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균 - 호민론(豪民論)
가혹한 세금으로 백성을 괴롭히는 정치에 대해
호민론(豪民論)
허균(許筠)
백성의 세 부류
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民之可畏, 有甚於水火虎豹. 在上者方且狎馴而虐使之, 抑獨何哉?
夫可與樂成而拘於所常見者, 循循然奉法役於上者, 恒民也, 恒民不足畏也.
厲取之而剝膚椎髓, 竭其廬入地出, 以供无窮之求, 愁嘆咄嗟, 咎其上者, 怨民也, 怨民不必畏也.
潛蹤屠販之中, 陰蓄異心, 僻倪天地間, 幸時之有故, 欲售其願者, 豪民也. 夫豪民者, 大可畏也.
호민이 틈을 타면 원민과 항민이 따른다
豪民, 伺國之釁, 覘事機之可乘, 奮臂一呼於壟畝之上, 則彼怨民者聞聲而集, 不謀而同唱. 彼恒民者, 亦求其所以生, 不得不鋤耰棘矜往從之, 以誅无道也.
백성을 괴롭혀 나라가 망하다
秦之亡也, 以勝ㆍ廣, 而漢氏之亂, 亦因黃巾. 唐之衰而王仙芝ㆍ黃巢乘之, 卒以此亡人國而後已. 是皆厲民自養之咎, 而豪民得以乘其隙也. 夫天之立司牧, 爲養民也, 非欲使一人恣睢於上, 以逞溪壑之慾矣. 彼秦ㆍ漢以下之禍, 宜矣, 非不幸也.
우리나라 백성들의 특징과 고려의 선정(善政)
今我國不然, 地陿阨而人少, 民且呰寙齷齪, 无奇節俠氣. 故平居雖无鉅人雋才出爲世用, 而臨亂亦无有豪民悍卒, 倡亂首爲國患者, 其亦幸也.
雖然, 今之時與王氏時不同也. 前朝賦於民有限, 而山澤之利, 與民共之. 通商而惠工, 又能量入爲出. 使國有餘儲, 卒有大兵大表, 不加其賦. 及其季也, 猶患其三空焉.
조선의 악정이 순진한 백성들을 들끓게 만든다
我則不然, 以區區之民, 其事神奉上之節, 與中國等. 而民之出賦五分, 則利歸公家者纔一分, 其餘狼戾於姦私焉. 且府無餘儲, 有事則一年或再賦, 而守宰之憑以箕斂, 亦罔有紀極. 故民之愁怨, 有甚王氏之季. 上之人恬不知畏, 以我國無豪民也. 不幸而如甄萱ㆍ弓裔者出, 奮其白挺, 則愁怨之民, 安保其不往從而祈ㆍ梁ㆍ六合之變, 可跼足須也. 爲民牧者, 灼知可畏之形, 與更其弦轍, 則猶可及已. 『惺所覆瓿稿』 卷之十一
해석
백성의 세 부류
天下之所可畏者, 唯民而已.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것은 오직 백성일 뿐이다.
民之可畏, 有甚於水火虎豹.
백성의 두려워할 만한 것은 수재(水災)나 화재(火災)나 호환(虎患)이나 표환(豹患)보다 심하다.
在上者方且狎馴而虐使之, 抑獨何哉?
그러나 윗사람이 늘 함부로 대하고 길들이려 하며 잔학하게 그들을 부리려 하는 것은 유독 왜인가?
夫可與樂成而拘於所常見者,
대저 함께 이루는 것만을 즐겨 항상 보는 것에 구애되며
循循然奉法役於上者,
순수하게 법을 받들고 윗사람에게 부림을 당하는 사람들은
恒民也, 恒民不足畏也.
늘 그러한 백성[恒民]이니, 항민은 두려워할 게 없다.
