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
손권과 유비의 동맹이 확실해지자, 조조는 더 이상 적들이 크기 전에 확실하게 정벌하려고 한다. 대병을 이끌고 온 것까지는 좋았는데 문제는 양자강이다. 위의 병사는 대부분 북쪽 출신이라 수전에 약하다. 일단은 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대선단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된다. 동맹군이 위를 이기는 방법으로 제갈량(諸葛亮, 181~234)과 주유가 생각한 방법은 화공이다. 그런데 화공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배들이 뚝뚝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는 화공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더 큰 문제는 그 시기가 바람이 오의 진영 쪽으로 부는 계절이었다는 것이다.
앞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방통(龐統, 179~214)이다. 제갈량과 더불어 복룡과 봉추라고 불리며 병법가로 쌍벽을 이루는 명성을 얻던 그 방통이다. 방통은 오나라에 숨어들었다가 탈출하는 위나라의 간첩을 우연히 만난 것으로 가장하고, 그 간첩의 소개로 조조를 만나게 된다. 방통은 위의 군사들이 배 위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하지 못하여 건강을 다치는 병사가 많을 것이라고 하면서, 배들을 쇠고리로 서로 엮어 큰 구조물처럼 만들면 파도에 훨씬 덜 흔들리며 멀미를 하는 병사가 훨씬 줄 것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주유와 방통이 먼저 짠 계략이며, 조조는 이에 넘어가 모든 배를 연결시킨다. 방통 이야기는 나중에 나올 이야기 때문에 해둔 것이니, 이 정도로 넘어가자.
두 번째 문제인 바람 이야기가 유명한 이야기인데, 소설에는 제갈량이 단을 쌓고 천지신명에게 빌어서 동남풍을 불러 해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진짜로 귀신을 불렀을까? 물론 아니다. 제갈량은 어린시절을 그 지역에서 보낸 적이 있다. 또 그때부터 천기(天機)를 관찰하곤 했었다. 즉 가끔씩 바람의 방향이 바뀌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귀신을 부르는 흉내를 냈을까? 주유가 소양인이라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주유는 소양인답게 명예를 중시하고, 자존심을 중시한다. 또 임기응변에 능하고, 결단력이 뛰어나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부르는 것을 보고 주유는 바로 제갈량을 죽이라고 지시를 내린다. 귀신까지 부리는 능력자를 적으로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미리 생각하고 준비했으면 모를까, 순간적으로 동맹국의 2인자를 죽이겠다는 것은 대단한 배짱이다. 음인(陰人)으로서는 도저히 나오기 힘든 결단력이다. 다만 문제는 주유가 그렇게 판단할 것이라는 걸 제갈량이 미리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 주유는 제갈량(諸葛亮, 181~234)을 죽이기 위한 준비를 왜 미리 철저하게 하지 못했을까? 보편에 대한 중시에서 발목이 잡힌 것이다.
제갈량이 “내가 관찰했더니 동남풍이 부는 경우가 있더라. 그때 공격하면 된다”라고 말을 했으면 전혀 이야기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제갈량은 제단을 쌓고 귀신을 불러서 자신이 동남풍을 부르겠다고 했다. 주유가 보기에는 말이 안 된다. 절대로 실패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보다는 제갈량이 귀신까지 부린다는 것을 감성적으로 인정하기가 싫었던 것이었을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이 소양인의 한계다. 자신이 도저히 인정하기 싫은 부분에 부딪히면 과심(誇心)이 떠버리는 것이다. 제갈량이 실패할 것이 확실하니 실패를 빌미 삼아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제갈량은 그걸 교묘히 이용한 것이다. 주유의 과심(誇心)을 이용해서 교묘하게 방심을 시킨 것이다. 그리고 주유가 방심에서 놀람으로, 놀람에서 결단으로 바뀌는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 탈출한 것이다. 그 짧은 순간을 이용해서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탈출 준비는? 물론 확실히 믿는 조자룡에게 시킨다.
