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신의 깨어남②
교회는 아직 사태의 중요성을 모르고 있었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언뜻 생각하기에는 천동설이 지동설보다 오히려 인문주의에 어울리는 것처럼 보인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면 우주가 인간 중심의 질서를 취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인간 중심이 아니라 신 중심의 질서다. 그리스도교에 따르면 인간은 신이 만든 가장 높은 수준의 피조물이므로 천동설은 신 중심의 세계관을 강화해준다. 그에 비해 지동설은 겉으로 보기에는 인간을 세계의 다른 존재(예컨대 사물)와 같은 위상으로 격하시키는 듯하지만, 실은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대변한다. 지동설은 인간이 이성의 힘을 통해 자연의 법칙을 인식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문주의는 인간 자체보다 인간 이성(reason)을 중심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인문주의(humanism)라기보다는 이성주의, 즉 합리주의(rationalism)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실제로 17세기부터는 합리주의적 전통이 자라나면서 이것이 18세기의 계몽주의로 이어지게 되므로 인문주의는 합리주 의의 단초라고 보아야 한다】? 사실 지동설은 코페르니쿠스가 발명했다기보다는 ‘발견’한 것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아리스타르코스가 지동설을 주창한 적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등 쟁쟁한 학자들이 천동설을 주장했기 때문에 금세 묻혀버렸다. 젊은 시절 북이탈리아에 유학을 왔던 코페르니쿠스는 아리스타르코스의 학설을 설명하는 그리스 시대의 문헌에 주목했다. 마침 그리스와 연관된 것이면 모든 것을 부활시키려 했던 당시 북이탈리아의 시대적 추세도 그에게 큰 힘을 주었을 것이다.
예상외로 교회에서 공식 출간을 권유하자 코페르니쿠스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계속 망설이다가 죽기 1년 전에 야 출간을 결심하고 죽음을 앞두고 자기 책을 받아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그게 다행이었다. 지동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뒤늦게 깨달은 교회는 공식적으로 지동설을 부인했고, 그것을 주장하는 학자들을 이단으로 몰기 시작한 것이다.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가 화형을 당하고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가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속삭인 것은 그 절정이었다(지동설은 17세기에 완전히 옳은 학설로 인정되지만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금세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갈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인쇄술이 발전한 데 있었다. 15세기 중반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와 인쇄기를 발명함으로써 서적의 대량 인쇄와 유통이 가능해진 것이다. 이것은 그렇잖아도 급속도로 확산되어가는 르네상스 문화와 사상에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되었다.
▲ 뒤바뀐 세계관 지구는 수십억 년 전부터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을 설명하는 담론은 고대에 지동설, 중세에 천동설, 다시 근대에 지동설로 바뀌었다. 사물은 변함없지만 그 사물을 규정하는 말은 자꾸 변한다. 이렇듯 앎이란 ‘사물’에서 비롯되는 게 아니라 ‘말’에서 생겨나는 것이다. 그림은 지동설이 진리로 굳어진 17세기에 간행된 천문학서의 삽화다. 오른쪽에 앉아 있는 인물이 코페르니쿠스다.
인용
연표: 선사~삼국시대
연표: 남북국~고려
연표: 조선 건국~임란
연표: 임란~조선 말기
연표: 대한제국~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