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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와 작가와의 관계 『소화시평』 권상 99번에선 ‘문장을 지음으로 도를 깨쳤다[因文悟道]’라는 말이 반복해서 나온다. 이런 얘기를 하려고 하면 조선시대의 문장관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성리학이 송나라 시대에 발흥한 이후로 문장은 도를 싣는 도구여야 했다. 그래서 ‘글은 도를 실어야 한다[文以載道]’는 논의와 덧붙여 ‘도가 근본이고 글은 말단이다[道本文末]’와 같은 문학논쟁이 불붙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에 대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찌 되었든 글을 통해 도를 전해주고, 그 글을 읽으면서 도를 깨쳐야 한다는 기본 정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조선시대의 문장론을 현대에 적용해보면 전혀 어색한 말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글이란 어찌 되었든 저자의 생각이 녹아들어 있게 마련..
정철의 자기 인식과 자유 我非成閔卽狂生 나는 성혼이나 민순은 아니고 곧 미치광이로 半世風塵醉得名 반백년 풍진 맞으며 취하여 명성을 얻었다네. 欲向新知道姓字 새로이 알게 된 이를 향해 성과 자를 말하려 하니, 靑山獻笑白鷗輕 청산은 비웃고 흰 기러기 무시하네. 『소화시평』 권상 98번에 소개된 「주중사객(舟中謝客)」라는 시는 정철의 후손이 문집에 그때의 상황을 기록해둔 덕에 왜 이런 시가 나오게 됐는지, 그리고 왜 사죄하게 됐는지 그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다. 자신을 그 당시에 유명하면서도 명망 있는 사람으로 착각한 데에 대해 ‘저는 그럴 만한 인물은 못 됩니다.’라고 사죄하며 시를 지은 것이다. 여기까지야 뭐 어려울 게 없었기 때문에 쉽게 이해가 됐지만, 3구와 4구에선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인지 도무지 이..
송강 정철과 팰컨 헤비 『소화시평』 권상 98번의 주인공은 송강 정철이다. 송강 정철은 「사미인곡(思美人曲)」ㆍ「속미인곡(續美人曲)」으로 대표되는 가사문학을 활짝 열어젖힌 인물로 한문학계에서보다 국문학계에서 더 비중이 있는 인물이자 정여립의 역모사건을 처참하게 처리한 인물이기도 하다. 정철에 대해 알게 된 건 권필과 이안눌이란 제자 때문이었다. 둘 다 정철이 죽은 이후에 그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이안눌은 달이 뜬 밤, 용산에서 기녀가 「사미인곡」을 부르는 것을 들으며 ‘오직 우리 선생을 알아주는 이는 기녀뿐이로구나.’라는 깊은 탄식을 시에 담았다. 권필은 낙엽지고 비 부슬부슬 내리는 날 스승의 무덤가를 지난다. 그때 스승이 지은 「장진주사將進酒辭」를 떠올리며 시를 지었다. 두 명의 제자를 통해 회상되..
고경명의 백마강 시에 은근히 드러난 정서 病起因人作遠遊 벗 때문에 병석에서 일어나 먼 여행을 떠났더니, 東風吹夢送歸舟 봄바람 꿈결에 불어 돌아가는 배를 전송하네. 山川鬱鬱前朝恨 산천은 짙푸르니 전 왕조의 한인 듯, 城郭蕭蕭半月愁 성곽은 쓸쓸하니 반달도 시름겨워하는 듯. 當日落花餘翠壁 그 날 당시의 낙화는 푸른 석벽에 남아 있고, 至今巢燕繞紅樓 지금도 둥지의 제비는 붉은 누각을 맴도네. 傍人莫問溫家事 벗이여 온조왕 옛 일은 묻지 마시라. 弔古傷春易白頭 옛날을 조문하고 봄을 애달파하면 쉬 백발이 될 테니. 『소화시평』 권상 97번에 두 번째로 나온 시는 고경명의 시다. 1~2구까진 자신이 어떻게 백마강까지 오게 됐는지를 표현했다. 병으로 시달리던 때 친구의 방문으로 백마강 답사가 실현되었고 마치 꿈처럼 어느..
백마강을 보며 울분에 찬 정사룡 시 『소화시평』 권상 97번은 정사룡과 고경명은 시를 통해 백제 멸망의 스산함을 간직한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그 감회를 담아내고 있다. 이런 식으로 시를 통해 역사를 서술해나가는 것을 영사시(詠史詩)라고 하며 그 대표작으론 이규보의 「동명왕편(東明王篇)」이 있다. 나 또한 단재학교에 신입교사로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겨울방학을 맞이했고 3명의 아이들과 부여여행을 떠났었다. 첫째 날엔 정림사지와 부여박물관을 돌아보며 백제의 역사를 곱씹었고 찜질방에서 하루를 묵은 후에 둘째 날엔 부소산성과 백마강 일대를 둘러보며 백제의 최후를 간접 경험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정사룡의 시나 고경명의 시에서 느껴지는 가슴 절절한 아픔은 없었다. 우리에겐 이미 너무 머나먼, 그래서 ..
당시와 강서시, 그리고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 『소화시평』 권상 97번은 백마강을 둘러보며 백제의 멸망을 바라본 두 학자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강서시파의 시를 봐야하기 때문에 강서시파의 면모를 좀 더 살펴봐야 한다. 호소지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중국에서 최대한 다듬은 시구를 구사했던 송시(宋詩)의 계열인 황정견과 진사도를 위시한 강서파의 조선 버전이다. 지금은 ‘버전’과 같은 영어식의 표현을 쓰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이 당시엔 조선을 나타내는 ‘해동(海東)’이란 말을 덧붙여 ‘해동강서시파’라고 불렸다. 해동강서시파의 멤버를 보자면 거두인 눌재 박상이 있는데 그가 쓴 글이 얼마나 난해한지는 소화시평 권상 73번에서 여실히 보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호음 정사룡, 소재 노수신, 지천 ..
이달과 고경명의 인연 『소화시평』 권상 96번에서 완전히 해석이 틀린 부분이 있었다. 양경우의 맨 마지막 말이 끝나는 부분에 대한 해석이 그것이다. 여기에서의 원문은 ‘익견기장자야(益見其長者也)’이다. 난 별로 생각하지 않고 ‘고경명 어르신이 이달을 자기의 오른편에 두었으니, 고경명 어른이야말로 이달의 장점을 본 사람이라 할 수 있으리라.’라고 해석했다. 이렇게 해석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았고, 이달을 살뜰히 챙기는 고경명 어르신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녹아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형술 교수님은 그렇게 봐선 안 된다고 말해줬다. 益見其長者也 더욱 그 장점을 본 사람이다. 더욱 그가 어른 됨을 볼 수 있다 ‘장점을 봤다’라고 하면 ‘그저 좋은 점을 인정해줬다’는 얘기가 될 테지만, ‘고..
공부에 열중한 홍만종 『소화시평』 권상 96번은 홍만종이 말하는 부분을 제외하면 이미 양경우의 문집에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이걸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책이 귀하던 그 시절에 홍만종은 여러 사람의 문집을 찾아 동분서주했고 그런 문집들을 읽다가 자신이 언제가 활용하고 싶은 구절이 나오면 그대로 발췌했을 거라는 사실이다. 양경우의 문집과 이 글의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데서 열나게 베끼고 있는 홍만종의 모습이 그려진다. 열나게 베끼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으면 단연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청나라를 여행하던 도중 한 곳에 들어갔고 그곳에 액자로 걸려 있는 내용이 너무도 재기발랄하여 저녁에 정진사와 함께 찾아 반을 나누어 베꼈던 장면이 떠오른다. 바로 이 글이 지금 봐도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엄청..
경험을 해야 더 맛깔나는 한시들 ‘책 너머의 지식과 학교 너머의 공부’라는 것이 무언지는 『소화시평』 권상 94번에 명확히 드러나 있다. 홍만종도 책을 통해서 시를 익혔던 사람이라 시에서 피상적으로 느껴지는 것들은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이런 경우도 있는 거겠지’라고 갸우뚱하며 넘어갔나 보다. 굳이 홍만종이 아니더라도 현대인처럼 지식을 책을 통해서만 쌓는 사람이라면 이와 같은 경험은 수도 없이 했을 것이다. 학교에서 수없이 배웠던 여러 과목들은 분명히 경험이 무르익어 생성된 것임에도 우리의 경험은 완전히 배제된 ‘앙꼬 없는 찐빵’으로써의 지식만을 무작정 암기하고 익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배우면 배울수록 삶은 배움과 철저하게 괴리되어 갔던 것이다. 뭔가를 많이 아는 것 같은데 막상 현실에선 적용도 ..
책 너머의 지식, 학교 너머의 배움 한참 임용을 준비하다가 결국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단재학교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6년을 지지고 볶고 하면서 그 전까지만 해도 전혀 갖지 못했던 생각들을 하게 됐는데, 그건 예전엔 미처 하지 못했던 경험들을 하게 되었고 전혀 생소한 인연들과 엮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 밖에 길이 있다’라던지, ‘교실이란 공간 밖에 배움이 있다’라던지 하는 말들을 해왔던 것인데, 여기서 말하고자 했던 얘기는 텍스트에 사로잡혀서도, 공간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린 무의식적으로 ‘지식은 책 속에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책을 읽으라고 강권하고 다른 건 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책을 읽는다고 하면 그 누구보다도 좋아하며, 잠을 잘 때에도 부모가 책을 읽어주면 ‘..
권벽과 권필의 한시 중 어느 게 더 좋나? 『소화시평』 권상 92에서 이안눌은 권벽과 권필 부자와 가까웠기 때문에 그들의 시를 놓고 비교를 한다. 우선 비교를 하려면 같은 느낌으로 쓰여진 시를 선별해야 한다. 두 사람의 상황은 달랐고 시적 재능도 완전히 달랐으니, 다른 작품을 놓고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안눌은 ‘중국 사신을 전별하는 시’가 두 사람 모두에게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쓴 사신 전별시를 골랐고 그걸 통해 우열을 가리기로 했다. 一曲驪駒正咽聲 한 곡조의 이별곡은 바로 오열하는 소리 朔雲晴雪滿前程 변방의 구름과 쌓인 눈이 앞길에 가득하구나. 不知後會期何地 훗날 기약 어디일지 알지 못하니, 只是相思隔此生 그저 그리움만 지닌 채 이 생은 떨어져 있으리. 梅發京華春信早 매화 피어 서울에..
권필과의 추억과 그의 친구 이안눌 『소화시평』 권상 92에 나오는 권필은 나와 묘한 인연이 있다. 나는 2007학년도 임용고시부터 시험을 봤었다. 그 당시 목표는 ‘졸업과 동시에 임용합격’이란 꿈을 꾸고 있던 때라 그 전 해에 실시된 임용 기출문제를 공부하던 중이었다. 14번 문제를 보는데 아무리 봐도 괄호 안에 어떤 말을 써넣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는 거다. 이 문제를 풀면서 ‘임용고사가 정말 어렵긴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긴 그 해에 광주에선 과락(32점)만 넘으면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문교과만 6명을 뽑는 시험에서 5명만 합격하는 사태가 발생했으니 말이다. 그건 그만큼 문제의 난이도가 어려웠다는 걸 반증한다고 할 수 있다. 괄호 안에 들어갈 정답은 바로 ‘궁류..
