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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열정이 깡그리 무시 당한 네 가지 사건 02년 3월 14일(목) 오늘은 하루종일 나의 열정이 인정 받질 못했다. 아침엔 김영주 상병이 하드보드지는 냅다 던지더니, 암구호판을 다시 만들라는 것이다. 처음 만드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미 두 개나 만들었음에도 맘에 안 든다는 이유로 다짜고짜 또 만들라고 확 던지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그런 상황이니 짜증이 확 날 수밖에 없었다. 더럽고도 야비하단 생각에 나의 손은 떨리고 있을 정도로 말이다. 사실 처음 만들 땐 재료도 없고 노하우도 없이 열정만 넘쳤기에 거의 이틀 동안의 자유시간을 통째로 허비하면서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첫 작품은 되게 작았고 볼품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 현실이기에 이렇게밖에 못 만들 것을 왜 그리 시간을 허비하..
진지탐색 도보여행 02년 3월 14일(목) 오늘 역시 도보답사의 연장으로 우발 작계지역인 동송 고지에 갔다. 화요일에 299고지에서 285고지까지 도보로 탐사해서 가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힘이 드는 줄 알고 있기에 이번에도 맘을 단단히 먹었다. 오늘도 저번처럼 차를 타고 이동한다기에 좀 수월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런 예상과는 달리 도보로 가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처음부터 걸어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좀 기대가 되었다. 대대 위병소를 나설 때 부풀었던 기대감은 이동하는 도중 더욱더 커졌다.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에겐 도보여행 같은 느낌도 들고 군장은 메지 않고 맘껏 걸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밑엔 사단 전차대가 있었다. 우리 대대 앞마당을 시끄럽게 장식했던 장본인들이..
생일파티 02년 3월 13일(수) 별 특별한 일이 없다. 단지 오늘은 민증 상 내 생일이다. 그래서 저녁 식사 시간 후에 PX에 가서 분대 회식을 했다. 그렇게 기대를 많이 했는데 별로였다. 사실 맛있게 먹었지만 그걸 준비하는 시간이 거의 한 시간 정도 걸렸기에 오히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이라 하겠다. 차라리 이럴 바에야 과자로 배부르게 먹는 게 나을 뻔했다. 이럴 때 GOP 회식이 그립기도 하다. 오늘 형식적인 생일임에도 별다른 것들은 없었다. 좀 섭섭하게 그렇게 지나가나 했고 싱겁게 회식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런데 깜짝 놀라고 말았다. 관물대에 빵과 우유가 들어 있지 뭔가. 놀랐다. 과연 누가 이렇게 개념 있는 짓을 했을까? 궁금했다. 쪽지가 놓여져 있어서 펼쳐 보니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내 동기..
지형정찰과 우공이산 02년 3월 12일(화) 오늘은 우리 지역 지형 정찰이 있는 날이다. 그래서 아침부터 부랴부터 단독 군장을 하고서 60에 올랐다. 이렇게 관광용(?)으로 60을 타보는 건 오랜만이라서 기대가 되었다. 그렇게 장시간을 달려 장벽 폭포, 전차대대 등을 지나 7R 2BN 후문에 있는 299고지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턴 우리가 알아서 지형 정찰을 하는 것이다. 훈련 뛸 때 어떻게 뛰는지에 대한 거다 명료한 해석을 하고서 좀 지친 몸을 이끌고 내려갔다. 그래서 60에 다시 타고 부대에 복귀하는 줄 알았는데 정말 맘에 안 들게도 가는 도중에 내려 285 고지까지 꽤 많이 걸어서 답사하게 된 것이다. 쉴 생각을 하던 차에 다시 한참을 걷게 되니 정말 짜증이 복받쳐 오르더라. 하지만 군대란 곳은 나의..
시범식 교육과 부엽토 작업 02년 3월 11일(월) 드디어 페바 첫 주의 시작이다. GOP와는 달리 주말, 주일엔 철저히 자유가 보장되었다. 아무래도 페바이니 이런 자유가 없으면 안 되겠지. 이번 주부터 좀 힘들 거라고 소대장님이 벌써부터 겁을 준다. 적어도 이번 한 달 정도는 진지 파악, 구축, 대대ㆍ중대ㆍ소대 정비, 개인 임무 숙지 등을 한꺼번에 해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다시 입대한 그런 신병 같은 기분으로 지내야 한다. 그렇다면 성인이 말대로 1년 1개월짜리 군대에 다시 입대한 기분이라고나 할까나. 드디어 페바 첫 일과의 시작이다. 흡사 신교대와 같이 6시에 기상하자마자 전투복을 입고서 점오를 하러 사열대 앞으로 모였다. 신교대 이후로 점오를 해본 적이 없다가 새삼 이렇게 모이려니 기분이 좀 미묘했..
페바의 첫 일주일 적응기 02년 3월 11일(월)~17일(일) 타임라인 오전오후03.11(월)시범식 교육(위병소, 탄약고, 근무요령, 5대기 요령, 매복요령)중대 뒷산으로 부엽토(腐葉土) 모으러 감. 03.12(화)299고지, 거점 지형 방문(7R 1BN)Co 앞 뜰 족구장 정비(능력에 비해 의욕만 앞서서 암구호판 만들다 욕 먹음)03.13(수)국지도발FTX 진지 방문 축조(2Co 옆 도로 뒤)2P 대청소, 간부 축구로 인한 자율시간(생일 PX 파티, 늦게 상남가 편지와 빵을 줌)03.14(목)우발 직계 지역 방문(동송고지, 아이스고지 후방)도보로 2차 지연 진지 방문(19BN 후방 → 77포대 → C3 오르기 전 진지)의욕이 인정 받지 못함(식기, 임무 숙지 안 함, 암구호 카드)03.15(금)지뢰교육..
페바 체육대회와 뒷풀이 02년 3월 10일(일) 화창 페바의 생활, 그건 흡사 신교대와도 비슷했다. 새벽 내내 걸어서 잠 한 숨 못 자고 이곳에 왔건만, 그래서 오후에까지 잘 수 있겠거니 기대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짐 정리를 대충 하고 벅찬 가슴을 안고 아침을 먹으러 갔지만 이제 웬일? GOP에서 밥을 먹고 싶을 때 조금만 기다리면 먹고 싶을 만큼의 밥을 먹을 수 있었기에 그게 바로 자대의 생활인 줄만 알았건만 그게 아니었다. 여기 와서 보니 신교대와 별반 다를 바 없이 팔을 휘두르며 군기왕성하게 군가를 부르며 걸어가다가 식당 앞에 도착해서 길고 긴 줄을 차례대로 기다려야 한다. 막상 차례가 오면 “입장!”이라 크게 외치며 식당으로 입장해서도 거기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식기를 씻을 때에도 한참..
철수의 순간을 기록하다 02년 3월 7일(목) 맑음 후반야 근무자와 비번자들은 대기막사에서 쉬면서 7중대 아저씨들이 도착하길 기다렸다. 도착하면 바로 탄띠를 바꾸고 군장끈을 결속해야 하기 때문에 대기하면서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전반야들은 여전히 상황에 상관없이 근무에 투입해야 했다. 그렇지만 이미 우리들의 기분은 한결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기에 보통 때 근무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들떠서인지 시간이 무지 더디게 갔다. 원랜 여섯 타입 근무제지만 오늘은 22시까지 근무하고 그 뒤로 A형 근무였기에 세 타임 근무만을 서면 되었다. 마지막 근무지인 대공에 올라갔더니 벌써 2대대 사람들이 입성했댄다. 다른 때는 전혀 볼 수 있던 거무스름한 무리떼가 신3번 도로로 북상하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는..
마지막 근무와 첫 행군의 기대 02년 3월 7일(목) 맑음 끝은 시작의 다른 말이다. GOP 생활의 끝, 그건 곧 FEBA 생활의 시작이란 말이다. ‘마지막 주간 대공근무’ ‘마지막 전반야 근무’ ‘마지막 새벽 취침’ 등으로 GOP의 마지막을 장식했다. 그렇게 끝이라 생각하고 나니 무척이나 아쉽고 무척이나 섭섭했다. 지겹도록 보아온 곳이고, 질리도록 굴러온 곳이련만 막상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새삼스레 더욱 주의 깊게 보게 되었던 것이다. 문득 몇 년 전에 수능을 볼 때 농고까지 버스를 타고 가던 어둠이 짙게 깔린 야경이 생각난다. 분명 별스럽지 않은 일상 속에서 늘 특별히 신경 쓰지 않던 주위 풍경이었지만 감정에 변화가 생기니 평이하던 장소가 한순간에 뭔가 의미 있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그러한 생각의 변화..
『사람의 아들』을 통해본 종교성 02년 3월 5일(화) 구름 많음 ‘종교가 무엇인가? 종교의 본의란 무엇인가? 나는 무엇 때문에 종교를 믿고 그 종교에서 내세우는 교리를 이행하려 하는가?’ 뭐 이러한 물음은 종교적인, 형이상학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간이 라면 원초적으로 지닌 물음이리라. 그 물음에 대한 당연한 대답은 “인간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이 세상에 버거운 것들이 많이 있다. 그러하다 보니 인간 이상의 초월적 존재를 희구하게 되어서 결국 형이상학적인, 즉 우리들의 두뇌 활동을 벗어난 초월자인 신을 만들고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히 같은 초월자를 모시는 사람들이 등장했을 것이고 그들은 한 곳에 모여 공동생활을 했을 것이다. 어떤 모임이든 법적 체계가 갖춰져야 공동체가 분란이 생기..
두려움에 대한 두 가지 반응 02년 3월 5일(화) 구름 많음 요즘은 겨울이 아니라 봄인 것만 같다. 분명 시기상으로 틀림없이 꽃 피는 봄이 왔지만, 작년 3월의 스산하고 매서운 바람이 불고 희뿌연 눈이 흩날리던 때와 비교해보면 너무 생판 다르기에 작년의 철원이 꿈인양 까마득하게만 느껴진다. 요즘 새벽의 온도라 봐야 영하 5도 밖에 안 내려갈 뿐더러 날씨가 흐려지더라도 눈 내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정도다. 춥디 추운 겨울이 다 지나고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 이렇게 선뜻 찾아와서 한 편으로, 기쁘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 철원의 겨울다운 겨울을 나지 못했음이 못내 섭섭하기도 하다. 이렇게 변화된 날씨에 맞추어 우리의 생활도 변했다. GOP에서 FEBA로의 철수가 그것인데, 사실 저번 주까진 그다지 실감이..
GOP 생활 정리기 02년 2월 25일(월) 맑음 이제 다음주면 GOP 철수다. 과연 내 자대 생활 내내 있었던 GOP를 다음 주면 정말 떠나게 될 것인지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역시 이래서 ‘백문불여일견 백견불여일행(百聞不如一見 百見不如一行)’이라 하는가 보다. 이쯤에 이르러서 사람들 반응이 참 이채롭다. 몇 달 전만해도 ‘빨리 나가고 싶다’를 연발하던 사람들 입에서 이상하게도 ‘잔류’라는 말이 드문드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FEBA가 더 좋은지, 그렇지 않은지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기대와 함께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정말로 너무나 익숙해져서 뭘 해도 편해져 버린 이곳에 남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과정이기에 이겨내야만 한다는 생각도 든다. ‘도전의식’과 ‘현실 안주의..
