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과심(誇心)과 도량(度量) / 소양인의 소음 기운
근거의 문제
소양인의 사심(邪心)과 박통(博通)의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소양인의 사심(邪心)은 과심(誇心)이라고 한다. 자랑하고 과장하는 마음이다. 이 과심(誇心)을 극복했을 때 나오는 박통(博通)은 도량(度量)이라고 한다. 이른바 ‘도량이 넓다’라고 할 때의 그 도량(度量)이다.
과심(誇心)은 소양인이 소음인을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이다. 일단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을 먼저 보자. 과심(誇心)이 뜬 소양인은 자기 말의 근거를 대는 일에 아주 민감해진다. 원래 소양인의 본성은 근거에 크게 관심이 없다. 어떤 주장이나 사실을 들었을 때, 이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준에 안 맞으면 바로 배척하고, 일반적인 기준에 비추어 그럴듯하다 싶으면 바로 받아들인다. 일단 받아들이면 그때는 그것이 자기 생각이고 자기 주장이지, 누구에게 어디서 들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소양인이 평소에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각각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느끼는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논리 전개가 좀 어색하더라도 결론이 만족스러우면, 대부분 관대하게 받아들여진다. 따라서 사람들이 원하는 바를 잘 느끼는 사람은 논리의 엄밀성을 훈련할 필요가 줄어들게 된다. 설사 잘못된 부분이 있어 공격을 받더라도, 순발력을 발휘해서 기분 나빠지거나 어색해지는 일 없이 쉽게 타협안을 찾아낸다.
그런데 소양인이 생각하는 일반론이 부정되는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일이라는 생각에 별로 검토해보지도 않고 자신 있게 주장했는데, 그것이 완강하게 거부당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런 경우를 한 번, 두 번 당하게 되면 결국 소음인의 논리성을 배우려 하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어설프게 흉내 내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소음인이 논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을 보지 못하니까, 근거를 대는 것으로 논리성의 결핍을 보완하려 드는 것이다.
소음인이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자기화하는 과정은 아주 복잡하다. 자신의 기존 논리체계와 부딪힘이 없는가를 하나하나 검토해보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울 때 비로소 자기화한다. 따라서 일단 자기화되어 자신의 논리로 주장할 때는, 혼자 생각해낸 것이나 남에게 들어서 정리한 것이나 별 차이가 없을 정도가 된다.
논리 전개에 끌어들이는 근거 역시 일일이 검토해서 확실한 것만을 취한 것이다. 소음인의 논리가 적절한 근거로 보완될 때는 훨씬 힘을 받게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소양인의 경우는, 논리만이 아니라 근거조차도 일반화에 의존한 것이다. 자신의 일반론이 부정되는 상황에서, 별 생각 없이 그냥 일반화되어 있다고 여겨버린 근거가 설득력을 가질 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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