우리 고유어로 쓴 시는 아름답다 『소화시평』 권상 90번을 보면 문화사대주의에 쪄들었다고 핀잔을 줄 지도 모르지만, 그 당시엔 상식과도 같은 말이었다. 하긴 지금이라 해서 무작정 ‘한글전용’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어느 곳이든 지나가다 보면 영어로 된 간판이나, 영어를 한글로 표기한 간판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수많은 차들의 이름은 한글이 아닌 영어로 지어지고 버젓이 써 있으니 말이다. 그 당시엔 한문이 국제사회의 언어로 맹위를 떨쳤다면 지금은 영어가 그 지위를 이어받은 모양새고, 이 글에서 나오는 것 같은 논조들이 지금도 영어로 대체되어 횡행하고 있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정권 당시엔 영어공용화 논쟁까지 불붙으며 어륀지 파문까지 일었겠는가. 그건 단순히 파문 문제로 끝난 게 아..
도문대작을 어떻게 해석할까? 夢賚元將水月隣 몽뢰는 원래 수월정을 거느리고 인접하여 兩翁分占一江春 두 노인이 한 강의 봄을 나누어 차지했다네. 東家樂作西家聽 동쪽 정자에서 음악을 지으면 서쪽 정자에서 들으니, 絶勝屠門大嚼人 상상하는 사람보다 훨씬 낫구나. 『소화시평』 권상 89번에 두 번째 소개된 시의 4구(絶勝屠門大嚼人)가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았다. 1~3구까지 명료하게 이해가 된다. 두 정자가 바로 옆에 있고 한 군데서 음악을 연주하면 바로 옆 정자까지 음악이 퍼지고, 함께 봄날의 경치를 누리게 된다는 뜻이니 말이다. 아주 평화로운 기색이 넘실거린다. 그런데 왜 갑자기 ‘도문대작인(屠門大嚼人)’이라는 걸까? ‘도문대작(屠門大嚼)’이란 말은 허균의 작품명을 통해 알게 됐다. 그리고 이게 전거가 있는 단어..
사제(賜祭)를 드리며 조정을 찬양한 정유길의 시 『소화시평』 권상 89번에 처음에 소개된 시가 바로 이런 유형의 시다. 조정에 아부하기 위해 자신의 나태함을 나타낸다던지, 아예 조정이 없는 모습을 표현한다던지하는 두 가지 방식 외에 정유길의 이번 시는 또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聖朝枯骨亦沾恩 성스런 조정이라서 마른 뼈가 또한 은혜를 입고, 香火年年降塞門 향불 해마다 변방에 내리네. 祭罷上壇風雨定 제사 마친 제단에 오르니 바람과 비는 멎고 白雲如海滿前村 흰 구름은 바다처럼 앞마을에 가득 찼구나. 그건 1구에서부터 아주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성스런 조정이라서 마른 뼈가 또한 은혜를 입고[聖朝枯骨亦沾恩]’라고 아예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첫 구절만 읽어도 이 시가 지향하는 바는 어렵지 않게 ..
조정에 한시로 아부하는 방식 관료로서 조정을 찬양하는 방식의 시는 여러 편을 봤었다. 권상 34번에 나오는 곽예는 시에서는 하릴없이 공무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칫 잘못하면 ‘나태한 관리의 전형’으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한가로이 근무하며 천상의 음악을 듣는다는 표현을 통해 이 시대가 태평성대의 시대이며 조정의 정치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동양 사회에 이런 식의 태평성대에 대한 찬양이 생긴 것은 태평성세의 전범으로 삼는 요순시대의 「격양가(擊壤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日出而作 日入而息 해가 뜨면 일하고, 해가 지면 쉰다네. 鑿井而飮 耕田而食 우물을 파마시며 밭 갈아 먹으니, 帝力何有於我哉 임금의 정치가 어찌 나에게 영향을 미치겠는가 이 시는 얼핏 보면 무정부상태를 칭송하..
퇴계 선생의 선비화 시가 불편한 사람들 앞선 후기에서 ‘공부란 여러 자료를 참고하며 제대로 알고자 하는 노력이다’라고 했듯이 『소화시평』 권상 88번도 다양한 측면에서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지만 퇴계의 시에서 스님의 말을 어느 부분까지 볼 것인지도 명확해진다. 이 얘기를 하기 전에 잠시 살펴보고 가야 할 게 있다. 영주 부석사의 어느 암자 처마 아래엔 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건 예로부터 의상대사가 좌선을 하기 위해 꽂아둔 석장이 어느새 뿌리가 내리더니 무럭무럭 자라나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나무다. 바로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흘러오는 얘기이고 그런 기이한 이야기에 감동한 퇴계는 시까지 지으며 뒷받침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퇴계야말로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유학자 ..
신이한 이야기를 대하는 태도 『소화시평』 권상 88번의 글을 처음에 읽었을 땐 신이한 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종교계열의 이야기엔 상식으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과학적인 지식으론, 일상적인 이해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천지창조 이야기랄지, 홍해가 갈라진 이야기랄지, 단군의 이야기랄지 하는 것들이 그렇다. 그래서 예전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저 종교의 영역으로만 받아들여 도무지 이해는 안 되지만 무작정 수긍해야 한다거나, ‘어디서 그런 뻥카를’이란 생각으로 거부하려고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옛 이야기를 읽고 옛 이야기의 대가인 김환희 선생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무작정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무작정 배척해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거기엔 융이 말했던 ‘집단..
한시로 ‘멋지게 나이듦’에 대해 말해준 이황 性癖常貪靜 形羸實怕寒 천성은 항상 고요함을 탐하나 형체는 삐쩍 말라 실제론 추위를 두려워하네. 松風關院聽 梅雪擁爐看 솔바람 빗장 건 채 듣고 눈 속 매화는 화로 낀 채 보다보니, 世味衰年別 人生末路難 세상의 맛은 늘그막에 각별하지만 인생은 말년이 어렵다지. 悟來成一笑 曾是夢槐安 깨닫고서 한바탕 웃고 말았으니, 이전엔 괴안을 꿈꾸었기 때문이라네. 나야 사단칠정 논쟁을 폄하할 생각은 없었지만 고정관념적으로 이황 선생에 대해 되게 교조적이고 경직된 인간으로 보고 있었나 보다. 그래서 웬만하면 퇴계의 글은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번에 『소화시평』 권상 87번에 이황의 시가 실려 있었기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다. 그런데 솔직히 이 시를 보고나선 깜짝 놀랐다. 매우 인..
사단칠정론과 고정관념 『소화시평』 권상 87번의 주인공은 1000원짜리 지폐의 주인공을 장식한 이황 선생이다. 이황하면 기대승과의 사단칠정 논쟁을 했다는 사실만이 깊이 남아 있다. 대부분의 논쟁들이 그렇지만 그 당시엔 치열하게 싸워야 할 이유가 분명히 있었고 그걸 관철하기 위해 논리를 더 예리하게 다듬게 되지만, 그걸 전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쓸데없는 것에 힘쓴다’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 그건 마치 비전향 장기수가 사상전환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으로 그 생각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금의 세상은 성리학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기에 유전적으로 우린 조선 사람들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철학적으론 전혀 ..
시를 통해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다 天險傳三峽 雷霆鬪激湍천험(자연적인 험지)라 전해지는 삼협은 우레소리가 급류와 다툰다네.風檣今日試 客膽向來寒돛단배 오늘에서야 시험해보려 하나, 손님의 간담은 예로부터 서늘했었다지.但覺巖崖峻 誰知宇宙寬다만 바위 벼랑의 험준함만 깨달았을 뿐, 누가 우주의 관대함을 알겠는가.淸猿啼不盡 送我上危灘원숭이 끝없이 울어대면서 험한 여울 탄 나를 전송해주네. 『 忍齋先生文集』 卷之一 이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소화시평』 권상 85번은 꽤나 흥미진진했다. 시 한편의 내용 중 결구의 내용에서 생에 대한 의지가 있음을 보았고 그렇기 때문에 홍섬은 어떠한 시련이 닥쳐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용된 이 이야기는 신흠의 「청창연담(晴窓軟談)」에 실려 있던 글을..
시참론과 결과론적인 얘기의 불편함 한시를 공부하다보면 재밌는 일화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시참(詩讖, 생각 없이 지은 시가 예언서마냥 훗날의 일과 맞아떨어지는 것)’이란 말은 예나 지금이나 매우 흥미로운 주제긴 하다. 예를 들면 『소화시평』 권상 85번에서처럼 마지막 구에서 작자의 생에 대한 의지를 봤고 그렇기 때문에 죽지 않을 줄 알았다고 하는 경우나, 유몽인 ‘잘린 지렁이[斷蚓]’, ‘추운 파리[寒蠅]’라는 시어를 썼더니 단명하게 됐다고 평가하는 경우나, 홍명구란 사람이 ‘화락천지홍(花落天地紅)’라는 시를 짓자 할머니가 보고 “‘花發天地紅’이라 했으면 복록을 누렸을 텐데, 그러지 못해 요절할 거 같다.”라고 평가했고 실제로 42세에 죽었다는 하권49번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런 경우..
정사룡의 시가 던져준 화두 擁山爲郭似盤中 산을 둘러 성곽이 되니, 소쿠리 안과 비슷한데, 暝色初沈洞壑空 어둠에 막 잠기자 골자기는 텅 비었네. 峯頂星搖爭缺月 묏 봉우리의 별은 흔들리면서 이지러진 달과 다투고 樹顚禽動竄深叢 나무 끝의 새가 움직여 깊은 숲으로 숨누나. 晴灘遠聽翻疑雨 갠 여울소리 멀리서도 들리니 문득 비 오나 싶고 病葉微零自起風 시든 잎사귀 지자 절로 바람이 일어나네. 此夜共分吟榻料 이 밤에 함께 시를 읊조린 침대값은 함께 나눠 내겠지만, 明朝珂馬軟塵紅 내일 아침이면 말방울 소리 나고 붉은 먼지 날리겠지. 『소화시평』 권상 81번에 소개된 시는 ‘곽(郭)’ 한 글자를 머릿속에 넣어두고 본다면 이해가 쉽더라. 그래서 1구에선 이곳이 성곽으로 빙 둘러 있는 분지지형이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한 번 봐도, 두 번 봐도 모르니 조급해하지 말라 『소화시평』 권상 73번 박상 시를 할 때 해동강서시파의 특징을 제대로 음미해봤었다. 여러 책을 참고하거나 ‘한국한시약사(韓國漢詩略史)’를 보다 보면 16세기에 이르러 15세기 후반에 중국에서 유행하던 강서시파의 시풍을 본받아 박은ㆍ이행ㆍ박상ㆍ정사룡ㆍ노수신ㆍ황정욱이 강서시를 수학했고, 박은ㆍ이행ㆍ정사룡을 해동강서시파라 부르게 됐다는 설명이 나온다. 그러면서 이들의 시풍에 대해 흔히 ‘기괴(奇怪), 난삽(難澁)’이라 평하고는 한다는 말이 덧붙여 있다. 그만큼 그들의 시는 머리를 온통 쥐어 짜네 늘상 습관적으로 써 오던 관습을 집어 던지고 전혀 새로운 전고를 쓴다던지, 기존에 쓰던 전고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쓴다던지, 문장을 비틀어버린다던지 했던 것이다. 그..
유영길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落葉鳴廊夜雨懸 낙엽소리 울던 곁채에 밤비가 걸렸는데 佛燈明滅客無眠 불상의 등불 깜빡여 손님은 잠이 없네. 仙山一躡傷遲暮 신선의 산 한번 밟으니 나이 들음이 속상하네. 烏帽欺人二十年 오사모로 사람을 20년이나 속였구나.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유영길의 시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를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 유영길은 직접 복천사에 가서 낙엽소리가 울리던 곁채에서 머물고 있었다. 때마침 비까지 내려 스산한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 등불은 바람에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고 꺼질 듯하다가 다시 피어나며 심란한 마음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만 같다. 하지만 막상 떠나온 이곳이 그토록 꿈에도 그리던 선..