계급과 성장시기 02년 2월 25일(월) 맑음 입대하고 나서 자대에서 한 좌담회에서 ‘이래도 저래도 2년 2개월이니 잘 지내보자’란 얘기를 나누면서 안 가는 시간에 불만을 토로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일 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과연 일 년이란 시간이 순간순간마다 빠르게 흘러갔냐 하면, 전혀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지난 시간에 대한 기억은 그다지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지 않은 걸로 봐서는 이 생활이 그렇게까지 즐겁다거나 슬프지 않다는 얘기이며 생각 이상으로 잘 적응하고 있다는 얘기는 아닐까? 상병을 달았다. 군 생활한 지 일 년이면 누구나 달게 되는 계급이기에 별 감흥은 없다. 단지 일 년이란 시간이 더디게라도 이렇게 지나갔다는 것이 기쁠 뿐이요, 계급장의 크기가 더욱 커졌기에 시각적인..
소대 중간에 대한 조언 02년 2월 16일(토) 조금 눈 옴 그렇게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2월이 오고야 말았다. 2월엔 내가 군에 온 지 1주년 되는 날이기도 하고 G.O.P에서 보내는 마지막 달이기도 해서 아주 많이 뜻깊은 한 달임에 틀림 없다. 상병이 되었다. 덩달아 군 생활을 한 지 1년이 됐단 뜻이다. 시간이 그만큼 지났다는 건 무언가에 많이 능숙해지고 익숙해졌다는 말일 수도 있지만, 그걸 뒤집어 보면 타성에 많이 젖었다고도 할 수 있다. 나만은 그렇지 않다고 선뜻 부인하기가 힘들다. 시시때때로 수양록을 쓰면서 나를 되돌아보고 달라진 점이 뭔지, 잘못된 점이 뭔지 되새겨 보고 바꾸려 노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익숙해진 삶 속에 타성에 쪄들어버릴 대로 쪄들어 버린 내 의식이 그런 걸 쉽게 감지해내지 못..
사단장님과 설날을 보낸 사연 02년 2월 12일(화) 맑음 2월 12일은 민족 대명절 설날이었다. 이 날은 보통 설에 비해 아주 특이한 날이었는데 기본적으로 군에서 보내는 첫 번째로 보내는 설이란 게 그것이며 특히 사단장님하고 동석 식사를 하며 새해를 열었다는 게 그것이다. 새해 첫날에 전망대에서 해돋이를 본다며 사단장은 1월 1일에 우리 부대에 오신다는 거다. 그래서 아침 식사를 우리 중대 대기 막사에서 하신다는 것이었는데, 그걸로 인해 우리들은 동석 식사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단장님을 맞이한다는 건 그렇게 그저 친구를 맞이하듯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사단장이 지나가는 곳에서 지적을 받아선 안 되기 때문에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청소하고 또 청소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린 며칠간 대기 막..
바닥에서 일어서기 02년 1월 27일(월) 매우 맑음 지난 날, 지나버린 그 곳에서의 암울하며 처량하기까지 했던 과거 편린(片鱗)들이(그 편리들로 인해 삶이라는 것이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하나의 기억 조각 정도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2주 정도의 시간만으로도 아무렇지 않아질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이유에서 아무리 생각하고 아무리 달리 바라보려 해봐도 시간만한 만사(萬事) 해결사(解決士)는 없는 것 같다. 정말 견디기 힘든 순간들을 꿋꿋이 견뎌낸 내 자신이 지금은 너무나 자랑스럽고 뿌듯하게 느껴질 뿐이다. 지금은 모든 게 시간 속에 파묻혀 있었다 하더라도, 우리 모두의 의식 저편에서 여전히 꿈틀꿈틀 거리고 있는 나 자신의 잠재적 올무이며 얽매임이다. 그래서 지금 그저 태연한 척 웃으며..
제설 중 맞이한 새해 01년 12월 31일(월)~1월 1일(화) 대설 후 맑음 그렇게 안 갈 것만 같던 2001년과 그렇게 오지 않을 것만 같던 2002년 새해가 드디어 오고야 말았다. 진짜 다사다난했던 2001년이 그렇게 가고야만 것이다. 연말이면 으레 교회에 가서 올라이트를 하고 새벽의 해가 뜰 때쯤 되어선 학산에 진규와 함께 올라 일출의 기쁨을 느꼈었는데 이젠 그럴 수 없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후반야였기에 묵은해에서 새해로 접어드는 기쁨을 그나마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이다. 연말인 오늘을 난 그저 평일처럼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낮에 기상함과 동시에 밤엔 무지하게 많은 눈이 내리는 것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회였다면 기쁨의 한 획이었겠지만 적어도 여긴 그렇지 않다. 화려한 새해..
선임병의 상(像) 01년 12월 28일(금) 맑음 선임병과 후임병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어 갈등을 겪는 곳이 바로 군대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회와는 달리 느슨한 시간 뒤에 서서히 입장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단시간 뒤에 입장이 바뀌는 것이기에 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입장적 행동에 대해 오류를 일으킬 때가 있다. 군이란 계급 사회가 원래 그렇다라는 관념에 의해 군대의 입장이 많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임병은 지존의 하늘이요, 후임병은 비하의 땅이요라는 의식이 팽배해져 있는 것을 입장적 행동에 대한 오류라 할 것이다. 이러한 입장적인 무의식 속의 괴리가 숨어져 있기 때문에 선후임병은 같은 존귀한 인간임에도 일방적으로 먹고 먹히는 그런 양육강식적 관계일 수밖에 없다. 후임병일 때 무슨..
화이트 크리스마스 01년 12월 24일(월)~25일(화) 구름 껴있다가 폭설 어느덧 올해 마지막 대축제인 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다. 이건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며 새해 또한 며칠 후에 다가올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이렇게 눈 깜빡할 사이에 다가오고 나니깐 내 군 생활도 일년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신기함이 느껴진다. 과연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도 시간이 흐르긴 흐르나 보다. 오늘도 여전히 후반야다. 그것도 B블록 말대기인 B5조이고 부사수는 안전조장에서 벗어나 투입한 지 얼마 안 되는 현호이다. 잘 근무설 수 있을까라는 기대를 가지고 어김없이 11시 30분에 기상했다. 역시 매우 일상적인 평일이요, 그저 의식화된 크리스마스를 그렇게 맞이할 참이었다. 그러..
그저 이루어지는 건 없다 01년 12월 17일(월) 눈 조금 내림 성경 첫 구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라는 글귀가 써 있음을 볼 수 있다. 혹자는 자연이란 어감상에서도 볼 수 있듯이, 자연적으로 누군가와 상관없이 생성되었다고 말하는 이도 있다. 분명 그런 사람들은 인간의 출현 또한 누구의 입감이나 창조력이 없는 것쯤으로 생각할 게 분명하다. 과연 누군가의 의지에 의한 창조가 맞냐, 그렇지 않냐는 약간의 종교성과 비종교성 가운데 대립이요, 그저 불명확하게 끝날 형이상학적인 논쟁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에 여기선 길게 논하지 않을 것이며 논쟁에서 벗어난 것이기에 여기서 일축하겠다. 하지만 이런 논쟁거리를 떠나 한 가지 명확한 것은 어떠한 형상, 사물이든 그저 이루어진 건 없다는 사실이..
영하시대 개막과 다짐 01년 12월 14일(금) 무지 추움 어젠 영상의 날씨였다. 그래서 흐린 날씨인데도 불구하고 EENT일 땐, 눈 대신 비가 내린 것이다. 겨울에 비가 오다니, 얼마나 포근한 날씨인 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김없이 나의 은근한 바람대로 합동근무 투입하려 할 땐 눈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온도는 영상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바람으로 인해 체감 온도가 낮았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렇게 조금의 눈이 내린 밤이 지나 오늘에 이르렀다. 아침엔 그저 평이한 겨울의 날씨여서 별반 걱정이 없이 구보 후 잠이 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오후였다. D조 근무 사수였기에 일찍 12시 50분에 일어나야만 했다. 그런데 다른 때완 달리 진짜로 침낭에서 나오기 싫다는 걸 느꼈다. 도대체 ..
첫 폭설에 바뀐 감정 01년 12월 1일(토) 폭설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린다던 철원에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다. 작년엔 11월 초순에 첫 눈이 왔다던데 여긴, 아니 올해는 이상하게도 눈이 내리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작업이란 의미 밖에 없음을 알지만 그래도 은근히 군에서 맞이하는 첫눈이니만치 기다려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사실 신교대에 도착하던 날에 눈이 엄청 내리긴 했다). 그렇게 나름의 조바심을 느끼게 하던 눈이 지금 밖에 엄청 내리고 있다. 그것도 화려한 신고식이라도 하려는 듯 진짜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다. 싸리눈이었기에 쌓이리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그렇게 작은 눈들도 계속적으로 많이 내리다 보니 어느덧 보지 못하던 사이에 쌓이기 시작했다. ..
연탄 갈이 01년 11월 5일(월) 어둡고 비내림 11월 1일(목)엔 비가 부슬부슬 온 터라 춥지도 않아서 근무를 서기에 정말 좋았다. 영상 8℃에서 그날의 근무는 막을 내렸다. 그러나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11월 2일의 근무는 무엇이 달라도 한참 달랐다. 11월 2일(금)은 후반야 근무였다. 전원투입 때도 왠지 어제완 다른 차디찬, 아니 매서운 추위가 느껴졌지만 말이다. 전반야 말대기였던 민호가 “영하입니다.”라는 말을 되뇌이며 있었던 건 암담한 현실을 직시해줬던 것이리라. 그 말에 이어 부소대장님은 모든 동계용품을 다 갖춰입으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춥단 말이던가!’라는 생각을 하며 처음 입어보는 방상내피(깔깔이와 조끼), 방상외피(스컷파카)와 방하내피(깔깔이 바지), 방하외피(건빵바지)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01년 10월 29일(월) 구름 많이 낌 흔히 태양을 희망에 비유하곤 한다. 그렇기에 낮이 지나 밤이 오면 암흑천지(暗黑天地)라는 표현을 쓰며 암울(暗鬱)하다고 하는 걸 거다. 그런 연유에서 오늘 해가 지면 그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내일도 해가 뜬다는 말들이 생겨난 거고 그건 좀 더 간단히 말하면, 지금의 희망이 꺾여 절망스럽다 한들 언젠가는 그 희망 가득한 날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또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오르막길이 다하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登途盡始下途]’라는 말 말이다. 아주 간단하면서 당연한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오르막길[登途]’과 ‘내리막길[下途]’이란 어떤 것일까? ‘오르막길’은 쉽게 말하면, 버거운 일, 삶의 편협적인 괴로움, 전혀 예측치 못했던 사고 등으로 육..
비 그리고 비 01년 10월 10일(수) 계속 비 엊그제 전광판에 ‘내일의 날씨, 전국적 비’라고 써 있는 걸 보면서, 난 굳이 믿으려 하지 않았다. 아니 전혀 믿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찬란한 태양빛이 내리쬐다가 저녁엔 달빛과 별빛들이 온 하늘을 새하얗게 수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다른 때와는 달리 그 예보가 불길한 전조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왠지 불길함이나 여러 증조들이 보일 때는 그게 현실로 다가오든, 그렇지 않든 조심하라고 누가 그랬던가! 암튼 그건 현실이었고 거부하거나 피할 수 없이 직면해야 하는 현실이었다. 어제 오후는 1소초 작업지원과 사격으로 인해 꽤나 바빴다. 바쁜 건 그래도 좋다. 하지만 사격하러 이동하는 사이에 비가 온 것이다. 조금씩 비는 그렇게 내..