厲取之而剝膚椎髓, 竭其廬入地出,
사납게 빼앗겨 살갗과 뼈와 골수가 찢기고【박부추수(剝膚椎髓): 한유(韓愈)가 사용했던 말이다. 살을 깎고 골수를 부순다[剝膚椎髓]는 의미로, 가혹한 수탈 정책을 상징하는 말이다】 집의 수입과 땅의 지출을 다 바치며
以供无窮之求, 愁嘆咄嗟, 咎其上者,
무궁한 요구에 맞춰 공급함으로 근심하고 탄식하며 윗사람을 헐뜯는 사람들은
怨民也, 怨民不必畏也.
원망하는 백성[怨民]이니, 원민도 두려워할 필욘 없다.
潛蹤屠販之中, 陰蓄異心,
자취를 푸주간에 감추고 몰래 딴 마음을 품어
僻倪天地間, 幸時之有故,
궁벽한 천지 사이에서 흘겨보다가 요행한 때에 변고가 생기면
欲售其願者, 豪民也.
자신들이 원하던 걸 실현하려는 사람들은 호협한 백성[豪民], 즉 호민이라 한다.
夫豪民者, 大可畏也.
호민(豪民)이라는 사람들은 두려워할 만하다.
호민이 틈을 타면 원민과 항민이 따른다
豪民, 伺國之釁,
호민(豪民)은 나라의 틈을 엿보고
覘事機之可乘,
일의 기미가 탈 만한지를 엿보다가
奮臂一呼於壟畝之上,
팔을 휘두르며 언덕이나 밭 위에서 한 차례 부르짖으면
則彼怨民者聞聲而集, 不謀而同唱.
원민(怨民)들이 소리를 듣고 모이니 도모하지 않았는데도 동시에 소리친다.
彼恒民者, 亦求其所以生,
저 항민(恒民)은 또한 살 길을 강구하여
不得不鋤耰棘矜往從之, 以誅无道也.
부득불 호미와 곰방메, 창 따위를 들고 따라 가서 무도한 이들을 죽인다.
백성을 괴롭혀 나라가 망하다
秦之亡也, 以勝ㆍ廣,
진나라가 망한 것은 진승과 오광 때문이고,
而漢氏之亂, 亦因黃巾.
한나라가 혼란스러워진 것은 또한 황건적으로 인해서였다.
唐之衰而王仙芝ㆍ黃巢乘之,
당나라의 쇠함은 왕선지와 황소가 편승하여【왕선지는 당(唐)의 복주인(濮州人). 희종(僖宗) 초에 무리를 모아 난을 일으켰다. 뒤에 황소(黃巢)가 호응해 주어 크게 세력을 떨쳤으나 진압된 후 죽었다. 황소는 당(唐)의 조주인(曹州人). 대대로 소금장사였다. 많은 재산을 모아 망명객들을 부양하였고, 무예에 뛰어나 왕선지가 난을 일으키자 호응했다. 왕선지가 죽은 뒤 왕으로 추대되고 충천대장군(衝天大將軍)이 되었다. 10년 동안 여러 지역을 점령하여 큰 세력을 떨쳤으나 뒤에 패망하여 자결했다】
卒以此亡人國而後已.
마침내 그것 때문에 사람과 나라를 망하게 하고서야 그만뒀다.
是皆厲民自養之咎, 而豪民得以乘其隙也.
이것은 모두 백성을 괴롭혀 스스로 기른 허물로 호민(豪民)이 틈에 편승할 수 있었던 것이다.
夫天之立司牧, 爲養民也,
하늘이 목민관을 세운 것은 백성을 기르도록 해서이지
非欲使一人恣睢於上,
한 사람으로 하여금 윗자리에서 방자하게 흘겨보며
以逞溪壑之慾矣.
계곡이나 골짜기 같은 메워지지 않을 욕심【계학지욕(溪壑之慾): ‘끝이 없는 욕심’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채우려 해서가 아니다.
彼秦ㆍ漢以下之禍, 宜矣, 非不幸也.
그러니 저 진나라와 한나라 이래의 재앙은 마땅하고 불행한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백성들의 특징과 고려의 선정(善政)
今我國不然, 地陿阨而人少,
지금의 우리나라는 그렇지가 않다. 땅이 좁고 사람이 적으며
民且呰寙齷齪, 无奇節俠氣.
