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국론, 제도론 - 2. 교육보수주의의 실상
2. 교육보수주의의 실상
보수와 진보의 학교론, 가치론
앞서 나는 보수 교육철학과 진보 교육철학의 진리에 대한 관점을 절대적ㆍ상대적, 고착적ㆍ역동적, 선재적ㆍ상황적인 시각의 차이로써 규정한 바 있다. 그렇게 되면 선(善)에 대한 인식에 관해서도, 불변의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는 보수주의자들은 학생의 행동이나 습관 그리고 그 평가방식에 대해서도 절대적인 선악의 기준을 선재적으로 전제할 것이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모든 가치는 시대의 변화와 그때마다 등장하는 인류의 욕구에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하며 영구적인 선악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학교의 존재이유에 관해서도, 이성주의적 입장에서 명료하게 규정하며, 가정환경이나 도제체제로써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집단적 탁월한 지적 능력을 개발하는 것으로써 자만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엘리트주의를 낳는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학교에 궁극적이고도 최종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는 없다고 보며, 그것도 지성의 개발보다는 전인발달이나 개인의 발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 흔히 생각하기로 정자세로 앉아 미동도 없이 한 시간을 버텨내는 것을 교육이라 생각하기 쉽다.
한국적 보수의 진면목
이러한 논의를 끝없이 전개할 수도 있겠으나 우선 우리는 한국의 현황적 맥락에서 ‘보수주의’니 ‘진보주의’니 하는 개념의 명료한 근거를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정치에 과연 진정한 보수가 있는가? 그렇다고 쥐뿔개뿔 진정한 진보가 있는가?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한국정치에 보수도 없고 진보도 없다는 것을! 그럼 뭐가 있는가? 그것은 너무도 쉬운 얘기! 오직 기득권에 집착하여 개인의 부귀영달을 꾀하는 승냥이들의 완고한 집단만 있고, 그들의 폭압과 위압에 항거하여 그래도 다수의 민중이익을 방패막이로 내거는 투쟁집단이 있을 뿐이다. 자생의 이즘(ism)의 대결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찬가지로 교육에 있어서도 이즘의 대결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내가 여태까지 ‘진보주의’라고 표현한 것은 영어로는 ‘리버랄리즘’이 되는데, 이 ‘리버랄리즘’은 보통 ‘자유주의’로 번역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유주의’라는 어감은 보수주의의 대칭이 아니라, 곧바로 보수주의의 이론적 보루가 되는 상황이 허다하다.
▲ 자유주의는 나쁜 말이 아니지만,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말로 바뀌면서 '자유민주주의'를 보수의 가치로 외치게 됐다.
한국적 자유주의는 개인주의ㆍ이권주의ㆍ패권주의일 뿐
한국의 자유주의는 국가주의ㆍ시장주의를 표방하는데, 그들의 국가주의는 보편주의적 가치기반을 무시한 철저한 개인의 이권주의ㆍ패권주의의 둔갑형태에 불과하다. 그들이 말하는 ‘국가’는 ‘기존의 이권얼개’일 뿐이다. 한국의 보수주의는 민족주의를 결하며, 친미적 종속주의와 반공론적 분열주의를 결탁시킨다. 따라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 개인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론적 함수를 나열하여 한국의 정치ㆍ교육상황을 범주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면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그렇다면 한국의 교육보수주의란 무엇인가? 이 실체를 명료히 깨닫는 것은 실상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한국의 교육보수주의는 실상 입시교육주의이며, 입시교육에 성공적인 여건을 이미 보유한 기득권자들의 엘리트주의에 불과한 것이다. 그런데 이 엘리트주의의 실상을 깨닫는 데도 몇 초가 걸리지 않는다. 이 엘리트주의의 궁극적 근원은 일제식민지교육에 있었던 것이다.
▲ 교육은 엘리트주의로 입시교육이며, 그 뿌리는 일제식민지교육에 있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