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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우(惺牛)로 다시 태어나다
경허의 웃음은 이제 범부의 웃음이 아니었습니다. 이 순간 경허는 자신의 새로운 법명을 ‘깨달은 소’ 즉 ‘성우(惺牛)’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리고 ‘맑디맑은 빈 거울’이라는 뜻으로 법호를 ‘경허(鏡虛)’라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법명, 법호가 모두 스스로 새로 지은 것이죠. 이것은 실로 조선불교의 새출발을 의미하는 사건이었습니다.
자~ 여기 명료하게 풀어야만 할 명제가 하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의 병폐가 한문을 명료하게 따져 읽고 해석치 못하고 두리뭉실 적당히 자기류의 해석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보통 경허의 오도에 관해 말하는 것을 보면 ‘콧구멍이 없는 소’ 운운해버리는데 ‘콧구멍이 없는 소’라는 것은 SF영화에나 가능한 가상일 뿐, 실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콧구멍이 없으면 숨을 쉴 수가 없고, 그것은 생명체가 아니죠. 생명의 상징, 기준이 곧 ‘숨’이요, 숨이 곧 ‘기회’ 입니다. 기는 곧 엘랑 비탈(élan vital, 생명의 飛躍)이죠.
문제는 이 진사가 ‘콧구멍 없는 소’라고 말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암 스님의 경허행장에 있는 원어를 그대로 풀지 않고 썼습니다.
“어찌하여 말하지 아니하느뇨? 소가 될진대 비공을 뚫을 곳이 없는 소가 되면 그만 아니냐라고[何不道, 爲牛, 則爲無穿鼻孔處].”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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