신광한이 한시로 전해주는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는 메시지 『소화시평』 권상 80번에 나온 신광한이 지은 금강산 시는 『우리 한시를 읽다』의 12번 챕터에서 읽었었다. 거기엔 금강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기에 금강산을 면모를 엿보는데 매우 긴요했다. 최근에 남북엔 화해 무드가 무르익으면서 더욱 평양의 냉면이랄지, 평양의 부벽루랄지, 금강산, 백두산 같은 한반도에 사는 사람이면 으레 남아 있는 명승지에 대한 감각들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갈 수 없다 치더라도 머지않아 나의 두 발로 밟아볼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어리기 때문이다. 그런 정감을 키워주는 데에 선조들이 써 놓은 한시가 아주 긴요하게 작용한다. 위의 시는 두 편 모두 하나의 주제를 얘기하고 있다. 삶에 치..
한 글자를 바꾸니 생긴 일 『소화시평』 권상 78번에서 한 글자를 바꿨을 뿐인데 내용의 깊이가 달라지는 걸 보니 신기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겨우 한 글자에 무에 그리 심상이 달라지겠냐고 영화 ‘신세계’에서의 이정재 말투처럼 “거 번, 광한형 이거 한 글자 가지고 너무 장난이 심한 거 아뇨?”라는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른다. 나도 처음엔 단순히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바뀐 글자를 놓고 시를 보니, 거기다가 교수님의 설명까지 들으니 한 글자로 시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두 시의 상황은 모두 다르지만 한 글자가 바뀜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모두 같다. 노골적으로 보여주려 하기보다 살짝 가려서 보일 듯 말 듯, 줄 듯 말 듯, 알쏭달쏭하게 만드는 기법을 구사한 것이다..
한시에서 한 글자의 가치 지금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퇴고(推敲)’라는 단어의 뜻은 글을 다 쓰고 난 다음에 검토해보며 고친다는 뜻이다. 글자 하나 바꾼다고 무에 달라질 게 있냐고 할 테지만, 한시의 경우는 매우 한정된 분량(5언 절구는 20자에 자신의 생각을 담아야 한다)에 담아야 하니, 한 글자 한 글자에 무척 신중할 수밖에 없다. 나도 글을 쓰다 보면 단어 때문에 고민할 때가 많다.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를 적확하게 표현하고 싶은데 마땅한 글자가 떠오르지 않아 글쓰기를 멈추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럴 땐 그 한 단어에 자꾸 미련이 남아, 알맞은 단어를 골라내기 위해 이리저리 뒤적거리게 된다. 거기엔 ‘내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단어로 써야 한다’는 생각이 분명..
소나무에 자신의 절망감을 이입하다 枝柯摧折葉鬖髿 가지 꺾였고 잎사귀는 헝클어져 斤斧餘身欲臥沙 도끼에 잘린 남은 몸통은 모래에 누우려 하네. 望絶棟樑嗟已矣 희망 끊긴 동량은 이제 그만이로구나! 枒楂堪作海仙槎 뗏목으로 바다의 신선이 탈 배를 만들련다. 『소화시평』 권상 75번에 첫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소나무를 보며 희망을 노래했다. 하지만 두 번째 시에선 감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곁에 있는 다른 소나무를 보니 그 소나무는 가지도 꺾였고 잎사귀도 아무렇게 헝클어져 있으며 몸통은 도끼에 잘려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하고 많은 소나무들 중에 그 소나무가 눈에 들어왔고 이렇게 시까지 쓰여지게 된 이유는 뻔하다. 그건 바로 지금 자신의 심정을 대변하는, 아니 바로 쓰러질 듯 위태하게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자신이..
유배지로 가는 절망 속에 희망을 읊은 김정 어쨌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소화시평』 권상 75번은 3개월 동안 묵고 묵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대부분의 것들은 묵혀두면 더 진한 맛을 내게 된다는 사실이다. 글을 쓰다보면 막힐 때가 자주 있다. 일이 밀려 있으니 빨리 써재끼고 싶지만 한 번 막히면 도무지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그러니 맘은 더욱 급해지고 그만큼 부담은 더욱 가중되며, 그럴수록 더욱 글은 써지지 않는다. 그럴 땐 멈추고 다른 일을 하는 게 훨씬 낫다. 어떻게든 글에 대한 고민이 있는 이상 그건 내 머릿속 어딘가에서 굴러다니며 이런 저런 것들과 결합되며 생각지도 못했던 것으로 발효될 테니 말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생각들이 용솟음쳐 오르며 콸콸콸 쏟아져 나와 한 편으..
3개월 만에 재개된 소화시평, 그리고 김정과 소나무 『소화시평』 권상 75번은 1학기에 순서를 배정할 때 내가 맡은 작품이라 이미 7월 16일에 모두 정리해서 해석해놓은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1학기 소화시평 수업은 바로 이 작품 앞에서 끝이 났고 무려 3개월이란 시간 동안 발효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2학기 수업이 과연 언제 시작될까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소화시평 수업은 ‘한시가 얼마나 맛있을 수 있는지?’를 알게 해준 시간이다. 10년 전에 열나게 공부할 때 한시란 미로처럼 아무런 감흥조차 주지 못했었다. 해석도 제대로 되지 않지만 해석이 된다 해도 도대체 무얼 말하고 싶은지 확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시의 맛을 느낄 새도 없이, 그저 많은 작품을 ..
한유의 글을 시로 담아낸 박상의 한시 『소화시평』 권상 73번에선 박상이 나오는데 당풍을 연 사람이라고 알려주셨다. 그러면서 강서시파라는 설명도 덧붙여줬는데, 그렇다면 당풍 내에 강서시파라는 게 별도로 있는 건지, 당풍과 강서시파는 전혀 다른 것인지 헛갈리긴 하다. 『한국한시사』라는 책을 읽고 정리한 한시 약사에선 송풍에서 당풍으로 변하는 과정 속에 강서시파가 있는 것으로 나오는데 그렇다면, 변화되는 과정 속에 전혀 다른 게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건가? 어찌 되었든 강서시의 특징은 ‘난삽하고 기괴’하다고 알려주셨고, 약사에선 기교에 힘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보충: 이 시를 처음 배웠을 때가 18년 8월이었고 다시 정리하는 지금은 19년 2월이다. 그새 6개월 정도가 지났고 지금은 1월에 진도를 쭉쭉..
봄이 감을 아쉬워한 이행의 시와 두보의 악양루시 衰年奔走病如期 늦은 나이에 분주하여 병이 약속한 듯 와서 春興無多不到詩 봄의 흥취가 많지 않아 시 지을 만큼 이르질 않네. 睡起忽驚花事晩 자다 깨니 어이쿠야! 꽃피는 계절이 다 가버려, 一番微雨落薔薇 한 번 보슬비에 장미꽃 져버렸네. 『소화시평』 권상 71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시에선 1구가 원인이 되어야 2구가 이해가 된다. 그러니 1구를 해석할 때 병들었다는 사실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 병이 들었기에 2구의 봄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아프면 입맛도 떨어지고, 좋은 경치도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않는다. 그러니 건강해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맛있는 걸 먹고, 좋은 걸 보기 위해서다. 낙화시엔 공통점이 있다고 했다. 거기엔 당연히 비애가 담길 수..
반전이 담긴 멋진 시를 쓴 이행 순서대로 진행되기에 권상 57번 이후의 시들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그걸 맡은 학생들이 업로드를 하지 않아 과연 수업이 진행될 수 있을지 우려스럽긴 했다. 하긴 그래도 예전에도 아이들 시험 기간 때면 교수님이 그냥 진행한 적도 있었으니, 이번에도 그렇게 나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더욱이 오늘은 예비 TO까지 나왔고, 22명을 뽑는데 무려 전북에서 6명이나 뽑는 대이변이 일어났다. 나야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올해 될 리는 없고 내년에나 바라볼 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니. 그런데 이번에 한참이나 순서가 뒤로 처져 있지만, 동원이가 ‘71번’ 준비한 것을 올렸었다. 너무나 멀기에 보지도 않았는데, 교수님은 이번엔 순서를 아예 바꿔서 이 시부터 하자고 하시며 진행하셨다. 세상에나 ..
영보정 시를 읽었더니 그곳에 가고 싶어지다 『소화시평』 권상69번을 개발새발 해석했을 땐 잘 몰랐다. 하지만 교수님과 수업을 하면서 「영후정자(營後亭子)」가 정말 멋지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더라. 어디까지나 정자를 묘사하며 지은 시였는데, 정자를 묘사한 방식도 탁월해서 정말 그곳에 가서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地如拍拍將飛翼 땅이 푸드덕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은 날개 같고, 樓似搖搖不繫篷 누각은 흔들흔들 거려 매어 있지 않은 배와 같다. 北望雲山欲何極 북쪽으로 바라보니 구름 낀 산은 어디서 끝나려는가? 南來襟帶此爲雄 강물이 남으로 와 띠처럼 둘렀으니 이곳이 웅장해지네. 海氣作霧因成雨 바다 기운이 안개가 되었다가 인하여 비를 이루고 浪勢飜天自起風 파도의 기세가 하늘로 솟구쳐서 저절로 바..
홍유손의 한시가 최치원에 비해 뒤떨어지는 이유 濯足淸江臥白沙 맑은 강에 발 씻고 흰 모래에 누우니 心神岑寂入無何 마음과 정신이 적막하여 무아지경에 들어가네. 天敎風浪長喧耳 하늘이 바람과 파도로 하여금 길게 귀를 시끄럽게 하지만 不聞人間萬事多 인간의 온갖 일 많음조차 들리지가 않네. 『소화시평』 권상65번에 나온 홍유손의 「제강석(題江石)」은 어렵지 않았던 시다. 그리고 최치원의 작품인 「제가야산독서당(題伽倻山讀書堂)」에서 풍기는 느낌까지 그대로 드니, 더더욱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특히 3~4구에 이르면 완벽하게 최치원의 시가 생각날 정도로 판박이다. 분명히 홍유손은 이 시를 지으며 최치원의 시를 염두에 두고 쓴 게 맞을 것이고, 그만큼 최치원의 풍도를 풍기고 싶었을 것이다. 시화를 읽으면서 작자의 평..
도를 깨달은 사람이 쓴 시엔 깊은 뜻이 담긴다 김시습하면 우리에겐 『금오신화』로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특이한 그의 이력으로 또 한 번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신동(神童)이라는 내용의 삼각산 이야기와 함께 홍만종도 김시습의 이야기를 실었고, 위에 언급한 이수광도 김시습의 이야기를 잘 실어놨다. 그만큼 김시습의 이야기는 여러 사람에게 회자가 될 정도로 유명한 얘기였고 그만큼 많이 알려진 얘기였다는 것이리라. 終日芒鞋信脚行 종일토록 짚신 신고 발 가는 대로 다녀 一山行盡一山靑 한 산이 건너 다하면 다시 한 산 푸르네. 心非有想奚形役 마음이란 상상조차 없으니, 어찌 형체의 부림을 당하랴. 道本無名豈假成 도란 본디 무명이니 어찌 빌려서 이루겠는가?(도를 얻은 척 할 수 없다) 宿露未晞山鳥語 묵은 이슬..
과거 사람들의 평가도 눈여겨 볼 떄 한시는 훨씬 재밌다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나머지 두 시도 전문(全文)으로 공개했고 그것으로 공부했지만, 사람들은 그러질 않았다. 프린터를 해오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심지어 교수님까지도. 그래서 다음부턴 전문을 함께 보고 싶을 땐 내가 프린터를 해서 나눠주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쉽다 함께 보면 좀 더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그것은 홍만종이 인용해둔 구절을 중심으로 살짝 봤기 때문에 별다른 감흥이 남지 않았다. 그래도 교수님이 신흠이 『청창연담』에 나오는 내용을 프린터해서 주셔서 함께 볼 수 있었고 내용이 꽤 흥미진진했다. 전혀 준비하지 않았기에 버벅였고, 때론 보는 순간 이게 무슨 글자지 하는 한계에 부딪히기도 했지..
