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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미학, 25. 허균 시론, 깨달음의 시학 - 1. 조선의 문제아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미학, 25. 허균 시론, 깨달음의 시학 - 1. 조선의 문제아

건방진방랑자 2021. 12. 8.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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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허균 시론, 깨달음의 시학

 

 

1. 조선의 문제아

 

 

당대 최고의 비평가

 

허균, 그의 이름을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그는 국문소설 홍길동전의 작가이면서, 성수시화(惺叟詩話)학산초담(鶴山樵談)등의 시화를 엮은 당대 최고의 비평가였다. 그를 천지간(天地間)의 일괴물(一怪物)’이라고 폄하하던 사람조차도 시를 보는 그의 안목만은 높이 인정하였다. 역대로 가장 훌륭한 엔솔로지(anthology)라는 평가를 들은 국조시산(國朝詩刪)을 엮은 것도 바로 그였다.

 

그는 다채로운 지적 편력을 거쳐, 당대에 성행했던 도교와 내단 수련 방면에도 정심한 이론과 실천을 보였다. 남궁두와 송천옹, 그리고 유형진 등 당대에 이름난 도류(道流)들과 교유하였고, 단학(丹學) 이론에도 밝았다. 스스로 100상자가 넘는 불교 경전을 읽었다고 적고 있을 만큼 불교에도 깊은 조예를 지녔다. 이밖에 위로 제자백가에서 아래로 명나라 당대 대가의 문집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과 눈을 거치지 않은 책이 없었을 정도였다.

 

 

 

얽매이지 않는 자유주의자

 

그는 활달한 자유주의자였다. 사회가 금기시하는 터부에 과감히 도전하였다. 자각된 민중의 무서운 힘을 역설한 호민론(豪民論)은 오늘날 읽어봐도 진보적이다. 그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홍길동전호민론과 관련지어 이해하고 싶어 하는 시각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벼슬길에 있으면서도 아침마다 승려의 복장을 하고 불전에 분향하였다하여 벼슬에서 쫓겨났던 일도 있었다. 서얼들과의 교유도 활발하였다. 그에게 시를 가르쳐 준 스승 이달(李達)이 서얼이었고, 훗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역모 사건도 이른바 강변칠우(江邊七友)로 불리는 서자들과의 결사가 빌미가 되었다. 그리고 끝내는 역적으로 몰려 세상을 마쳤다.

 

그는 행동에 거리낌이 없었지만, 그 때문에 검속함이 부족하고 교활하다는 비방을 늘 받았다. 실제로 벼슬길에 대한 끊임없는 집착은 옆에서 보기에 민망할 정도였다. 과거 시험장에서 부정을 저질러 귀양 간 일도 있었다. 그 뛰어난 기억력을 살려 누이인 허난설헌의 시집을 엮으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시를 슬쩍슬쩍 끼워 넣었다가 정작 중국에서 망신을 당한 일도 있었다. 최근 확인한 바로 가공의 인물을 동원하여 우리나라 명산 동천을 기록한 도교적 산수기록인 동국명산동천지(東國名山洞天志)란 책을 지었던 것도 바로 그였다. 허균은 무어라 한 마디로 규정할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허균(許筠)이 활동했던 선조 광해연간은 훗날 목릉성제(穆陵盛際)로 일컬어질 정도로 문예적 역량이 극성했던 시기였다. 삶의 진실과 정감 어린 서정을 중시하는 시필성당 문필진한(詩必盛唐, 文必秦漢)’의 복고적 문학 주장이 전면에 부상하여, 이전 성율(聲律)과 격식을 중시하던 강서시풍(江西詩風)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고, 족출(簇出)한 재재다사들에 의해 창작과 비평 양면에서 새로운 시풍에 대한 기대와 전망이 실험되고 또 실천되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허균이 있었다.

 

 

 

 

인용

목차

1. 조선의 문제아

2. 개성론: 정신은 배우되 표현방식은 배우지 않는다

3. 표현론: 입의명어점철성금

4. 묘오론: 학력과 식견과 공정

5. 좌절된 꿈을 아로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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