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굴뚝청소부, 제6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 : 근대 너머의 철학을 위하여 - 5. 푸코 : ‘경계허물기’의 철학, 경계선의 계보학
경계선의 계보학
앞서 우리는 푸코의 기획이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뒤집으면, 그 경계선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려는 힘과 권력이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것은 분명 동일자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입니다. 예컨대 광기와 이성 간의 경계선을 유지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그래서 광인을 가두거나 환자 취급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이 경계선은 결코 유지되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그은 경계선이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해 이성은 그 경계선을 유지하는 기술자들에게 ‘의사’란 직책을 주며, 그것을 위한 담론(談論, discours; 여기서는 정신병리학이란 지식을 말합니다)에 ‘과학’이란 이름을 제공합니다.
나아가 이 담론을 통해 정신병이나 광인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주체’는 오직 의사뿐이며, 광인은 그들이 판단하고 처리하는 대로 따라야 할 ‘대상’이라고 정해줍니다. 정신병원에서 하는 광인들의 얘기는 어떤 것도 미친 소리일 뿐이라는 것이죠.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 잭니콜슨이 간호사에게 여러 가지 항의도 하고 부탁도, 조언도 하지만 간호사는 그 어느 것에도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그건 ‘미친 소리’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의사가 취하는 조치는 심지어 그것이 ‘환자’를 다치게 하거나 얼빠진 사람으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해도 ‘치료’로서 정당화됩니다.
그렇다면 정신병리학이란 담론이 의사와 광인(환자)을 각각 주체와 대상으로 정의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주체와 대상은 담론 안에서, 담론에 의해서 정의됩니다. 또한 정신병리학이란 담론은 의사가 환자에게 취하는 모든 조치를 정당화해 주고, 나아가 그런 조치를 강제로라도 집행할 수 있는 권력을 줍니다. 따라서 담론 안에는, 다시 말해 정신병리학이란 지식 안에는 ‘권력’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지식은 권력을, 그 권력의 행사를 정당화해 줍니다. 반대로 지식 역시 자신의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해 그러한 권력을 필요로 합니다. 필요한 조치를 강제로라도 취할 수 없다면, 정신병리학이 환자들에게 어떻게 과학의 권위를 획득하고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이래서 푸코는 ‘지식-권력’(savoir-pouvoir)이란 말을 합니다. 지식과 권력이 뗄 수 없는 하나의 복합체란 뜻이지요. 결국 ‘담론의 질서’란 담론 자체에 권력이 내장되어 있다는 점뿐만 아니라, 담론 자체가 권력에 의해 작동하며 정당화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른 한편 담론만으로는 이러한 권력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정신병원이나 수용소라는 물질적 장치들이 없다면, 그래서 환자들이 당연히 수용되어야 하고 수용된 환자들에 대해선 어떠한 조치도 ‘과학’의 이름으로 취할 수 있는 제도와 장치들이 없다면, 담론이 제공하는 권력은 무력하게 될 것입니다. 학교라는 제도적 장치, 즉 기존 질서를 가르치며, 그것을 제대로 수행하는가를 끊임없이 감시하고 거기서 벗어날 때면 어김없이 징벌이 가해지는 학교라는 장치가 없다면,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지식이 무력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계보학’이란 이처럼 동일자가 경계선을 긋고 유지하기 위해 작동시키는 권력의 존재를 드러내고 그것이 미치는 효과에 대해 분석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계보학은 또 하나의 비판적 문제설정이라고 하겠습니다. 이는 경계선이 만들어진 역사를 추적하고 침묵의 소리를 들으려는 고고학적 시도와 구분되는 것이지만, 경계선을 찾아내고 허물려는 푸코의 전체적 기획에서 보면 일관된 것이며, ‘고고학적’ 시도를 보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푸코는 감시와 처벌의 역사를 서술합니다. 애초에 지배적이던 것은 공개적인 끔찍한 처형(신체형의 화려함!)이었습니다. 이는 낡은 군주권에 기반한 것이었는데, 인민들에게 강렬한 공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범죄나 모반을 막으려는 일종의 ‘보복’이었습니다. 그러나 18세기 말을 거치면서 이 ‘보복’은 훈육(discipline)으로 바뀝니다. 범죄자 속에서 ‘인간’을 발견한 것입니다. 즉 ‘범죄자도 인간’이란 생각이 대두하면서 이제 인간은 행형(行刑)과 훈육의 새로운 대상으로 떠오르게 됩니다. 여기서는 죄를 범한 개인들을 법적인 주체로, 즉 자기 행동을 책임질 수 있는 인간으로 다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해집니다.
나아가 이들의 신체 운용에 대한 면밀한 통제를 가능하게 하고, 신체를 항상적으로 속박할 수 있으며, 효율적인 순종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으로서 ‘감시’가 발전합니다. 더불어 시간표, 신체와 동작의 상관화, 시간의 철저한 활용, 시험, 제재의 규격화 등등 다양한 훈육의 기술들이 발전합니다. 이로써 감옥은 단순한 처벌권력에서 규율에 의해 법적 주체로 훈련시키는(교정!) 권력으로 전환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통제와 훈육의 기술은 이후 학교와 군대, 공장에서 개인들을 길들이고(훈육!) 통제하는 데 하나의 모델이 된다고 합니다. 이런 뜻에서 그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감옥”이라는 섬뜩한 테제를 제시합니다.
감옥에 대한 연구를 통해 푸코는 이제 권력이 지식-권력으로 존재할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임을 분명히 하게 됩니다. 나아가 성이나 성욕, 성적인 제도와 장치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러한 관점은 더욱 뚜렷해집니다. 이처럼 신체에 직접 작용하고 신체에 새겨지는 권력을 푸코는 생체권력(bio-pouvoir)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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