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인성교육 자료의 측면에서 본 「양사룡전」의 특징
나를 매개로 한 인성교육
이 장에서는 앞의 논의를 부연하여 「양사룡전」이 인성교육의 훌륭한 자료가 될 수 있음을 피력해보고자 한다.
먼저, 「양사룡전」의 당위소당(當爲所當)과 진아(盡我)는 청소년의 자아 형성과 긴밀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앞서도 언급하였듯 「양사룡전」은 효자전이면서도 단순히 효의 가치를 계몽하는 선을 넘어선다. 효행보다 특기된 오이 나눔 선행이 그러하고, 그런 효행과 선행을 당위소당(當爲所當)과 연결시킴으로써 보다 근원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상을 모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진아(盡我)와 당위소당(當爲所當)은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가장 중심이 되어야 할 ‘나’, 그리고 관계의 문제를 직접적으로 환기시킨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가령, “효는 백행의 근원인데 효를 행하는 사람은 드물다. 누군들 사람의 자식이 아니겠는가마는 승냥이와 수달도 보본(報本)하고 까마귀는 반포(反哺)하는데 사람이 되어 부모께 효도하는 도리를 알지 못하면 금수만도 못하게 된다[孝者百行之源也, 而行之者鮮矣. 孰非人之子也, 而豺獺報本, 慈烏反哺, 人而不知孝親之道, 曾禽獸之不若矣. -姜再恒, 『立齋遺稿』 권19, 「琴孝子傳」.].”와 같은 일방적, 선언적 접근이 아니라, 효와 선행의 근저로 내려가 ‘나’가 왜 효도를 해야 하고, 선을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적실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 도덕규범에 대한 무비판적 추수가 인성교육을 ‘나’의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인식하게 할 소지가 있다면, 당연하게도 ‘나’를 매개한 인성교육은 ‘나’의 삶에서 왜 그런 가치들이 필요한지를 스스로 묻게 함으로써 ‘나’와 나의 인성의 문제에 관한 보다 능동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이끌 것이다.
일상의 활용성
다음으로 「양사룡전」에 그려진 효행과 선행은 진솔하고 핍진하여 공 감의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제 어머니께서는 본래 술 마시기를 좋아하여 저는 하루에 꼭 세 사발씩 마련하였지만, 어머니 홀로 쓸쓸하게 드시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홍춘반(洪春盤), 배소남(裵小男), 이수복(李受福), 이몰내(李沒內) 및 아무개라 불리는 약간의 사람들은 모두 노모가 술을 잘 드시고 제 이웃에 살고 있어서 그들과 함께 계를 만들고 ‘양친계’라 불렀습니다. 열흘마다 닷새 되는 날에 한 번 만났는데 나이순으로 돌아가며 자리를 주관하여 맛난 음식을 차려드리고 서로 술잔을 주고받으며 술을 즐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약간의 사람들과 늘어서서 곁에서 노래를 불러드리고 아울러 함께 일어나 춤도 추었습니다. 이렇게 즐거움을 다 한 뒤에 마치니 어머니께서 아주 기뻐하셨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어 눈물을 흘리며 “아!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는 마음에도 살고 죽고의 차이가 있습니다. 제 아버지께서 막 돌아가셨을 때는 제 마음이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고, 잠시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바뀌면서 조금씩 달라지더니 1년이 지나서는 더 달라지고 3년이 지나서는 또 더 크게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20년이 되고 보니 이틀 동안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기도 하고, 생각하더라도 그 마음의 비통함이 또한 처음 돌아가셨을 때와는 같지 않았습니다. 불행하게도 제 어머니께서 구원 받지 못하셨다면 점차 어머니를 잊어감이 어찌 아버지 때와 달랐겠습니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졸아들고 그 모양새가 오그라듭니다.”라고 하였다.
