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단계의 지평
우리의 논의를 다시 한 번 총체적으로 점검해본다면, 제1단계인 예수의 생애의 시대는 말씀 그 자체의 지평이다. 제2단계인 바울의 서한문시대에는 신의(神義)적 지평이 깔려있다. 제3단계인 공관복음 시대에는 역사적 지평을 새롭게 발견해내었다. 제4단계의 시작인 제4복음서 요한복음은 복음이라는 형식을 이탈하지 않으면서도 공관복음서와는 다른, 복음서에 대한 해석의 지평을 제공했던 것이다. 요한복음은 복음인 동시에 복음의 해석(Interpretation of Gospels)이다.
제1단계 Stage Ⅰ |
BC 4 ~ AD 30년경 | 예수의 생애 | 말씀의 지평 |
제2단계 Stage II |
AD 48 ~ AD 68년경 | 바울의 서한문 | 신의적 지평 |
제3단계 Stage III |
AD 70 ~ AD 90년대 | 공관복음서 | 역사의 지평 |
제4단계의 시작 Stage IV |
AD 100년경 | 요한복음 | 해석의 지평 |
상기의 도표에서 제2단계와 제4단계는 기실 상통하는 측면이 있다. 내가 바울에 대하여 ‘신의적’(神義的)이라는 말을 쓴 것은, 그는 구체적인 역사적 예수를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간의 의로운 관계설정의 결정적 계기로서 예수를 발견하고, 신의 아들로서 추상적으로 예수를 이해하고 그 실존적 의미만을 철저히 추구해 들어갔다는 맥락에서 내가 쓰고있는 어휘이다. 요한복음도 어떤 의미에서는 철저히 철학적이며 사변적인 우주론을 깔고 예수를 접근해 들어갔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삶보다 요한의 해석의 틀이 선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공관복음서와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마가로부터 누가에 이르기까지 공관복음서는 어디까지나 예수의 삶이 선행하며 그에 대한 해석은 듣는 이, 읽은 이로 하여금 저절로 우러나오게 만든다.
그렇다면 요한의 연역적 방법은 매우 위험할 수도 있다. 예수의 실상(實相)이 요한의 해석의 틀에 갇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시대의 헬라세계의 지성인들은 요한과 같은 걸출한 사상가의 해석적 틀을 갈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의 족보는 이러하니라’하고 출발하는 마태복음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하고 출발하는 요한복음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요한시대의 교양인들은 이미 마태복음적 이야기 전승으로는 그들의 지적ㆍ종교적ㆍ예술적ㆍ문화적 취향을 만족시킬 수 없었던 것이다. 요한복음은 짙은 철학적 사색을 도배질하면서도 기실 공관복음서가 노리고 있는 모든 케리그마적 성격을 더 드라마틱하고 더 선명하고 더 실존적으로 듣는 이의 가슴에 와닿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의 위대성이다. 사실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는 요한복음기독교라 해도 과히 어긋나는 말이 아니다. 우리나라 교회 정문에 걸려있는 대부분의 성구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진리’ ‘빛’ ‘생명’의 모든 어구가 요한복음으로부터 인용되고 있는 것이다.
▲ 에베소의 이 대극장은 지금도 연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는데 음향이 완벽하다. 2만5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 항구로(Harbour st.)의 동편끝에 있는 이 극장은 사도 바울의 시대와 요한의 시대에도 있었던 것이다. AD 41~117년 사이에 기존의 헬라건축을 로마인이 재건축 한 것이다. 사도 바울도 바로 이곳에서 설교를 하였을 것으로 사료된다. 에베소의 수호신 아르테미스 여신을 지키려는 사람들과 바울과 그를 따르는 크리스챤들이 출동하여 극장에서 대소동을 벌린 사건이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되어 있는데, 바로 그 현장이 이 대극장이다.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도 바로 이런 극장에서 군중을 움직일 수 있는 지력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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