋(사십구일제)

 

칠향거(七香車)

각종의 향나무를 가지고 만든 수레를 말한다.

 

칠현(七賢)

()의 죽림칠현(竹林七賢)인 완적(阮籍)ㆍ혜강(嵇康)ㆍ산도(山濤)유령(劉伶)ㆍ완함(阮咸)ㆍ왕융(王戎)ㆍ상수(向秀)를 말한다. 이들은 죽림에 모여 소요자적하며 도교적인 생활을 하였다. 진서(晉書)卷四十九 혜강전(稽康傳)

 

칠협(七莢)

명협(蓂莢)은 요() 임금 때 조정의 뜰에 난 서초(瑞草)의 이름인데, 매월 초하룻날부터 15일까지는 날마다 한 잎씩 나서 자라고, 16일부터 그믐까지는 다시 매일 한 잎씩 져서 다하였으므로, 이것을 근거하여 달력을 만들었다고 하는 고사에서, 즉 정월 초이레가 되었음을 이른 말이다.

 

칠화(七華)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玄休先生 棄世遁命 藏身于虛廓 絶影于無形……

 

칠환(七歡)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有巖棲先生者 學道養生 離親絶俗……

 

칠흥(七興)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子康子有疾 王先生往焉曰 駿駔之馬 慉不征路 其荷衡也 曜以驚禽 其卽行也 翬若游鷹 飆駭風逝 電發波騰 影不及形 塵不暇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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