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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9장 낭송문화와 복음서 - 성서의 디컨스트럭션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9장 낭송문화와 복음서 - 성서의 디컨스트럭션

건방진방랑자 2022. 3. 3. 0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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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디컨스트럭션

 

 

가톨릭신학계만 하더라도, 확고한 전통교설이었던 교황의 무오류성(Infallibility)을 인정하지 않는 한스 큉(Hans Küng, 1928~2021)이나 그보다는 보다 온건한 칼 라너(Karl Rahner, 1904~84)와 같은 신학자를 무조건 이단자로 휘몰지는 않는다. 교황의 무오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면 당연히 복음에 대한 복음서 저자의 무오류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교회의 전승과 하나님의 말씀을 혼동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퀑은 복음의 우선권이 인간문화의 소산인 성서의 우선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복음과 성서는 구별되어야 한다. 복음의 절대적 규범은 성서 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일뿐이며, 성서 자체와 복음이 동일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위하여 성서는 항상 해체될 수 있고 또 해체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복음을 컨스트럭트하기 위해서는 성서를 디컨스트럭트해야 하는 것이다. 복음의 핵심과 성서를 구별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나 도올은 말한다. 그것은 곧 예수님의 말씀 그 자체로 우리의 실존 그 알몸으로 뛰어들어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해후하기 위해서는, 그 말씀을 드러내기 위하여 동원한 모든 언어적 표현에 우리는 기만당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서의 핵심은 예수님의 말씀에 있다. 그 말씀을 맥락지운 내러티브적 콘텍스트나 드라마적 구성에 있지 아니 한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만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언어를 계속 초월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는 성서는 인간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어를 통하여 끊임없이 언어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성령과 해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복음서의 언어의 대강은 케리그마(kerygma, κρυγμα)라는 양식으로 구성된 것이다. 그 양식을 우리는 양식으로서 이해하는 동시에 그 양식을 초월해야 하는 것이다. 그 양식을 버리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양식을 초월할 수가 없다. 버리기 위해서는 이해해야 한다.

 

성서는 모든 건전한 텍스트비평의 지평 위에서 합리적으로 토론되어야 하며, 그러한 토론 속에서만 복음의 핵심은 드러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역사적으로 축적된 교회의 도그마 속에서는 발견될 수가 없다. 오로지 인간의 경험과 그 경험의 심연에서 나오는 질문 속에서 직접 해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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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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