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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불상과 반야 본문

고전/불경

달라이라마와 도올의 만남, 대담 - 불상과 반야

건방진방랑자 2022. 3. 2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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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과 반야

 

 

그렇습니다. 제가 번역한 반야경전계열의 작품으로서 AD 200년경에 성립했다고 하는 금강경(Vajracchedikā-Prajñāpāramitā-Sūtra)금강경능단금강반야바라밀다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多經)으로도 불리우는 반야경전 중의 하나이다. 이 경전의 성립연대에 관해서는 AD 150~200년 사이라는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 선생의 설을 따랐다. 나는 동경대학 재학시절에 나카무라 선생의 강의를 몇 번 청강한 적이 있다. 中村元紀野一義 譯註, 般若心經金剛般若經(東京 :岩派書店, 1997), p.202.을 펼치면 제5분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수보리야! 네 뜻에 어떠하뇨? 몸의 형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없겠느냐?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무릇 있는 바의 형상이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須菩堤,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不也世尊, 不可以身相得見如來 何以故 如來所說身相 卽非身相.

佛告須菩堤,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 如來

 

 

그리고 또 제12분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제 다음으로 수보리야! 어디서나 이 경을 설하되, 사구게 하나라도 설하는 데 이른다면, 마땅히 알라, 바로 그곳이 일체세간의 하늘과 인간과 아수라가 모두 기꺼이 공양하는 부처님의 탑묘와도 같은 곳이 되리라는 것을, 하물며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경 전체를 수지하고 독송함에 있어서랴!

수보리야! 마땅히 알지니, 이 사람은 최상이며 제일인 희유의 법을 성취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이 경전이 있는 곳이 바로 부처님과 그의 존경스러운 제자들이 계신 곳이 된다는 것을

復次須菩堤, 隋說是經 乃至四句偈等 當知此處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 如佛塔廟 何況有人 盡能受持讀誦.

須菩堤 當知是人成就最上第一稀有之法 若是經典所在之處卽爲有佛 若尊重弟子.

 

 

저는 예전에 이런 말씀을 제 자신이 읽고 깨닫고 번역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그 역사적 참된 정황을 아잔타석굴에 와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하~ 그랬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불상의 유무에 의하여 소승ㆍ대승이 갈린다고 하는 관광가이드의 말을 듣는 순간 저의 뇌리를 스쳤던 것입니다. 여기 금강경몸의 형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 없다 하는 구절은 반드시 대승불교의 불상운동의 전개를 전제로 해서만이 성립할 수 있는 경()의 말씀인 것입니다. ‘몸의 형상은 다름 아닌 불상입니다. 그것은 간다라 마투라 예술양식 이래로 대승불도들 사이에 전염병처럼 퍼져간 불상의 공양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불상에 키스하고 침 바르고 발맞춤하고 향유를 칠하고 향불을 피우며 꽃잎을 흩날리는 그러한 공양으로는 도저히 여래를 볼 수 없다!

 

이것은 역으로 그 당시 얼마나 불상숭배가 성행했었나를 잘 말해주는 것이며, 이것은 인도역사에 있어서 예전에 없었던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의 등장을 의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힌두교도 결국 이 패러다임에 의하여 새롭게 태동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러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견제, 부정, 혹은 선도라는 차원에서 반야사상이 성립한 것입니다. ‘모든 형상이 형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하는 말씀은 반야사상을 표현한 명구라 하겠습니다. 즉 싯달타가 불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색신(色身, rūpa-kāya)과 관계없는 만고불변의 지혜(반야) 때문이며, 따라서 불의 상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그 상을 상다웁게 만들고 있는 지혜, 그 지혜를 참으로 깨닫는 것만이 참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파라미타’(pāramitā), 곧 지혜의 완성(perfection)이라는 것이죠. 그 반야의 완성은 오히려 우리가 보고 있는 모든 상이 상이 아니라는 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며, 이러한 부정의 논리에서 공(śūnya)사상이 발전한 것입니다. 용수(Nāgārjuna, c. 150~250)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가 활약한 시기도 바로 이렇게 불상승배가 극도로 치닫고 있던 시대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반야사상을 표방한 최초의 경전이 팔천송반야경(八千頌般若經, Aṣṭasāhasrikā-prjñā-pāramitā-Sūtra)이며 이것은 대강 예수의 삶과 동시대에 성립(기원 전후~AD 50)한 것입니다. 그것이 십만송반야경(十萬頌般若經), 이만오천송반야경(二萬五千頌般若經), 일만팔천송반야경(一萬八千頌般若經) 등으로 확대되었다가, 금강반야경, 반야심경등으로 새롭게 요약된 것은 23세기로부터 5세기까지에 걸쳐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이 반야경전의 성립과정에 관해서는 나는 다음의 책을 참고하였다. 카지마야 선생의 본저는 반야사상을 정말 깊이있게 요약한 명저라 할 수 있다. 독자들의 일독을 권유하고 싶다. 梶山雄一, 般若經一空世界, 東京 : 中公新書, 1987. 반야경전의 시대고증은 pp.104~5에 요약되어 있다.. 이러한 모든 사상적 고찰도 우리는 미술사의 제문제와 연계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명쾌하고 탁월한 견해입니다.”

 

 

세계최대의 불상, 바미얀 대불(The great Buddha at Bamiyan). 대당서역기에도 언급되어 있다. 이것 역시 통돌을 파고 들어간 마애불이다. 이미 성상파괴자들에 의하여 얼굴이 깎여 나갔던 이 대불은 최근 아프카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에 의하여 사라지고 말았다. 인류를 향한 탈레반의 가장 멍청하고도 악랄한 쇼였다. 파리 귀메박물관.

 

 

인용

목차

금강경

반야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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