철원의 가을 01년 9월 23일(일) 맑음 가을, 하늘이 드높은 천고마비의 계절. 모든 만물이 성숙의 절정에 이르는 계절. 그런 완숙미를 자랑하는 가을이 철원에도 오고 말았다. 그 추운, 매섭게 추운 겨울 뒤에 봄이 안 올 것만 같았는데, 모르는 사이에 녹색창연의 봄이 찾아왔듯이, 그 무덥고 짜증 나는 여름이 어느덧 흘러가고 가을이 오고야 말았다. 비록 이주일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말이다. 대공 후방, 그러니까 우리 중대 뒤쪽으로 보이는 벌판에 녹색의 새싹들이 피어나는 걸 본 게 어제 같은데, 어느덧 시간이 흘러 진짜 눈으로 미처 확인하지 못한 사이에 녹색 벌판이 황금물결 일렁이는 바다로 변해버린 것이다. 황금의 바다, 그건 작년 대학교 가는 길 벌판에 황금물결 일렁이는 것을 보고서 ‘자연은 어쨌든 이치..
일체유심조 01년 9월 16일(일) 매우 더움 오늘 교회에 가서 잠언 4장 20~23절 말씀으로 설교를 들었다. 내 아들아,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주의 깊게 들어라. 그것을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네 마음에 깊이 간직하라. 내 말은 깨닫는 자에게 생명이 되고 온 몸에 건강이 된다. 그 무엇보다도 네 마음을 지켜라. 여기서부터 생명의 샘이 흘러나온다. 현대인의 성경 이 구절의 핵심은 ‘모든 관념적 생각은 다 마음에서 나온다’라는 거였다. 원효대사의 명언, 그건 당연하다는 생각에 기반한 이야기다. 해골 바가지에 담겨진 물(썩은 육수)과 바가지에 담겨진 물(이슬), 둘 사이엔 엄청난 괴리가 숨어 있다. 썩은 육수는 감히 먹으려는 사람이 없을 테지만, 이슬은 감히 안 먹으려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그 ..
천고마비의 계절에 01년 9월 27일(목) 맑음 하늘이 드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 한마디로 자연이 가장 보기 좋게, 아름답게 변하고 모든 게 너무나 풍성한 계절이다. 그건 누가 뭐라 해도 가을의 이미지이자 가을의 모습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의 대자연의 변화는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누구의 노력 없이 순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그 무더위에 지쳤던 여름이 어느덧 지나고 이젠 대자연의 아미(雅美)를 느끼게 하는 가을이 온 것이다. 녹색으로 짙게 물들었던 들판이 어느덧 황금색으로 변하여 황금물결 일렁이는 좀 사치스러울 수도 있는 부미(富美)를 우리에게 제공해주는 것은 물론이고, 드높은 하늘에 새까맣게 물들인 철새들의 행렬은 자유롭고 싶은 우리들에게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누런 벼와 같이..
빗방울에 담긴 추억담 01년 8월 4일(토) 매우 더움 저번 주 토요일부터 그렇게 무덥게 내리쬐던 하늘에서,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건 지금까지 주말이면 늘 내렸던 비와는 달리 어두우리만치 아련한 추억을 던져줄 전주곡일 뿐이었다. 그렇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쉽사리 그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하긴 태풍의 영향에 의한 비였으니 쉽게 그치는 게 이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그날이 아니었다. 주일 저녁, 전반야(前半夜)였다. 다행히도 비는 내렸다 말았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근무는 꽤나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합동 근무 시간 몇 분 전부터 감히 맞설 수 없을 정도의 비가 들입다 퍼붓기 시작했다. 그 비로 인해 우의를 입었음에도 전투복은 다 젖었고 전투화는 신은 게 더 불편할 정도로 물바다가 되어 버..
폭우와 태산 01년 7월 31일(화) 내일이면 그렇게 꿈에 그리던 일병이 된다. 모든 선임병들이 이병은 무지 빨리 지나간다고 말했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해본 바론, 그렇게 빨리 지나가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느리게 지나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일병이 된다는 거, 사회현실이 별로 달라질 게 없을 거라는 건 익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군 생활을 한 지 6개월이 지났다는 얘기일 테고, 나의 위치가 어느 정도는 확고해졌다는 얘기일 테니까 괜스레 기쁨이 밀려든다. 입대하고 나서, 아니 사실대로 자대에 오고 나서 ‘오르고 또 오르더라도 태산엔 못 오르리’라는 관념을 가졌던 게 사실이다. 냉혹(冷酷)하리만치 매섭게 느껴지던 현실은 내가 평소에 가지고 있던 그런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어서, 그저 막막하게 느껴질 뿐이..
군대의 여름 01년 7월 23일(월) 많은 비가 온 후 갬 여름의 이미지라 하면 보통 덥고 습해서 짜증나는 것이 일반적(一般的)일 것이다. 하긴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게 바로 여름의 진면목(眞面目)일 테니깐 그럴 만도 한 일이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그런 일반적인 여름의 이미지가 아니다. 사실 지금은 그런 일반적인 여름의 이미지가 매우 그립기까지 할 정도이니 말이다. 적어도 군대에서의 여름 이미지는 녹색창연(綠色蒼然)한 대자연이 약동(躍動)하여 더위와의 사투(死鬪) 뿐 아니라, 녹색과의 사투까지 벌여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 녹색과의 사투, 이것이야말로 군대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화두의 여름 이미지라 할 수 있다. 녹색은 어쨌든 생명력을 뜻하는 상징일 것이다. 그 차디찬 겨울에, 오..
걱정스런 마음으로 소대에 복귀하다 01년 7월 11일(수) 꿈만 같던 그림 그리기 작업은 6월 25일(월)~7월 6일(금)까지 2주간 진행되었다. 그래서 7일(토)엔 소대에 복귀해서 낱발실셈을 실시했다. 그림 그리는 시간과는 또 다른 현실을 마주해야 하기에 버럭 겁이 났다. 왜 이런 미묘한 감정의 변화가 뒤따른 걸까? 그건 소대 사람들이나 소대 일에 대한 애정이 별로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 자신의 문제를 익히 알고 있었기에 열심히 적응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많은 노력은 필요치 않았다. 왜냐하면 자대에 와서 4개월 정도의 시간이 흐른 만큼 고참들이 많이 풀어주는 것이 있었기에 생활 자체도 편해졌을 뿐 아니라, 후임병들이 많아져서 내가 해야 할 일도 적어졌으며, 근무 여건도 매우 편해져 누구 ..
그림 작업에 투입된 행복 01년 7월 2일(월) 어두움 요즘은 그 어느 때와 비교(比較)할 수 없을 정도의 행복(幸福)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저저번주 토요일에 갑자기 소대장님 순찰조(巡察組)가 되므로 약간의 기쁨을 줬던 것이 계기가 되어 오늘의 순간(瞬間)에 이르게 된 것이다. 저번 주 주일에 전원투입(全員投入)을 준비(準備)하고 있는데, 분대장님께서 갑자기 나보고 “내일부터 넌 그림 그리는 인원에 포함될 거니깐, 그렇게 알도록 해!”라고 말씀해주신 것이다. 난 그 말뜻이 무엇인지 바로 알았다. 그건 바로 강정명(姜正明)씨 외의 인원이 그리고 있던 철책 정밀그림을 내일부턴 내가 그려야 한다는 뜻이었으니 말이다. 난 불현듯 불만을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K-3를 맡는가 했는데 하필이면 이때 빠지..
휴가 후에 달라진 것 01년 6월 31일(토) 어두움 백일휴가를 갔다가 소대에 도착하고 나서 놀라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휴가를 가기 전에 분대장님께서 “칠월 초나 유월 말에 신병을 받을 거니깐. 그때까지 적응 잘 해둬라”라고 말씀하셨기에 난 정말 그런 줄만 알고 휴가 복귀하였지만, 막상 도착했을 땐, 이미 우리 분대에 신병, 내 막내표를 떼게 해줄 아이가 들어와 있었으니까. 기분은 무지 좋았다. 내 후임인 용준이는 부산에 사는 아이란다. 박형국 일병님하고 같은 곳에 사는 아이이니만치 내가 휴가 가 있는 동안 들어온 용준이에게 참 잘해줬을 것이다. 19일에 홍민석씨가 나갔다. 나랑 싫으나 좋으나 같이 근무 서면서 애증을 모두 겪어온 사이이다. 사실 그분이 나갈 땐, 아쉬운 마음이 꽤 많이 들었다...
대공(對空)에 서서 01년 6월 8일(금) 더움 GOP 근무 중, 가장 기대되고 가장 가슴 벅차며 행복한 순간은 뭐니 뭐니 해도 대공 근무를 설 때다. 주간이든, 야간이든 간에 이러한 나의 기대치 및 만족치는 조금도 변함이 없다. 주간 특히 A조나 D조 근무를 서면서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서서히 지는 장관을 두 눈으로 한없이 주시하고 있을 때면, 세상의 온갖 삼라만상을 내 두 눈으로 직접 경험하고 있는 것만 같은 뿌듯함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 자연스럽고도 화사한 변화에 삶의 진한 감동과 삶을 살고픈 의욕이 들곤 한다. 그리고 그 끝없는 평강고원 끝자락에서부터 아이스고지의 끝자락을 시력으로 볼 수 있는 곳까지 전부 넣으려고 보다 보면 나의 인식 능력이 얼마나 협소한지 통감하게 되곤 한다. 그렇게 아름답고 광..
‘전입 100일’을 축하하며 01년 6월 7일(목) 무덥다~ 물 줘~~ 2월과 3월의 철원 땅의 추위, 그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삶의 극단이었다. 분명 한 겨울의 추위에 비하면 새발의 피도 안 될지 모르지만, 정말 추위 속에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릴 정도였다. 그렇게 군에 들어왔고 군이란 이런 거구나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살아왔고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은 방벽에 잡초들이 돋아나서 방벽에 가만히 멈춰 있으면, 풀내음이 코끝을 살살 자극하는 계절이다. 그렇게 가지 않을 것 같던 매서운 추위는 이제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오로지 찌는 듯한 태양 아래, 이마에 주렁주렁 맺히는 땀방울들을 팔뚝으로 스치듯 닦아내야 하는 무더운 여름이 불쑥 찾아왔다. 개나리가 갑자기 하나, 둘씩 보이길래 ‘와! 철원에도 봄..
병이 주는 선물 01년 6월 4일(월) 맑음 이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병에 걸려보지 않고 사는 사람은 확언컨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병에 걸리게 되면 그 한 개인의 삶도 생각지 못할 정도로 바뀔 테지만, 그 주변인의 삶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준다. 우선 나와 같이 그렇게 심한 병에 걸리지 않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심하지 않은 병에 걸림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피로와 스트레스에 억눌렸을 자기 자신을 회복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며, 주위 사람들의 평소엔 볼 수 없던 각별한 관심을 보게 됨으로 그들과의 관계는 더욱 끈끈해지게 된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푹 쉬었다. 금요일 저녁엔 비번이었고 토요일 저녁엔 감기로 인한 오한으로 야간 근무 한 시간 만에, 아니 두 시간 만에 대기라는 빈 시간..
