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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한글역주, 자장 제십구 - 22. 공손조가 공자를 비난하자, 자공이 공자를 방어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12. 15.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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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공손조가 공자를 비난하자, 자공이 공자를 방어하다

 

 

19-22. ()나라의 대부 공손조(公孫朝)가 자공(子貢)에게 좀 삐딱하게 물었다. “그대의 선생 중니(仲尼)는 누구에게서 무엇을 배웠는가?”
19-22. 衛公孫朝問於子貢曰: “仲尼焉學?”
 
이에 자공이 확실하게 대답하였다: “주나라 문명을 창시한 문왕(文王)과 무왕(武王)의 도()는 아직도 땅에 떨어지지 않아, 사람들 속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다. 현명한 사람들은 그 흐름의 큰 것을 파악할 수 있고, 현명치 못한 자라도 그 흐름의 작은 것들은 파악할 수가 있다. 문무의 도를 가지고 있지 아니 한 사람이 없다. 보라! 부자께서 어디에서든 공부하지 아니 하실 수 있겠으며, 또한 어찌 정해진 선생이 있을 수 있겠는가!”
子貢: “武之道, 未墜於地, 在人. 賢者識其大者, 不賢者識其小者, 莫不有文武之道焉. 夫子焉不學? 而亦何常師之有?”

 

인본주의정신(humanistic spirit)의 확인, 또 재확인! 자공이 스승 공자를 디펜드 하는 방식은 사도 바울이 예수를 디펜드 하는 방식과 너무도 다르다. 자공은 공자를 인간으로서 오랫동안 느껴본 사람이고, 바울은 예수를 만난 적이 없다. 오직 다메섹으로 가는 도상에서 계시로서 만난 것이다. 계시란 신화적 환상이다. 바울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서, 그리고 부활의 주체로서, 그리고 우리 죄의 대속자로서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에게 각인시키고 강요한다. 그의 강요는 초대교회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완벽한 협박적 의미를 지녔다.

 

그러나 자공은 공자의 위대성을 인간들 사이에서 면면히 흐르고 있는 문화전 통 속에서 상식적으로 보편주의적으로 비협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대가 그토록 신봉하는 위대한 공자는 누구에게 배웠는가? 어디서 무얼 배웠는가? 질문자는 이러한 계보를 밝힘으로 해서 공자를 한정시키고 격하시키려는 것이다. 자공이 그것을 모를 리 없다.

 

위대한 시조의 계보를 없애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수법이 동원된다. 난생설이나 동정녀탄생설은 모두 부계사회에서 부계의 한정성을 제거시키는 수법이다. 그런데 요한은 이러한 구질구질한 방법을 쓰지 않고 예수를 막바로 태초부더 존재한 말씀, 즉 로고스의 화신으로 제시한다. 바울도 예수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를 일체 하지 않는다. 실제로 그는 예수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를 몰랐을 수도 있다. 그에게 있어서 예수는 오직 부활의 주체일 뿐이었다.

 

자공은 공자에게는 학문적 계보가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공자가 살면서 만난 모든 인간이 그의 스승이었으며, 그가 삶의 족적을 남긴 모든 장소가 그의 배움의 터전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디서든지 배웠고, 누구에게서든지 배웠다. 이것이 나의 스승 공자의 모습이다. 공자는 외쳤다! 하늘이 이 문(斯文)을 정녕코 버리지 않으신다면 광인() 제깟놈들이 날 어쩌랴[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9-5]. 공자가 말하는 이 문이야말로 어디에든지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는 문명의 기저라는 것이다. 그 기저를 통하여 새로운 사문을 발견한 자! 그것이 나의 스승 공자라는 것이다.

 

예수 자신도 스스로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는 오직 하나님의 지배(the Reign of God)가 이 땅에서 실현되기를 원하는 사상가였고 천국운동가였다. 브레데는 메시아비밀이라는 가설을 통하여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이 없었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러나 슈바이처는 예수 본인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식이 있었으며 그러한 의식은 그의 종말론적 신념을 강화시켜 주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불트만은 브레데의 입장을 지지했고 양식사학이라는 새로운 신학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20세기 말기에 접어들면서 도마복음서의 연구가 활발해지고 큐복음서가 현실로 드러나면서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자의식이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이 입증되었다. 그리고 예수운동(Jesus Movement)’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기독교 이전의 원시예수교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나는 예수나 공자나 신화에서 벗어난 모습으로, 역사 속에서 움직이는 인간 세의 문화의 주역으로 진실하게 재조명되기를 갈망한다. 그리고 조선의 젊은이들이 신화적 환상 속에서 자기 삶의 실존적 가치를 찾는 일이 없기를 소망한다. 역사라는 것만 해도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초월하는 성스러운 것이며, 그것만으로도 초월적 신화가 정립하고자 하는 모든 인간의 가치를 정립하고도 남는다는 것을 깨달아 주었으면 한다. 여기 자공의 말은 진실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공손조(公孫朝)’는 고주 마음에 의하면 위()나라의 대부이다. 자공은 공자 의 사후 여러 나라를 주유하면서 공자의 가르침이 선양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운동도 하고 자금지원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만난 어떤 인물이었을 것이다. ‘공손(公孫)’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 사람이 위나라 공실의 자손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인용

목차

전문 / 본문

공자 철학 / 제자들

맹자한글역주

효경한글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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