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나심(懶心)과 재간(才幹)/ 소양인의 태음 기운
나심(懶心)
이제 소양인의 태행(怠行), 독행(獨行)만 설명하면 이론적인 부분은 마무리가 된다. 각 체질별로 사상의 기운을 고루 갖추는 방법과 그 과정에서 빠지기 쉬운 함정에 대한 설명이 마무리되는 셈이다. 자, 시작하자.
소양인의 태행(怠行)을 나심(懶心)이라고 한다. 나(懶)란 게으르다는 뜻이다. 그런데 태행(怠行)이라고 할 때의 태(怠)도 게으르다는 뜻이다. 나(懶)와 합치면 ‘나태(懶怠)’가 되어 ‘게으르다’에 딱 대응되는 한자어가 된다. 각 체질의 사람들이 다른 체질의 인사(人事)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흉내 내는 것을 태행(怠行)이라 부른다. 즉 어설피 알고 대충 흉내 내는 것 자체가 좀 쉽게 해보려는 게으른 짓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독 소양인의 태행(怠行)을 역시 게으름을 뜻하는 ‘나(懶)’를 써서 나심(懶心)이라고 한 것은 나와 태가 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태(怠)에는 ‘업신여긴다’는 뜻이 들어 있다. 가볍게 보고 게으름을 부린다는 뜻이다. 나(懶)는 피곤하거나 늙거나 해서 졸리고 나른한 것, 기운이 없어서 늘어진 것을 의미한다. 태(怠)가 적극적 게으름이라면 나(懶)는 게으름을 부릴 상황에 몰려서 나오는 수동적 게으름이라는 뜻이 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나오는 나심(懶心)이 왜 태행(怠行)이 될까? 그 상황을 피할 수 있었는데, 건방을 떨거나 게으름을 피워서 그런 상황에 몰렸다는 의미다. 즉 소양인이 앞뒤 안 가리고 마구 일을 벌이다가 감당을 못해서 뒤로 나자빠질 때 나오는 것을 나심(懶心)이라 한 것이다. 소양인이 일을 벌이기 전에 미리 헤아려보기를 게을리 하는 태(怠)를 행한 결과가 나(懶)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나심(懶心)은 소양인이 태음인의 행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잘못 흉내 낼 때 나오는 행동이다. 소양인이 보기에 태음인은 확실히 게으르다. 뻔한 일도 바로바로 하지를 못하고 마냥 시간을 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 중이라고 말하는데, 소양인이 보기에는 그렇게 뻔한 것이 뭐 생각할 것이 있나 싶은 게 그저 게으름을 피우며 핑계를 대고 있는 것에 불과해 보인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태음인은 시작할 때 주저한다는 것이다. 내가 감당할 수 있나 없나를 가늠해 보느라고 시간을 들인다. 대신에 막상 시작하고 나면 그 뒤는 주저하는 것이 없다. 끝까지 물고 늘어져서 어떻게든 끝을 낸다. 자기가 할 수 없는 일에 헛심을 쓰는 일은 적다는 것이다. 반면에 소양인은 능력이나 형편을 고려하지 않고 일을 벌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 놓고는 중간에 포기한다. 소양인이 벌여놓은 상태에서 “난 능력이 안 돼”를 외치는 것과 태음인이 시작하기 전에 “나한테 벅차”를 말하는 것이 비슷한 행동일까? 겉보기에는 비슷한 행동이지만 한쪽은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게 되고, 한쪽은 그것이 없다.
태음인도 하다가 힘이 들면 쉬기도 한다. 다른 급한 일이 생기면 하던 일을 뒤로 미루기도 한다. 하지만 태음인이 쉴 때는 머릿속으로 방법을 찾고 연구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또 미뤄두었던 일은 언젠가 마무리한다. 그러나 소양인이 미룬다고 하는 것은 그것으로 그냥 끝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소양인의 나심(懶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일 자체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자신이 하는 것에 대한 포기라는 것이다. 즉 자신은 포기했지만 일 자체는 이뤄져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남을 다그치거나 탓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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