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혁명일 4.19
혁명의 날에 여행기를 쓴다. 4월 19일은 두 가지 혁명이 있는 날이다. 하나는 모두 다 알다시피 기념일로서의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나만의 혁명일로서의 의미다.
1960년 4월 19일, 혁명은 현재 진행형이다
물러나지 않을 것 같던 절대 권력이 민중의 힘으로 무너졌다. 촛불집회 때와 마찬가지로 이때도 학생들이 먼저 들고 일어났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학생들이 ‘머리의 피가 마를 대로 말라 굳어버린’ 어른들을 대신하여 부패한 권력에 맞섰다. 무수한 인명 피해가 났으나 그들의 열망은 권력을 무너뜨렸다. 아마도 삼국부터 시작되는 한(韓) 민족의 역사상 민중 봉기가 성공한 최초의 예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학생이 중심이 된 4.19혁명의 열매는 더 악질적인 권력자에게 탈취당하고 만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비극의 순간이다.
누군가는 그와 같은 비극이 초래하게 된 데엔, 어떤 미래에 대한 적극적인 모색 없이 즉흥적으로 혁명이 이루어진 탓이라고 말하곤 한다. 정말 민주주의를 앞당기고 싶은 의지가 있었다면 사태가 급변한 이후를 대비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런 비판이 일면으론 맞는 말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현실을 너무 간과한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생들이 부패한 권력을 몰아냈다면 방안을 마련해야 하는 건 지식인들의 몫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에 의해 선출된 장면 정부가 쫓겨나도록 방치한 사람들은 누구였던가? 군정을 끝내고 정권을 이양한다고 했을 때, 혼란을 부추기며 박정희를 최고의 권력자로 만든 건 누구였던가? 결국 4.19 정신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정신을 자신들의 이권에 이용한 기득권 세력이 문제였을 뿐이다.
4.19 정신은 민중의 깨인 정신이 하나 되어 권력을 견제하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힘이었다. 그런데 50년여가 지난 지금, 그런 정신이 얼마나 잘 계승ㆍ발전되었는지 생각하면 암담한 기분이 든다. 여전히 민중을 기만하는 자본의 착취는 계속되고 있고 권력자는 민중의 머리 위에 올라서서 기고만장한 태도로 민중을 계몽의 대상으로만 여기며 자신들에게 유리한 승자독식의 사회를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라면 일부 사람만이 승자가 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오자가 되어 절망을 끌어안은 채 살 수밖에 없다. 그때 승자들은 말할 것이다. “너의 게으름, 거지근성을 탓하라!” 사회구조의 부조리함을 개인의 무능으로 치환하는 놀라운 기득권 세력의 합리화다. 이런 암담한 시대에 4.19 정신을 다시 얘기하는 게 어찌 철 지난 헛소리일 수 있겠는가.
2009년 4월 19일, 현재를 긍정하는 나만의 혁명이 시작 되다
2009년 이날, 난생처음 하고 싶던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전엔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했다. 돈이 넉넉지 못하니, 현실에 짓눌려 있을 뿐 무언가를 해볼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억누르고 억누르다 보니 어느 순간엔 회의감마저 들더라. 한 번뿐인 삶, 너무 이것저것 쟤면서 안일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무작정 목포로 내려갔고 한 달 정도 걸어서 목적지인 고성에 도착했다.
혁명(革命)이란 ‘명을 혁신(바꾼)한다’는 뜻이다. 명이란 운명이란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것들을 말한다. 가정환경, 성격, 혈액형 등 타고난 것들을 통해 우린 사회를 판단하며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렇기에 혁명이란 바로 이렇게 형성된 가치관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가치관이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나를 구성하고 있는 타고난 것들에 변화가 온다. 결국 혁명은 내적 마음의 변화뿐만 아니라, 외적 행동의 변화로까지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다. 바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행동의 변화만 일어난다면 그걸 혁명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단언코 부정적인 변화는 결코 혁명이 될 수 없다. 왜 그런가?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다(미국이 혁명으로 약동하던 20세기 초 유명한 혁명가로서 아나키스트이자 페미니스트, 작가이자 편집자였던 엠마 골드만의 발언).”라는 말을 통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혁명은 내적 기쁨이 동반되어야 한다. 혁명을 통해 나의 손은 리듬을 타고 발은 스텝을 밟을 수 있어야 하는 것[手之舞之足之蹈之]이다. 그와 같은 내적 기쁨은 당연히 긍정적인 변화를 통해 성취될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런 의미로 국토종단을 봤을 때, 그건 나에게 있어 혁명이라 할 수 있다. 그 여행을 계기로 더이상 현재의 행복을 뒤로 미루지 않고,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이 무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걸으며 생각했고, 생각하며 사람과 만났다. 나만의 혁명이 최초로 이루어진 날, 이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그 후 2년이 흘러 다시 여행을 떠났다. 최초의 혁명을 다시 재현하기 위해 떠난 여행은 아니다. 혁명이란 흉내 낸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순간에 고착되지 않도록 늘 새로운 상황을 꿈꾸며 변화를 갈구해야 한다. 바로 『대학(大學)』 2장의 “진실로 하루가 새롭거든 날로 새롭게 하며 또한 날마다 새롭게 하라[苟日新 日日新 又日新].”는 말이 그것이다. 이번 여행은 또 다른 나만의 혁명을 꿈꾸며 나선 것이다. 과연 얼마나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낼지 미지수지만, 그렇기에 꿈꾸고 상상하며 4주차 여행을 시작하려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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