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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생체권력(Biopower)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생체권력(Biopower)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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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권력

Biopower

 

 

인간을 정신과 신체로 나누는 것이 반드시 올바른 구분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일단 그렇게 나눌 수 있다고 가정해보자. 둘 중 인간의 진정한 면모는 어느 것일까? 정신과 신체 가운데 참된 나라고 볼 수 있는 것은 뭘까? 교과서적 해답은 정신이다. 인간은 이성을 지닌 존재이기 때문에 이성을 관장하는 정신이 진정한 나의 모습이다. 그러나 교과서가 대개 그렇듯이 그것은 비현실적 사고다.

 

 

신체는 일종의 무의식이다. 의식이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듯이 정신은 신체를 경멸하고 억압한다. 그러나 의식이 무의식에 포위되어 있듯이 정신은 신체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심정적으로는 누구나 먹고 입고 싸는 활동을 수행하는 신체를 참된 나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에서는 신체가 정신을 압도한다. 시험장에서 시험관이 라는 수험생으로 규정하는 인간은 나의 정신적 측면이 아니라 신체다. 설사 SF 영화에서처럼 번개를 맞아 나의 신체에 다른 영혼이 들어왔다 하더라도 나의 부모는 나의 정신을 가진 인물 대신 나의 신체를 가진 인물을 자식으로 여길 것이다.

 

신체와 자아가 동일시되는 현상은 현대 사회에서 더욱 강화되고 있다. 범죄를 저질렀다는 기억이 내게 없다 하더라도 내 신체의 흔적인 지문이 범죄 현장에 남아 있다면 나는 꼼짝없이 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지문이 아니라 눈동자의 홍채를 이용한 신분확인 방식도 도입되고 있다. 유전자 번호가 주민등록번호를 대신할 날도 멀지 않았다.

 

 

이처럼 신체가 인간 주체와 등치되는 경향에 힘입어 현대 사회에서는 신체에 작용하는 권력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는 그것을 생체권력이라고 부르고, 범죄자의 처벌방식이 변천되어온 역사적 과정을 생체권력의 관점에서 분석했다.

 

군주제의 시대에 범죄자를 처벌하는 방식은 끔찍한 처형이었다. 이는 범죄에 대한 보복적인 의미와 더불어 백성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키려는 의도를 담고 있었다. 그런데 18세기부터 처벌 방식은 훈육으로 바뀐다. 근대 이성이 문명의 기준으로 확고히 자리 잡은 시기였으므로 이 시기에는 휴머니즘의 이념이 생겨나 범죄자도 인간이라는 사고방식이 형성된다.

 

처형 대신 감시의 수단이 발달하는 것은 이 무렵이다. 이 시기에 공리주의를 주창한 바 있는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은 사방의 감시가 가능한 파놉티콘(Panopticon )이라는 원형 감옥을 제안해서 감옥 개선의 선구자로 꼽혔다. 파놉티콘은 완벽한 감시 사회를 나타낸다. 한가운 데에는 높은 탑이 있고 주변에 원형으로 감옥 건물이 있다. 각각의 감방에는 탑 쪽을 향한 창문이 나 있어 탑에서 항상 감시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는 비인격적인 감시를 뜻한다. 인간이 아니라 감시 체제 자체가 감시를 담당하기 때문에 죄수들은 언제 자신이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이런 감시 하에 죄수들은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교화라는 이름 아래 각종 시험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런 방식이 범죄자만이 아니라 사회 일반에 퍼지면서 인간은 조련되고 개조될 수 있다는 모델화된 인간 개념이 생겨난다. 이는 개인을 규범적 판단으로 통제하고, 개인의 삶을 이성이 정한 정상성의 규준에 부합시키는 것이다. 푸코는 이것을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이라고 말한다. 근대 이전의 군주권력은 만인이 한 사람의 권력자를 우러러보던 시선을 특징으로 하는 데 반해(스펙터클의 사회), 근대의 규율권력은 한 사람의 권력자가 만인을 감시하는 시선을 특징으로 한다(감시 사회), 감시의 목적은 단순히 개인을 규제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성의 규범에 동질화시켜 권력에 순응하는 종속적 인간을 만드는 데 있다.

 

현대 사회에서 생체권력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방식은 과거처럼 물리력에 의한 강제나 강요가 아니다.

권력의 강제는 물리적일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생체권력은 계산되고 조직화되어 기술적으로 행사되며, 물리력을 사용하지 않고 공포를 주지도 않는 교묘한 방식으로 신체를 통제한다. -푸코, 감시와 처벌

지상에 있는 자동차 번호판까지 식별할 수 있는 인공위성들이 지구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오늘날, 전 세계는 하나의 원형 감옥일지도 모른다. 이런 끔찍한 상상에 비하면 오웰의 빅브라더는 오히려 순진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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