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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7. 당시와 강서시, 그리고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 본문

연재/한문이랑 놀자

소화시평 감상 - 상권 97. 당시와 강서시, 그리고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

건방진방랑자 2021. 10. 27.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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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와 강서시, 그리고 엘리트주의와 다원주의

 

 

소화시평권상 97은 백마강을 둘러보며 백제의 멸망을 바라본 두 학자의 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한 강서시파의 시를 봐야하기 때문에 강서시파의 면모를 좀 더 살펴봐야 한다.

 

호소지는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중국에서 최대한 다듬은 시구를 구사했던 송시(宋詩)의 계열인 황정견과 진사도를 위시한 강서파의 조선 버전이다. 지금은 버전과 같은 영어식의 표현을 쓰는데 익숙해져 있지만, 이 당시엔 조선을 나타내는 해동(海東)’이란 말을 덧붙여 해동강서시파라고 불렸다. 해동강서시파의 멤버를 보자면 거두인 눌재 박상이 있는데 그가 쓴 글이 얼마나 난해한지는 소화시평 권상 73에서 여실히 보았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호음 정사룡, 소재 노수신, 지천 황정욱(호의 앞 글자만 따서 호소지라 불린다는 건 권상 102에서 밝힌 그대로다)

 

그때 강서시파 시가 어려운 이유라는 글을 통해 강서시파의 시가 해석하기에 어려운 이유를 조목조목 밝혔다. 그런데 단순히 이렇게만 생각해보면 강서시파의 시는 어렵기만 하고 하나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글에선 분명히 저런 의도로 썼으니 그런 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하지만 어떤 일이든, 그리고 어떤 사조든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든 이번엔 그때 미처 밝히지 못한 강서시파의 장점, 그리고 그런 사조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조금이나마 밝히도록 하겠다.

 

 

고려 이래 소식의 시를 배우고자 하였으나 소식과 같은 천부적인 기상을 타고나지 않으면, 그 껍질을 모방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소식의 시풍을 넘어서고자 성당(盛唐)의 표상인 이백과 두보, 그리고 두보를 계승한 육유를 배우고자 하였지만, 그 역시 쉽지 않았다. 두보나 이백, 육유의 시가 배우기에는 너무 호탕하고 웅장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여 황정견과 진사도 등 강서시파는 천재적인 재능이 아니라 시법의 연마를 통하여 좋은 시를 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 학습 가능한 좋은 시가 있다면 시단의 움직임이 그리 쏠릴 것은 자명하다. 그리하여 이 땅에 15세기 후반 무렵부터 강서시파를 통하여 시를 배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이종묵, 16~17세기 漢詩史 양상, 2000년 발행 논문

 

 

위의 논문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천부적 자질이란 인식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분명 문학적 자질을 천부적으로 타고 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겐 그 천부적 자질이란 전제가 마뜩잖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거기엔 두 가지나 이미 걸리기 때문이다. 첫 번째 장벽은 천부적이라는 거다. 이건 선천적이라는 말인데, 그렇게 타고 났는지 아닌지는 그가 쓰는 시를 통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두 번째 장벽은 한문이라는 거다. 중국인들이야 자신이 쓰는 말과 언어가 일치하기 때문에 우리에 비하면 훨씬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시로 활용도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조선인들은 배우는 것도 어렵고 그 체계를 체득하기까지 무수히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배운다는 건 인위적인 노력이라 할 수 있고 인위적인 노력이란 결국 천부적인 자질과는 위배되는 아이러니까지 감당해야 한다.

 

 

명나라에서 일어난 강서시파의 열풍이 조선이 불어닥쳤다.    

 

 

이런 상황에서 동방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아무리 난다 긴다 해봐야 천부적인 자질까지 타고나고, 거기에 한문을 수시로 쓰고 있는 그들을 따라갈 순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애저녁에 소식을 배우려던 것도, 당풍(唐風)을 모방하려는 것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런 때 노력을 통해 충분히 경지를 끌어올릴 수 있다는 강서시파가 유행처럼 번진 것이다. 아마도 해동강서시파의 주요 멤버들은 이런 시 학습론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무척이나 반겼을 것이다. 지금도 흔히 얘기하듯 내가 열심히만 한다면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래서 실제로 그들은 시적 연마를 통해 나름 의미 있는 시적 작품들을 써내기 시작했고 충분히 성취를 얻었던 것이다.

 

천부적 자질로 호탕하게 써야 한다는 당시와 배우고 노력하며 수시로 다듬어 써야 한다는 두 가지 시 학습론은 어찌 보면 현재의 교육론에도 맞닿아 보인다. 전자의 교육론은 엘리트주의 교육론으로 원래부터 공부할 놈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조기(早期) 선발해서 공부할 놈은 공부하도록, 나머지는 각자의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소위 ‘10%의 엘리트가 90%의 일반 사람을 먹여 살린다라는 말도 서슴없이 하는 것이다. 그에 반해 후자는 누구에게나 기회는 있고 각자의 시기는 다르다는 생각으로 만기(晩期) 선발을 원하며 만기선발 후에도 언제든 공부할 맘이 생기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누가 누구를 먹여 살리는 게 아니라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일을 함으로 함께 공존하는 거라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이런 식의 논쟁들은 인류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지속될 것이다. 두 가지 관점엔 인류의 이상이자, 현실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이고 그런 양면성이 곧 삶이니 말이다. 이처럼 시 학습에 대한 두 가지 관점도 누가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발전시키고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제 한문을 공부하는 우리의 입장에선 강서시파의 시보단 당시풍의 시가 훨씬 읽기도 좋고 이미지를 그리기에도 좋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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