김종직과 두보의 그림 같은 시 籬外紅桃竹數科 울타리 밖 붉은 복숭아꽃과 대나무 몇 그루 𩁺𩁺雨脚閒飛花 부슬부슬 빗발에 이따금 꽃이 날리네. 老翁荷耒兒騎犢 노인은 보습을 메고, 아이는 송아지 타니, 子美詩中西崦家 두자미의 시 중에 「적곡 서쪽 산의 인가[赤谷西崦人家]」라는 시에서 얘기한 풍경이로다.『東文選』 『소화시평』 권상62번에 두 번째로 소개된 「장현촌가(長峴村家)」라는 시는 ‘시중유화(詩中有畵)’라고 평한 정도전의 「방김거사(訪金居士)」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다. 이 시는 해석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보는 순간 그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시는 느낌이 「도중(途中)」의 시와 매우 흡사하다. 마치 그 그림 속에 들어가 지나는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특이하게 4구에선 아예 두보..
한유와는 달리 고향 선산으로 의기양양하게 태수로 가는 김종직 津吏非瀧吏 官人卽邑人 나루의 아전은 농리는 아니고 관인인 나는 곧 이 고을 사람이네. 三章辭聖主 五馬慰慈親 세 차례 상소문은 성주께 사직했지만 태수가 되어 사랑하는 어머니를 위로하네. 白鳥如迎棹 靑山慣送賓 흰 새는 마치 노를 맞이하는 듯하고 푸른 산은 익숙히 손님을 보내는 듯. 澄江無點綴 持以律吾身 티 하나 없이 맑은 강을 지님으로 이 몸을 규율(단속) 하리라. 『소화시평』 권상62번엔 김종직의 시가 나열되어 있다. 「관수루제영시(觀水樓 題詠詩)」라는 시는 어렵게 느껴졌다. 여긴 나름의 스토리가 달려 있고 한유가 농리(瀧吏)와 나눴던 얘기라는 고사도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김종직이 왜 중앙관직을 마다하고 선산으로 가려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뒷받..
소화시평 스터디가 부딪힐 수 있는 용기를 주다 이 스터디는 4월 중순에 들어와 지금까지 6번의 스터디와 한 번의 맥주파티, 그리고 한 번의 교수님과의 내소사 탐방이 있었을 뿐이다. 어찌 보면 3개월이란 시간은 흘렀지만 소화시평을 공부한 시간보다 안 한 시간이 훨씬 많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 기간 이상으로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처음 스터디에 갈 때만 해도 머리는 완전히 백지상태였고 어떻게 공부해야하는 지도 몰라 헤매고 있었는데, 그새 공부하는 방법도 알게 됐고, 정리하는 기쁨도 알게 됐으며, 나만의 자료를 만들어가는 행복도 알게 됐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소화시평을 준비하는 마음도 바뀌었다. 예전엔 그냥 가서 따라가기에 바쁘기만 했다면 이젠 어느 ..
신종호의 시와 김영랑의 시에 담긴 상춘(傷春) 茶甌飮罷睡初驚 차 마시길 다하고 깜빡 졸다가 막 깨니, 隔屋聞吹紫玉笙 집 너머에서 자주빛 옥피리소리 들려. 燕子不來鶯又去 제비 오지 않고 꾀꼬리 가버린 채, 滿庭紅雨落無聲 뜰 가득 붉은 비가 뚝뚝 떨어지네. 『소화시평』 권상59번의 네 번째 인용된 신종호의 「상춘(傷春)」이라는 시도 재밌는 시였다. 우선 1구부터 문제가 됐다, 잠이 깼는데 그 이유는 당연히 차를 마셨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차 마시니, 잠이 깼다는 내용이 순차적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수님은 달리 생각해보라고 말씀해주셨다. 이 사람이 잠을 깨게 된 이유는 차와는 상관없이 바로 다음 구절에 나오는 것이라는 걸 암시한다. 즉 건너편에서 들려오는 생황소리에 잠이 깬 거라는 거다. 그렇다..
시의 제목을 통해 시를 봐야 한다 江湖當日亦憂君 강호에서 있던 당시에 임금이 근심스럽고 白首無眠夜向分 하얀 머리인데도 잠 못 이루고 자정을 넘겼는데, 華省寂寥疎雨過 궁궐은 적막한데 가랑비 지나가자, 隔窓梧葉最先聞 창 너머 오동잎이 가장 먼저 빗소리를 들려주네. 『소화시평』 권상59번의 세 번째 인용된 「독직내조문야우(獨直內曺聞夜雨)」라는 시를 볼 땐 제목과 1구에 나오는 ‘강호(江湖)’에 집중하며 봐야 한다. 지금껏 시를 볼 땐 제목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대부분 ‘우연히 읊다[偶吟]’이나 ‘그 자리의 일을 읊다[卽事]’와 같은 전혀 시의 내용과 상관없는 제목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전엔 아예 시 제목을 풀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고, 최근에 다시 공부하면서는 시 제목을 해석하긴 하지만, 여전..
지나가는 가을의 강과 산을 싣고 돌아오는 경지 水國秋高木葉飛 물나라 가을 깊어 나뭇잎 흩날리고, 沙寒鷗鷺淨毛衣 모래 추워 기러기와 해오라기는 깃털을 고르는데, 西風日落吹遊艇 해가 지니 가을바람이 놀잇배를 불어줘서 醉後江山滿載歸 취한 뒤라 강산을 한 가득 싣고 돌아오는구나. 『소화시평』 권상59번의 두 번째 인용된 이요정의 시는 너무도 익숙히 알고 있는 ‘양화대교♬’를 배경으로 글을 썼다. 그 당시의 양화나루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곳이었다. 한강의 직선화 공사 이전엔 자연하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 잠실 같은 곳은 섬까지 있을 정도로 비좁은데 반해 양화나루쯤엔 하구로 좀 더 거대한 물줄기가 흘렀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직선화 공사 이전의 한강엔 모래톱도 자연스럽게 있고 해수욕장도 있어 사람들이 더욱 친근..
태평의 기상을 노래한 신숙주의 시 6월 27일에 마지막 소화시평 스터디를 했으니, 근 한 달 만에 다시 스터디를 하는 셈이다. 소화시평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하다가 막상 한다니까 부담이 되긴 한다. 특히 이번엔 한 달 정도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던 터라 미리 내가 할 분량을 올려놓긴 했는데, 다른 것들은 전혀 올라오지 않고 있었다. 서당에 들어간 아이도 있고 각자 방학에 따라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요일엔 갑자기 교수님에게 전화가 오기에 이르렀다. “잘 지내죠? 부탁이 있어서 전화했어요.”라고 시작한 통화는, 하나 더 준비해달라는 거였다. 더군다나 하루 전날에 온 전화이기에 부담이 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의 내 마인드는 ‘내가 해갈 수 있는 만큼만 해가고, 나머지..
악부시의 묘미와 시경 해석의 문제점 『소화시평』 권상57번엔 악부시에 대한 소개까지 하고 있다. 소개된 악부시는 민간에서 떠돌던 노래들을 한시로 변용하여 정착시킨 것이다. 지금으로 보면 유행가, 특히나 소속사에서 만든 노래보다 인디밴드의 노래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마치 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와 같은 노래들이 꼭 그런 꼴이다. 그래서 ‘관풍찰속(觀風察俗)’이라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공공기관의 마인드이고 그저 자연스럽게 나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을 담아놓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관에선 왜 이런 노래들을 담으려 했을까 하는 점이다. 보통 사람은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있을 땐 좋은 얘기만 하게 되어 있다. 서로 불편한 이야기를 나눠 나쁜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으니 좋은..
신비로운 시를 쓴 성간 籬落依依半掩扃 마을 뵐 듯 말 듯 사립문을 닫혔는데 夕陽立馬問前程 석양에 말 세우고 앞길 물어야 해. 翛然細雨蒼烟外 갑자기 가랑비 내리고 푸른 안개 피어오르는 저 편에 時有田翁叱犢行 때마침 늙은이 ‘이랴!’ 소를 끌고 가네.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도중(途中)」라는 시는 머리로 상상하며 시를 그려야 한다. 말을 타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선비가 있다. 처음 가는 길인데 날씨가 약간 흐린지 멀리 있을 땐 마을이 보일 듯 말 듯 흐릿하기만 하다. 말이 서서히 앞을 향해 나아가니 드디어 사립문이 보였지만 반쯤 닫혀 있다. 저물기 전에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데 도무지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길을 묻고 싶지만 사람은 보이질 않는다. 마음은 급한데 갑자기 비가 내리다가 그치니..
호쾌한 시를 쓴 성간 鉛槧年來病不堪 글 짓느라 근래에 병을 견디지 못했는데 春風引興到城南 봄바람이 흥 이끌어 성남에 도착했네. 陽坡草軟細如織 볕든 언덕의 풀은 연하고 가늘기가 실을 짠 듯 正是靑春三月三 바로 이때가 푸른 봄 3월 3일이네! 『소화시평』 권상57번에 소개된 「여옥당학사 유성남(與玉堂學士, 遊城南)」는 매끄럽게 해석되진 않아도 말하고자 하는 바는 크게 문제없이 전해진다. 공무에 시달리다 봄바람 따라 친구들이 이끌어서 야외에 나왔더니, 언덕 위에 연하고 가는 풀들이 보여 그제야 ‘아 맞다! 오늘이 3월 삼짇날이지’라고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우리에겐 이런 시들에서 전혀 감흥을 느낄 수 없다. 도대체 이런 류의 시를 통해 뭘 말하려 하는지 알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 시를 지었..
여유로움을 칭송하던 사회에서 지어진 한시 『소화시평』 권상56번의 주제인 나태함에 대해 얘기를 하다가 이와 관련된 시 두 번도 함께 소개해줬다. 김형술 교수님은 사천(槎川)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3만 수의 시를 썼으며 이덕무가 영조 때의 제일 시는 사천을 꼽아야 한다고 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의 시 중에 『직중기하동(直中寄巷東)』을 보면 다음과 같다. 官寺淸閒聽禁鍾 관청이 맑고 한가로워 통행금지 종소리 들으니, 此中那得一從容 이 가운데 한결같이 조용히 있을 수 있겠는가? (친구 불러 시를 짓겠네라는 뜻) 故人不起知非病 고인이 일어나질 않으니 병 때문이 아님을 아니, 兒女傍邊好得慵 지금 처자식 옆에서 실컷 늘어졌겠지. 이 시를 잘못 읽으면 불러도 오지 않고, 그저 아녀자의 치마폭에 싸여 ..
나태함을 칭송하다 晝靜溪風自捲簾 낮 고요하고 시내엔 바람에 저절로 발이 걷혀 吟餘傍架檢書籤 시 읊은 뒤에 서가 옆에서 책갈피를 뒤적이네. 今年却勝前年懶 금년은 도리어 작년의 게으름보다 더하여 身世全敎付黑甛 몸 신세 온통 꿀잠에 부치네. 『소화시평』 권상56번에 소개된 「즉사(卽事)」를 읽으면서 지금과 확실히 다른 조선 지식인들의 사고방식, 생활방식을 볼 수가 있다. 지금은 ‘빨리 빨리’, ‘성과가 있어야 한다’, ‘하나라도 더 하지 않으면 낙오한다’와 같은 완벽한 경쟁주의 사회 속에 치열한 삶의 방식이 좋은 것처럼 회자되고, 티비에 성공한 사람들이 나와서 하는 얘기들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느림의 미학』,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과 같은 책들이 ..
