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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오규 소라이 - 내면에 갇히게 될 위험한 수양론 비판

건방진방랑자 2022. 3. 8.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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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 갇히게 될 위험한 수양론 비판

 

 

소라이가 주희함양 공부만을 비판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는 주희가 제안한 모든 종류의 수양론은 불교의 이론과 다를 바 없는 주관적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태평책(太平策)이라는 소라이의 유명한 글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 구절씩 꼼꼼하게 읽어보도록 하지요.

 

 

옳고 그름을 가리는 논의만 번거롭게 되어버려, 마침내 성인의 도()가 세상에서 정치를 하는 도()와는 완전히 다른 것처럼 생각되었다. 이것은 과연 누구의 잘못인가? () 유학자 무리들은 성인의 도가 천하와 국가를 다스리는 도라는 것을 제쳐두고, 천리, 인욕, 이기, 음양, 오행 등과 같은 신비한 주장들을 앞세웠으며, 지경, 주정, 격물, 치지, 성의, 성심 등과 같은 스님들에게 나 어울리는 것들을 성()의 덕목으로 생각했다. 태평책(太平策)

 

 

천리(天理), 인욕(人欲), 이기(理氣), 음양(陰陽), 오행(五行) 등은 주희가 정초한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의 존재론적 범주들입니다. 반면 지경(持敬), 주정(主靜),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 등은 신유학에서 강조해온 수양의 방법들이지요. 주희의 존재론적 범주들은 소라이가 본연지성과 기질지성이라는 논의를 비판하면서 이미 붕괴시켰던 것들입니다. 주희가 말한 음양, 오행, 인욕은 기나 기질의 범주에 속한다 할 수 있고, 천리는 본연지성, 즉 이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주희의 존재론을 부정하던 소라이가 주희가 제안했던 수양론 역시 거부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지경은 마음을 공경하게 유지하는 공부이고, 주정은 마음을 고요하게 만드는 공부입니다. 이 두 가지는 마음을 명경지수(明鏡止水)처럼 만드는 함양 공부의 한 종류라고 할 수 있지요. 격물과 치지가 어떤 공부인지는 이미 살펴보았지만 간략히 정리해보겠습니다. 외부 사물에 나아가서 그 사물에 내재된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 격물의 공부이고, 이 과정을 통해 내 자신의 앞을 완성하는 것이 치지의 공부입니다. 이때 결과적으로 달성되는 삶이란 내 마음속의 본성에 대한 지식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외부의 이치를 연구하는 공부가 마지막에는 자신의 본성의 이치를 밝히는 공부로 귀결되지요. 한편 성의 공부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지향하려는 내 마음을 성실하게 만드는 공부이고, 정심은 글자 그대로 자신의 마음을 바로잡는 공부이지요. 이렇듯 주희가 제안한 모든 종류의 공부는 기본적으로 소라이가 비판했던 미친 짓에 해당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공부들은 내 마음으로 내 마음을 다스리는수양법이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소라이는 주희의 수양론이 주체 자신의 내면에 갇혀 있는 공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희가 제안한 수양의 방법들을 스님들에게나 어울리는 것들이라고 혹평했던 것이지요. 사실 소라이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주희에게서 시작된 신유학(新儒學, Neo-confucianism)은 유학의 본령이 정치철학에 있음을 은폐했다고 말입니다. 정통 유학자들이 볼 때, 불교는 자신의 내면에 갇혀 가족이나 국가 등 사회 질서를 부정하는 사상입니다. 지금까지 소라이가 주희의 전체 사유 체계를 다각도로 집요하게 공격했던 것도 주희의 존재론과 수양론이 불교의 성격을 농후하게 띠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는 유학자들이 불교 승려가 아니기에, 자신의 내면에 갇히게 될 위험한 수양론을 절대 익혀서는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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