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의 당무 거부와 IMF 대처
이런 식으로 나심(懶心)은 주로 작은 집단에서 발생하기에 독자들과 공유할 만한 사례가 좀 드문데, 마음 읽는 공부 하라고 다행이 사회적인 일에서 나심(懶心)을 보인 사례가 있다. YS가 당무(黨務)를 거부하고 고향에 내려가 칩거했던 일을 기억하는지? 3당 합당된 민자당에서 YS가 당대표가 되었는데도 박철언이 끊임없이 견제를 하자 벌어졌던 일이다. 그걸 벼랑 끝 전술이니, 노태우, 박철언이 결국은 굴복할 수밖에 없음을 확신한 정치 9단다운 고단수 술수니 하지만, 꼭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사람은 한 가지 동기나 계산만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법은 절대 없다. 젊은 시절에는 간혹 그런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자세히 알고 보면 꼭 겉으로 드러난 이유가 전부는 아니다. 자신의 행동을 유발한 여러 가지 이유 중에는 스스로 인정하기 싫은 다른 부분들이 끼어 있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부분을 인식하지 못하도록 억제해서 무의식 속에 숨기고 있는 경우다. 더군다나 나이가 들면 이런저런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을 굳이 억제하려고 하지 않게 된다. 따라서 여러 요인이 함께 작용하며, 본인도 이를 아는 경우가 더 많다.
YS의 행동이 계산에 의한 측면이 훨씬 많기는 하나 100% 확신에서 나온 행동은 아니다. 즉 만일 자신이 파업으로도 노태우나 박철언을 굴복시키지 못했을 때에 대한 대비가 있었냐는 것이다. 그럼 그런 큰일을 확실한 대비책 없이 어떻게 했을까? 안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허수아비 당대표 하느니 그냥 벌판에 다시 서겠다는 것이다. 즉 ‘나는 지금 허수아비 취급당하고 있다’라는 마음이 바닥에 깔려 있었기에 그런 행동이 나온 것이고, 이 마음이 나심(懶心)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는 나심이 주가 된 경우는 아니다. 하지만 계산이나 확신이 동기의 90%였다 하더라도 일부는 나심이 발동해서 메워진 것이다.
당무 거부 때의 나심(懶心)은, 권력이 YS에게 집중된 상황이 아니었고, 전체적인 동기에서 나심(懶心)이 작용한 부분도 적었기에 국가적으로 큰 문제는 없었다. 즉 소양인의 나심(懶心)은 공적인 일에서는 크게 문제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 쪽에 해당된다. 그러나 권력이 한 사람에게 집중된 상황에서 그 사람이 나심(懶心)을 보이면, 그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IMF 신탁통치 상황을 피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나서 정권을 넘길 때까지의 YS의 행동을 검토해보자【끔찍해서 별로 회상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기는 하지만】, YS 특유의 순발력이 전혀 발휘되지 않았다는 점이 보이는가? 그때는 김현철 문제에 대해 억울하다는 감정을 느끼면서 이미 나심(懶心)이 조금씩 쌓여가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관료들이 자신에게 거짓 보고를 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나심(懶心)이 폭발해버린 것이다. 그 순간 소양인의 최대 장점인 순발력이 정지되어버린 것이다.
결국 나심(懶心)이란 소양인 특유의 순발력을 잃는 것이다. 반대로 나심(懶心)의 극복이란 순발력을 잃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일을 벌여놓고 마무리가 힘든 상황에서도 순발력을 유지하는 것, 그것을 재간(才幹)이라고 부른다. 우리가 보통 재주가 많다는 뜻으로 사용하는 재간(才幹)이라는 단어다. 물론 소양인의 독행(獨行)을 일컫는 단어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대인의 재간(才幹)이라고 표현한다.
태음인이 일단 벌여놓은 일은 마무리한다는 것은, 처음에 생각했던 방법대로, 익숙한 방법대로 밀고 나가서 완성시키는 것이다. 소양인의 마무리는 구체성이나 특수성에 얽매이지 않는 마무리다. 앞에서 피서 가는 이야기에 좋은 예가 나왔었다. 행선지 가는 길이 너무 심하게 막히면 행선지 자체를 바꾸어버린다. 애초의 목적지에는 가지 못했지만 즐거운 피서라는 근본 목적은 만족시키는 것이다.
이런 능력은 소양인에게 본래 잠재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는 짜증 때문이다. 벌여놓은 일이 꼬이면 일을 벌인 소양인에게 비난이 집중된다. 본인은 억울하다. 자신은 열심히 일했는데 비난까지 받아야 한다면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다. 소양인은 그 순간에 감성적 대응이 먼저 올라온다. 짜증 때문에 사태 해결 쪽으로 집중을 못하는 것이다. 슬슬 ‘나는 왜 이 모양일까?’라는 자기 비하감도 들기 시작한다. 그럴 때 옆에서 “당신이 제일 나아” “당신 밖에 이 사태를 해결할 사람이 없으니 한번 좋은 방법을 생각해봐”라고 다독여주면, 그 순간 나심(懶心)이 극복되고 재간(才幹)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마 YS도 김현철 문제로 비난이 집중되는 상황이 아니었으면 IMF 문제에 대해 더 현명하게 대처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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