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입국론, 제도론 - 3. 교육보수주의와 식민지 멘탈리티
3. 교육보수주의와 식민지 멘탈리티
한국의 보수는 식민지 멘탈리티의 연속태
우리 국민이 가난하고 힘없고 부당하게 억압받던 일제식민지시절! 그나마 구한말로부터 시작하여 경술국치(庚戌國恥) 이전까지 짧은 신교육의 각성기가 있었지만, 그 꿈은 산산이 좌절되었다. 독자적인 폴리테이아(πολιτεία, 플라톤이 『국가』라는 책에서 ‘정부의 형태’라는 의미로 씀)의 주체기반을 갖지 못한 우리 민중에게 있어서 교육을 받아 신분의 상승이나 확보를 성취할 수 있었던 유일하고도 확고한 길이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거나, 법대를 가서 법관이 되는 것이었다. 의사가 되면 돈 잘 벌고 일경에게 정치범으로 몰리지 않고 별 탈 없이 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었고, 법관으로 임관되는 영예를 누리게 되면 일본인과 거의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는 착각 속에 살 수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우리 사회에 집요하게 만연하는 의대ㆍ법대병, 특히 경성제대 후신인 서울대에로의 집착병은 바로 이 식민지 멘탈리티의 완고한 연속태로써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다.
▲ 모든 교육의 가치가 서울대로 집약되고 그게 모든 가치를 점유하는 세상. 그 근본엔 식민지교육이 자리하고 있다.
식민지교육의 정체: 독립하면 안 된다
식민지교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독립을 가르치지 않고 영원한 의존과 굴종을 가르치는 것이다. 식민지교육은 식민지의 신민(臣民)을 가르치는 것이다. 누구든지 테라우찌(寺內正毅, 1852~1919: 육군 대장. 초대 조선총독)의 입장이라면 이 원칙을 당연히 고수했을 것이다. 그런데 독립을 가르치지 않는 것이 과연 교육이냐? 내가 기르는 닭을 보아도 병아리의 교육은 오직 병아리가 독립하도록, 다시 말해서 독자적인 삶을 스스로 살 수 있도록 환경과 싸우는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 도올에게 봉혜는 선각자처럼 깨달음을 주는 존재였다.
최근 고교 사회과목에서 헌법지식과 독자적인 삶의 판단의 방법론을 강화하는 건강한 교과서를 만드는 커리큘럼 개선의 시도가 있었다. 그런데 헌법을 학생들이 배워 헌법정신을 통하여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초적 법률적 지식을 갖는 것조차도 공포스럽게 생각하는 세력에 의하여 그러한 노력은 좌절되었다. 역사교과서의 문제도 가급적인 한 다양한 역사해석을 가능케 하는 격조 높은 차원에서의 사관의 확대에 신경을 쓰기보다는, 일제강점기의 모든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저급한 역사기술을 강요하려 했다. 사실 일제시대사 뿐만 아니라 조선왕조사의 기술만 보아도 아직도 매우 판에 박힌 조잡한 사관에 머물러 있다. 국사는 이러한 이념적 논쟁의 희생물이 되어 필수과목에서 탈락하는 비운을 겪고 있다. 도대체 자기역사를 필수로 가르치지 않고 무엇을 가르치겠다는 것인가?
▲ 하나의 역사만을 가르치려는 치졸함. 그대로 생각이 고정될 거란 어이없음.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와 박정희 대통령의 교육헌장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을 우리가 보수와 진보의 대결이라는 언어로써 규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조선민족의 독립을 두려워하는 식민지교육의 완고한 연속상에 불과한 것이다. 1886년 10월 30일에 반포된 메이지 천황의 “교육칙어(敎育勅語)”를 보라! 모든 학문적 성취와 덕성이 오로지 “천양무궁(天壤無窮)의 황운(皇運)을 부익(扶翼)하는 것”으로 구조 지어져 있다. 그리고 뒤이어 이러한 진술의 내용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절대적 진리이며, 천황 스스로 신민(臣民)들과 더불어 실천할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1968년 12월5일 박정희 대통령 이름으로 반포된 ‘국민교육헌장’은 거의 동일한 사상구조와 언어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반공 민주정신에 투철한 애국 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이며, 자유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 굴종과 희생의 정신만을 강요하는 국민교육헌장은 한 시대의 병폐일 뿐만 아니라, 만고의 역적이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