자연이 약동하는 걸 시로 표현하다 舍後桑枝嫩 畦西薤葉抽 집 뒤 뽕나무 가지 새싹 뾱 돋고, 서쪽 밭의 부추잎이 쑥 자라네. 陂塘春水滿 稚子解撑舟 언덕엔 봄물 가득하여 어린 자식 메어놓은 배를 저을 줄 아네. 『소화시평』 권상55번에 두 번째로 인용된 「자적(自適)」이란 시는 봄의 정경을 읊고 있는 평범한 시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재밌는 부분은 ‘눈(嫩)→추(抽)→만(滿)’으로 행위 자체가 확대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눈(嫩)은 여린 새싹 뾱 돋아나는 모습이라면, 추(抽)는 쏙 하고 약간 더 큰 모양새로 돋아나는 모습이고, 만(滿)은 이미 단어만으로도 가득 차 있는 모습임을 알 수 있다. 이런 걸 점층법(漸層法)이라 할 수 있고, 해석을 할 때에도 그걸 반영하여 점차 거대해지는 모습으로 알맞게 해석하면..
이첨, 급암을 통해 사회를 풍자하다 諂諛從來易得親 아첨하는 무리들이 예로부터 쉽게 총애를 얻는다는 것을 君看大將與平津 그대는 대장인 위청과 평진후인 공손후에게서 볼 수 있네. 高才久屈淮陽郡 높은 재주임에도 회양군에서 오래도록 구부렸으니, 孰謂當時社稷臣 누가 당시 사직의 신하라 하였던가? 『소화시평』 권상55번에 첫 번째로 인용된 「영급암(詠汲黯)」이라는 시는 명재상인 급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회풍자시다. 그런데 이 시에서 재밌는 점은 아양을 떠는 신하들만을 비판한 게 아니라, 그런 신하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들에게 휘둘리는 임금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4구를 통해 임금에 대한 비판이 가열차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냐면, 급암을 ‘사직의 신하[社稷臣]’라 띄워준 게 바로..
물아일체의 묘미를 한시로 담다 秋陰漠漠四山空 가을 그늘 어둑침침하고 온 산은 고요한데, 落葉無聲滿地紅 소리 없이 떨어지는 낙엽에 온 산 붉구나. 立馬橋頭問歸路 말 다리머리에 세워두고 돌아가는 길 묻자니, 不知身在畵圖中 알지 못했구나, 몸이 그림 속에 있었다는 것을. 『소화시평』 권상51번의 두 번째로 나온 「방김거사(訪金居士)」는 너무도 익숙히 읽어왔던 시다. 더욱이 마지막 구에 ‘그림 속에 있었다’라는 구절 때문에 나 자신이 외물과 융합된 경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 때문에 자연과 하나로 섞였다는 표현을 하려 할 때 편안히 쓰게 된다. 여기선 ‘공(空)’에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즉, 어둠이 깔렸기에 인적이 드물다라는 표현과 함께, 나뭇잎이 떨어져서 비어 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 정도로만..
태평의 기상을 한시로 담다 『소화시평』 권상51번에서도 그렇듯이 시를 보고 나선 ‘작자는 이런 시를 왜 지었을까?’하는 생각을 해야 한다. 그래야만 그 시를 오롯이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春隨細雨渡天津 봄은 가랑비 따라 천진교를 건너서 오고, 太液池邊柳色新 태액지 가의 버들빛 싱그럽다. 滿帽宮花霑錫宴 사모에 궁화를 가득 꽂고 내려주신 잔치에 참가했더니, 金吾不問醉歸人 호위도 취해서 돌아가는 사람을 검문하지 않네. 「봉천문(奉天門)」에서라는 시는 얼핏 보면 그저 궁궐의 풍경을 읊고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관리들과 임금에 대한 이야기인 것만 같다. 더욱이 4구에 이르고 보면 자기 업무도 소홀히 하는 게 느껴지니 더욱 그런 생각을 강하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리를 노출시키고 게으르며, 때론 자기의 일도 제..
홍만종, 고려시보다 조선시를 높게 평가하다 幽居野興老彌淸 숨어사는 시골의 흥취는 늙을수록 더욱 맑아져 恰得新詩眼底生 새로운 시가 눈 밑에서 생겨나는 것을 흡족하게 얻네. 風定餘花猶自落 바람은 멈췄지만 남아 있던 꽃 오히려 스스로 지고 雲移小雨未全晴 구름은 사라졌지만 부슬비 아직 덜 개었네. 墻頭粉蝶別枝去 담장 위의 나비는 가지와 이별하여 떠나고 屋角錦鳩深樹鳴 처마 귀퉁이 비둘기는 깊은 숲에 숨어 울어대네. 齊物逍遙非我事 제물과 소요는 나의 일이 아니니, 鏡中形色甚分明 거울 속에 모든 사물이 이렇게도 분명한 것을. 『소화시평』 권상49번의 이색의 시에서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엔 『장자』의 편명인 「제물」과 「소유」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제물은 ‘절대 평등’이라 풀어냈고, 소유는 ‘초월의..
고려시의 시는 송풍의 시다 이번 글의 주제는 ‘고려시와 조선시 중 어느 시대의 시가 좋은가?’일 터다. 그래서 처음부터 두 시대의 시를 비교하며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서거정의 대답을 들었을 땐 ‘두 시대의 시가 모두 우열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장점과 단점을 지니고 있다’는 뉘앙스로 읽혀지지만, 막상 홍만종은 그 말을 “서거정의 말로 그것을 보면 조선이 나은 것처럼 보인다”라고 결론을 지어 놨다. 분명 지금 다시 읽더라도 장단점이 특기되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데, 홍만종이 왜 그렇게 평가했는지 알 길이 없다. 아마 저 문장만이 아닌 전체를 다 읽으면 다른 뉘앙스가 숨겨져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굳이 그렇게 보지 않더라도 홍만종이 조선인이기에 자신의 관점에서 저 말을 왜곡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삼봉도 전횡을 노래했지만 스승에게 비판을 듣다 嗚呼島在東溟中 오호도는 동쪽의 바다 한 가운데 있어 滄波渺然一點碧 푸른 물결에 아득히 하나의 점으로 푸르다. 夫何使我雙涕零 그런데 어찌 나의 두 눈에 눈물을 흐르게 하나? 祇爲哀此田橫客 다만 전횡의 식객들이 애처롭게 하는구나. 田橫氣槩橫素秋 전횡의 씩씩한 기상과 절개가 가을을 가로질렀으니 壯士歸心實五百 씩씩한 선비로 죽으리라 마음을 먹은 이가 실로 500명이나 되었다. 咸陽隆準眞天人 함양에서 콧날이 우뚝한 유방은 참으로 천상의 사람으로, 手注天潢洗秦虐 손으로 은하수를 부어 진나라의 학정을 씻어냈었는데 橫何爲哉不歸來 전횡은 어찌하여 귀의하려 하지 않고 寃血自汚蓮花鍔 원망의 피가 스스로 연꽃이 새겨진 칼날을 더럽혔던가? 客雖聞之爭柰何 식객이 비록 그 사실을 들은..
한문공부의 방향잡기 『소화시평』 권상39번엔 한신이 빨래터 아낙에게 밥을 빌어먹은 이야기를 주제로 발표를 했었는데, 이번에도 권상47번에선 우연하게 유방과 전횡에 대한 이야기를 맡게 됐다. 초한쟁패 시기의 이야기로 우연하게 두 번이나 맡게 된 셈이다. 어찌 되었든 나에겐 축복이라 생각했다. 지금의 내 공부 패턴은 무언가를 진득하게 잡고 가는 방법이기보다 이것 하다가 저게 보고 싶으면, 저걸 보고, 그러다 또 다른 게 보고 싶으면 그것으로 건너 뛰어가는 이름하야 ‘메뚜기식 공부법’,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부법’으로 하고 있다. 바로 이 공부법은 4월 11일에 첫 스터디를 했고 바로 그 다음 주에 발표를 맡게 되면서 고민 끝에 결정된 것이다. 솔직히 말해 4월 11일만 해도 머릿속은 새하얀 상황이었고 무식..
홍만종의 평가가 시를 깊이 있게 보도록 한다 『소화시평』 권상46번에선 화운한 시를 보며 어느 작품이 더 낫냐를 생각해보게 한다. 영천에 있는 명원루(지금의 조양각)를 보고서 정몽주가 먼저 시를 지었고, 그 시에 탄복한 이안눌도 차운을 하며 시를 짓고자 했지만 쉽지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 끙끙 앓다가 결국 시를 쓰긴 했는데, 이에 대한 홍만종의 평가는 “청신한 시구를 만들어냈지만, 그럼에도 마침내 정몽주의 굉장하고 원대한 기상에는 미치지 못했다[李詩雖淸絶, 然終不逮鄭詩宏遠底氣像].”라는 평가를 내린다. 교수님은 “그러면 전문을 한 번 해석해보면 그때서야 홍만종이 왜 저런 평가를 했는지 느낌이 올 거예요”라고 알려준다. 난 그 순간 ‘어디서 약을 파시려고?’라는 마음으로 반신반의했다. 靑谿石壁抱州回 맑..
친숙한 것을 낯설게 표현하는 한시의 저력 平生南與北 心事轉蹉跎 평생 남북으로 떠돌았지만, 마음 둔 일이 갈수록 어긋났네. 故國海西岸 孤舟天一涯 고국의 바다는 서해안 쪽에 있고, 외로운 배만 하늘 한 끝에 매어 있구나. 梅窓春色早 板屋雨聲多 매화 핀 창이라서 봄빛이 빠르고, 판잣집이라서 빗소리 많이 들리네. 獨坐消長日 那堪苦憶家 홀로 앉아 긴 하루 보내려 하니, 자꾸 생각나는 집 생각을 어이 견디랴. 『소화시평』 권상44번에서 이 시를 스터디할 땐 정말 넋이라도 있고 없고 했다. 거의 두 시간을 꽉 채우며 수업이 진행되어 너무 머리를 많이 쓰다 보니 지끈지끈해지며, 거의 마지막에 이르고 보면 분명 시를 배우고 있긴 한데, 뇌는 작동은 멈춘 듯, 나는 이 자리에 없는 듯 소리와 교실 안의 공기는 심연 속으로..
인생무상과 부벽루의 정감 昨過永明寺 暫登浮碧樓어제 영명사를 지나다 잠시 부벽루에 올랐네.城空月一片 石老雲千秋성은 텅 빈 채 달 한 조각 있고, 바위(조천석)는 천년 두고 구름뿐인데,麟馬去不返 天孫何處遊기린 말 타고 떠나 돌아오지 않으니, 천손이여 어디서 노시는가?長嘯倚風磴 山靑江自流 길게 바람 부는 돌계단에 기대어 읊조리니, 산을 절로 푸르고, 강은 절로 흐르는구나. 『東文選』 卷之十 『소화시평』 권상43번에 나오는 「부벽루」라는 시는 읽은 적이 여러 번 있었을 테지만, 기억에 그다지 남아 있지 않았다. 어려운 글자가 없어 수월하게 변역되었다는 정도로 만족했었지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은 이 시는 주몽의 설화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으며, ‘주몽=선군의 이미..
작가 비평의 문제점과 한계 솔직히 이런 식으로 작가를 나열하고 평가하는 무수한 글을 볼 수 있지만, 『소화시평』 권상43번은 전혀 와 닿지 않는다. 그래도 허균의 평가는 느낌적인 표현보다 한문학사에서의 영향력에 대한 평가가 덧붙여져 있기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 충분히 있고 참고해볼 만한 부분이 있었지만, 여기선 도무지 그런 건덕지를 찾아볼 수가 없다. 고려의 문인 중 조운흘이 명명한 12명의 시인을 그대로 반영하여 각 문인마다 두 글자로 인상비평을 가하고 있다. 분명히 우리가 그 당시의 학자였다면 이런 인상비평을 듣는 순간 ‘아 맞다!’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의 글을 한 번 읽어보면, 더욱 분명해질 거다. 보수파들은 잃어버린 10년이라는 말을 썼지만, 좌우를 떠나 가..
