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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4부 한반도의 단독정권 - 3장 단일왕조 시대의 개막, 러키보이 왕건 본문

역사&절기/한국사

4부 한반도의 단독정권 - 3장 단일왕조 시대의 개막, 러키보이 왕건

건방진방랑자 2021. 6. 14.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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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키보이 왕건

 

 

이제 신라는 사실상 멸망하고 후삼국시대는 후백제와 고려가 대립하는 이국 시대로 바뀌었다. 실제로 이후 견훤은 신라 지역에 성들을 쌓으면서 신라의 주인 노릇을 톡톡히 한다. 게다가 경순왕(敬順王) 김부 역시 견훤을 맹렬히 비난하던 경애왕과는 달리, 자신을 권지국사로 봉해준 견훤을 상왕(上王)으로 받들면서 왕건과의 관계를 멀리 하려 한다. 그러나 비록 견훤의 지원으로 왕위에 올랐다 해도 왕실을 유린하고 나라를 멋대로 주무르는 견훤에게 진심 어린 복종심이 우러나올 수는 없다. 따라서 경순왕은 여러 가지로 착잡한 심정이다.

 

그러나 왕건의 심정은 착잡을 넘어 참담하다. 어느새 이 지경이 되었을까? 눈치빠른 호족들은 벌써 대세를 좇아 견훤에게 투항하기 시작한다. 신중하기 그지없던 그였으나 이제 더 이상 신중할 수만은 없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모든 면에서 견훤을 앞서고 있어 궁예의 자취만 지우면 한반도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신라에 정변이 일어난 뒤 지금은 단 한 가지 면, 즉 군사력에서만 앞서고 있다.

 

다행스런 점은 그게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격변기에는 뭐니뭐니해도 힘이 최고니까. 마침내 왕건은 힘으로 승부를 보자고 한다. 그러나 그에게 대권을 가져다준 것은 힘보다는 행운이었다. 대세를 장악한 견훤이 그 뒤 연이어 악수를 두면서 순식간에 자멸했기 때문이다.

 

사실 견훤의 신라 정복은 시기상조의 느낌이 있었다. 삼킬 수 없으면 입에 넣지 말아야 한다. 김부를 권지국사로 임명한 데서 보듯, 견훤은 신라를 멸망시키고도 그 영토를 직접 차지할 능력이 없었다(왕실만 손에 넣었을 뿐 아직 경주 귀족들을 아우르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왕 일이 그렇게 되었다면 그는 어떻게든 신라를 완전히 정복했어야 했다. 그런 점에서 그가 경순왕(敬順王)을 세운 후 전주로 돌아간 것은 중대한 판단미스였다. 그로서는 경주가 정복지라기보다 적지(敵地)라는 느낌이 강했겠지만, 암살당할지 모른다는 각오를 하더라도 그는 경주에 머물렀어야 했다. 정복자가 떠난 마당에 신라가 계속 정복지로 있을 리는 만무했다. 바로 이 점이 곧이어 벌어진 안동 전투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신라를 복속시킨 뒤 몇 차례의 소규모 전투에서 재미를 본 견훤은 9297월 안동에서 고려군과 크게 한판 붙었다가 대패하고 만다(바로 몇 개월 전의 전투에서 왕건은 믿었던 의성 성주 홍술이 전사하자 두손을 잃었다면서 슬퍼했으니 안동 전투의 대승은 다분히 왕건에게 행운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8천 명이 전사하는 참극을 당한 바로 이튿날 견훤은 나머지 병력을 모아 안동 부근의 순주성(順州城)을 함락 시켰다. 충분히 역전의 계기로 만들 수 있는 상황, 그러나 그는 거기에 계속 주둔하지 않고 성의 백성들을 사로잡아 전주로 도망치는 데 급급할 뿐이다. 아마 그의 간이 작은 탓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그때까지 신라 지역에 자신의 근거지라 할 만한 곳을 만들지 못한 탓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신라의 왕실을 정복한 성과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다. 견훤은 자멸의 길로 빠져들었다.

 

게다가 안동 전투는 왕건에게 예기치 않은 부수입을 가져다줬다. 경순왕(敬順王)의 태도가 달라진 것이다. 김씨 쿠데타를 지원한 견훤과 그 김씨 왕실을 다시 핍박하는 견훤, 두 명의 견훤 사이에서 갈등하던 경순왕은 마침내 노선을 정했다. 이듬해인 930년 경순왕은 경주 인근까지 찾아온 왕건을 직접 만나 부모를 대하는 것 같다며 충성을 다짐한다(경순왕의 출생연도는 전하지 않지만 979년까지 산 것으로 미루어 왕건보다 한 세대쯤 아래였을 것이다).