일상이 파괴된다는 것 01년 6월 3일(일) 더움 일상성은 늘 똑같은 생활의 반복이기 때문에 지루함과 짜증스러움을 유발한다. 하지만 그런 일상적인 행복은 그런 일상성이 깨진 다음에야 느껴지게 되니 얼마나 불행한 일일까! 이번 한 주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렸다. 한 번은 깨잘깨잘 내리는 비 때문에 근무 서는 일상성에 큰 타격을 가한 적이 있었고 또 한 번은 투입 전에 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들입다 퍼부어대길래 우리의 근무에 대한 일상성(그저 맑은 날 밤공기를 가르며 근무 섰던 일상성)이 너무도 그립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곧 그치게 되었으니 군장 검사 전에 그치게 되어 얼마나 다행이던지. 날씨가 맑은 가운데 근무를 선다는 건, 늘 그렇게 근무를 서 왔기에 아주 지루한 일상의 한 단면일 뿐이다. 하지만 비..
일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 01년 5월 20일(일) 따스함 주일이 되었다. 이렇게 어김없이 주일이 찾아왔다는 게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주일이 되면 사회에 있을 때도 너무나 즐거운 시간이었고 사람과 사람 간의 전인관계(全人關係)를 맺으며 나와 주님과의 영적 교류를 할 수 있기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래서인지 군에 오고 나서 주일이 되노라면, 그렇게 교회에 가고 싶었고 교회 사람들을 그렇게 보고 싶었던 것이다. 훈련병 시절에 교회에 갔을 땐, 그저 형식적인 예배에 실망 아닌 실망을 하며 먹을 것(초코파이냐 햄버거냐 그것이 문제로다) 하나에 종교 선택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자대에 와서 한동안 교회에 나가지 못했을 땐, 왠지 내 기본 관념들을 바로 잡아줄 기본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힘들었던 ..
한 달을 보내고서 01년 5월 14일(월) 맑음 벌써 자대에 온 지도 한 달이 되었다. 퇴소식을 마치지마자 동기들에게 인사할 겨를도 없이 이곳에 온 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이게 꼭 꿈인 마냥 빠른 시간이 흐른 것이다. 처음에 자대로 간다고 했을 땐, 혹 사자 굴에 들어가는 것 마냥 무섭게 느껴졌는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그렇지도 않았다.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였고 내가 생각했던 예전의 군대(구타와 불합리가 가득한)가 아니었기에 그다지 힘들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분대 고참들이 특별히 신경 써주는 부분이 많았기에 맛있는 것도 많이 먹을 수 있었고 여러 가지 좋은 것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GOP 근무를 서고 있는 1대대로 자대 결정이 나고 나서 GOP라는 압박감으로 인해 잠시..
이등병 행사의 날 01년 5월 13일(일) 따스함 어제부터 오늘까지 1박 2일간 이등병 행사를 하였다. 토요일 6시에 집결하기로 되어 있었기에 우린 분주히 준비했다. 일개복에 일개화를 신고 더블백까지 꾸리고 있노라니, 마치 휴가라도 갈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더라. 그래서인지 맘이 끝없이 들뜨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까지 꾸린다는 것은 대대나 연대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기에 (우리가 지내고 있는 이곳 소대를 잠시나마 떠날 수 있다는 거니까) 왠지 설렜다. 시간이 좀 늦춰져서 EENT(End Evening Nautical Twilight) 전원 투입에 맞추어 우린 본부로 이동하게 되었다. 중대 본부(우리 2소대는 다른 소대와 달리 중대와 붙어 있다)는 우리의 생활터전이기에 우리에겐..
때이다! 01년 5월 12일(토) 맑음 이번 한 주는 즐거운 한 주였다. 살아가는 하나하나의 의미가 새록새록 피어나던 때이다. 이젠 근무 서는 게 하나도 힘들지 않고 밤을 지새우는 게 오히려 자유롭다고 느껴지는 때이다. 고참들과 함께 오순도순 얘길 나누는 게 아주 일상적으로 느껴지는 때이다. 군대 짬밥이 너무 익숙해졌기에 밥 먹는 시간을 은근히 기다리며, 특히 군대리아가 나올 때면 빵과 우유를 동시에 씹어먹을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맛있게 먹게 되는 때이다. 전원 투입을 끝내고 자리에 누워 있노라면 그 평온함과 안락함에 눈을 스르르 감을 순간에, 십자가를 만지며 아주 간절히 기도하며 새로운 아침, 새벽을 맞이할 때이다. BMNT 투입 후에 동이 틀라치면 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귓가를 타고 전해오기 때문에..
살아볼 만한 이유 01년 5월 7일(월) 구름 낌, 오후 6시 25분에 씀 재밌다. 살아간다는 게 재밌다. 더 자세히 말하면 군생활 하는 게 재밌다. 여러 사람들이 분명 살아온 과정이나 가치관이 다름에도 한 가지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게 재밌다. 여러 사람이 함께 살아가야만 한다는 거, 그렇게 하므로 서로를 자세히 알아간다는 거, 그게 바로 행복한 것이다. ‘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곳에서만은 그게 예외적인 발언이 되기도 한다. 이곳에 와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더라. 우리 소대만 해도 38명이나 있고 우리 분대엔 10명이나 있으니 말이다. 분대장님하곤 같이 근무 서기에 대할 기회가 많고 그 외의 분대원들도 다른 소대원들에 비해 친근감이 느껴진다. ..
3주 만의 종교활동과 깨달음 01년 5월 6일(일) 구름 낌 오후 4시 9분 자대에 온 지 3주 만에 교회에 갔다. 아주 일상에 찌들어서 그저 주일이기에 교회에 찾아갔던 나의 신앙심은, 무려 3주나 교회에 가지 못하게 되자, 대단한 변혁기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역시 가끔씩은 일상성을 벗어나 본다는 것도 생각할 수 없는 크나큰 깨달음을 안겨주곤 한다. 그렇게 교회에 가지 못하다 보니, 예수님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 강렬해진 신앙심을 가지고 찬양할 수 있고, 말씀을 들을 수 있고, 목소리 높여 기도할 수 있었다. 그동안 못해왔기 때문인지 대단한 기뻤고 그 순간만으로도 좋았다. 오늘 설교 말씀은 ‘가정 안의 행복은 물질적인 이상으로 충족될 수 없으며, 오로지 사랑, 격려 속에서 ..
적응기간에 생긴 두 가지 사건 01년 4월 29일(일) 7시 24분 지난주엔 대기기간이 풀려서 본격적으로 근무를 서게 되었다. 전령(傳令)에서 근무자라는 직책의 변화와 대기기간과 대기기간 해체라는 상황의 변화는 날 심하게 흔들고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현실에 대해 저자세로 대응하는 게, 나의 대응 자세인데 이번에도 그러한 나의 기본 성격은 변하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때와는 다르게 맘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새로운 현실, 상황에 대한 기대감과 그에 따른 행복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건 희망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나도 모르는 힘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이런 복잡한 심리를 가지고 지난주를 맞이했던 것이다. 가만히 한 가지 자세로 서있어야만 한다는 게 좀 힘들긴 했지만, 사람과 사람이 함께 의지한 채,..
삶의 무게 01년 4월 26일(목), EENT-30 BMNT+30 태초에 지상낙원이라 할 만한, 에덴동산이 있었고 그곳엔 오로지 평화만 있었다고 성경(聖經)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 평화의 극치를 누렸던 그곳은 인간의 허무한 이기적 욕심으로 인해 산산이 부서지고, 오로지 결과물론 피와 땀을 흘려야만 비로소 자기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노력과 고생만이 남았다. 그게 바로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삶의 무게’인 것이다. 굳이 이런 따위의 신화적인 얘길 하지 않더라도 각자가 지금까지 적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뼈저리게 느낀 바가 있을 것이기에 잘 알 것이라 믿는다. 이런 ‘삶의 무게’를 어떻게 대처해 나가느냐에 따라, 우린 사람을 두 분류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적극적으로 그 사건을 막고 품음으로 그 사..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01년 4월 22일(일) 화창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去言美, 來言美]’는 속담은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말이다. 이 말이 속담이 아니더라도 일반적인 생각으로도 쉽게 납득될 말이다. 좋은 말을 해줬는데도, 거기다 대고 욕을 바가지로 해댈 사람이 없으니 말이다. 이런 일반적인 원칙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난 두 가지 말실수를 하였다. 그 첫째는 강정명 병장님께서 옷을 꿰매고 있는 나를 보고서 “아직까지 바느질 하냐?”라고 물었을 때, 난 장난을 치고 싶어 “전역하는 그 날까지 할 것입니다.”라고 농담조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대답에 대한 반응은 참으로 상반되는 것이었다. 강정명 병장님에겐 ‘다른 일을 다 하기 싫고, 오로지 바느질만 하겠습니다.’라는 ..
퇴소식 날에 01년 4월 13일(목) 차가운 바람이 분 맑은 날씨 드디어 아기다리 고기다리던 퇴소식이 있는 날이다. 끝은 시작의 다른 이름임을 모르는 게 아니지만, 그래도 하나의 과정이 끝난다는 사실은 정말로 행복한 일임에 틀림없다. 오늘의 퇴소식을 위해 어제 하루종일 연습해온 터이다. 도저히 군대의 이러한 행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무리 딱딱 맞는 획일성이 군기의 상징이라 하지만 이와 같이 30분 정도의 행사를 위해 온 병력을 무려 하루 동안이나 반복연습을 시키는 일은 주객이 전도된 어처구니 없는 일이란 생각만 드니 말이다. 어제 너무 지겹도록 연습해왔기에 별문제 없이 해낼 거라 믿고 있었지만, 그러한 믿음을 믿어주지 않은 채 오늘도 한 시간 가까이 연습한다고 하더라. 힘들 거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비의 노래 01년 4월 11일 폭우 철원에 처음으로 비가 내린다. 철원엔 눈만 내리는 줄 알았기에 비가 온다는 게, 왠지 평범한 일임에도 특별한 일인 양 느껴진다. 비가 오니깐, 정말 삶의 짐이 무거워짐을 느끼게 된다. 무거워 봐야 일기에 의한 단순한 의욕 저하일 뿐일 텐데 말이다. 비가 오면 모든 활동은 제약된다. 적어도 비가 내리면 야외활동이 주를 이루는 군생활엔 치명적이란 얘기다. 민간인들이야 우산, 차 등을 이용해서 비라는 제약을 극복할 수 있을 테고 거기에 덧붙여 뛰거나 대피하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군인은 절대 뛸 수 없을 뿐더러, 불가피할 경우에는 우산은커녕 판초우의 만을 걸치고 비에 저항해야 한다. 두 손은 언제나 자유로워야 총기를 사용하거나 지뢰매설이 가능하니 우산을 써선 안 된..
두 가지 지켜야 할 것 01년 4월 11일(수) 비 오고 추움 군생활 한 달 만에 얼마나 느낀 게 많겠느냐만은, 그래도 훈련병 생활을 마칠 정도의 짬밥을 먹어가는 가운데 깨달은 것이 있기에 이곳에 적어보고자 한다. 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군기(軍氣)일 것이다. 군기를 확립하기 위해선 무엇 무엇이 필요할까? 그 첫째는 마음가짐이다. 한 순간, 한 순간 ‘열심히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가운데 그렇게 자기를 움직여 가는 것이다. 늘 한 가지 관념을 지속해나간다는 건 지루함으로 인해 불가능해질 뿐 아니라, 적응과 그에 대한 더 큰 시련을 이겨 나가려는 다잡음의 되풀이 형식 사이에서, 더 큰 시련이 더 이상 주어지지 않는다면 저절로 해이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것이기에, 아..