뭐, 황개의 고육책 이야기며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있지만 대충 생략하자. 어쨌든 화공은 멋지게 성공을 거두고 조조는 비참하게 퇴각한다. 그 퇴각 과정마다 계속 복병을 만나 모진 고생을 겪는다. 그런데 그 부분에서 조조의 진가가 드러난다. 조조가 복병을 만나는 장면을 보면 복병을 만나기 전에는 꼭 “이렇게 복병을 숨기기 좋은 곳에 복병이 없는 것을 보니, 제갈량이나 주유도 별로 대단하지 않다”라고 큰소리를 친다. 소설의 재미라는 측면에서 보면 복병의 등장을 극적으로 만들고, 조조를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작은 조작이다. 그런데 꼭 그럴까? 조조의 큰소리는 단순한 허풍일까?
비참한 패배, 계속되는 복병. 나심(懶心)이 발동하기 쉬운 상황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포자기(自暴自棄)에 빠진다. 더군다나 패배에 쉽게 자존심이 상하는 소양인은 정말 견디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조조는 자신의 나심(懶心)과 끝까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자신을 격려하고, 부하들을 격려하기 위해 큰소리를 치는 것이다. 스스로와 부하들의 기분을 바꾸고자 결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가장 극적인 장면이 앞에서 말한 화용도에서 관우와 부딪히는 장면이다. 이는 관우와 제갈량의 갈등에서도 가장 극적인 장면이지만, 조조에게 있어서도 그렇다.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이가 타국의 일개 무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목숨을 빈다. 같은 소양인인 주유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장비라면 어땠을까? 나심(懶心)을 극복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해온 조조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조조는 돌아와 며칠 만에 패배의 상처에서 벗어난다.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패배의 책임을 부하에게 돌리는 짓 따위는 전혀 하지 않는다. “이번에는 졌지만, 우리는 가장 대국이니 일승일패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다. 적어도 조조가 살아 있는 한 여러분은 사기가 꺾일 이유가 없다.” 이런 식으로 나라를 추스른다.
소양인은 승부에 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조조와 주유가 매번 제갈량에게 당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어떻게든 제갈량과의 머리싸움에서 이기려 드는데, 제갈량은 조조나 주유가 호승심(好勝心)이 매우 강한 인물이라는 것까지 미리 계산에 넣고 전략을 짜니 당할 수가 없다. 그러나 패배를 받아들이는 자세는 서로 다르다. 주유는 제갈량과의 지략 경쟁에서 계속 지자 결국은 화병에 걸려 피를 토하고 죽게 된다. 조조는 수양의 깊이에 있어 주유보다는 한 수 위다. 패배에서 아주 빨리 벗어나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양인의 재간(才幹)의 표본으로 연구할 만한 대상이다.
적벽대전에서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것이 남았다. 만일 상대가 평소에 존경하던 관우가 아니었더라도 조조가 무릎을 꿇을 수 있었을까? 아무리 수양이 깊고 나심(懶心)을 잘 극복한다 하더라도 역시 조조는 소양인이다. 자신이 인정하지 않는 사람에게 목숨을 비는 것은 쉽지 않다. 전국의 상황을 고려하던, 민중의 삶을 생각하던 조조가 끝까지 저항하면 결국은 죽일 수밖에 없다. 결국 화용도에 갈 수 있는 사람은 관우밖에 없었다. 적벽대전이 유비가 세력을 확대하게 되는 결정적인 기회가 되었지만, 제갈량과 관우 사이는 결정적으로 벌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것이다.
인용
'책 > 철학(哲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애노희락의 심리학, 삼국지 이야기 - 3. 방통과 사마의: 최후의 승자 (0) | 2021.12.27 |
---|---|
애노희락의 심리학, 삼국지 이야기 - 3. 방통과 사마의: 소극적 자세로 주도권 쥐기 (0) | 2021.12.27 |
애노희락의 심리학, 삼국지 이야기 - 2. 장판파 전투와 적벽대전: 조조 (0) | 2021.12.27 |
애노희락의 심리학, 삼국지 이야기 - 2. 장판파 전투와 적벽대전: 장비와 조자룡 (0) | 2021.12.27 |
애노희락의 심리학, 삼국지 이야기 - 1. 관우는 왜 형주에서 죽어야만 했나: 촉의 비운 (0) | 2021.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