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정약용 - 형이상학적 유학을 넘어 실천적 유학으로
형이상학적 유학을 넘어 실천적 유학으로
정약용은 주희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매우 좋아했지만, 주희가 말한 미발의 함양 공부나 내면에 깃든 인의예지 본성에 대한 설명은 단호하게 거부했습니다. 이것은 정약용이 공자와 맹자의 인의예지 개념을 다르게 해석했음을 말해주지요. 그는 공자가 말한 인(仁)을 우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고 풀이합니다. 왜냐하면 인이란 한자는 사람 인(人)과 두 이(二)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정약용은 바로 인이라고 정의합니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기로 하지요.
옛 전서에 따르면 인(仁)이란 글자는 인(人)과 인(人)이 중첩된 문자였다. 아버지와 자식은 두 사람이고 형과 동생도 두 사람이며, 군주와 신하도 두 사람이고 목민관과 백성도 두 사람이다. 무릇 두 사람의 관계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古篆仁者 人人疊文也 父與子二人也 兄與弟二人也 君與臣二人也 牧與民二人也 凡二人之間 盡其本分者 斯謂之仁 天地生物之心 干我甚事
고전인자 인인첩문야 부여자이인야 형여제이인야 군여신이인야 목여민이인야 범이인지간 진기본분자 사위지인 천지생물지심 간아심사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하면서 “나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부모에게 효도한다”고 말하거나, 신하가 자신의 군주에게 충성하면서 “나는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으로 군주에게 충성한다”고 말한다면, 아마도 사태의 실정에 대해 상당히 해를 미칠 것이다. 『중용강의보(中庸講義補)』 1:36
爲人子者 孝於其親曰我以天地生物之心 孝於親 爲人臣者 忠於其君曰我以天地生物之忠 心於君 恐於事體有多少損傷
위인자자 효어기친왈아이천지생물지심 효어친 위인신자 충어기군왈아이천지생물지충 심어군 공어사체유다소손상
정약용이 말했듯이, 주희는 공자가 말하고 맹자가 강조한 인(仁)의 관념을 천지의 마음[天地之心], 즉 만물을 낳고 기르는 우주적 마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은 주희가 사람을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서의 인을, 인간적 차원을 넘어선 우주적 지평으로까지 확대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정약용은 이런 시선이야말로 유학의 본뜻을 잃게 할 위험이 있다고 보았지요. 그가 볼 때 인이라는 덕목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각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모습을 일컬을 뿐입니다. 또한 이런 방식으로 친근하게 인을 해석해야 윤리적 실천에 보다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지요. 그래서 정약용은 이렇게 되묻습니다. 도대체 효자가 부모를 섬길 때 어느 순간에 천지의 마음 같은 것을 떠올리는지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하가 군주를 섬길 때도 앞에 있는 군주의 상태만을 생각하지, 언제 천지의 마음을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공자의 유학 사상을 보다 실천적으로 해석하려는 정약용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는 공자의 인(仁) 개념 뿐만 아니라 맹자의 인의예지설도 주희와는 확연히 다른 방식으로 해석합니다. 주희는 인의예지 네 가지 덕목[四德]이 내 마음 안에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다고 말했지요. 그리고 이 덕목들이 밖으로 드러난 네 가지 단서[四端]가 곧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라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사덕이 토대가 되고 이것을 바탕으로 사단이 실현되어 나온 것이라고 본 셈이지요. 그러나 정약용은 주희와는 반대로 해석합니다. 우리가 선천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측은, 수오, 사양, 시비의 네 가지 마음일 뿐이라고 본 것입니다.
朱熹 | 丁若鏞 |
四德(內) →(外現) 四端(外) | 四端 →(擴充) 四德 |
四德: 先天的 理 | 四德: 최상의 도덕적 상태 |
知 뿐 아니라, 行까지 따라야 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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