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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근대철학의 문제설정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근대철학의 문제설정

건방진방랑자 2022. 3. 23.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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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철학의 문제설정

 

 

지금까지 근대철학은 주체라는 범주를 신으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대상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성립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분리와 동시에 발생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의 일치, 혹은 정신과 육체의 일치라는 문제가 그것입니다. 이처럼 대상에 일치하는 인식을 진리라고 했으며, 진리가 바로 근대철학이 도달해야 할 목표였음 또한 보았습니다.

 

이것이 근대철학의 문제설정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만들어지자마자 곧 딜레마(벗어날 수 없는 곤란)에 빠지게 됩니다. 예컨대 주체가 인식한 것이 대상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다시 말해 진리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보증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생각보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조금 우회하도록 합시다.

 

여러분 가운데 자기 얼굴을 모르는 분 있습니까? 예상대로, 아무도 없군요. 그럼 다시 하나 질문을 하지요. 여러분들 중에 혹시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이 있습니까? 역시 아무도 없군요. 그런데 아무도 자기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다면서, 어떻게 모두 다 자기 얼굴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마 여러분은 거울이나 수면에 비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고 말하겠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거울에서 본 게 자기 얼굴인지 어떻게 알지요? 그게 자기 얼굴이라고 판단하려면, 이미 자기 얼굴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자기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습니다. 즉 자기 얼굴이 어떤지 미리 알고 있지 못합니다. 만약 거울을 처음 본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 거울에 대고 말을 걸었을 게 틀림없습니다. 그게 자기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나 자신은 거울에 비치는 대상입니다. 거울은 그 대상을 비추는 주체지요. 거울에 비치는 대상()과 그걸 비추는 거울(주체)이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나와 거울만 가지고는 알 수 없습니다. 혹시라도 누군가가 옆에서 보고는, “거울에 비친 모습하고 네 얼굴하고 똑같다고 말이라도 해준다면 모를까.

 

결국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되는 대상이란 두 개의 항()만으로는 인식한 게 대상과 일치하는지 아닌지, 진리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진리는 주체가 확인하고 보증할 수 있는 게 아니며, 그렇다고 대상이 확인하고 보증해 줄 수 있는 건 더욱 아니란 말입니다.

 

비슷한 이야기가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옵니다. 굴뚝 청소부가 두명 있었습니다. 그 두 명이 각각 굴뚝 청소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굴뚝 하나는 깨끗했고 다른 하나는 더러웠기 때문인지, 한 명의 얼굴은 까맣고 다른 한 명의 얼굴은 하얗습니다. , 그러면 누가 얼굴을 씻으러 갈까요? 다 아시겠지만, 더럽고 검은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아니라 깨끗하고 흰 얼굴의 굴뚝 청소부가 얼굴을 씻으러 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더러운 상대편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얼굴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면 난점이 뭔지 좀더 분명해졌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인식주체 대상)만으로는 내 얼굴이 어떻다는 판단과 실제 내 얼굴의 상태가 일치하는지 아닌지 확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얼굴이 더럽다는 판단을 한 게 사실과 정반대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위의 두 가지 이야기는 똑같은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딜레마는 인식주체와 인식대상을 나누고, 양자가 일치하는 게 진리라고 한다면, 어떤 지식이나 인식이 진리인지 아닌지는 결코 확인할 수도 없고 보증할 수도 없다는 난점을 가리킵니다. 그게 일치하는지 아닌지 확인해 주는 제3예를 들면 신 가 없다면 근대철학으로선 이 딜레마를 벗어나는 게 불가능합니다. 주체가 신에게서 벗어남으로써 발생한 근대철학의 원죄인 셈입니다.

 

이 딜레마는 근대철학에 고유하게 나타납니다. 중세에서는 그러한 문제가 제기되지 않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 나라는 존재가 무엇인가? 이것은 창조론이 설명해 줍니다. 또 무엇이 진리인가? 어떤 게 진리인가? 그것은 계시론이 보증해 줍니다. 또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것은 성서 혹은 계시진리를 따라 살아가면 되는 것이었고, 이를 전하는 교회와 성직자의 말에 따르면 충분했습니다. 이것이 곧 진리를 실천하는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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