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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 국제도시 예루살렘과 성전정화사건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1장 요한복음과 로고스기독론 - 국제도시 예루살렘과 성전정화사건

건방진방랑자 2022. 3. 3.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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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도시 예루살렘과 성전정화사건

 

 

그러나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의 사역을 과감하게 갈릴리중심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겨버렸다. 이왕 예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헬라세계 사람들에게는, 강원도 양양 해변에서 활동한 사람이라는 것보다는 역시 서울(首爾)특별시를 무대로 활동한 사람이라고 제시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세 번의 유월절을 보낸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공생애를 보통 3(AD 28~30)이라는 시간 길이로 설정할 수 있게 된 것이다첫째번 유월절 언급은 2:13. 둘째번 언급은 6:4에 있으나 이것은 전후 맥락으로 보면 갈릴리 가버나움 부근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이 유월절은 5:1유대인 명절과 관련하여 같은 시점으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세 번째 언급은 11:55.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무수히 여행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요한복음에는 2:13, 5:1, 7:10, 12:12의 네 차례 예루살렘 여행이 명시되어 있으나 요한은 예수의 행보의 시ㆍ공적 배열을 근원적으로 무시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네 차례라는 직선적 시간배열이 무의미하다.

 

텍스트비평하는 사람들은 가퉁(Gattung)이라고 하는 작은 양식적 단위에만 관심을 집중시키기 때문에 복음서라고 하는 전체의 유기적 특성을 망각한다. 요한복음은 일차적으로 요한복음의 저자 자신의 시각과 의도, 가치관과 인식체계 속에서 분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는 갈릴리와 예루살렘을 자유롭게 왕래한다. 다시 말해서 예루살렘 입성과 성전 뒤엎음이라는 최종적 사태를 향한 직선적 시간배열은 요한에게는 근원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다. 예수는 더 이상 갈릴리 촌놈이 아니다. 요한의 시간은 평면적 직선이 아니라 입체적 복선이다.

 

요한복음에서 공관복음서와 다른 가장 충격적인 기술은 예루살렘 성전에서의 뒤엎음이라는 성전정화(The Cleaning of the Temple)라는 사건을 복음서의 막장이 아닌 초장에 배열했다는 사실이다. 마가복음의 저자는 성전정화야말로 메시아비밀의 결정적 드러남이라는 대사건으로 설정하고 그 사건에서 결정적으로 예수의 수난의 계기가 주어졌다고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텍스트비평가들이 요한복음에서 성전정화사건이 막장이 아닌 초장에 등장하는 것에 대해 곤혹감을 느끼고 편집비평의 메스를 가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참으로 가소로운 지성의 유희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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