 

어차피 사실상 멸망한 나라의 왕실이었으니 그 자체로는 별 영양가가 없다. 그러나 왕건이 신라 왕실을 얻은 것은 고려의 위상을 강화하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무엇보다 중국의 왕조들은 여전히 신라를 한반도의 적자로 보고 있었다. 932경순왕(敬順王)은 즉위한 뒤 처음으로 후당의 황제 명종에게 사신을 보내 조공하는데, 아마도 사신의 행낭 속에는 왕건과 고려에 대한 상세한 보고서가 들어 있었을 것이다. 과연 그 이듬해인 933년 왕건은 드디어 바라던 후당의 책봉을 얻어낸다.

 

 

 

 

이제 왕건은 대권후보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선 가장 중요한 군사력에서 최강일 뿐 아니라 안 취약했던 외교에서도 큰 결실을 얻었다. 내에서는 신라의 충성을 서약받았고, 대외적으로는 중국 화북 왕조의 승인을 받았다. 분위기가 반전되자 오히려 견훤의 휘하에 있는 호족들이 왕건에게로 줄을 서기 시작한다. 그 무렵 왕건은 이제야 후삼국시대의 종점이 보이는구나 싶은 기분이었을 법하다. 하지만 대세는 장악했으나 상황이 종료되려면 꽤나 시일이 필요할 것이다. 아직 신라를 합병한 것은 아니었고 무엇보다 후백제의 근거지가 튼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끝은 허무하리만큼 빠르게 다가왔다.

 

이미 그때까지의 행운만으로도 억세게 운좋은 사나이라 불릴 만한 왕건에게 또 다른 행운이 찾아왔다. 9353월 후백제의 왕실에서 쿠데타가 터지면서 견훤이 아들 신검(神劍)에게 밀려나 실각한 것이다. 게다가 견훤은 3개월간 금산사에 갇혀 있다가 간신히 탈출하여 왕건에게 투항했다. 그것으로 한반도를 감싸고 있던 안개는 순식간에 걷혀 버렸다. 누구보다 견훤을 두려워했던 경순왕(敬順王)은 이제 거칠 것이 없어졌다. 그래서 그는 해를 넘기지 않고 그 해 11월에 왕건에게 나라를 바친다. 이것이 공식적인 신라의 멸망이다.

 

옛 백제나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는 전쟁으로 멸망한 게 아니므로 부흥운동 같은 건 없다. 비록 경순왕의 맏아들은 어떻게 천 년 사직을 그리 쉽게 넘겨줄 수 있느냐고 항의하지만, 그것은 뜻하지 않게 왕위 계승권을 잃은 자의 당연한 반발일 뿐이니 부흥운동으로 조직화될 수는 없었다금강산에 들어가 베옷[麻衣]을 입고 살았다고 해서 그는 훗날 마의태자(麻衣太子)라고 불렸는데, 그가 실제로 태자 책봉을 받았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태자 책봉에 관한 기록이 매번 전하지는 않으나, 아마 그는 아버지 경순왕(敬順王)이 재위하던 시절에 태자로 정식 책봉되지는 않았던 듯하다. 경순왕은 불과 9년 동안 재위했고 왕건에게 나라를 넘겨줄 때도 나이가 비교적 젊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마의태자의 나이는 필경 십대를 넘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주변 사정이 어지럽고 신라의 국세가 약해진 상황에서 경순왕이 태자 책봉에까지 신경쓸 겨를은 없었을 것이다. 견훤에게서 권지국사라는 굴욕적인 직함을 받은 경순왕은 애초부터 신라의 사직이 자신에게서 끝나리라는 것을 예상하지 않았을까?.

 

왕건이 이빨 빠진 후백제의 마지막 명맥을 조르는 데는 더 이상 행운 따위도 필요없었다. 견훤은 칠십 노구임에도 불효 아들을 응징하는 데 함께 하겠노라고 소매를 걷어붙였고, 신검의 즉위에 불만을 품은 견훤의 사위 박영규(朴英規)는 남몰래 왕건에게 접촉해서 투항할 뜻을 비쳤다. 936년 가을 왕건은 마지막 전투를 위해 무려 10만이 넘는 대군을 거느리고 신검이 주둔하고 있는 선산으로 갔는데, 그건 동네 싸움에 탱크를 몰고 간 격이었다. 별다른 접전 한 번 없이 후백제의 잔당이 항복하면서 러키보이 왕건은 삼국통일을 이루고, 역사상 최초의 완전한 한반도 단독 왕조시대를 열었다.

 

 

통일 기념 사찰 고려와 신라를 거저 줍다시피 한 러키보이 왕건이 그나마 자기 힘으로 얻은 것은 후백제밖에 없다(그것도 견훤이 항복함으로써 쉬워졌지만). 그래서 그는 후백제를 접수한 그 해에 논산에 개태사라는 절을 지어 통일을 축하했다. 워낙 도움을 준 사람들이 많으니 대표 삼아 부처님에게 보답하려 한 걸까?

 

 

인용

목차

동양사 / 서양사

왕실의 전통

다시 분열의 시대로

후삼국의 쟁패

러키보이 왕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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