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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선생 중용강의, 서설 - 8. 안타깝게 송나라를 바라보던 주희의 눈망울 본문

고전/대학&학기&중용

도올선생 중용강의, 서설 - 8. 안타깝게 송나라를 바라보던 주희의 눈망울

건방진방랑자 2021. 9. 15.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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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설 8. 안타깝게 송나라를 바라보던 주희의 눈망울

 

 

 

송나라에서 적폐로 인식된 불교

 

그러나 침투한 문명 중 핵심적인 것은 불교였고 그것이 중국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종교이든지 방식이 다를 뿐, 결국 그 주제는 구원일 수밖에 없습니다. 불교에서는 그 구원의 방식이 문명으로부터의 벗어남인 해탈(解脫, enlightenment)이라고 주장합니다. 불교가 말하는 해탈이라는 것은, 인간세의 모든 것이 (, 一切皆苦)이고 그 고()는 집착[]에서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간세의 일에 대한 집착을 끊는[滅執]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라는 것은 윤리로부터 근본적으로 벗어나버린다(transethical)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윤리적인 잣대를 벗어난 원효에게는 요석공주가 있든 없든 마찬가지란 말입니다. 그런데 초윤리적이라는 것이 제대로 될 때는 근사한데, 어설프면 땡중들이 뒷구멍으로는 호박씨나 까면서 밖으로는 자기는 해탈했다고 뻐기면서 돌아다니게 된다는 말입니다.

 

송나라 때 당문명에 대하여 가한 가장 본질적인 비판은 바로 불교의 초윤리적 성격에 대한 것입니다. 인간을 해이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서구의 계몽주의가 가르친 것은 시민의 자유(individual freedom)이고 이런 개별적 자아에 대한 강조가 인간의 삶의 질서를 교란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유사한 현상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온 문제점이 개인주의, 청소년 범죄증가, 인간소외 등인데 수()ㆍ당() 대에도 청소년 범죄증가, 땡중들의 사기행각, 불교의 영향을 받은 관료들의 부패 타락상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과 똑같은 문제이지요.

 

 

불교의 전파는 그 나라를 완전히 바꾸었다.

 

 

 

송나라의 불교와 우리나라의 계몽주의의 공통점

 

송나라 때 사람들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하려다 보니 불교는 화려하고 해탈하고 열반에 들고 하는 것이 멋있기는 하지만 이것 가지고는 도저히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일체개유심조(一切皆惟心造)’라고 해서 마음먹기에 따라서 산도 없어졌다가 나타났다하고, 십이지연기가 어떻고 삼법인이 어떻고, 아홉식[九識]이 어떻게, 하여튼 사고와 언어가 화려하고 복잡하기 그지없어요. 이러한 새로운 사고가 쏟아져 들어오자 중국의 지성인들 거의가 불교에 미쳤습니다.

 

마찬가지로 근세에는 지성인들이 전부 계몽주의에 미친 것입니다. 지금 서양철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거의가 계몽주의에 미친놈들입니다. 서양철학을 다 따라가려면 희랍어도 배워야 하고 과학철학도 배워야 하고 논리학도 배워야 되고 한량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 아무리 해봐야 결국은 성수대교다 이 말씀이야!

 

그러니까 송나라의 지성인들에게 이와 똑같은 문제의식이 있었던 것입니다. 주자라는 사람은 뼈저리게 이러한 문제를 고민한 양심적 사상가였던 거예요. 칼 맑스가 대영제국 도서관을 들락날락하면서 굶주리고, 난로도 못 피우고, 아내와 자식은 병들어 죽는 불행한 처지에서까지 자본론을 쓰다가 죽은 것과 비슷하게 주자는 죽기 전날까지 대학(大學)을 교정보다가 책상에서 죽은 사람입니다. 그는 왜 그러고 있었을까요?

 

 

주희, 그는 이런 위기의식을 어떻게 타파하려 했을까? 그 해답은 바로 사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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