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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사람여행 - 41. 7번 국도를 벗어났지만 잘곳을 부탁할 곳이 없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41. 7번 국도를 벗어났지만 잘곳을 부탁할 곳이 없네

건방진방랑자 2021. 2. 15.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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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를 벗어났지만 잘곳을 부탁할 곳이 없네

 

 

비가 오락가락한다. 피곤했기에 많이 걸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7번 국도를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소음, 까딱 잘못하면 저 세상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거기에 그 길이 그 길 같다는 지루함까지 겹치니 한적한 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동해를 볼 수 있다는 점 외엔 불편한 것투성이니 말이다.

 

 

▲ 아침엔 간혹 해가 뜨기도 했다.

 

 

 

7번 국도를 벗어나기 위해 걷다

 

그래서 7번 국도만 벗어나자는 생각으로 쉴 때 안 쉬고, 먹을 때 안 먹고 걸었다. 얼핏 아침에 지도를 본 감으로는 빨리만 걸으면 오전 중에 918 지방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멀었다.

더욱이 아침엔 잠시 해까지 비치며 비가 갠 듯했는데 오후로 접어들면서 먹구름이 하늘에 가득 찼다. 이러다 폭우가 쏟아지는 건 아닌지 괜히 조급해져서 주위의 풍경을 볼 여유도 없이 걸었다. 아침도, 점심도 거르고 간식거리만 먹었다. 그러니 몸도 맘도 힘들어지더라.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밥도 거리의 단축도 아닌, 빨리 7번 국도를 벗어나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918번 지방도에 접어든 시간은 220분쯤이었다. 기대한 대로 2차선 도로에 차도, 건물도 별로 없는 한산한 길이었다. 걷기에 딱 좋은 길이었다.

거기서 조금만 가면 창수면사무소가 있는 곳이 나온다. 그곳에 가면 잠자리를 구하기도 쉬울 것이다. 이미 몸은 지쳤지만 얼마 남지 않은 목적지를 향해 몸을 다독이며 걸어갔다.

 

 

▲ 맹렬히 걷는다. 7번 국도는 여러모로 죽을 맛이다.

 

 

 

기대의 배반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이 펼쳐졌다. 교회가 없는 면소재지였다는 것인가? 그럴 리가. 저 멀리 보이는 십자가를 보면서 부리나케 걸어왔던 것을. 그렇다면 다른 물건을 십자가로 잘못 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십자가의 모양은 더욱 뚜렷해졌다. 그건 틀림없이 교회였고 쉴 수 있다는 상징물이었다.

하지만 내가 부탁할 수 있는 그런 교회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교회가 리모델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단층의 작은 교회였는데 교회 주변으로 지지대가 설치되어 있고 교회 안의 의자들은 여기저기 흩어져 먼지가 가득했다. 그 교회만 믿고 왔는데 그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기운이 빠지더라. 이미 시간은 4시가 넘었는데 나는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 도보여행을 하며 위급할 땐 경찰서를 찾아간다. 그래도 믿는 구석이라고나 할까. 창수면의 경찰서다.

 

 

 

기대가 무너진 곳에서 피어오른 인연

 

마을 바로 옆에 정자가 있어 망연자실한 채 잠시 주저앉았다. 하지만 편안하게 쉴 순 없었다. 서서히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기에 불안이 엄습해왔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그냥 이 교회에서라도 노숙할까?’하는 고민을 했겠는가.

하지만 아직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히 있었기에 머리엔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되었다. ‘이 길을 따라 계속 걸을까? 아니면 이곳에서 어떻게든 잘 방도를 찾아볼까?’하는 선택에 대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계속 걸어간다 해도 마을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었다. 거기서부터는 산길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 끝에 이 근방에서 잘 곳을 찾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으니 경찰서가 보여서 경찰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날 쳐다보는 시선이 따갑다. 인상이 좋아보이는 경찰관 아저씨에게 다가가 또박또박 나의 상황을 이야기했다. “경찰서나 마을회관 중 잘 수 있는 곳 좀 소개해주세요나의 어이없는 요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한참이나 침묵이 흘렀다. 그러더니 결국엔 안 된다고 하시더라. 침묵의 무게만큼이나 대답은 차가웠다. 그러면서 음료수 하나를 까주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신다. 앞쪽으로 계속 걸어가면 산밖에 없어 잘 곳이 없을 거라는 것, 요즘 세상에 이 마을에서도 잘 곳을 구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는 것, 그러면서 뭐 하러 아무 대책 없이 이런 고생을 하냐는 것까지. 그렇지 않아도 잘 곳을 못 구하게 될까봐 막막한데 그런 비관적인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욱 불안해지더라. 그 순간만큼 막막한 순간도 없었다.

그때 지나가는 말투로 15분 정도 되는 거리에 교회가 있다고 말씀해주신다. ‘왜 이렇게 중요한 것을 이제야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그런 섭섭함도 잠시 왠지 살았다는 느낌이 들면서 왜 그리 가슴이 두근거리던지. 어쨌든 그 교회에 찾아가 얘기해봐야겠다. 그러다 거기서마저 거부당한다면 경찰서에 다시 와서 쇼파에서라도 자게 해달라고 해야지. 최대한 잘 곳을 찾으려는 성의는 보였기에 아저씨도 그 정도는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했다. ‘궁하면 통한다[窮則通]’라고 했다. 이젠 그걸 실험해볼 때다.

 

 

▲ 정자에 앉아 태연한 척하기. 온갖 불안이 엄습해 오던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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