“我母性好飮, 我日必有三椀, 恨母獨飮孤寂. 有曰洪春盤、曰裵小男·李受福·李沒內、曰某某若干人, 皆有老母善飮, 而與我同鄰居者, 與之脩稧, 名曰養親. 每旬間五日一會, 各以齒坐輪辦, 可嘗羞以供, 使酬酢酒酣, 我以若干人, 必列侍歌, 仍並起舞, 盡歡而罷, 母頗慰悅”云, 仍流涕而言曰: ‘噫! 人子愛親之心, 亦有存亡之異. 方我父初亡時, 我心甚哀, 若不可堪, 若不得一刻可忘也. 旣日月而小異, 朞而漸異, 三年而又大異, 今纔二十年矣, 而或並日不思父, 雖思之, 其心之悲, 亦不如初亡時也. 不幸使我母不救, 其漸忘亦奚異父也? 我思至此, 自不覺煎然, 其容蹙蹙如也.’ 李起浡, 『西歸遺稿』 권7, 「梁四龍傳」.
좋아하시는 술을 어머니 홀로 드시는 게 안타까워 이웃 사람들과 양 친계를 만들고 이웃 어머니들과 함께 어울려 술을 즐기게 한 내용이다. 주흥(酒興)이 오른 어머니들 곁에서 누구는 노랫가락을 뽑고 누구는 어머니들과 덩실덩실 춤을 추는 모습이 트로트 한 곡이면 관광버스건 시골 장터 건 흥겨운 춤판으로 변하는 오늘날의 모습과 겹쳐지면서 슬며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선친의 유품인 신발 대바구니에 넣어두고 저승길 편안하시라고 일 년에 한 냥씩 대바구니에 넣으며 언제고 한참을 울었다는 부친 양흔동의 모습【李起浡, 『西歸遺稿』 권7, 「梁四龍傳」. “欣同嘗事父孝, 父歿有遺履, 欣同藏之籠中, 一年一兩納之曰‘此亡父遺跡’, 必流涕移時.”】도 일체의 가식 없이 그려져 있다. 그런 까닭에 독자들은 「양사룡전」에 그려진 인물들의 언행에 좀 더 쉽게 공감할 수 있게 되는데, 바로 이 공감이라는 요소야말로 교육적 감화가 일어나는 시발점이 된다.
이와 관련하여 아울러 주목할 점은 「양사룡전」에 그려진 효행과 선행은 모두 일상의 소박한 것들이라 그것에 공감한 독자의 실천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껏 살펴보았듯 양사룡이 어머니를 위해 한 효도는 지극정성으로 하늘에 기도를 올리고, 좋아하는 술을 이웃들과 함께 할 수 있도록 계를 만든 것뿐이다. 「양사룡전」의 말미에 소개된 홍춘반의 효행도 그렇다. 홍춘반은 모친의 소상 즈음에 병환으로 미음만 드시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상식(上食)으로 미음을 올렸고, 모친 생전에는 외출했다 돌아올 적 문앞에서 걱정하며 기다리실 어머니를 안심시키기 위해 멀리 서부터 춤을 추며 돌아왔다【李起浡, 『西歸遺稿』 권7, 「梁四龍傳」. “춘반이 그 어머니를 섬긴 것도 지극히 효성스럽다. 어머니가 병으로 돌아가고 이듬해가 되어 小祥이 한 달 남았는데 그의 아내가 전과 같이 밥을 올리자 춘반이 문득 물리치며 “작년 이맘때 어머니께서 밥을 드셨던가?”하고는 미음으로 바꾸어 소상일이 지난 뒤에야 그만두었고 再朞 때도 그렇게 하였다. 어머니 생전에는 춘반이 외출할 때면 어머니가 늘 문에 기대어 기다렸는데 춘 반은 돌아올 때 반드시 멀리서부터 춤을 추어 어머니께 잘 다녀왔음을 보였다고 한다[春盤事其母至孝. 母宿病以歿, 越翌年未及祥一月, 其妻進食如故, 春盤輒却之曰‘上年此時, 母其進飯乎’, 以粥飮, 至祥日過後乃已, 至再朞亦然. 母未歿, 春盤每出, 母常倚閭, 春盤還必自遠舞, 以示母好歸].”】. 어찌 보면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이런 행위에 오히려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은, 어쩌면 그 행위가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안도감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 있다. 일반적인 효자전에 자주 등장하듯 양사룡의 효행이 단지(斷指)나 할고(割股)로 그려졌다면, 그 행위는 숭고한 것임에도 독자 자신과는 무관한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독서물의 내용이 공감되지 않은 순간 독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육적 효과는 반감되기 마련이다. 이런 점에서 「양사룡전」에 그려진 효행들은 우리 학생들로 하여금 효도란 것이 너무 극단적이어서 자신을 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고 자신도 일상에서 충분 히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을 가져오게 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활용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활동학습을 통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게 한다면 교육의 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흥미로운 삽화들
마지막은 「양사룡전」 자체가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라는 점이다. 앞서 살폈듯 양사룡의 오이 나눔은 오늘날의 시각에서도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싶게 참신하다. 이 외에도 「양사룡전」은 다양한 삽화를 통해 이야기의 흥미를 높이고 있다. 그 가운데 남만국 삽화를 예로 든다.
