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함께 블루스를, 기사와 함께 눈싸움을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부산에서부터 시작된 여행은 경상남북도와 강원도 영월군과 충청북도를 거쳐 충청남도에까지 이르렀다. 최종 목적지가 전주이니 어느덧 근처까지 온 것이다. 여행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되게 아리송한데, 국토종단 때 느껴지던 기분과는 다르다.
09년 국토종단과 11년 사람여행의 차이
솔직히 국토종단 땐 섭섭한 마음보다 시원한 마음이 컸다. 통일전망대에 도착하던 순간, ‘이제 걷지 않아도 되고 자는 곳을 구하지 않아도 되는 구나’하는 안도감에 환호성을 질렀었다. 떠날 때야 ‘세상을 누벼보리라’라는 기대가 있었지만 막상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걷는 것보다도 힘들었던 건, 잘 곳을 구하는 문제였으니 말이다. 그게 늘 걱정거리이니 여행 자체가 즐겁기보단 힘들었다. 그런 상황이니 여행이 끝나자마자 시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여행은 다르다. ‘자유’라는 말이 갖는 의미처럼 모든 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목적지도 정해져 있지 않고 언제까지 끝내야 한다는 것도 없다. 그러니 여행을 하는 지금을 맘껏 즐기기만 하면 된다.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고, 누구를 만나며, 또 어떤 사건과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단지 파도의 흐름에 따르되, 키로 방향을 잡으며 가는 배처럼 시류(時流)를 따르되 여행의 이유를 유지하며 가면 된다.
지금은 걸으며 세상을 보는 것 이상으로 사람을 만나는 게 더 좋다. 그렇기에 잘 곳을 구하느라 상대방과 부딪히는 것도 즐겁다. 애초에 거부당할 걸 염두에 두고서 물어본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불쑥 찾아왔는데 몇 마디 나눈 것만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으리라. 거부와 허락, 그 사이에는 수많은 가능성과 삶의 이유가 숨어있다. 불안과 긴장, 그리고 기대를 가슴에 안고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만나지만 도리어 나의 모습을 알게 되니, 여행이란 애초에 나를 만나기 위해 떠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너를 만나 나를 알게 되는 아이러니, 그게 바로 여행의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을 하나씩 얻어가는 지금, 어느새 여행이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다. 그 사람이 알 만하면 헤어지게 된다고 하던데,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란 생각이 든다. 여행에 대해, 나에 대해 조금 알 만하니까 끝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쉽고 그래서 섭섭하다. 하지만 이 여행은 끝나지만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마음을 잘 간직하고 다음엔 더욱 재밌는 여행을 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끝은 결코 종결이나, 종말이 아니다. 그건 시작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당진으로 가는 길도 만만치 않더라. 계속되는 4차선 도로에, 끊임없이 밀려오는 차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경기도로 향하는 길목이다 보니 통행량이 많은가 보다.
이런 길을 갈 땐 이 악물고 가는 수밖에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그래서 나름 방안을 마련했다. 대형차가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몸을 30°정도 기울이는 것이다. 마이클 잭슨이 하는 것처럼 발은 바닥에 고정시킨 채 몸만 기울이는 것이다. 그러면 대형차의 사이드 밀러를 피하게 되는 효과와 함께 몸도 유연해지는, 아니 날렵해지는 효과가 있다. 대형차와 부대껴야 한다면 피할 게 아니라 아예 대형차와 한바탕 춤을 추겠다는 각오다.
여기에 또 하나 개발한 것은 기사님과 눈싸움하기다. 물론 자동차 앞 유리에 썬팅이 짙게 되어 있거나 먼지가 잔뜩 끼어 있으면 제대로 눈싸움이 될 리 없다. 단지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 최대한 운전석을 응시하며 ‘나 여기 있사오니. 알아서들 피해가시옵소서!’라고 눈으로 말을 건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살고자 하는 처절한 눈빛 언어라고나 할까. 짧은 순간이기에 눈이 마주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지만, 간혹 어떤 기사님은 거수경례 비슷한 동작으로 인사를 하기도 한다. 짧은 교감의 순간이지만, 그 순간만큼 희열이 느껴지는 순간도 없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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