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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 형언도필첩서(炯言挑筆帖序)

건방진방랑자 2021. 11. 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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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 욕망 모두 버리고 일가를 이룬 전문가들

형언도필첩서(炯言挑筆帖序)

 

박지원(朴趾源)

 

 

득실을 맘에 두지 않아 대서예가가 된 최흥효

小技有所忘, 然後能成, 而况大道乎.

崔興孝通國之善書者也. 甞赴擧書卷, 得一字, 王羲之坐視, 終日忍不能捨, 懷卷而歸, 是可謂得失不存於心耳.

 

영욕을 잊고 그림에 몰두한 이징

李澄幼登樓而習畵, 家失其所在, 三日乃得. 父怒而笞之, 泣引淚而成鳥, 此可謂忘榮辱於畵者也.

 

죽을 상황에서도 노래로 감동시킨 학산수

鶴山守通國之善歌者也. 入山肄, 每一闋, 拾沙投屐, 滿屐乃歸. 甞遇盜將殺之, 倚風而歌, 群盜莫不感激泣下者, 此所謂死生不入於心.

 

얽매임 없이 자기의 기술을 연마하라

吾始聞之歎曰: “夫大道散久矣, 吾未見好賢如好色者也. 彼以爲技足以易其生, ! 朝聞道夕死可也.

桃隱炯菴叢言凡十三則爲一卷, 屬余叙之. 夫二子專用心於內者歟? 夫二子游於藝者歟? 將二子忘死生榮辱之分, 而至此其工也. 豈非過歟? 若二子之能有忘, 相忘於道德也. 燕巖集卷之七

 

 

▲ [운영전]의 한 장면.

 

 

 

해석

 

득실을 맘에 두지 않아 대서예가가 된 최흥효

 

小技有所忘, 然後能成,

비록 작은 기술도 망각함이 있은 후에야 성취되는데

 

而况大道乎.

하물며 대도(大道)임에랴.

 

崔興孝通國之善書者也.

최흥효(崔興孝)조선 세종(世宗) 때의 명필로 초서에 뛰어났다고 한다는 나라를 통틀어 서예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甞赴擧書卷, 得一字,

일찍이 과거를 보며 시권을 쓰다 한 글자를 얻었는데

 

王羲之坐視, 終日忍不能捨,

왕희지와 유사하여 앉아서 보다가 종일토록 차마 버릴 수가 없어

 

懷卷而歸, 是可謂得失不存於心耳.

시권을 품고서 돌아왔으니 이것은 득실이 마음에 있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영욕을 잊고 그림에 몰두한 이징

 

李澄幼登樓而習畵, 家失其所在,

이징(李澄)선조 14(1581) 유명한 화가였던 종실(宗室) 학림정(鶴林正) 이경윤(李慶胤)의 서자로 태어났다. 도화서(圖畵署) 화원(畵員)이 되었으며, 산수화에 뛰어났다고 한다은 어려서 누각에 올라 그림을 익혔는데 집에선 그가 있는 곳을 잃어버려

 

三日乃得.

사흘만에 곧 찾았다.

 

父怒而笞之, 泣引淚而成鳥,

아버지가 화내며 매질하니 울면서 눈물을 끌어 새를 그렸으니,

 

此可謂忘榮辱於畵者也.

이것은 영예와 욕됨이 그림에서 잊혀졌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취화선]의 한 장면.

 

 

죽을 상황에서도 노래로 감동시킨 학산수

 

鶴山守通國之善歌者也.

학산수(鶴山守)성명은 미상(未詳)이다. ()는 종친부(宗親府)의 정4품 벼슬이다는 나라를 통틀어 노래를 잘하는 사람이다.

 

入山肄, 每一闋,

산에 들어가 익히다가 매번 한 곡이 끝나면

 

拾沙投屐, 滿屐乃歸.

모래를 모아 나막신에 던져 나막신이 가득 차서야 돌아왔다.

 

甞遇盜將殺之, 倚風而歌,

일찍이 도적을 만나 죽이려 해서 바람 따라 노래하자

 

群盜莫不感激泣下者,

도적떼가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니

 

此所謂死生不入於心.

이것이 사생이 마음에 틈입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얽매임 없이 자기의 기술을 연마하라

 

吾始聞之歎曰:

내가 처음에 그것을 듣고 탄식하며 말했다.

 

夫大道散久矣, 吾未見好賢如好色者也.

큰 도가 흩어진 지 오래라 나는 어진 이 좋아하길 여자 좋아하길 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彼以爲技足以易其生,

그런데 저들은 기술로 족히 삶을 바꿀 수 있다고 여겼으니,

 

! 朝聞道夕死可也.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더라도 괜찮다는 것이로다.

 

桃隱炯菴叢言, 凡十三則爲一卷, 屬余叙之.

도은이 형암총언13칙을 써서 한 권으로 만들고 나에게 서문을 써주길 부탁했다.

 

夫二子專用心於內者歟?

도은과 형암 두 사람은 마음을 내면에만 전용하는 자인가?

 

夫二子游於藝者歟?

두 사람은 재주에서 노니는 자인가?

 

將二子忘死生榮辱之分, 而至此其工也.

아니면 두 사람은 사생과 영욕의 나눠짐을 잊고 재주 있음에 이른 것이라면

 

豈非過歟?

어찌 지나친 게 아니겠는가.

 

若二子之能有忘,

만약 두 사람이 잊는다는 걸 할 수 있다면

 

相忘於道德也. 燕巖集卷之七

도와 덕에서 서로 잊기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 물고기들이 샘물이 말라붙는 바람에 졸지에 육지에 처하여 서로 습기를 호흡하고 입의 거품으로 서로의 몸을 축여 주느라 고생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강과 호수에서 서로를 잊고 지내는 것[相忘於江湖]’이 낫다고 하였다. 연암은 이와 같이 유교의 예악(禮樂)과 인의(仁義)를 모두 잊어버릴 것을 역설한 장자(莊子)의 일절(一節)을 변용하여, 도리어 도에 뜻을 두고 덕에 의거하라는 공자의 말씀을 철저히 실천하는 일 외에 다른 모든 일을 잊어버리라는 뜻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이다를 바란다.

 

 

 

▲ 영화 [님은 먼 곳에]의 한 장면. 노래로 감동시켜 죽을 고비를 넘기다.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한시미학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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