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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0장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 한 사람의 열독을 위한 서한양식이 아니다 본문

고전/성경

기독교 성서의 이해, 제10장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 한 사람의 열독을 위한 서한양식이 아니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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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열독을 위한 서한양식이 아니다

 

 

누가는 이렇게 새롭고도 체계적으로 집필한 예수의 복음서를 데오빌로(Theopilus, 테오필로스) 각하에게 보낸다고 밝히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데오빌로 각하께서 읽고 여태까지 예수에 관하여 얻어 들은 바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려 한다는 것이다.

 

여기 과연 테오필로스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에 관하여 여러 논란이 있어왔다. 분명 각하’(크라티스토스)라는 존칭이 붙어있는 것을 보아 그는 분명 로마의 고위직의 어떤 인물이었을 것이다. ‘각하라는 존칭은 사도행전에서 헤롯 아그립파 1세의 딸 드루실라와 결혼한 유대지방의 로마 총독 벨릭스(Felix, 펠릭스, AD 53~60 재직)와 그의 후임자인 베스도(Festus)에게 붙여지고 있다 (23:26, 24:3, 26:25). 혹자는 누가가 안티옥 교회를 중심으로 활동한 사람이기 때문에 데오빌로는 안티옥 교회의 부자였으며 누가의 복음서집필을 재정적으로 후원한 로마 사람이라고 말한다. 혹자는 데오빌로는 도미티안 황제(AD 81~96 재위)의 조카며 상속자인 플라비우스 클레멘스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의 아내 도미틸라는 황제의 친척이었으나 그리스도교신앙 때문에 순교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추측일 뿐 아무런 근거가 없다.

 

만약 이 복음서가 로마의 고관에게 기독교의 기원과 발전을 상세히 기술하여 이해시키려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면 로마관리들에게 불리한 기술들, 예수의 재판이나 반로마적 감정을 자아내는 상황들이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는 강력하게 기독교옹호론적이다. 누가는 과연 나사렛의 예수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서 동시에 예수의 제자가 된다고 하는 문제가 과연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테마를 집요하게 추적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은 누가복음이나 사도행전과도 같은 방대한 저술이 로마 고관 1인의 열독을 위하여 집필되었다고 하는 가설 그 자체가 너무도 터무니없다는 것이다. 누가복음은 1차적으로 초대교회에서 낭송되기 위한 목적으로 집필된 원고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것이다. 대중을 위한 케리그마(kerygma, κρυγμα) 문학양식이지 한 사람의 열독을 위한 설득용의 서한양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명백한 사실과 저자인 누가 자신의 언급을 어떻게 조화시켜야 할까?

 

근대철학의 아버지, 르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근대를 열었다고도 할 수 있는 방법서설(Discourse on the Method)을 처음 출판할 때(1637) 익명으로 했다. 지금 보면 두려울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당대의 분위기로서는 떳떳하게 이름을 거는 것이 매우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뒤로 4년 후에(1641) 1철학에 관한 명상(Meditations on First Philosophy)을 출판했을 때 그 서문을 보면 매우 장황스러운 헌사가 붙어있다. ‘파리대학의 성스러운 신학패컬티의 박사님들과 학장 각하님께.’ 그리고 그의 과학과 형이상학에 관한 견해를 압축시킨 철학의 원리(The Principles of Philosophy)를 출판했을 때도 매우 장황한 헌사가 붙어있다. ‘신성로마제국의 선거권 제후이시며 팰러타인 백작이신 보헤미아의 왕, 프레데릭의 큰 따님, 가장 고요하신 엘리자베스 공주 각하님께.’ 임마누엘 칸트도 그의 유명한 종교철학 저술, 이성만의 한계 속에 머물러야 할 종교(Religion fithin the Limits of Reason Alones)(1793)를 출판하고 나서 프러시아의 왕프레데릭 윌리암 2세에게 엄청나게 혹독한 야단을 맞았다. 그리고 더 이상 종교에 관한 언급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근세에도 이랬는데 기독교를 탄압하던 로마세계를 향해서 붓을 든 누가는 어떠했을까? 데카르트가 헌사를 당대의 유력한 사람들에게 바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려고 한 것과 같은 작전이 누가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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