이때 무심자는 자식을 잃은 아픔이 있어 말을 나누는 사이에 눈물을 줄줄 흘리게 되었다. 사룡은 이내 웃으며 나아와 다음 이야기를 해주었다. “남만(南蠻)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느 부부가 있었는데 생업이 조금 풍족해지자 나이 마흔에 비로소 외아들을 얻었답니다. 그 아들은 얼굴이 잘생기고 재주와 학식이 더없이 빼어나 모두들 한번 사귀기를 원할 정도였는데 약관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 그 부모가 몹시 슬퍼했답니다. 그 나라의 풍속에 바다 남쪽 끝에 한 도사가 있어 길과 물을 관장하는데 새로 죽은 자는 반드시 도사에게 들러 도사가 머리를 끄덕인 뒤에야 명부로 돌아갈 수 있었답니다. 혹 도사에게 사정이 생기면 그 문에 열흘을 머무는 일도 있었답니다. 부부가 재계하고 급히 도사의 집으로 갔더니 그 아들 이름으로 방문이 벌써 있었더랍니다. 도사가 「저녁때 과연 왔었는데 내가 마침 마음이 번거로워 답을 하지 못했다. 내일 일찍 다시 올 터이니 보고 싶으면 내 집에 머물러라. 내가 보게 해주겠다.」라고 하였습니다. 다음날이 되자, 도사가 「그가 곧 올 테니 그대들은 우선 방안에 숨거라.」라고 하였습니다. 얼마 후 도사를 찾아뵙자 부부는 문틈으로 엿보았는데 그 모습이 아주 추하고 또 무서워 똑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부부는 의아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습니다. 도사가 부부의 말을 전해주자 그 아들은 발끈하며 「내가 어찌 부부의 자식이 될 수 있겠습니까? 부부는 전생에 어느 뱃사람을 무고하게 죽이고 아울러 그의 재물까지 뺏은 적이 있었는데 그대로 현생의 부부가 되었고, 나는 그때 무고하게 죽은 뱃사람의 아들입니다. 하늘이 부부의 무고한 살인과 도적질을 한스러워하고, 내 아비의 원통한 죽음을 불쌍히 여겨 복수를 하되 칼을 쓰지 않고 창자를 베는 방법으로 하게 하고자 하였습니다. 본래 몸에 칼질을 하는 것보다 더 참혹한 것이 늘그막에 얻은 어여쁜 자식을 갑자기 잃는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나를 그들의 자식이 되게 하여 그들의 마음을 만족시켰다가 갑자기 다시 빼앗아 그들의 창자를 찢어지게 한 것일 따름이니 내 어찌 부부의 자식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고는 재빨리 떠나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부부는 그 말을 듣고는 곧 눈물을 거두고 더는 아들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두고 사람들이 그 부모를 위로하면서 ‘이는 곧 전생의 원수다’라고 하니 그 말이 이 이야기에서 나왔습니다. 선생께서는 상심하지 마십시오. 선생께서 상심하는 것은 태부인께서 상심하는 것입니다. 선생께서는 상심하지 마십시오.”
