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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9장 낭송문화와 복음서 - 부록: 바알과 야훼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9장 낭송문화와 복음서 - 부록: 바알과 야훼

건방진방랑자 2022. 3. 3. 0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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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바알과 야훼

 

 

이것이 바로 바알(Baal) 신이다. 라스샴라(Ras-Shamra)에 있는 바알 신전의 BC 14세기 스텔레 부조이다. 왼손에 잡고있는 나무는 비옥한 초생달 지대의 주목인 삼나무인데 성서에는 백향목으로 나온다. 예루살렘 성전도 이 나무로 지었다. 그 끝은 창모양으로 되어 있어 전투적 성격도 있다. 오른손에 치켜든 것은 인도의 인드라신이 들고 있는 금강저와 같은 벼락방망이이다. 바알이나 제우스나 인드라나 모두 벼락의 신이며, 구름을 타고 다니며 풍우기상을 지배하기 때문에 다산성 (fertility)의 상징이며, 사랑과 풍요의 신이다. 바알은 가나안의 토착 신이며 셈족어로 주인’ ‘남편’ ‘주님의 뜻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로는 야훼보다는 이 바알을 섬기기를 좋아했다. 바알은 이집트의 오시리스와 동일시되기도 했다. 바알은 농경문화와 더 밀접히 관련있고 인간적이었고 질투심이 없었으며 너그러운 사랑의 신이었기 때문에 거부감이 없었다.

 

구약의 집요한 테마는 이 바알신앙의 어필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바알이 있었기에 야훼가 의미 있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스라엘 농민들에게 야훼신앙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바알의 기상콘트롤 능력을 야훼 자신이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알은 자연의 신이었고 야훼는 초자연의 신이었다. 그러나 야훼신앙 속에도 바알신앙적 요소가 깊게 침투해 들어갔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야훼 유일신앙은 이러한 다이내믹한 신들과의 투쟁구조 속에만 의미를 갖는 매우 복합적인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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