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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근대철학의 딜레마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과 굴뚝청소부, 제1부 철학의 근대, 근대의 철학 - 1. 데카르트 : 근대철학의 출발점, 근대철학의 딜레마

건방진방랑자 2022. 3. 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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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철학의 딜레마

 

 

그런데 데카르트주체선악과’(善惡果)를 따먹은 겁니다. 신으로부터 독립한 거죠. 그렇다면 독립된 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 새로이 대답해야 합니다. 이것이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분과를 만들어냅니다. 또한 예전에는 신의 계시에 의해 보증되었던 주체와 객체의 일치가, 신으로부터 독립함과 동시에 불확실하고 알 수 없는 게 됩니다. 이제 철학은 주체가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지, 인간의 인식능력이 어디까지 인지를 대답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인식론이라는 분과가 성립하게 됩니다. 그리고 삶의 유일한 잣대였던 신의 계시 대신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를 재는 잣대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것이 가치론혹은 윤리학’(‘도덕론’)입니다.

 

이리하여 데카르트 이래 존재론, 인식론, 가치론이라는 근대철학의 세 가지 분과가 성립하게 됩니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인식론의 문제이고 진리의 문제였습니다. 왜냐하면 신으로부터 독립해도 좋은 것인지, 그러한 능력이 인간에게 있는 것인지를 입증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주체가 신에게서 독립하려면 그럴 수 있는 최소한의 능력, 즉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게 없다면 신에게서 독립하는 것은 너무도 무모한 짓이 될 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근대철학에서 중심적인 문제는 대개 인식론적인 형태로 제기되며, 인식론이 가장 발전하게 됩니다.

 

신에게서 독립하려는 이 근대철학자들에겐 등대불 같은 하나의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갈릴레이에 의해 본격적으로 급진전되고 있었던 과학혁명이었습니다. 과학자들의 얘기를 통해 세상은 이렇다성경의 말씀은 사실과 다르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오히려 신의 말씀이 아니라, 실제의 세계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게 진리에 이르는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신학 없는 철학, 신에게서 벗어난 주체(인간)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 과학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근대철학의 가장 뚜렷한 특징이 과학주의가 되었다는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것 같습니다. 철학자들은 모두 스스로 과학자가 되려고 했으며, 모든 지식은 과학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즉 근대철학은 과학이란 위성을 가지고 주체/진리란 범주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과학주의가 근대철학의 딜레마를 해결해 주진 못합니다. 왜냐하면 과학이 도달해야 할 목표점이 진리라면, 어떤 지식이 과학인지 아닌지는 과학 자신이 확인하고 보증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이란 지식 역시 주체/진리라는 범주가 야기한 근대철학의 딜레마에 빠져들어가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분명한 것은 주체와 대상 사이에, 진리를 판단해 줄 어떤 절대적 존재로서 제3자가 없다면 양자의 일치(진리)를 보증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제3자 역시 진리의 보증자가 되려면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절대적 재판관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데카르트는 결국 다시 신을 끌어들였던 것입니다. 나중에 보게 될 버클리나 헤겔도 다시 일종의 을 끌어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떻게 보면 근대철학이라고 하는 문제설정, 즉 주체와 대상을 나누고 양자의 일치를 목표로 하는 철학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해결해야 하지만 그 안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근대철학의 딜레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근대철학이 부닥칠 또 하나의 딜레마가 있습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유아론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이 자리에는 100명 정도의 사람이 있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주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러한 다수의 주체들이 모여서 동일한 것에 대해 상이한 판단을 했을 때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가, 그리고 그것을 누가 보증하느냐 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첫번째 딜레마와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극단적으로는 유아론, 내가 알고 있는 것만이 진리이고 진리는 주관적이다라는 견해로 나가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데카르트가 주체를 신에게서 떼어내었을 때와의 생각과는 달라지는 것이죠. 이는 사실 대상과 일치하는 진리를 하나로 확정하지 못한다는 딜레마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그 딜레마의 이면인 셈입니다.

 

이후 근대철학은 이 문제(일치의 문제)를 풀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을 보여줍니다.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바로 이 딜레마로 인해 매우 다양한 인간의 사고영역이 개척됩니다. 근대철학은 이 딜레마의 궤도를 따라 운행하는 기차였던 셈입니다.

 

 

거울과 반성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비너스(Venus). 벨라스케스는 미인의 등만을 보여준다. 정말 미인 맞나? 미인 앞에는 거울이 있고, 그 거울 안에 희미하게 미인의 얼굴이 보인다. 비너스는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 그러나 그게 자기 얼굴이란 걸 알고 있을까? 나르키소스는 그걸 몰랐다. 그래서 물에 비친 제 얼굴을 사랑하다 물에 빠져 죽었다. 바보짓? 아니다. 여러분은 자신의 얼굴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럴 줄 알았다.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거울에 비친 모습이 내 얼굴이란 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더구나 내 얼굴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걸 말이다. 벨라스케스는 나르키소스의 비극을 피하기 위해, 거울 옆에다 천사를 한 명 앉혀 두었다. 아마도 그 천사가 말하겠지. “이게 네 얼굴이야.” 비너스의 얼굴도 볼 수 있고, 거울에 비친 것도 볼 수 있는 자만이 진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자리에 천사가 아니라 악마를 앉혀 두었다면? 그가 말하는 진실을 믿어야 할까? 결국 거울을 보는 우리에겐 항상 천사나 이 필요하다. 진실을 보증해 줄 존재가,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인식하는 라는 주체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게 진리인지 대체 누가 확인해 줄 것인가? 그래서 신이 죽었다는 지금도 많은 사람이 신이 없으면 불안해 하며, 신을 대신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는 게 아닐까? ‘진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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