야영이 남긴 희비 01년 4월 6~7일(금~토) 흐리다가 맑아짐 숙영지로 바로 이동했다. 완전 군장을 풀고 텐트를 칠 준비를 했다. 처음 치는 것인데도 의외로 깔끔한 성격 때문인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나도 열심히 텐트 치는 걸 도왔고 열심히 말뚝을 박았다. 우리 꺼 텐트는 의외로 튼튼하게 쳐져서 우리가 보기에도 상당히 훌륭했다. 우리가 이렇게 말끔하게 칠 수 있을 줄이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난리 났다.) 그렇게 텐트 안에 군장을 풀고 바닥을 깨끗이 깔았다. 저녁에 활동복으로 갈아입지 않고 그저 군복 차림으로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저녁 공기는 그다지 차갑지 않았기 때문에 잘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침낭에 번데기처럼 쭉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새벽 공기의 매서움은 완전히 밀폐된 군복 속의 ..
행복한 행군 01년 4월 6일(금) 흐리다가 맑아짐 신병 교육 5주차 막바지 훈련인, 행군과 숙영이 있던 날이다. 난 평소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행군에 대해 그다지 걱정스러워 하진 않았고 오히려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완전 군장을 꾸리고 나서 그걸 들쳐 매보니 생각한 것보다 훨씬 무거웠으며, 이걸 들고서 걸어야 한다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느낄 수 있었다. 금요일, 오전 8시 30분에 출발 예정이다. 아침엔 너무나 먹고 싶었던, 저번 주엔 한 번도 안 나와서 아쉬웠던 군대리아가 나왔지 뭔가. 그래서 무지 기뻤다. 그걸 맛있게 먹고 완전군장을 짊어진 채 연병장에 집결했다. 약식화된 완전 군장임에도, 상상을 넘어서는 그 무게는 나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어야 하는 게 그렇게 ..
뻘짓의 군바리 정신 01년 4월 5일(목) 화창 어제 아침엔 구보까지 생략해가면서 사단장 사택(장교들 쉬는 곳이 아닐런지?) 옆에 자갈을 깔았고 아침 식사 후엔 교육까지 늦춰가면서 모래를 열심히 퍼다 날랐다. 그러나 교육 완료 후에 구보도 하지 않고 또다시 그곳에 모이라는 것이다.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다시 또 그곳을 가야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지금까지의 일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상황의 당위성을 조금이라도 설명하지 않고, 사과 한마디 없이 무작정 지금까지의 노력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게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더욱이 그렇게 넓은 장소에서 돌맹이를 골라내어야 한다는 건, 흡사 밥통에서 밥알 세기와 같았다. 그렇게 짜증과 위안 속에서 일만을 하며 저녁을 맞이하였다. 오늘은 즐거운 식..
손병장에 느낀 순수함 01년 4월 4일(수) 새벽 2:20~4:20 사람다움을 인간미(人間美)라 하며, 기계다움을 기계미(機械美)라 한다. 즉, 그 본질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것을 우린 아름다움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그렇다. 원래 그대로의 그 아름다움을, 그 본질을 그대로 간직한 채 있다면 그건 진정한 아름다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 반대를 생각해보자. 원래의 그 본질을 잊은 채, 그에 반하는 이른바 다른 성향을 쫓아가려 한다면 그건 추함을 넘어선 혐오일 뿐이다. 군대라는 이곳, 이곳은 인간미가 사라지고 오로지 기계추(機械醜)만이 넘치는 혐오스러운 곳이다. 오로지 상명하복의 기계적 삶의 방식의 기치 아래, 사람과 사람이 얽어지고 맺어지는 곳이다. 처음부터 그런 기계추의 혐오스러움을 느끼며 그곳에 적응하려..
고통스런 화생방 01년 4월 4일(수) 훈련병 훈련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던 화생방 훈련을 오늘 하게 되었다. 화생방 후일담을 들어보면, ‘고통의 순간’ ‘차라리 행군을 두 번 하는 게 오히려 낫다’ 등의 소리가 있기에 정말로 그런지 너무나 궁금했다. 오전엔 그저 이론 공부만을 했고 바로 열 명씩 어둠의 밀실로 사라져 갔다. 그곳은 밀실일 뿐이었고 조교들은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었다. 차례 차례로 들어간다. 이미 경험해 본 아이들은 한두 명씩 늘어만 간다. 거의 1분 정도만 화생방을 한다는 게 아쉽게만 느껴지고 그걸 이미 마치고 나오는 아이들 또한 그다지 힘들어 보이지 않으며 생각했던 것보다 아이들의 상태도 양호하다. 그런 현실에 대한 판단이었기에 화생방에 대해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빨리 즐..
수류탄 훈련과 한계 01년 4월 3일(화) 날씨는 좋으나 찬바람 불다 5주차 훈련 중, 가장 큰 기대를 거는 훈련 중 하나인, ‘수류탄 투척 교육’을 하는 날이다. 맘은 이미 싱숭생숭했다. 예전부터 수류탄의 살상력을 잘 알 뿐더러, 어제 점오시간에 그 세세한 위험성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포심 때문에 설명을 듣는 내내 많이 떨렸다. 이러한 공포심이, 바로 인간의 한계로 인해 빚어진다. 인간의 한계란 절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의 경우, 뜨거운 물에 대한 공포심 및 경각심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하다보니 뜨거운 물을 아무 거리낌 없이 만지며, 그 결과 뜨거움의 무서움을 여실히 깨닫고 그 다음부턴 그런 걸 만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한 가지 사고에 의한 것은 경험에 의한 것이든, ..
소리엘 찬양에 위로받다 01년 4월 1일(일) 화창 드디어 군에 온 지도 두 달이 지났다. 물론 달수로만 그렇다는 것이고 2월 마지막 주에 입대했으니 6주째에 접어든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교회에 갔다. 벌써 3주째 교회에 나가는 것이지만 오늘은 좀 특별한 주일이었다. 입대하기 전에 열심히 들었던 ‘주께 맡기는 자♬’라는 노래가 교회 스피커를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 곡을 들으니,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만족감을 느꼈고 행복과 함께 감사를 느꼈다. 주를 찬양하므로 주를 따르리라 주와 함께 가는 것자기를 부인하므로 삶을 드림으로 거듭난 모습주를 영접하므로 주께 맡기는 것 주께서 인도해자기의 십자가 지고 주를 따라 가리라 세상의 그 어떤 부와 명예도 주보다 귀할 수 없어이전에 나 몰랐던 주..
일상이 그리워지던 순간 01년 3월 30일(금) 구름 가득하나 맑고 따뜻함 집에 있을 때, 따스한 이불을 덮고 오락기 패드를 붙들고 오예스와 같은 초콜릿 파이류의 과자를 먹으며, 냉장고에 있는 단맛 나는 음료수로 목을 축이던 기억이 생생하다. 군에 온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엔 왠지 모르게 오예스를 먹으며 그렇게 단맛으로 배겨 버린 목에 한 줄기 음료수를 냅다 들이키고 싶다. 지금은 그런 욕구가 강할 뿐이다. 이대로라면 백일휴가 때, 기차를 타고 가면서 오예스 한 박스, 아니 세 박스를 사다 금세 먹어버릴 수 있을 것 같고, 음료수 1.5리터를 사다가 꼴깍 들이킬 수 있을 것만 같다. 기차 안에서 주위 사람들의 의식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내 억압된 아니 억제된 욕구만을 충족시킬 것이다...
햇살 찬가(讚歌) 01년 3월 30일(금) 이곳은 강원도 철원이다. 뉴스상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곳은, 혹독한 기후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난 여름까진 경험해보지 않았기에 이렇게 단정 짓는 게 무척이나 어색하지만 이곳에서 일년 이상을 살아온 기간병들의 말을 빌리자면 ‘겨울엔 영하 20도까지도 내려가며, 여름엔 영상 30도~50도까지도 올라간’ 댄다. 난 이곳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 3월 말임에도 기온이 영하를 밑돌며 눈이 우수수 내리는 이곳은 따스한 햇살이 너무도 그리워지는 곳이다. 그렇다고 아예 햇살이 안 뜨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날씨가 맑을 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덥기 때문이다. 그러하다가도 햇살이 구름 속으로 사라질라치면, 날씨는 급격히 반전되어 몹시 추워진다. 이곳은 유난히..
기록 사격에 합격한 기쁨 01년 3월 29일(목) 오늘은 기록 사격이 있는 날이다. 원랜 저번 주 목요일에 했어야 했지만, ‘산불’ 때문인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다가 드디어 오늘 기록 사격을 하게 된 것이다. 저번 주에 꽤 성적이 좋게 나왔기 때문에, 오늘 만발의 조짐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곤 있었지만, 이번 주 들어 갑자기 나빠진 건강 상태와 오늘 들어 좀 스산해진 날씨 때문에 불길함을 엿볼 수 있었다. 막상 사격장에 도착해보니, 날씨가 꽤 더웠을 뿐더러 햇살까지 따스하였기에 조금의 희망을 직감케 하였다. 하지만 잠시 후, 도보로 상승했던 체온이 식어감에 따라 스산한 칼바람을 몸소 느낄 수 있었고, 따스한 햇살이 먹구름 저편으로 숨어 버릴라치면, 온몸이 소리 없이 상하좌우 반동의 몸놀림으로 대..
설사는 괴로워 01년 3월 29일(목)바람이 불다가 눈이 조금 옴 요근래 속이 별로 좋지 않음을 느꼈으며, 그에 따라 밥맛도 별로 없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오늘 나의 병이 설사인 걸 알았다. 어제 초번초를 총기점오의 연장으로 아이들과 함께 마무리 짓고 긴장이 풀어진 순간에 화장실에서 오줌을 싸던 찰나에 엉덩이 쪽에서 방귀가 나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뭔가 뜨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렸을 때, 딱 한 번 경험해봤던 그런 찝찝한 기분이, 지금 이 순간 드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난 불침번 보고를 마치고 오자마자 곧바로 화장실로 달려가 확인해 보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건 기정사실이었다. 물끈한 게 팬티에 그득 묻어 있었기에, 그런 현실이 혐오스러웠을 뿐만 아니라 과연 내가 인간인가 하는 의..
땅바닥과 친해지다 01년 3월 28일(수) 쾌창한 날씨 아침에 일어나니 말번이었던 아이에게서 눈이 쌓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에 덩달아 체감 기온이 영하 5도라는 얘기를 한다. 그저 각개훈련을 받아야만 하는 오늘이 암담할 뿐이다. 어제 그렇게 추운 날씨 가운데서 훈련 받았던 아픔을, 오늘 다시 경험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벗었던 내복을 다시 챙겨 입고 깔깔이를 입는 등, 중무장을 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서서히 접어들어 오후가 됨에 따라 하늘은 점차 환하게 개고 있었다. 그날 햇빛을 충실히 받고 있던 지면은 유난히 빛나 보였다. 그에 따라 기분도 좋아졌지만, 좀 눅눅해진 땅에서 구를 걸 생각하니, 까마득하고 심란하기만 하더라. 그렇게 각개전투장으로 이동하였다. 오늘은 어제..
