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본성을 확충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맹자의 유학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는 개념입니다. 맹자는 공자의 유학 사상을 옹호하는 대변인 역할을 자청했던 사상가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맹자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맹자는 공자가 사유하지 못했던 무엇인가를 새롭게 사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인간이 가진 선천적인 동정심, 즉 측은지심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했습니다. 공자의 유학 사상에는 공자가 인간의 선천적인 동정심에 대해 사유했다는 흔적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맹자는 이러한 동정심의 감정을 통해 유학 사상을 새롭게 부각시킵니다. 먼저 측은지심과 관련된 맹자의 유명한 논증을 꼼꼼하게 읽어보도록 하지요.
지금 누구든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상황을 갑자기 보게 되면 모두 깜짝 놀라서 측은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그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고 해서도 아니고, 지역사회의 친구들에게서 칭찬을 바라서도 아니며,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기 싫어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점을 살펴보면, 측은해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 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맹자』 「공손추」
今人乍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非所以內交於孺子之父母也, 非所以要譽於鄕黨朋友也, 非惡其聲而然也. 由是觀之,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금인사견유자장입어정, 개유출척측은지심. 비소이납교어유자지부모야, 비소이요예어향당부우야, 비오기성이연야. 유시관지, 무측은지심, 비인야; 무수오지심, 비인야; 무사양지심, 비인야; 무시비지심, 비인야.
여러분 앞에서 어떤 어린아이가 지금 우물에 빠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깜짝 놀란 여러분은 그 아이를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느낄 것입니다. 보통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보고 즉각적으로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동정심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그 다음 맹자의 이야기가 중요합니다. 그는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즉 측은지심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는지를 논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그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으려는 생각으로 측은지심이 생긴 것은 아닙니다. 둘째, 지역사회의 친구들에게 칭찬받고 싶어서 측은지심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우물에 빠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서 측은지심이 생긴 것도 아닙니다.
첫째와 둘째 논증은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는 우리의 기대에서 측은지심이 출현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그리고 셋째 논증은 어떤 소리를 본능적으로 듣기 괴로워하는 우리의 감각 때문에 측은지심이 출현한 것도 아니라는 점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은 맹자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측은지심이라는 동정심은 우리의 기대나 감각적 요소로부터 출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대하는 생각도 아니고 감각도 아니라면, 과연 측은지심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요? 분명 우리 안에서 생긴 것은 맞는데, 그곳이 어디라고 말해야 할까요? 이점에 대해 맹자는 측은지심이란 바로 우리 내면 깊숙하게 잠재되어 있는 본성[性]에서 생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맹자에 따르면, 측은지심 이외에도 우리 본성에서 직접 유래하는 마음 또는 감정에는 세 가지 종류가 더 있습니다.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입니다. 수오지심은 어떤 행동을 부끄러워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입니다. 누군가가 침을 뱉은 음식을 내게 주었을 때 내가 느끼는 수치심을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나는 이때 쓰라린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와 반대로 다른 사람이 정의롭지 못한 행동을 하는 것을 내가 알아차렸다고 해봅시다. 이 경우에도 그 사람의 행실을 미워하는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수오지심에는 이렇게 나를 부끄러워하고 남의 행동을 미워하는 두 종류의 마음이 모두 포함됩니다. 한편, 사양지심은 어떤 것을 타인에게 양보하려는 마음을 말합니다. 배가 고프지만 애써 구한 음식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마음을 예로 생각해볼 수 있지요. 마지막으로 시비지심은 어떤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따져보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하다고 본능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을 그 예로 생각해볼 수 있지요.
사실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이 개인적인 생각이나 감각으로부터 유래하지 않고 직접 우리의 본성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분명 측은지심의 경우는 위험에 빠진 약자를 보았을 때 즉각적이고 자발적으로 출현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의 사적인 생각이나 감각적 혐오감이 개입될 여지는 별로 없다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의 경우도 과연 그럴까요? 이 세 가지 마음은 우리의 의식적인 생각과 판단이라는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특히 어떤 행동을 부끄러워하거나 어떤 행동을 옳다고 여기는 마음, 즉 수오지심이나 시비지심은 우리의 생각이 가진 반성적 사유 능력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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