時無心子有喪明之痛, 語次有淚潸然. 四龍乃笑而進曰: ‘南蠻之諺曰: 「古有夫婦, 貲業稍豐, 年四十始得一子, 其容端, 其才學絶倫, 人無不願與一交, 年弱冠猝逝, 其父母甚悼. 其國俗海極南, 有一道士管道流, 新逝者必過道士, 道士點頭, 然後歸冥府, 或道士有故, 則至有留其門旬日者. 夫婦齋宿, 急往道士家, 以其子名訪已過. 道士曰: 『日夕果來, 以我適心煩, 不能答. 明早必更來, 子欲見留我. 我使見之.』 明日果來, 道士曰: 『彼方來, 子姑隱室中.』 已而來謁道士, 夫婦從門隙覘, 其狀貌甚麤, 且威嚴不可直視. 夫婦方疑訝, 莫得端倪. 道士以夫婦言言之, 其子乃艴然曰: 『我安得爲夫婦子也? 夫婦前時, 枉殺一船夫, 並取其資, 仍爲此世夫婦, 我則船夫子也. 天恨夫婦枉殺人取資, 憐我父寃死, 欲令復其讎, 以不加刃其身而其腸之割, 自有慘於刃其身者莫如臨老得美子而旋失之, 特使我爲其子, 以足其心, 旋又奪之, 以割其腸而已, 我安得爲夫婦子也?』 乃倐然而逝, 更無所見. 夫婦聞其語也, 卽收淚不復思其子.」 故子之凡先父母亡者, 人必慰其父母曰「此乃前生讎也」, 語盖出此. 夫子其毋傷也. 夫子而傷者, 太夫人之傷也. 夫子其毋傷也. -李起浡, 『西歸遺稿』 권7, 「梁四龍傳」.
서귀는 양사룡 부친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 그즈음 세상을 떠난 자식을 떠올렸고, 이내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그러자 양사룡이 슬픔에 잠긴 서귀를 위로하기 위해 해준 이야기가 위에 인용된 삽화이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부부에게 나이 마흔이 넘어 얻은 늦둥이가 있었는데 너무도 준수하여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살 정도였다. 그런데 그 귀한 아들이 약관의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자 그 슬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아들을 살려내고 싶었던 부부는 바다 남쪽 끝에서 저승 출입을 관장한다는 도사를 찾아가게 된다. 그랬더니 다행히도 자식은 아직 명부로 떠나가지 않은 상태였고, 마침 내일 다시 올 테니 보고 싶으면 내일 아침 봐도 좋다는 도사의 허락을 받았다. 이튿날 부부가 문틈으로 살펴보니 그 잘 생겼던 아들 대신 흉측하기 짝이 없는 자가 눈에 들어왔다. 도사가 그 사람에게 자식을 찾아 이곳까지 온 부부의 이야기를 전하자, 그 아들은 발끈하며 뜻밖의 말을 하였다. 부부는 전생에 강도였는데 어느 뱃사람을 무고하게 죽인 뒤 그의 재물까지 훔쳐간 자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악행에 분노한 하늘은 그들에게 칼로 창자를 베어내 는 것보다 더한 아픔을 주기 위해 그들을 부부로 환생시킨 뒤 그들에게 더 없이 귀한 자식을 주었다가 갑작스레 요절시켰고, 요절한 자신은 바로 무고하게 죽은 뱃사람의 자식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양사룡은 이야기 말미에 “그래서 부모보다 먼저 죽은 자식을 두고 사람들이 그 부모 를 위로하면서 ‘이는 곧 전생의 원수다’라고 하니 그 말이 이 이야기에서 나왔습니다. 선생께서는 상심하지 마십시오. 선생께서 상심하는 것은 태부인께서 상심하는 것입니다.”라는 위로를 덧붙였다.
삽화의 반전이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먼저 죽은 자식은 전생의 원수다’라는 말의 유래 또한 우리가 흔히 듣곤 하는 ‘자식이 웬수’라는 말이 연상되어 흥미롭다. 이처럼 「양사룡전」은 본사인 양사룡의 효행과 선행 이야기는 물론, 첫 번째 삽화인 양흔동의 효행과 의리, 두 번째 삽화인 남만국 이야기, 세 번째 삽화인 홍춘반의 효행 이야기까지 재미와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로 엮여있다. 한문 고전을 활용한 인성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학생들이 그 작품을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읽고 함께 생각해보자는 수업에서 읽을 자료가 지루하여 제대로 된 독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다음 단계의 교육은 그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더구나 한문 고전은 왠지 딱딱하기만 하고 재미와는 멀 것 같다는 선입견을 가진 청소년들이라면 텍스트 자체가 지닌 흥미소는 대단히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인용
Ⅰ. 머리말
Ⅲ. 양사룡의 당위소당(當爲所當)과 이기발의 진아(盡我)
Ⅴ.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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