밥 정량만 먹기와 주님의 개입(?) 01년 3월 27일 구름 낀 후 눈이 옴 3월 말에 눈이 온다. 전주라는 온화한 땅덩어리에서만 살아온 나에겐 쉽사리 납득되지 않는다. 그도 그럴 듯이 저번 주에 유주승 조교가 “여긴 4월에도 눈이 오고, 그렇다고 여름엔 시원한 것도 아니고 ㅈㅃ지게 뜨거운, 이상한 동네다”라고 했을 때도, 난 그 말을 그저 흘려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이 오는 걸 보니, 역시 경험만이 최고라는 실감이 난다. 오늘 날씨가 나의 몸 컨디션을 제대로 반영해 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만 해도, 사이렌 소릴 듣지 못할 정도로 잘 잤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 또한 구름은 별로 없이 맑았으며, 왠지 어제와는 다른 날씨가 오리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속이 거북해..
미래의 자화상과 전우들 01년 3월 25일(日) 미래의 자화상5년 후군을 전역했을 것이기에, 자신감과 함께 기고만장함을 가지고 있겠지. 1년 간 대학에 바로 갈 수 없기에, 아르바이트를 할 거다. 과연 뭔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지? 걱정이지만 지금 그 걱정을 한다면, 단순한 기우(杞憂)라고나 할까?그저 복학하는 그 날까지 열심히 알바할 것이다. 적어도 군대는 갔다 왔으니, 조금이라도 확신 있고 생활력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돈 꼭 벌어서 사회라는 현실도 체험해보고, 입학금도 마련할 거야.10년 후임용고시에 합격하는 게 가장 시급한 과제겠지. 그걸 합격하여 장래희망을 이루고자 대학에 들어간 것일 테니깐 꼭 합격해야겠지. 그리고 결혼도 할 거다. 결혼이란 게 선택사항이든, 필수사항이든 간에 꼭 ..
날씨변화와 군대적응 01년 3월 26일(월) 크게 춥고 바람이 많이 붐 인생목표頭內에 獄若忍三個면 始幸福이라머릿속에 참을인[忍] 세 개를 넣어둔다면 비로소 행복이라네. 생활신조신(信)ㆍ망(望)ㆍ애(愛)信: 믿는다는 건 나와 너를 바라는 것이다[信者 望以我而汝]望: 바람이란 희망의 내실을 보지하는 것이다[望者 持於希之裏]愛: 사랑이란 사람들의 행동을 즐기는 것이다[愛者 樂於人之行也] 가장 존경하는 인물/ 이유후광(後廣) 김대중: 소신이 강하다 / 인간미가 넘친다어머니: 책임 의식이 강하다 모처럼만에 북방의 매서움을 느꼈다. 토요일엔 ‘이젠 완연한 봄이구나!’하고 느낄 정도로 따사로움보단 오히려 뜨스함을 느끼며 ‘이제 연습하기 좋은 날씨는 다 지났구나’하고 느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오늘은 정반대의 생각을..
사람의 한계(특공대를 보고서)人間之限界(視於特攻隊) 01년 3월 25일(일) 오늘 ‘특공대’편을 보았다. 今日에 視於人間劇場之特攻隊하다 혹한의 겨울 훈련 중에 인간의 한계를 생각해보다.惑寒之冬季之訓練中에 想人間之限界하다 인간의 한계는 없는가? 한계와 한계 없음의 차이는 무엇인가?與人間之限界乎아 何差限界和非限界아 그 차이는 체력에서 비롯된 한계가 아니요, 의식에서 비롯된 한계이다. 其之差는 非於體限이오 差於意限이라 만약 의식이 바르고 견고하다면 아무리 육체가 되게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걸 이겨낼 수 있고若猶意之正而堅이오 深苦之肉이라도 可以克己오 의식이 바르지 못하고 얄팍하다면 몸이 편하고 즐거울지라도 자기 몸을 가누지 못한다. 若猶意之不正而薄이면 安樂之體라도 不可以克己라 그렇기에, 하물며 핑계댈 생각을 가지지..
봄 경치(화창한 날에)春景(和暢日中) 01년 3월 23일(금) 오전 11시 52분 사계절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다. 그 중에 봄이 가장 좋다. 四節은 春與夏與秋與冬也라 其中에 最春貴乎니 봄엔 감정이 살아나고 즐길 만하기에 좋은 것이다. 봄이라는 것은 겨울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다. 貴於春은 感好而樂이다 春者는 乃來冬終이라 겨울 동안은 몸이 위축되고 마음은 치우치며 정신은 해이해진다. 冬內에 體爲縮이오 心進偏이오 精神爲弛라 이것은 찬 겨울바람 때문이다. 是以寒風之故也라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았으나, 어느 때에 보니 이미 와 있다. 如不來春이나 看何時하니 旣猶來라 산은 푸르름으로 돌아갔고 풀은 푸른색을 되찾았으며 마음은 여유를 되찾았으니, 이것으로 봄이 왔음을 느낄 수 있다. 歸山綠하고 探草靑하며 復心..
유격과 참호전투 01년 3월 23일(금) 화창 원랜 오늘 기록 사격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무슨 일인지 다음으로 연기되어 버렸다. 맞을 매는 후딱 맞는 게 좋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인데, 그러지 못하니 맘이 아프다. 빨리 보고 노는 게 좋은데 이렇게 있으려니 죽겠다. 하루 종일 정신 교육이기에 가만히 앉아 있었더니, 글쎄 종아리에 좀이 배기는 거 있지. 하도 활동적인 활동만 하다가 전혀 생각도 못했던 VTR 시청만 하려니 되게 힘들기만 했다. 3주차 교육도 이렇게 끝나 간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영겁의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간다. 역시 언제나 늘 말하지만 지나가 버린 시간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건가 보다. 어찌 이렇게 빠를 수 있지. 근데 앞으로 있을 일은 너무도 아마득히 느껴지니 말이다...
사격과 놀이기구의 유사점 01년 3월 20일(화) 맑음 살아서 돌아왔다. 오늘 살상용(殺傷用) 화기를 다루면서 많이 떨었다. 오전 내내 들었던 총기의 굉음이 그랬고 살상용이라는 용도가 그랬고, 내 총기에 대한 의심이 그랬고, 예전부터 들어왔던 총기의 안전사고 내용들이 그랬다. 쏘려는 그 순간까지 많이 떨었다. 하지만 막상 쏘고 나니, 허탈한 마음과 함께 다시 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흡사 에버랜드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타기 전엔 무수한 생각으로 고민하며 결국, 그 표를 샀다 하더라도 근심, 걱정의 눈초리로 자기가 타게 될 놀이기구를 보게 된다. 그와 같이 사격전에는 자기의 삶과 죽음이란 많은 고민을 하며 결국 사선(射線)에 이르러 대기조에 서있다 할지라도, 너무나 크고 선명..
억눌린 영혼들의 주먹다짐 01년 3월 19일(월) 주일이었던 어제 처음으로 더위를 느낄 정도로 무더웠다. 하지만 어제와는 생판 달리 안개 낀 새벽을 빌미로 어둑어둑한 하루가 계속 전개되었다. 그에 맞추어, 3주차의 주된 훈련은 K-2 소총 교육과 실전 사격 훈련이다. 이로 인한 심리적 부담감이 맞물려 오늘 하루, 아니 이번 한 주에 대해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현실은 사실일 뿐이었다. 사실 오늘 훈련은 하나도 힘들지 않다. 그저 저번 주에 했던 K-2 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똑같은 훈련을 반복했기에, 힘들었다면 여전히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무의탁사격)가 가장 힘들었을 뿐이었다. 다만, 날씨의 저조증이 우리의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으며, 자기의 의지가 전혀 관여할 ..
어이없는 벌에 대해 01년 3월 16일(金) 8시간 동안 사격예비훈련을 했던 날이다. 오전 훈련이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 PRI(Preliminary Rifle Instruction, 무의탁사격, 無依託射擊) 훈련은 너무도 힘들었다. 다른 조들은 조금씩만 반복한 데 비해, 우리 1조는 거의 20분간을 훈련 받았기 때문에 힘들어 지칠 수밖에 없었다. “250사로봤!”이란 구호와 함께 10초 안에 2보 전진 후, 엎드려 쏜 다음에 다시 무의탁 사격 자세로 돌아와야 하기에 힘이 들었다. 그런 가운데 오후에도 이와 같은 훈련이 기다리고 있다는 건. 크나큰 심리적 암박으로 작용하기에 충분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오후엔 그렇게 빡시게 훈련을 받지 않았다. 그렇지만 몸은 몹시나 무거웠다. 전투야상 상하의가 흙범벅이 ..
건강의 소중함 01년 3월 15일(목) 목감기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작년 내내 감기라는 하찮은 병에 걸리지 않았기 때문에 감기라는 질병은 나와 무관하게만 느껴졌다. 하지만 방심은 긴 허점이듯이, 감기란 질병은 그런 허점을 타고 일거에 밀고 들어왔다. 그래서 지금은 목이 많이 아픈 상태이고 기침이 나올라치면 괴로운 상태이다. 건강에 대해서 확신하지 말라는 것, 그건 진리이자 사실이다. 아프기 전엔 건강에 대해 그 귀중함을 알지 못한다. 경험, 이전엔 무엇이든지, 귀중함 내지, 소중함을 느낄 수 없다는 건 비극이고, 그로 말미암아 그것을 지키려 노력하지 않는다는 건 절망이다. 결국 나에게서 몸의 건강을 잃음으로 삶의 중요함을 느끼게 될 때에 건강의 소중함을 느끼게 되는 거다. 지금 이 상태로의 건..
작은 감사 01년 3월 13일(화) 의정부 306보충대에서 6사단 신병교육대로 배치를 받고 도착했던 지난 토요일(3일), 그날은 이미 입춘(立春)이 지났음에도 스산한 바람과 함께 하늘에선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3월은 봄이 약동하는 날씨인데 눈이 온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롭게 느껴졌다. 전주에선 이번 겨울 내내 겨우 두 번밖에 눈이 내리지 않았기에 함박눈을 본 것이니 가슴 설레긴 하더라. 그러면서 ‘역시 여긴 철원이구나!’하는 앞날의 막막한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렇게 추운 날씨 속에서 한 주를 지냈다. 우선 군대라는 특정집단에의 강요가 나를 강하게 억눌렀으며, 따스한 남쪽 나라에서 자라온 내가, 냉혹한 북방 기후에 맞서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이 나를 억압해 왔다. 그런 두 가지 이유 때문에, 난 적응하..
종교와 초코파이 01년 3월 11일(日) 화창한 날 입대 후, 처음으로 교회에 간 날이다. 어제 우리의 조교인 손병장님께서 “군에서 하는 게 어디 종교 활동이냐? 그저 먹을 것을 먹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라고 말했다. 그건 냉혹한 현실을 보여주는 말이었으며, 종교의 본질성이 훼손된 예였다. 예배를 9시가 좀 넘은 시간에 드렸다. 찬양 시간일 때만 해도, 나도 그랬지만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하지만 설교시간이 다가오자, 아이들의 눈뿐 아니라, 나의 눈까지도 썩은 동태마냥 게슴츠레해졌다. 눈이 스르르 감기며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며 연거푸 인사를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오늘 새벽에 2시간 불침번을 서고 30분을 빨래하고 목욕하였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제야 현식이가 그럴 수밖에 없었..