문인들의 한바탕 구강액션 『소화시평』 권상42번에선 구양현과 목은은 칼만 들지 않았지, 서로의 기를 짓누르려는 언어의 칼이 사정없이 번뜩인다. 『공작』이란 영화를 한 마디로 ‘구강액션’이라 표현했었는데, 딱 이 글이 그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과 비슷했다. 자칫 잘못하면 상대방을 넉다운 시킬 수 있고, 다시는 공부의 공자도 꺼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나름 긴장감 넘치는 상황을 아주 기묘하게 다룬 이 글이 그래서 사랑스럽다. 근데 나는 이번에도 생각이 많이 짧았다. 좀 더 문장으로 들어가 이해하려 하기보다 피상적인 느낌만으로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獸蹄鳥跡之道, 交於中國 鷄鳴狗吠之聲, 達于四境 해석 들짐승의 발굽과 날짐승의 발자국이 만든 길이 중국에서 어지럽다. 닭 울음소리와 개 짓는 소..
엽등하려 하지 말고 기본부터 충실히 한문공부를 해야 한다 『소화시평』 권상42번은 교수님이 준비해왔고 교수님이 대부분 해석을 해줬다. 더욱이 가지의 시와 두보의 시와 함께 가져왔고, 그걸 함께 해석하는 것을 보여줌으로 준비해온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명확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한문 공부의 저력은 하나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거기에 관련된 다른 작품을 찾아보는 걸 ‘시간이 아깝다’, ‘너무 곁다리로 가는 게 아닌가?’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계속 횡적으로 네트워킹을 해야만 하나의 해석을 제대로 할 수 있고, 그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감각에 의해 그런 평가를 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까지 듣고 나면 ‘좀 더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고 생각할지 모..
세상을 피하려는 뜻을 시에 담은 이유 『소화시평』 권상41번은 역사적인 상황을 담고 있다. 공민왕은 친원파(親元派)들이 정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친원파들을 축출하여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자 했다. 그래서 기용한 것이 스님의 신분이었던 신돈(辛旽)이었고 그의 활약으로 고려 말의 조정은 나름 활기를 찾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신돈의 영향력이 커지게 되면서 의구심이 싹트기 시작했고, 결국 그를 제거하기에 이른다. 마치 이런 일련의 상황이 항우와 범증의 이야기와 매우 유사하다. 그리고 「기무열사(寄無悅師)」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공민왕만이 신돈을 눈엣가시로 봤던 게 아니라, 권문세족 중에서도 신돈을 제거하려는 논의가 있었다는 것이다. 世事紛紛是與非 세상 일에 시비가 분분하여 十年塵土汚人衣..
교수님의 단서만으로도 술술 해석되던 한시 甲第當時蔭綠槐 큰 집 그 당시엔 푸른 회화나무 우거졌겠고 高門應爲子孫開 높은 문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 年來易主無車馬 근래에 주인이 바뀌어 거마가 끊겼고 惟有行人避雨來 오직 나그네만이 비 피하러 들어오네. 『소화시평』 권상40번에 나온 이곡의 「도중피우(道中避雨)」라는 시를 처음에 할 때만 해도 1, 2구가 잘 해석되지 않았다. 3, 4구야 너무도 명확했으니 괜찮은데 1, 2구는 뭘 말하고 싶은지 몰랐다. 그래서 ‘큰 집 푸른 회화나무 그늘 진 때에, 귀한 집 응당 자손을 위해 문을 열었겠지’라고 풀이했었다. 그만큼 글자만 따라 내용은 전혀 이해를 못한 채 해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오늘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수업을 진행하셨는데, “좀..
한신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주제를 드러내다 『소화시평』 권상39번은 소화시평 스터디에 참여한 후 처음으로 발표했던 편이었다. 번역서가 있기 때문에 참고하며 준비할까도 생각했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의 실력 그대로 노출하기 위해 보지 않고 준비하기로 했다. 7년 만에 다시 한문을 공부하게 되어 실력은 쥐뿔 없지만 지금은 뭔가 있어 보이게 꾸미는 것보다 솔직하게 인정하고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나가는 게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발표를 준비한 덕에 십팔사략도 정리하고 블로그도 공부장으로 사용하게 됐다. 그런 변곡점을 통해 공부방법도 많은 부분이 바뀐 것이다. 이숭인의 시에서 ‘맹사가(猛士歌)’를 고민 끝에 찾아낸 건 정말 대박이었다. 아래 부분은 제대로 찾질 못해 수업을 듣고 새롭게 알게 된 내용들을 정리해..
핍진하게 자연을 담아낸 한시 『소화시평』 권상37번의 핵심은 얼마나 보이는 사물을 그대로 담아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핍진하다는 말을 쓴 것이다. 滿空山翠滴人衣 허공 가득한 산의 푸르름이 사람의 옷에 물들고 草綠池塘白鳥飛 초록 연못가에 흰 새가 날아든다. 宿霧夜栖深樹在 간밤에 깃든 밤안개가 깊은 숲에 남아 있다가 午風吹作雨霏霏 낮 바람 불자 비가 되어 주룩주룩. 동암의 「산거우제(山居偶題)」라는 시는 자기 주변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그리고 있다. 2구의 대비는 두보가 지은 「절구(絶句)」란 시의 ‘강벽조유백 산청화욕연(江碧鳥逾白 山靑花欲燃)’라는 구절처럼 색조의 대비가 뛰어나고 3, 4구의 밤안개가 바람으로 비로 변해 내렸다는 구절은 상상력을 자아낸다. 이런 류들의 시는 지은이가 별 것 아닌 자..
가을이 왔는데도 일하러 가야 하다니 『소화시평』 권상 35번은 홍만종이 자신의 12대 선조인 홍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紫氣橫空澗水流 상서로운 기운 하늘을 비끼고 시냇물 흐르니, 風烟千里似滄洲 천리의 좋은 경치 마치 창주(滄洲)인 듯. 石橋西畔南臺路 돌다리 서쪽 가 남대길 柱笏看山又一秋 홀든 채 산을 보니 또한 온통 가을이네. 「조조마상(早朝馬上)」이란 시는 출근길에 본 풍경과 마음을 꾸미지 않고 그대로 표현한 시다. 출근하는 길에 주변을 둘러보니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까지 닿고 곁의 시냇물은 졸졸 흐르며 안개까지 가득 끼어 이곳이 마치 신선들의 세상인 것만 같다. 그런데 자연은 어느덧 가을로 물들어 나를 하염없이 잡아끌지만 나는 공무를 보러 출근을 해야만 한다. 아~ 내 맘과 현실은 어찌 이다지도 어긋..
곽예, 태평성대와 나이듦을 시로 담다 『소화시평』 권상 34번엔 곽예(郭預)가 지은 두 편의 시가 소개되어 있다. 半鉤踈箔向層巓 엉성한 발을 반쯤 걷어 산꼭대기를 바라보니 萬壑松風動翠烟 수많은 골짜기의 솔바람이 푸른 이내를 일으키네. 午漏正閑公事少 정오라 참으로 한가하여 공무가 거의 없으니, 倚窓和睡聽鈞天 창에 기대어 평화롭게 졸며 천상의 음악을 듣누나. 「제직려(題直廬)」라는 시는 태평성대의 모습을 ‘균천(鈞天)’와 ‘공사소(公事少)’란 시어로 잘 드러냈다. ‘균천(鈞天)’을 통해 상제와 임금을 동일시하고 ‘공사소(公事少)’를 통해 자신의 게으른 모습을 등장시킴으로 나라가 잘 다스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런 묘사는 ‘일출이작 일입이식 경전이식 착정이음 제력하유우아재(日出而作 日入而息 耕田而食 鑿井而飮..
요체시의 묘미가 담겨 있는 김지대의 한시 『소화시평』 권상 33번에 나온 「제유가사(題瑜伽寺)」라는 시는 요체시(拗體詩)의 전형적인 작품이다. 요체시란 시의 수사미를 위해 평측 자리를 뒤바꾸는 등 조탁에 대단히 신경을 쓴 시를 말한다. 寺在煙霞無事中 절은 짙은 안개 낀 텅빈 곳에 있고, 亂山滴翠秋光濃 어지러운 산에 푸른빛이 떨궈져 가을빛이 짙구나. 雲間絶磴六七里 구름 사이로 난 끊어진 돌 비탈 예닐곱 리오, 天末遙岑千萬峰 하늘 끝까지 닿을 듯한 아득한 봉우리는 천만 봉우리로구나. 茶罷松檐掛微月 차를 다 마시니 솔 처마엔 초승달 걸려 있고, 講闌風榻搖殘鐘 강 끝나니 바람 품은 책상엔 잔잔한 종소리 들려오네. 溪深應笑玉腰客 시내 깊어 응당 옥대 찬 나그네 비웃으리라. 欲洗未洗紅塵蹤 속세의 자취 씻으려 하나 ..
이규보의 ‘유어(游魚)’와 ‘문앵(聞鶯)’ 시의 이해 圉圉紅鱗沒復浮 비리비리한 붉은 물고기 물에 빠졌다가 다시 나타나니, 人言得意好優游 사람들은 ‘뜻을 얻어 잘 노닌다’고 말하네. 細思片隙無閑睱 곰곰이 생각하면 조금도 한가하지 못하니, 漁父方歸鷺又謀 어부가 곧 돌아가면 해오라기가 또 도모하려 하겠지. 『소화시평』 권상 30번의 첫 번째 시인 「유어(游魚)」는 물고기가 노니는 걸 보고 ‘한가하다[閒]’고 느끼던 당시의 통념을 깨는 ‘변안법(飜案法, 기존의 관념을 180도 뒤집음)’을 썼다. 그래서 작자는 물고기를 통해 자신을 투영함으로 제대로 된 본질은 모른 채 자기 식대로 재단하고 평가하여 ‘득의호유우(得意好優游)’라 말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公子王孫擁綺羅 공자와 왕손이 기생을 끼니 要憑嬌唱助歡多 ..
실패와 상상력 목차 2008년 6월 8일 조앤 K 롤링 하버드 대학교 졸업축사 1. 졸업 이후 21년을 살며 깨달은 두 가지 무거운 책임을 지닌 연설에 반비례하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연설 졸업한 이후의 두 가지 깨달음 2. 실패할 수 없는 삶이 두렵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스스로 인생의 운전대를 쥐다 자기만의 실패를 규정하라 3. 실패라는 선물 맘 같지 않게 완전히 실패하다 실패함으로 찾은 마음의 안정 4. 해리포터에 녹여낸 상상력의 기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끔찍한 현실의 한복판에 서서 5.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과 공감능력을 없앤 사람 상상력은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 이해하는 능력 공감을 거부한 사람들이 권력을 휘두르는 세상 6. 우리 안엔 삶을 바꿀 힘이 깃들어 있다 남다른 위치에 서게 될 이..
6. 우리 안엔 삶을 바꿀 힘이 깃들어 있다 열여덟 살 때, 그때는 딱 꼬집어 말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을 찾기 위해서 제가 발을 들여놓은 고전 문학부 건물 복도 끝에서 제가 얻은 수많은 깨달음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의 저자인 플루타르크(Plutarch)의 바로 이 구절입니다. “우리가 내면에서 성취하는 것이 우리 외면의 현실을 바꾸어놓을 것이다.” 정말 놀라운 구절입니다만, 이 말의 진리는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매일 수없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우리와 바깥세상이 연결되어 있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우리는 그저 우리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남다른 위치에 서게 될 이들이여 좋은 선택하시라 그러면 오늘 하버드를 졸업하는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에 ..