백성은 또한 나약하고 악착같고 기이한 절개와 호협한 기상이 없다.
故平居雖无鉅人雋才出爲世用,
그러므로 평상시엔 재주 있는 사람과 준수한 사람이 나와도 세상에 쓰여지지 못했고,
而臨亂亦无有豪民悍卒,
난리가 닥쳐도 또한 호민이나 사나운 졸병【한졸(悍卒): 경한지졸(勁悍之卒)의 준말로, 강하고 날랜 병사란 뜻이다】이
倡亂首爲國患者, 其亦幸也.
앞서서 멋대로 난리를 펴 나라의 근심인 사람들이 없었으니, 또한 다행한 일이다.
雖然, 今之時與王氏時不同也.
비록 그러나 지금의 조선은 고려 때와는 다르다.
前朝賦於民有限,
고려때엔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함에 상한선이 있었고
而山澤之利, 與民共之.
산과 연못에서 나오는 이익을 백성과 공유했다.
通商而惠工, 又能量入爲出.
그리고 상업은 통하게 했고 장인들에게 혜택을 줬으며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하도록 했다.
使國有餘儲,
그러니 나라엔 남은 저축한 것이 있었고
卒有大兵大表, 不加其賦.
갑작스런 변란과 좋은 일이 있더라도 증세하지 않았다.
及其季也, 猶患其三空焉.
그럼에도 고려 말에 이르러선 오히려 삼공(三空)【흉년이 들어 제사를 궐하고, 서당에 학도들이 오지 않고, 뜰에 개가 없음을 비유한 가난을 상징하는 말임】을 걱정해줄 정도였다.
조선의 악정이 순진한 백성들을 들끓게 만든다
我則不然, 以區區之民,
조선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구구한 백성의 세금으로
其事神奉上之節, 與中國等.
귀신을 섬기고 윗사람을 받드는 절개는 중국과 동등하다.
而民之出賦五分, 則利歸公家者纔一分,
백성이 낸 세금은 오푼인데 세금이 나라에 귀속된 것은 겨우 한 푼이니,
其餘狼戾於姦私焉.
그 나머지는 간사하고 사사로운 관리들에게 낭자하게 흩어졌다【낭려(狼戾): 땅에 알곡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모양】.
且府無餘儲, 有事則一年或再賦,
또한 관청엔 여분의 저축해둔 게 없어 일이 있을 때마다 1년에 간혹 두 번이나 세금을 내게 하니,
而守宰之憑以箕斂, 亦罔有紀極.
수령과 재상들은 이것을 빙자하여 가혹하게 징수함에 또한 끝이 없었다.
故民之愁怨, 有甚王氏之季.
그러므로 백성의 근심과 원망이 고려말기보다 심했던 것이다.
上之人恬不知畏, 以我國無豪民也.
그럼에도 윗사람이 편안해하며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은 우리나라엔 호민(豪民)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히 견훤과 궁예 같은 사람이 나와 흰 몽둥이를 휘두른다면
則愁怨之民,
근심하고 원망하는 백성들이
安保其不往從而祈ㆍ梁ㆍ六合之變,
어찌 가서 쫓지 않을 거라 보장하며, 기주(蘄州)와 양주(梁州)와 육합의 반란【기주와 양주(梁州)를 거점으로 했던 황소(黃巢)의 난을 가리킴】은
可跼足須也.
발을 구부리더라도 기다릴 수가 있으리라.
爲民牧者, 灼知可畏之形,
그러니 목민관은 두려워할 만한 형세를 분명히 알아
與更其弦轍, 則猶可及已. 『惺所覆瓿藁』 卷之十一
지금까지의 규범【현철(弦轍): 현(弦)은 현(絃)과 같으므로 곡조(曲調)를 뜻하며, 철(轍)은 수레바퀴이지만 여기서는 궤도(軌道)를 뜻한다. 즉 현철(弦轍)은 ‘지금까지 통행되어온 규범’이란 뜻】을 바꾼다면 오히려 그만두게 함에 미칠 만하다.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