행복(幸福)이란 것 01년 3월 9일(金) 맑음 인간의 행복, 그건 다분히 상대적인 것이었으며, 주관적인 것이었다. 어제, 그렇게 추운 가운데, 난 삶의 비극을 느꼈지만, 오늘은 햇살이 따뜻하니 삶의 기쁨을 느꼈다. 차라리 오늘보단 어제가 더 여유 있었지만 왜 어젠 비극을 느꼈지만, 오늘은 기쁨을 느끼게 되었을까? 날씨 하나 차이로 사람의 감정이 이와 같이 급변할 수 있는 것일까? 사람이 느끼는 희노애락(喜怒哀樂)은 결코 절대적이지 못하다. 부유한 사람[富者]라고 해서 기쁨만 있을 리 만무하고, 가난한 사람[賤者]이라 해서 슬픔만 있을 리 만무하다. 결코 그저 자기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만이 희락(喜樂)의 기분을 느끼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모두 노애(怒哀)를 느끼는 ..
군생활의 비감(悲感) 01년 3월 8일(木) 어제 좌담회 시간에 ‘이래도 저래도 2년 2개월이니, 잘 보내자’라는 전제를 서로에게 던져주며 자기소개를 하였다. 그 말이 사실임에 인정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선 오로지 회의가 든다. 왜냐하면, 그건 내 자신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과 추운 날씨 때문이다. 비관적인 생각은 육체적 적응으로 많이 익숙해졌다. 그렇긴 해도 정신적인 적응이 아직 안 되었기에 많이 힘이 드는 것이다. 어제부터 오늘까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춥다. 중무장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뼈속까지 파고드는 매서운 칼바람은 우리들의 의지를 약하게 하고, 긍정적인 사고관을 부정적으로 만들기에 부족하지 않다. ‘북방의 매서움이란 이런 거구나’하는 생각이 들기에, 계속 이런 곳에서 ..
금강경 강해 목차 김용옥(金容沃) 서문 서두 들어가는 말서두제1명제: 종교는 신앙이 아니다. 종교는 더더욱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제2명제: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다. 신이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가 될 수가 있다. 방편적 언어 종교는 신학이 아니다제3명제: 종교의 주제는 신이 아니다. 신이 없이도 얼마든지 종교가 될 수가 있다. 제도 속 종교 고정불변의 실체 유일교에로의 해답 『금강경(金剛經)』에 대하여선종의 대표경전으로 착각된 이유6바라밀현장의 신역소명태자두 경전과의 최초의 만남명심포니군주들의 인간적 고뇌기존 주해서 ‘금강’의 의미?콘체가 다이아몬드로 번역한 이유나의 무화 ‘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소승과 무관한 소승개념우월의식과 특권의식의 거부가 대승의 출발무아와 소승금강경은 선이 아니다 주해 제..
4. 금강경은 선이 아니다 올 봄, 초파일의 신록이 우거질 즈음의 일이었다. 나는 우연히 내설악(內雪岳)의 백담(百潭)을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의 회주(會主) 큰스님께서 날 알아보시고 만남을 자청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오실(奧室)로 안내되었다. 법명(法名)이 오현(五鉉)! 아무리 그것을 뜯어 보아도 법명의 냄새가 없었다. 나는 우선 그것부터 여쭈었다. “그건 어릴 적부터의 내 이름입니다. 중이라 할 것이 따로 없으니 그 속명이 바로 내 법명이 된 것이지요.” 낌새가 좀 심상치 않았다. “내가 도올선생을 뵙자고 한 뜻은, …… 아무리 여기 백담에 백칸짜리 가람을 짓는다 한들, 그곳에 인물이 없고 지혜가 없으면 자연만 훼손하는 일이지 뭔 소용이 있겠소?” 오현 스님은 다짜고짜 나에게 이와같은 제안을 ..
3. 무아와 소승 그렇다면, 금강의 지혜 즉 반야란 무엇인가? 그것이 곧 부처의 삼법인(三法印) 중의 가장 궁극적 법인이라 할 수 있는 ‘제법무아(諸法無我)’에 대한 가장 심오하고 가장 보편적인 규정인 것이다. 『금강경』이야말로 ‘무아(無我)’의 가장 원초적 의미를 규정한 대승의 가르침인 것이다. 내가 많은 중생을 제도한다고 하는데 보살의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많은 중생을 제도하는 내가 있지 아니하다고 하는 아상(我相)의 부정, 「금강경』에서 말하는 사상(四相: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의 부정에 곧 그 보살의 원초적이고도 진실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현금 한국의 대부분의 스님은 소승이다. 따라서 한국불교는 소승불교다. 왜냐? 그들은 법당(法堂)에 앉아 있는 스님이고..
2. 우월의식과 특권의식의 거부가 대승의 출발 불교사적으로 ‘소승’이란 주로 ‘부파불교’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고 대승이란 이 부파불교를 근원적으로 비판하고 나온 어떤 혁신적 그룹의 운동을 규정하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소ㆍ대승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이러한 역사적 정황에서 규정된 원래의 의미만을 정확히 맥락적으로 파악하고, 그 파악된 의미를 상황적으로, 유동적으로, 방편적으로 적용해야 할 뿐인 것이다. 우선 우리의 논의를 단축하기 위해서 이러한 역사적 정황을 압축시킨 도식을 하나 제시해보자! 소승(hīnayāna) 阿羅漢(아라한, Arhat) 八正道(팔정도) 대승(mahāyāna) 菩薩(보살, Bodhisattva) 六波羅蜜(육바라밀)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도식적 이해 자체가 불교의 근본교의의 이해..
‘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 1. 소승과 무관한 소승개념 자아! 너무 번쇄(煩瑣)한 학구적 논의를 떠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개념들을 분석해보자! 도대체 소승(小乘, hīnayāna)이란 무엇이냐? 작은 수레다! 그럼 대승(大乘, mahāyāna)이란 무엇이냐? 큰 수레다! 그럼 소승이 좋은 거냐 대승이 좋은 거냐? 요즈음 아파트도 모두 작은 아파트보다 큰 아파트 못 얻어서 야단인데 아무렴 큰 게 좋지 작은 게 좋을까보냐? 큰 수레가 넉넉하고 좋을 게 아니냐? 작은 길 가는 데는 작은 수레가 좋지, 뭔 거추장스런 큰 수레냐?? 사실 ‘히나(hīna)’라는 의미에는 단순히 싸이즈가 작다는 물리적 사실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용렬하고 옹졸하다’는 가치판단의 의미가 들어가 있다. ‘마..
2. 나의 무화 애초에 중국인들이 ‘바즈라’를 ‘금강(金剛)’으로 번역한 것은 바로 이 신들이 휘두르는 무기의 이미지에서 온 것이다. 그것은 오늘날의 ‘다이아몬드’가 아닌, ‘가장 강한 쇠’(금중최강金中最剛)라는 의미로 쓴 것이며, 대강 철제(鐵製), 동제(銅製)의 방망이었다. 그것이 바로 ‘금강저(金剛杵)’였고, 이 금강저의 위력은 특히 밀교(密敎)에서 중시되었던 것이다. 현장(玄奘)이나 의정(義淨)은 ‘능단금강반야(能斷金剛般若)’라는 표현을 썼고, 급다(笈多)는 ‘금강능단반야(金剛能斷般若)’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는 ‘무엇이든지 능히 자를 수 있는 금강과도 같은 지혜’라는 뜻이지만, 돈황(敦煌)의 동남(東南)의 천불동(千佛洞)사원에서 발견된 코오탄어표의 『금강경』은 ‘금강과도 같이 단단한 업(業)과 ..
‘금강’의 의미? 1. 콘체가 다이아몬드로 번역한 이유 20세기 구미(歐美) 반야경전학의 최고 권위라 할 수 있는 에드워드 콘체(Edward Conze, 1904~1979, 영국에서 출생한 독일인. 맑시즘과 부디즘의 대가)는 『금강경』을 ‘The Diamond Sutra’로 번역하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금강(金剛)’과 ‘다이아몬드"를 일치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오역(誤譯)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물론 콘체 선생이 이것이 오역인 것을 모르고 그렇게 번역하신 것은 아니다. 우리가 흔히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 광물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보편적인 보석으로서 자리잡게 된 것은 대강 19세기 중엽 이후, 즉 1867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오렌지강(江) 상류지역에서..
8. 기존 주해서 『금강경언해』는 소명태자가 분절한 라집한역본(羅什漢譯本)과 육조(六祖) 혜능(慧能)의 『구결(口訣)』이 실려있고 이 양자의 국역이 다 실려 있어, 나는 그 판본과 국역을 다 참조하였다. 불행하게도 세조언해본 『금강경』 판본은 아주 후대에 성립한 열악한 판본이며 우리 해인사본과는 출입(出入)이 크다. 연세대학교 국문과 박사과정에 있는 장경준군(張景俊君, 도올서원 제12림 재생)이 『금강경언해』를 내가 활용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타이프치고 고어(古語)를 현대말로 옮겨주었다. 이 자리를 빌어 그 공로에 감사한다. 내가 『금강경』을 번역함에 있어 우리 옛말의 아름다운 표현이 참조될 부분이 있을 때는 그것을 살리도록 노력하겠다. 내가 참고로 한 판본은 홍문각(弘文閣) 영인본 『금강경언해(金剛..
7. 군주들의 인간적 고뇌 『금강경』은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천하의 명주보다도 더 사람을 취하게 만든다. 소명태자(昭明太子)가 이에 취해 그 유명한 분절(分節)을 창조했다면, 나는 우리나라 역사에서 이 금강경』의 향기에 취했던 자로서, 두 얼굴의 사나이, 총명과 예지로 번뜩이는가 하면 탐욕과 음험한 살육의 화신인 사나이, 경세치용의 명군인가 하면 조선의 역사를 부도덕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사나이, 수양대군(首陽大君) 세조(世祖)를 서슴치 않고 들겠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의 초기의 사상적 형세는 실로 불교와 유교라는 양대(兩大) 의식형태의 충돌로 특징지워진다. 조선왕조가, 교과서에 나오듯이 1392년 7월 17일 무장(武將) 이성계(李成桂)가 왕(王)으로 추대되는 사건으로 성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
6. 명심포니 회고컨대, 푸릇푸릇한 청춘의 시기에, 지적인 갈구에 영혼의 불길이 세차게 작열하고 있었던 그 시기에 내가 『반야심경』을 포(褒)하고, 『금강경』을 폄(貶)한 것은 실로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금강경』과 『반야심경』은 그 성립시기가 약 3세기 정도(정확한 시기를 추정키는 어렵지만)의 세월을 격한다. 비록 『반야심경』은 『금강경』에 비해 분량이 극소한 것이지만, 그 내용은 『금강경』보다 훨씬 더 복잡한 개념과 논리적 결구로 이루어져 있다. 『금강경』은 원시불교의 아주 소박한 수뜨라의 형태, 즉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하여 ‘환희봉행(歡喜奉行)’으로 끝나는 전형적인, 소박한 붓다설법의 기술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야심경』은 성격이 전혀 다르다. 『반야심경』은 이미 이러..
5. 두 경전과의 최초 만남 나의 생애에서 이 지혜의 서를 처음 접한 것은, 1960년대 내가 당시로서는 폐찰이 되다시피 쇠락하였던 고찰, 천안의 광덕면에 자리잡고 있는 광덕사(廣德寺)에서 승려생활을 하고 있던 시절이었다. 계통을 밟아 정식 출가를 한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 깎고 승복 입고 염불을 외우며 승려와 구분 없이 지냈으니 출가인(出家人)과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구멍 숭숭 뚫린 판잣대기로 이어붙인 시원한 똥간에 앉아 있는데, 밑 닦으라고 꾸겨놓은 휴지쪽 한 장에 『반야바라밀다심경(般若波羅蜜多心經)』이 현토를 달아 뜻이 통하도록 해석되어 있는 글이 적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랫도리에 힘을 주는 일도 잊고 꾸부린 가랭이가 완전히 마비되도록 하염없이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랫도리에 힘을..