5. 공감능력이 있는 사람과 공감능력을 없앤 사람 20대 초반에 그 일을 하면서 저는 하루도 빠짐없이 제가 얼마나 행운아인지 절실히 느꼈습니다. 민주주의적 절차에 따라 선출된 정부가 나라를 통치하고 국민 누구나 법적 대리인을 선정하고 공개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를 말입니다. 매일매일 저는 권력을 얻고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인간에게 얼마나 극악무도한 폭력을 가하는지 그 증거를 보았습니다. 제가 보고 듣고 읽은 이런 끔직한 내용들 때문에 저는 말 그대로 악몽까지 꾸기 시작했습니다. 상상력은 타인의 처지에 자신을 놓아 이해하는 능력 그러나 동시에 저는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하는 동안, 인간의 선한 면에 대해서 이전보다 더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일하는..
4. 해리포터에 녹여낸 상상력의 기반 상상력의 중요성을 오늘 제가 하고자 하는 두 번째 이야기로 삼은 이유는 삶을 다시 추스르는데 상상력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실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는 아닙니다. 부모님께서 잠들기 전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읽어주시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라는 주장은 제가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옹호합니다만, 제가 경험한 상상력의 가치는 더욱 넓은 의미에서 상상력이 갖는 가치입니다. 상상력은 인간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능력으로 인간은 상상력을 통해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생각할 수 있고 따라서 상상력은 모든 발명과 혁신의 원천입니다. 그러나 상상력의 가장 큰 위력은 우리가 직접 경험하지 않고도 다른 사람들의 경험에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힘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3. 실패라는 선물 졸업한 후 겨우 7년 만에 제 삶은 어느 모로 보아도 대단히 실패한 삶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은 얼마 못 가서 파탄이 났고 저는 졸지에 직장도 없이 자식을 키우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맘 같지 않게 완전히 실패하다 그리고 노숙자를 제외하고는 현대 영국사회에서 더할 나위 없이 가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제 부모님께서 그렇게 걱정하셨던 것, 제가 그렇게 두려워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고, 통상적인 기준에 비추어볼 때 제 삶은 제가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의 삶보다 실패한 삶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실패가 달가운 경험이라고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당시 제 삶은 너무나도 암울했고, 해리포터 성공 후 언론에서 제 삶을 일컬어 동화 같은 인생이라고 했는데, 저는 그런 동화 같은 인생이 제게 찾아오리라고..
2. 실패할 수 없는 삶이 두렵다 제가 마흔둘이 된 지금, 지금 나이의 절반인 스물한 살 졸업식 당시를 되돌아보는 것이 그리 달갑지는 않습니다. 21년 전 저는 제가 품고 있는 야망과 제 가족들이 저에 대해 갖고 있는 기대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으려고 애쓰고 있었습니다. 부모의 기대와 달리 스스로 인생의 운전대를 쥐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오로지 소설을 쓰는 것뿐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하신 제 부모님께서는 제가 갖고 있는 지나친 상상력은 흥미롭고 독특하기는 하나, 주택융자금을 갚고 노후 연금을 모으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여기셨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제가 직업학교에 가기를 원하셨고, 저는 영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모님과 저는 현대..
1. 졸업 이후 21년을 살며 깨달은 두 가지 우선 하버드 대학 측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하버드 대학 졸업식 연설이라는 무척이나 영광스러운 기회를 얻었을 뿐만 아니라 지난 몇 주 동안 연설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체중이 줄어 자연스럽게 다이어트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제게는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저는 호흡을 가다듬고 펄럭이는 붉은 깃발을 흘끔거리면서 제가 최고의 교육을 받은 해리 포터 마법사들 모임에 참석했다고 생각하려 합니다. 무거운 책임을 지닌 연설에 반비례하는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연설 졸업식에서 연설을 한다는 것은 아주 책임이 무거운 일입니다. 적어도 제가 대학을 졸업하던 당시에는 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제가 졸업하던 날 연설을 한 분은 ..
아리랑을 쓰게 된 작가의 말 (2000.4.19. 김제청소년 수련관 강연회 발췌) 1. 아리랑이라 제목을 지은 이유 『아리랑』을 짓게 된 계기 우리의 정감과 함께 한 이리랑 2. 1904년부터 우리의 땅을 마구 사들인 일본인들 우리의 쌀이 군량미로 1904년에 이미 실제적인 한일합방이 되었다 3. 욕의 본향이 전라도가 된 이유 전라도와 욕 판소리는 욕의 승화 우리의 욕이 일본에선 현실? 4. 일본인 거주민들보다 2배나 많았던 친일파 토지조사 사업은 빌미 일본 정착민보다 많은 친일파와 식민통치 연장 5. 민족 공통의 역사를 반쪽만 가르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다 전체를 보게 하려 의도된 소설 역사교사ㆍ교수 비판과 역사복원의 소명 6. 해방(解放)이 아닌 사변(事變) 소설 끝부분에 다룬 이야기의 전말 전군도로..
6. 해방(解放)이 아닌 사변(事變) 여기서 땅을 뺏기고 도저히 살 수가 없어서 1차로 비어 있는 땅, 만주, 그때 비어있었으니까. 그쪽으로 찾아서 남부여대(男負女戴), 아새끼들 들쳐 업고 바가지 올리고 머리에 이고 짐 지고 그리고 두만강 압록강을 건너갔습니다. 그 다음 2차로 중국과 전쟁이 붙으면서 독립군들을 방어하기 위해서 왜놈들이 강제로 경상도ㆍ전라도 두 군데 사람들을, 농민들을 몰아가지고 열차에 싣고 갔다 퍼다 두었습니다. 그래서 특별촌을 만들어서 250명 단위 500명의 특별촌을 만들어서 거기에서 농사짓게 하고 감시하고, 그들이 지은 농사는 100% 착취하고, 먹을 것 세끼만, 죽만 먹게 하고 나서는 저희 군량미로 관동군의 군량미로 썼습니다. 그들이 와 있다. 분명히 여기에. 그 전라도 사람들이..
5. 민족 공통의 역사를 반쪽만 가르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다 통일적으로, 또 한 가지 우리가 분단이 되었는데 분단된 이후, 해방 이후의 역사만을 서로 대립된 상황 속에서 사회주의에 대한 관심 못 갖게 하고 쪼금 관심 가지면 빨갱이로 몰아서 죽이고, 이런 식의 역사를 산 게 아니고, 현재의 입장 속에서 식민지 역사까지도 그런 식으로 반토막을 냈습니다. 그러니까 식민지에서 우리 민족이 투쟁한 것은 민족주의자만 투쟁한 게 아니고 사회주의자들도 함께 투쟁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회주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을 교과서에서 완전히 지워서 없애버렸어요. 그러다가 보니까 우리 민족주의 투쟁이라고 하는 것은 청산리 전투, 김좌진 장군의 그것만을 끝나버리고 그 이후에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 것처럼 되어 버렸어요. 이..
4. 일본인 거주민들보다 2배나 많았던 친일파 놀랍게도 왜놈들이 들어와 가지고 1910년에 합방을 하고 1912년부터 시작해서 8년에 걸쳐서 토지조사 사업을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측량기술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해서 우리 할아버지가 지어 먹던 땅, 어느 나무에서 어느 나무까지가 우리 누구 것, 이 정도였죠. 그래 일본놈들이 들어와 가지고서 정확하게 측량을 한다고 해서 ‘임자를 정확히 찾아주겠다’ 이런 명분을 내걸고 토지조사 사업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일본놈들이 홍보를 제대로 하지도 않고, 신고하는, 신청하는 방법도 제대로 가르쳐 주지도 않고 그냥 마구잡이로 실시를 해나갔어요. 토지조사 사업은 빌미 그러다 보니까 결과가 동양척식주식회사라는 걸 만들어서 농토를 관리하는 회사를 만들었는데, 땅..
3. 욕의 본향이 전라도가 된 이유 그때 당시에 농민이 90% 그러니까 조선시대부터 시작해서 일제시대가 되기 전까지, 조선이 멸망되는 그 순간까지 끝없이 이 땅은 착취의 땅이죠. 지주가 1차 착취하고, 2차로는 국가가 착취하고 그 이중의 착취 속에서 500년을 시달려 왔고, 500년만 시달려 왔겠습니까? 그 전 고려시대, 백제시대 이렇게 올라가면 3,000년을 시달려온 착취의 땅이 됩니다. 전라도와 욕 그래서 조선시대에 뭐라고 하고 나왔냐 하면 ‘욕의 본향이 욕의 본 고향이 전라도다’ 그런 말이 나왔습니다. 왜? 전라도 사람이 욕을 그렇게 잘하냐? 친한 친구도 “야, 시벌놈아”지 아들보고 “오살육시(五殺戮屍)하네. 지리산 호랭이가 콱 물어갈놈 저놈”. 자기 아들 보고 그래요. 딴 도(道) 사람들은 이해를..
2. 1904년부터 우리의 땅을 마구 사들인 일본인들 1902년부터 일본놈들이 부산으로 상륙하고 그 부산으로 상륙한 놈들이 누구냐면 일본 군대의 우리말로 하면 소위나 중위 계급을 단 놈들이었습니다. 우리의 쌀이 군량미로 그들의 일개 부대가 전부 사복을 입고 들어와 가지고 조선 사람을 앞세워서 돈을 엄청나게 뿌려가면서 쌀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부산에서 진주를 통해서 바로 김제땅으로 들어와서 쌀을 모았어요. 그때 당시의 쌀 한가마니가 3원 50전 정도 했습니다. 그때 4원, 4원 50전을 주고 쌀을 샀어요. 그때 김제쌀을 전부 다 일본말로 도리를 모아 잡았어요. 그것을 군산앞 바다에서 배로 실었습니다. 뭐 하러 실었겠어요? 그게 바로 청일ㆍ러일전쟁, 청일전쟁에 이긴 일본이 러시아와 전쟁을 했어요. 그래서..
1. 아리랑이라 제목을 지은 이유 『아리랑』을 쓰기 위해 김제를 처음 온 게 지금부터 11년쯤 됩니다. 그때 『태백산맥』을 써놓고 단 하루도 쉴 새 없이 바로 『아리랑』의 취재를 시작했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아리랑』을 쓸려고 계획했던 것이 1980년 그러니까 『태백산맥』을 쓸 생각을 하면서 함께 작정을 했고 그때 이미 아리랑이라는 제목을 정해놨었습니다. 『아리랑』을 짓게 된 계기 왜 그랬냐하면, ‘작가로서 이 땅에 태어났는데 나는 어떠한 작품을 가지고 내 작가 생애를 살아갈 것이며, 이 시대에 태어난 작가로써 사명을 다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이 땅이라고 하는 의미는 우리 민족처럼 근대사 100년을 사는데 파란만장하고 핍박과 설움과 억압 속에서 산 민족이 없다. 그렇다면은 이런 땅에서 소설..
사람여행 목차 발길 닿는 대로 사람을 찾아 떠난 여행 1. 떠나기까지 1.10(월): 여는 글, 선언문 길의 가능성 국토종단과 사람여행의 차이 1.10(월): 사람여행에 대해 정의하기 갑작스럽되 예정된 사람여행 과정으로써의 사람여행을 바라며 곱지 않은 시선과 불안을 인정할 때 비로소 길이 보인다 3.06(일): 두 번째 떠나는 도보여행의 비판에 대한 해명 가까이 있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기에 떠나는가? 거리를 둘 때 비로소 파랑새를 알게 된다 국토종단과는 다른 경로로 여행을 떠나려는 이유 걸은 만큼 그 만큼 나의 삶이 된다 3.15(화): 생각대로 살기 위해 떠나다 듣기 좋은 말이, 실천하긴 어렵다 사람여행, 나를 전면에 내세우고 가는 여행 3.16(수): 바람 불고, 우박이 떨어져도 날기 위해선 날갯짓을..
