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기토
Cogito
Cogito ergo sum(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철학의 제1원리, 즉 출발점으로 삼은 이 말은 철학의 전 역사를 통해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이 큰 문장이다. 여기서 비롯된 코기토란 원래 동사의 형태지만 철학적 인식을 가리키는 명사처럼 사용된다.
코기토란 cogitare(생각하다)라는 라틴어 동사의 1인칭이며, (re)cognize나 (re)cognition 같은 영어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데카르트는 원래 프랑스어로 “Je pense, donc je suis”라고 썼다가 나중에 라틴어 문구로 고쳤다. 영어로는 “I think, therefore I am”이라고 번역하는데 뜻은 다 마찬가지다.
중세의 신학에서 벗어난 시대, 17세기의 데카르트는 철학이라면 당연히 확실한 토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믿었다. 신이 모든 것을 규정하고 설명해주던 시대가 끝났으니 이제 철학은 출발점부터 새로 다져야 했다.
확실한 토대에서 출발하자! 그러려면 우선 어떤 의심도 견뎌낼 수 있는 자명한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절대로 의심할 수 없는 자명한 게 과연 무엇일까? 데카르트는 이것을 알기 위해 일단 모든 것을 의심해보기로 했다. 이런 그의 추론 방식을 ‘방법적 회의(methodological skepticism)’라고 부른다.
데카르트의 의도는 의심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의심한 뒤에도 무엇이 남는다면 그것이 바로 자명하고 확실한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데카르트는 속임수에 아주 능한 악마가 존재한다고 가정했다. 그런 악마가 있다고 해도 속일 수 없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외부에 관한 인식을 얻을 때 맨 먼저 작용하는 감각일까? 데카르트는 “지금까지 내가 받아들인 모든 것은 감각으로부터 배운 것 -『제1철학에 관한 성찰』”이라는 점을 인정하지만, 감각은 늘 우리를 속일 수 있으므로 철학적 토대가 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그럼 어느 학문보다 원리에 충실한 수학일까? 이것도 아니다. 수학자 출신인 데카르트는 “내가 잠들어 있든 깨어 있든 2+3=5이며, 사각형은 네 개의 변밖에 없다. -『제1철학에 관한 성찰』”고 인정하지만, 수학적 원리 역시 속임수에 통달한 악마라면 우리가 언제나 틀리도록 유도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의심해도 의심할 수 없는 것이 실제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가 누구에게 속는다고 가정해보자. 그 경우에도 속는 내가 없다면 과연 속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또 내가 모든 걸 의심한다고 해보자. 그 경우 의심하는 내가 없다면 과연 의심한다는 일이 가능할까? 더 넓게 보면, 내가 생각한다고 할 때 - 그 생각이 옳든 그르든 - 생각하는 내가 없다면 생각한다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내가 남에게 속기 위해서는 먼저 속는 내가 존재해야 한다. 내가 의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의심하는 내가 존재해야 한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이 진리만은 더없이 확실한 것”이라며 “나는 이것을 철학의 제1원리로서 받아들일 수 있다. -『제1철학에 관한 성찰』”는 결론을 내렸다.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뭐 그리 어렵게 논증하느냐 싶겠지만, 데카르트의 그 결론은 근대 철학의 훌륭한 출발점이었다.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인간은 신의 품에서 벗어났으나 아직 인간의 고유한 무기인 이성을 모든 사고의 토대로 삼지 못하고 있었다. 데카르트가 물꼬를 튼 이성은 이후 철학적으로는 형이상학의 완성을 낳았고 현실적으로는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낳았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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