4. 소명태자 『금강경』의 경우, 한역본으로 우리는 보통 다음의 6종을 꼽는다. 이를 시대적으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후진(後秦) 구마라집(鳩摩羅什, Kumārajīva)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402년 성립. 2. 북위(北魏) 보데류지(菩提流支, Bodhiruci)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09년 성립. 3. 진(陳) 진체(眞諦, Paramārtha) 역(譯),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62년 성립. 4. 수(隋) 급다(笈多, Dharmagupta) 역譯, 『금강능단반야바라밀경(金剛能斷般若波羅蜜經)』(일권一卷), 590년 성립. 5. 당(唐) 현장(玄奘) 역(譯), 『대반야바라밀다경(大般若波羅蜜..
3. 현장의 신역 다음으로 내가 ‘논리적 이유’라 말한 뜻은 무엇인가? 논리적 이유라 함은, 비록 『금강경』의 성립과 선종(禪宗)의 성립 사이에 5ㆍ6세기의 시간이 가로놓여 있지만, 그리고 선종의 불립문자적 정신으로 볼 때, 『금강경』은 부정되어야 할 문자로 이루어진 초기경전임에도 불구하고, 바로 선종이 ‘불립문자(不立文字)ㆍ직지인심(直指人心)ㆍ견성성불(見性成佛)’등의 말을 통하여 표방하고자 하는 모든 논리적 가능성이, 아니, 정확하게는 논리 이전의 가능성이, 이미 『금강경』이라는 대승불교의 초기경전 속에 모두 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금강경』이라는 대승교학의 바이블은 비록 그것이 교학불교의 남상(濫觴)을 이루는 원천적인 권위경전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선(禪)이요, 가..
2. 6바라밀 그런데 또 많은 사람들이 ‘반야경’이라는 말을 어떤 단일한 책의 이름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반야경이란 단권의 책이 아니요, 반야사상을 표방하는 일군(一群)의 책들에 붙여지는 일반명사인 것이다. 반야경이라는 카테고리에 들어오는 책들은 한두 권이 아니다(한역漢譯된 것만도 42종). 그런데 반야사상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반야(prajñā)라는 것을 공통으로 표방하는, 기독교의 『신약성경』이 쓰여지기 시작한 1세기, 같은 시기에, 초기 불교승단에서 불꽃같이 타오른 새로운 운동을 말하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하면, 반야사상의 성립, 즉 반야경의 성립이 곧 대승불교의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출발과 대승불교의 출발은 거의 같은 시기에 같은 언어문자권(희랍어-산스크리트어) 내에서, 아주 비슷한..
『금강경(金剛經)』에 대하여 1. 선종의 대표경전으로 착각된 역사적 이유 조선의 불교는 『금강경(金剛經)』을 적통으로 한다라고 말해도 과히 틀린 말이 아니다. 『대장경(大藏經)』이라고 하는 거대한 바구니 속에 삼장(三藏)의 호한(浩瀚)한 경전이 즐비하지만, 우리 민중이 실제로 불교를 생각할 때 가장 많이 독송하고 암송하고 낭송하고 인용하는 소의경전을 꼽으라 하면 그 첫째로 『반야심경(般若心經)』이 꼽히고, 그 둘째로 『금강경』이 꼽힌다. 우리나라 불교, 특히 우리에게서 가까운 조선왕조시대의 불교사, 그리고 오늘날의 한국불교를 이야기하면 임제(臨濟) 류의 선(禪)을 적통으로 하는 선종(禪宗)중심의 역사이고 보면, 선종에서 거의 유일하게 소의경전으로 삼는 것이 『금강경」이므로,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이야말..
‘진아(盡我)’ 정신으로 본 「양사룡전(梁四龍傳)」의 입전의식 김형술 전주대학교 한문교육과 교수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 간개 Ⅲ.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상의 특징 1. 철학적 의론을 제시한 도입부 2. 중복 구성을 통한 주제의 심화와 특징적 인간상의 강조 3. 다양한 삽화를 활용한 주제의 확장 흔동 / 남만국 / 홍춘반 Ⅳ. 서귀 이기발의 의리 정신과 「양사룡전」의 입전 의식 1. 의리 정신의 표출양상 2. 진아의식 3. 진아한 인물들 Ⅴ. 맺음말 인용 목차 원문 자료적 가치
Ⅴ. 맺음말 이상에서 본고는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상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것을 저자의 의리론과 견주어 봄으로써 「양사룡전」의 입전의식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상 고찰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사룡전」은 일반적인 효자전과 비교했을 때 2,703자나 되는 긴 분량으로 서술되어 있다. 둘째, 「양사룡전」의 도입부에는 하늘과 인간 사이의 정당한 관계 정립에 대한 철학적 의론이 제시되어 있다. 이 철학적 의론은 일반적인 효자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작품 전체를 통관하면서 서사를 이끌고, 주제를 형성해간다. 곧 도입부의 의론은 저자가 자신의 사유를 입전인물을 통 해 입증해가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셋째, 「양사룡전」은 전주사람으로부터 들은 내용[본사1]과 자신이 직접 만나 대화한 내용[..
3. 진아한 인물들 「양사룡전」에 등장하는 양흔동, 홍춘반 또한 각자의 방식으로 ‘진아(盡我)’한 인물들이다. 이처럼 「양사룡전」을 저술한 기저에는 서귀의 의리 정신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양사룡전」은 그저 효의 가치를 계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아(盡我)’의 실천자들을 입전하여 ‘진아(盡我)’의 가치를 확산하고자 한 작품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면모는 서귀가 쓴 두 편의 전 가운데 하나인 「송경운전(宋慶雲傳)」에서도 확인된다. 늘 손님이 오면 경운은 비록 손에 잡은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서둘러 그만두 고 비파를 가져오면서 “소인은 천한 사람인데 귀하를 자주 뵐 수 있는 것은 그 공이 소인 수중에 있는 이것에 있어서 그런 것이니 소인이 어찌 감히 천천히 손을 댈 수 있으며..
2. 진아의식 마지막은 본고에서 제시한 ‘진아(盡我)’이다. ‘진아’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다음 글에서 확인된다. 대저 더없이 미약한 사람으로서 더없이 높고 두터운 하늘, 땅과 그 덕을 합하는 것은 성인이라도 어렵지 않겠는가?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 사시(四時)를 차례대로 따르게 하고 음양을 법도대로 조절하는 것은 훌륭한 재상이라도 어렵지 않겠는가? …(중략)… 일시의 절개로 만고의 강상(綱常)을 부지하는 것은 의로운 선비라도 어렵지 않겠는가? 비록 그러하나 이것은 모두 나에게 있어 내가 진실로 내게 있는 것을 다 한다면 나는 반드시 그 어려움을 어렵다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 가운데 공자가 계시고, 훌륭한 재상 가운데 주공(周公)이 계시고, 훌륭한 장군 가운데 방숙(方叔)이 있고, 효자..
Ⅳ. 서귀 이기발의 의리 정신과 「양사룡전」의 입전 의식 1. 의리 정신의 표출양상 서귀 이기발은 서두에 잠깐 언급하였듯, 철저한 대명의리론자였다. 이기 발이 의리를 앞세워 평생 동안 고집스러울 만큼 출사를 거부한 것은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를 청나라가 멸망시켰는데 원수에게 복수는 못할망정 청 나라의 배신(陪臣) 노릇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의식 때문이었다【그러나 명이라는 대상은 이기발의 의리 정신에 있어 우연적 대상에 불과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이 의리요, 보은은 못할망정 배신을 한다는 것은 지극한 불의가 되니 차마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이기발은 그것이 부당한 것이라면 비록 성현의 일이라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 강변하..
Ⅴ. 맺음말 이상에서 본고는 「양사룡전」의 구성과 내용상의 특징을 파악하고, 그것을 저자의 의리론과 견주어 봄으로써 「양사룡전」의 입전의식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상 고찰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양사룡전」은 일반적인 효자전과 비교했을 때 2,703자나 되는 긴 분량으로 서술되어 있다. 둘째, 「양사룡전」의 도입부에는 하늘과 인간 사이의 정당한 관계 정립에 대한 철학적 의론이 제시되어 있다. 이 철학적 의론은 일반적인 효자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으로 작품 전체를 통관하면서 서사를 이끌고, 주제를 형성해간다. 곧 도입부의 의론은 저자가 자신의 사유를 입전인물을 통해 입증해가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셋째, 「양사룡전」은 전주사람으로부터 들은 내용[본사1]과 자신이 직접 만나 대화한 내용[본..
Ⅳ. 서귀 이기발의 의리 정신과 「양사룡전」의 입전 의식 의리 정신의 표출양상 서귀 이기발은 서두에 잠깐 언급하였듯, 철저한 대명의리론자였다. 이기 발이 의리를 앞세워 평생 동안 고집스러울 만큼 출사를 거부한 것은 조선을 도와준 명나라를 청나라가 멸망시켰는데 원수에게 복수는 못할망정 청 나라의 배신(陪臣) 노릇은 절대 할 수 없다는 의식 때문이었다【그러나 명이라는 대상은 이기발의 의리 정신에 있어 우연적 대상에 불과하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은혜를 입었다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헌신해야 하는 것이 의리요, 보은은 못할망정 배신을 한다는 것은 지극한 불의가 되니 차마 그런 일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이기발은 그것이 부당한 것이라면 비록 성현의 일이라도 취하지 않을 것이라 강변하기도 ..
3. 다양한 삽화를 활용한 주제의 확장 흔동 삽화 「양사룡전」은 양사룡전의 효행과 선행에 더해 여러 삽화를 추가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결부된 삽화로는 양사룡의 부친인 양흔동의 주인 섬김 이야기, 양사룡이 자식을 잃은 서귀를 위로하기 위해 해준 남만국 이야기, 그리고 작품 말미에 붙인 춘반의 효행 이야기가 있다. 이러한 점 또한 일반 효자전에 서는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이에 삽화가 지닌 의미와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부친 양흔동의 이야기는 양사룡이 양친계를 조직하여 노모를 봉양한 행 위를 말한 뒤, 그때의 심경을 서귀에게 말한 대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 다. 양사룡은 부친이 돌아가신 뒤 부친에 대한 자신의 그리움이 시간이 지날수록 소홀해짐을 느꼈다. 그러면서 모친이 이번에 돌아가셨다면 역시나..
2. 중복 구성을 통한 주제의 심화와 특징적 인간상의 강조 「양사룡전」의 본사1은 전주사람이 전하는 이야기를 소개한 내용이고 본사2는 서귀가 양사룡을 직접 만나 대화한 내용이다. 그런 까닭에 「양사룡전」은 양사룡의 효행과 선행에 관한 내용이 본사1과 본사2에 중복되어 제시된다. 비슷한 내용을 중복하여 기술하는 것은 서사 전개에 있어 다소 효율적이지 못한 구성이다. 그렇다면 서귀는 무슨 이유로 이러한 구성방식을 택한 것일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부분을 살피기로 한다. 그 모친의 나이가 70여 세였는데 갑신년(1644) 가을 그 모친이 병에 들어 거의 소생할 수 없을 듯하였다. 그 사람은 밤낮으로 하늘에 기도를 드렸는데 피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이시여! 우리 어머니의 병이 심해 살아날 가망이 없으니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