닫는 글, 공감능력이란 숙제를 안고 길에서 살아간다 2011년 3월 28일에 부산으로 떠나면서 시작되었던 사람여행은, 4월 30일 김제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다. 한 달의 시간을 오롯이 밖을 돌아다니고 헤매며 가능성을 탐구하고, 나란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09년의 국토종단과 11년 사람여행의 차이 작품 하나가 만들어졌다. 건빵 주연, 건빵 각본, 우연한 연출쯤 되는 작품이다. 난 이 작품을 한마디로 정의해 보련다. ‘사람여행 34일과 21명의 인연선(因緣線)’이란 제목이 제격이다. 순간순간 깨어있는 감성으로 다가가고 맘껏 느끼진 못했다 할지라도, 그 시간들을 가슴속에 새기고 기록을 남겼다는 건 대단한 일이라 자평하고 싶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해 무언가를 만들 듯 정성을 다해 만들었다. 하지만 곰..
안녕! 사람여행, 안녕! 문화여행 지금 내가 걷는 길은 26번 국도길 ‘번영로(누굴 위한 번영인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유명한 길이다. 전주-군산간 자동차 전용도로가 생기면서 이 길은 거의 잊혀졌다. 번영로를 걸으며 역사를 생각하다 이 도로로 걷기 전에만 해도 2차선 도로이며 차들이 별로 다니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이 도로로 들어서니 시외버스도 많이 다니고 차량의 통행 대수도 많더라. 내 기대가 깨졌지만 이 길로 걷는다는 게 의미가 있었다. 이 길은 역사적인 길이다. 일제시대 때 쌀 반출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기획했던 도로이기 때문이다. 이 길에 대해 시대상을 알고 싶은 사람에겐 『아리랑』이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길가에 심어진 벚꽃도 그런 이유 때문에 예사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군..
사람여행의 마지막 여정 깼다 잤다를 반복했다. 새벽 기도 후에 좀 더 누워있다가 6시 반에 일어났다. 밖에 비는 오지 않고 바람만 심하게 불고 있었다. 더 누워 있어봤자 잠은 못 자고 뒤척일 것 같았고 비가 오기 전에 여행을 끝내는 게 좋을 것 같아 부랴부랴 짐을 챙겼다. 준비가 끝나고 문을 열자마자 바람이 어찌나 센지 문이 저절로 열어젖혀 지더라. 힘을 다해 문을 닫고 마지막 여정을 시작했다. 오늘은 호남제일문이 있는 곳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갈 예정이다. 호남제일문은 차를 타고 지나면서 봐왔던 터라, 걸어가면서 보면 색다른 기분이 들 것이다. 단양 시내를 벗어날 때도 단양임을 알리는 팻말이 있었는데, 그곳은 나와 상관없는 곳이라 별 느낌이 없었는데, 그때와는 다른 느낌일 것이다. 바람을 벗 삼..
마지막 여행일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는 이유 지금 시간은 새벽 3시 27분이다. 마지막 날이니 설레여, 감회가 특별해서 깨어났냐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오늘은 내 인생에 있어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한 달이 넘도록 진행했던 사람여행을 마무리 짓는 날이니 감회가 없을 수 없다. 새벽에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잠에서 깨다 하지만 아무리 유일하다 해도 달콤한 잠까지 물리치며 일어날 이유는 없다. 실상 이유는 딴 곳에 있었으니 말이다. 두둥~ 그건 바람에 흔들거리는 컨테이너 박스 이야기였던 것이다.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고 아는지. 모래 위에 지은 누각을 말한다. 기초가 없이 그냥 지은 집이기에 약간의 바람만 불어도 위태위태할 뿐만 아니라 순식간에 무너진다. 그런데 뜬금없이 왜 이런 이야기냐고? 오늘 내가 그 ..
아픔이 스민 호남평야와 아픔이 키운 군산을 걷다 군산시청 근처를 걷고 있는데 점심 시간이 되었다. 그때 눈에 딱 중화요리집이 보여서 들어갔다. 들어가서 삼선볶음밥을 시켰는데 처음엔 “1인분은 안 되요”라고 말하더라. 쟁반짜장 같이 애초에 2인분으로 나오는 음식의 경우에 이런 말을 듣는 건 이해가 되지만 볶음밥이 1인분이 안 된다는 건 처음 들어봐서 당황했다. 그래서 뻥찐 상태로 다른 메뉴를 찾고 있으니, 주방과 속닥속닥 얘기하며 해주겠다고 하더라. 삼선볶음밥이 이렇게 귀한 음식인 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막상 기다렸다가 먹는 보람은 있었다. 밥알 하나하나가 기름코팅도 잘 되었고 해산물도 풍부했으니 말이다. 아픔이 스민 호남평야와, 아픔이 키운 군산 점심을 먹고 배가 부른 상태로 걷는 기분이 정말 좋다. ..
새만금에 삼성이 투자한다는 희소식이 들리다 군산에 오면 이성당이란 빵집에 가고 싶었다. 대형 제과점 일색인 풍토에서 지역 제과점이 살아남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뉴스감이었고 식빵이 맛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확인하고 싶었다. 이성당아 다음에 보자 그런데 사람들에게 위치를 물어보고 나서는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왜냐 하면 이성당은 군산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어 거의 10㎞를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군산에서 하루 머물 생각이었다면 중심지로 들어가 숙소를 정하고 근대 유적지를 관광하는 것도 괜찮았을 것이다. 내일은 어떻게든 여행을 마치고 싶은데 오늘 군산에서 묵게 되면 내일은 무려 37㎞를 걸어야 하니 너무도 강행군이 될 것 같아 오늘은 이성당만 들러 야채빵을 사서 점심으로 먹고 익산으로 빠질 생각..
한 달만에 전북으로 복귀하다 오늘, 그리고 내일이면 한 달간의 대장정이었던 이 여행도 끝난다. 걷는 것도 좋았고 낯선 장소를 헤매는 것도 좋았다. 여행이 끝나면 좋은 점, 그리고 아쉬운 점 하지만 잠자리를 구하러 불안에 떨어야 하고 몹쓸 존재가 된 느낌으로 거부당해야 하는 건 싫었다. 초반엔 그런 것마저 태연히 넘길 수 있었는데 여행기간이 길어지고 피로도가 높아질수록 심한 압박으로 느껴졌다. 그건 내 맘 속에 여유가 점점 없어졌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어쨌든 여행이 끝나가며 기쁜 한 가지 이유는 잠자리를 구하는 힘듦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편안한 내 방에서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이 두 다리 쭉 펴고 자도 된다고 생각하니 그게 행복할 뿐이다. 하지만 딱 그만큼만이다. 그것 외엔 모든 게 아..
교회에서 신세를 졌으니 교회에 다녀야죠 오늘은 많이 걷지 않고 바로 서천읍에 들어왔다. 재림교회에 찾아갔으나 당진에서처럼 난처한 표정을 지으시더라. 교회에 낯선 사람을 들이기가 그렇게 힘들다고 하시며 거절하셨다. 지금껏 여행하면서 여러 교회를 지나쳐 왔지만 흔쾌히 승낙해주는 경우도 있었고 오늘처럼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들어주기에 어려운 부탁인 양 완만하게 거부하는 경우도 있었다. 낯선 사람을 들일 순 없다 그렇다면 다시 묻겠다. 남을 자게 해주는 일은 쉬운 일인가, 어려운 일인가? 이것 자체가 쉬운지 어려운지는 어디까지나 목회자의 마음가짐에 달린 일이라고 서산 부석면으로 걸어갈 때 얘기했었다. 이처럼 생각에 따라 쉬운 일도 어려운 일이, 어려운 일도 쉬운 일이 될 수 있으니 케바케(case by case..
비인해수욕장 길을 따라 가며 희망을 꿈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재보선 결과부터 봤다. 과연 정권 심판인가, 옹호인가? 최대의 관심 지역이었던 성남과 강원도에서는 심판을, 김해에선 옹호를 했다. 이 정도면 어느 정도 파장이 있을 듯싶다. 재보선 결과, 희망을 꿈꾸다 하지만 정작 나의 관심이 집중된 곳은 순천이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배출되었기 때문이다. 호남에서 비민주당, 그것도 민주노동당 의원이 당선되었다니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남에서 민주당의 신화가 깨져야만, 그래서 진보 정당도 당선될 수 있어야만 혁명의 지역으로서 내실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동안 영남에서 한나라당에 몰표를 줬고 그에 따라 영남 위주로 지역 발전을 시키자 호남은 반대급부로 줄곧 민주당만을 뽑았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영..
거절을 못하는 사람 잠자리를 구할 때 대부분의 경우는 바로 승낙을 해줬다. 하지만 거절을 당할 땐 내상을 입어 좌절하게 됐다. 부탁하는 입장에선 아무래도 거절당한다는 게 힘들게 걸어와 쉬고 싶은 마음을 꺾는 것이기에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내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 외에 부탁을 들은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로 하겠다. 부탁을 들은 입장에선 당연히 승낙을 할 것인가, 거절을 할 것인가의 두 가지 선택지로 나뉜다. 하지만 좀 더 깊게 들어가 보면 ‘거절을 하고 싶은데 승낙을 하는 경우’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마음과 행동이 다르게 나온 경우일 텐데, 왜 이런 경우가 생기는 걸까? ‘거절의 심리학’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거절하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
대천을 지나며 유령아파트를 보다 그러고 보니 오늘은 4.27 재보선이다. 강원도 영월을 지날 때, 강원민방 라디오를 들으며 강원도민이 얼마나 이 선거에 관심이 많은지 엿볼 수 있었다. 4.27 재보선에 대해 지금껏 강원도엔 보수의 바람만 불었었다. 아무래도 접경지역이다 보니 북한의 이슈에 가장 민감한 곳이며 그에 따라 반공(反共)을 중시하는 보수당을 찍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작년 지방선거에선 도지사와 교육감 모두 보수 계열의 인사를 뽑지 않는 이변을 연출했었다. 그러니 올해 재보선 선거에서 강원도지사에 대한 관심사가 높은 건 당연하다. 호남이 늘 경상도에 비하면 소외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가장 많이 소외된 곳은 누가 뭐라 해도 강원도였다. 바로 그런 소외감이 작년 지방 선거에서 분출된 것이리라...
덤으로 하는 여행 지금부터 하는 여행은 덤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병에 걸리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후 ‘이제부터 나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 생각하며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종교에 귀의하여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지금껏 받아온 것을 환원하기 위해 봉사하며 살기도 한다. ‘덤’이란 생각 자체가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요인이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덤으로 하는 여행도 기존에 해왔던 여행의 방식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하겠다는 것일까? 자린고비가 아닌 진정 즐기는 여행으로 지금까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배고픔과 추위, 거절의 부담도 끌어안은 채 여행을 했다. 최대한 돈을 쓰지 않으려..
시작만큼 중요한 제대로 된 마무리를 위해 이젠 여행에 완전히 적응됐다. 걷는 것도 좋고 낯선 공간ㆍ낯선 사람을 만나는 것도 좋다. 뚜렷한 목표 없이 맘껏 걸으며 먹고 싶은 것도 먹는다. 진정 여행다운 여행이란 마주치는 환경ㆍ상황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리라. 여행은 완성을 지향하지 않는다. 미완성의 반복일 뿐! 그런 면에서 난 아직도 여행을 제대로 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금씩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여행의 맛도 알아가고 그에 덩달아 인생의 맛도 느껴가는 것이겠지. 여러 번의 실패를 통해 조금씩 성공에 가까워지듯, 여행도 여러 여행의 경험을 통해 참다운 여행의 맛을 느끼게 되는 걸 테다. 그러므로 완벽한 여행을 하겠다며 앞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