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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 로고스의 성육신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 로고스의 성육신

건방진방랑자 2022. 3. 3.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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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고스의 성육신

 

 

요한은 복음서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유행화된 예수님 말씀 = 하나님 말씀의 도식에서 말씀만을 추상화시켜서 마치 그것이 독자적인 생명력을 갖는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표현했다. 따라서 예수라는 역사적 지평은 평범한 인간의 족적이 아니라, 그 말씀, 그 로고스가 인간의 육신의 옷을 입고(Incarnation) 나타난 존재라는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1:14)

 

 

그런데 그 말씀은 태초에 있었다.’ ‘태초라는 것은 물론 시간에로의 진입을 의미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태초에 있었다시간과 더불어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유대교적인 창조론의 발상을 전제로 할 때는 말씀은 시간과 더불어 있었지만 동시에 시간 너머, 시간이 있기 이전에, 우리의 시간인식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었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은 인간의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요한문학(Johannine Literature)의 한 작품이라고 불리는 요한1서를 잠깐 보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4:12)

 

 

요한은 말한다. ‘여태까지 이 지구상의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No man has ever seen God. RSV), 요즈음 우리나라에는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신도들을 등쳐먹는 대규모의 사교종단만 해도 37개나 된다고 한다. 어떻게 이름 석자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일 수가 있는가? 하물며 하나님을 본 사람도 있을 수 없거늘. 하나님을 본다고 하는 것, 하나님을 만난다고 하는 것은 시간ㆍ공간 내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내의 사물을 만지고 보듯이 감각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그러한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시간ㆍ공간을 초월해 있다. 시공을 초월한 존재에 대하여 우리는 일상적 인식을 가질 수 없다. 우리의 일상적 인식은 시공내에만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인용

목차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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