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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오규 소라이 - 정신적 스승 진사이를 비판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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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적 스승 진사이를 비판하다

 

 

한편 성인이 만든 문명 제도를 따름으로써 덕의 개념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던 소라이는 이제 선배 고학자인 이토 진사이마저 공격합니다. 공자까지도 선왕의 아류라고 생각했던 그가 공자를 성인으로 생각했던 진사이를 비판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이토 진사이 선생의 경우도 자신이 덕을 알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주희와 진사이 사이의) 차이점은 단지 본성과 덕이라는 개념의 명칭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또한 진사이 선생은 맹자를 오독하여 사단을 확충하여 덕을 이룬다고 말하기에 이르렀으니, 그렇다면 진사이 선생과 주희가 무엇이 다르겠는가? 변명(弁名)』 「덕육칙(德六則)

如仁齋先生知德自負, 乃爭性與德之名耳. 亦誤讀孟子而至謂擴充四端以成德, 則與朱子何別?

여인재선생지덕자부, 내쟁성여덕지명이. 역오독맹자이지위확충사단이성덕, 즉여주자하별?

 

 

한마디로 진사이는 덕이 가진 정치철학적 의미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소라이가 보기에, 진사이의 관점은 주희의 사유와 마찬가지로 내면에 침잠하는 불교적인 담론으로 보였던 것이지요. 소라이에게 덕이란 선왕이 창조한 문명 제도의 질서를 개체가 수용했을 때 붙일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기도 했던 진사이까지 공격할 정도로 소라이는 자신의 정치철학적 유학 사상의 가치를 확신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소라이의 유학 사상이 공자에서 시작된 유학 사상 전체를 무력화시킬 수도 있는 파괴력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지요.

 

흥미롭게도 이 점을 가장 정확하게 간파하고 있던 사람 역시 정약용이었습니다. 그는 소라이의 논어에 대한 정치적 독해의 위험성을, 그의 제자 다자이 슌다이(太宰春臺, 1680~1747)가 지은 논어고훈외전(論語古訓外傳)을 통해 확인했던 것입니다. 진사이와 마찬가지로 정약용은 공자맹자로 상징되는 선진 유학의 정신을 다시 복원하려고 노력한 유학자입니다. 따라서 그에게 소라이의 유학 사상은 자신의 학문적 목표까지도 붕괴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았습니다. 정약용은 논어고금주(論語古今註)라는 주석서에서 소라이와 슌다이의 정치적 유학 사상과 치열하게 싸움을 벌입니다. 정약용이 일본 고문사학자들과 공들여 논쟁한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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