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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감정(Emotion)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감정(Emotion)

건방진방랑자 2021. 12. 1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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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Emotion

 

 

더 좋은 말은 등이 곧고, 사지가 말끔하고, 목이 길고, 매부리코에다, 털이 희고, 눈이 검다. 성공하려는 결의를 지녔으나 자제력과 남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조절할 줄 안다. 한마디로 정말 멋진 말이다. 이 말에게는 채찍질이 필요 없고 소리로 전하는 명령만으로 족하다. 다른 말은 등이 구부러졌고, 몸집이 지나치게 큰 데다 사지가 못났고, 목이 짧고 굵으며, 얼굴이 넓적하다. 털은 회색이 섞인 검은색이고, 눈은 충혈되어 있다. 과잉과 허식을 대표하는 말이다. 귀 주변에 털이 나 있어 소리를 잘 듣지 못하며, 채찍과 당근을 함께 사용해도 다스리기가 어렵다 플라톤(Platon), 파이드로스(Phèdre Φαδρος)

 

자제력을 가지고 통제에 잘 따르는 말은 이성을 상징하며, 탐욕스럽고 제멋대로인 말은 감정을 상징한다. 이렇게 감정은 처음부터 못난 말로 취급되었다.

 

철학은 이성을 바탕으로 한다. 플라톤은 순수이성으로 존재의 진정한 실체(이데아)를 꿰뚫어볼 수 있다고 믿었고,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는 이성을 종교에서 벗어난 근대 철학의 확고한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헤겔(Hegel, 1770~1831)은 절대이성이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여겼다(절대정신), 그러나 그 철학자들도 인간에게는 이성만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다.

 

 

인간은 이성과 더불어 감정도 가지고 있다. 사실 인간에게는 이성보다 감정이 더 원초적이고 직접적이다. 먼저 괴로운 감정을 느끼고, 그 다음에 지금 내가 왜 괴로운지를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이성의 활동이 뒤따른다. 하지만 전통적으로 철학에서 감정은 이성에 비해 심한 푸대접을 받았다.

 

상식적으로 이성은 객관적이지만 감정은 주관성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런 탓에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399)는 처음부터 인간의 감정을 믿지 않았다. 또 플라톤(Platon, BC 427~347)은 감정을 북돋는 예술(특히 음악)을 철저히 검열해야 한다면서 국가를 이루는 세 집단 - 지배자, 전사, 생산자 - 중에서 맨 아래층 생산자 집단의 특징이 감정에 휩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종교가 지배한 중세에도 신학자 - 철학자들은 감정이 신앙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고 보았으며, 근대 철학자들은 이성을 관장하는 정신과 감정에 이끌리는 신체의 이원론을 정립하면서 역시 감정을 이성에 비해 저열한 것으로 비하했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성과 감성의 대결이 두 사람이 가리키는 손가락에 드러나 있다.

 

 

이런 뿌리 깊은 지적 전통에 균열을 낸 것은 18세기 말에 나타난 낭만주의(浪漫主義, romanticis). 프랑스혁명으로 인간의 개성이 중시되면서 유사 이래 처음으로 차가운 이성보다 뜨거운 감정이 더 환대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성이 거둔 빛나는 성과 - 산업혁명, 과학기술의 발전 - 에 가려 감정은 또다시 철학의 주제에서 탈락하고 만다.

 

감정이 철학의 진지한 주제로 복권된 것은 이성의 막강한 힘이 여러 가지 문제점을 드러내면서부터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인 액턴(Lord Acton, 1834~1902)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absolute power corrupts absolutely)”고 설파했듯이 최고의 권좌에 오른 순간부터 이성은 타락하기 시작했다. 지성과 도덕의 원천이자 전가의 보도인 줄 알았던 이성은 현란한 빛만큼이나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산업혁명과 자본주의상품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했고 문명의 각종 이기를 낳았으나 그 그늘에서는 혹심한 착취와 경제적 불평등, 국제적 갈등이 암 세포처럼 자라났다. 급기야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비극인 세계대전까지 발생했다.

 

이런 현상에 대한 현대 철학자들의 해법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정신으로 이성의 부작용을 이성의 힘으로써 치유하자는 입장이고, 다른 하나는 이성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고 인간의 또 다른 측면인 감정의 힘을 되사리자는 입장이다. 전자는 이성의 비판적 기능을 복원하는 데 치중하며, 후자는 그동안 이성이 해왔던 역할을 감정으로, 그 중에서도 특히 욕망으로 대체하고자 한다.

 

 

 

 

 

 

인용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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