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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패러다임(Paradigm)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패러다임(Paradigm)

건방진방랑자 2021. 12. 1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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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Paradigm

 

 

옛 것의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발견한다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정신은 학문의 상식이다.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그 점을 실감케 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다. 15세기 이탈리아의 르네상스(Renaissance)2천 년 전의 그리스 고전 문화를 새로이 발견하고 해석함으로써 학문과 예술의 부흥을 일으킨 운동이었다. 18세기 조선의 실학자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주장한 정전법(井田法)4천 년 전 중국 주나라 시대의 토지제도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그뿐인가?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가 근대 철학의 토대를 만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칸트(Immanuel Kant,1724~1804)와 헤겔(Hegel, 1770~1831)이 있겠으며, 고전주의 음악의 엄정한 형식미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낭만주의 음악의 자유로운 표현이 생겨날 수 있었겠는가? 이처럼 정치, 사회, 학문, 예술 등 모든 면에서 옛 것은 언제나 새 것을 창안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그런데 미국의 과학사가인 토머스 쿤(Thomas Kuhn, 1922~1996)은 오히려 옛 것을 완전히 버려야만 새 것이 태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과학이 발전해온 역사는 옛 것에서 새 것을 차근차근 배우는 과정이 아니라 옛 것을 새 것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과정이다. 달리 표현하면 이 과정은 연속이 아니라 단절이고, 연장이 아니라 비약이며, 진화가 아니라 혁명이다. 이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쿤은 언어학에서 패러다임이라는 용어를 차용한다. 그 덕분에 패러다임은 철학과 사회과학 등 여러 학문과 예술 분야에까지 폭넓게 원용되는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쿤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을 과학혁명이라고 지칭한다. 패러다임은 이를테면 기본형 또는 표준형이다. 동사의 기본형에서 온갖 변형과 활용형이 파생되듯이, 하나의 과학적 패러다임에서 여러 가지 과학적 인식과 모델들이 나온다. 그뿐 아니라 과학적 이론, 그리고 그 이론을 검증하는 실험 기술과 장비, 이론을 구성하는 논리, 나아가 과학자 집단이 공유하는 관념과 가치, 관습까지도 모두 그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어느 학문 분야에나 고전이 있듯이 과학에도 고전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322)피지카(physica), 뉴턴(Isaac Newton, 1642~1727)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라부아지에(Antoine-Laurent Lavoisier, 1743~1794)화학등 인류 역사의 과학적 고전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척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과학의 고전들은 일정한 시기 동안 특정한 학문 분야에서 적절하고 타당한 문제와 해결 방법들을 다음 세대의 연구자들에게 암묵적으로 규정하는 역할을 했다.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저술들이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옹호하는 학자들을 물리칠 수 있을 만큼 획기적이라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지지하는 학자들에게 새로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남겨놓을 만큼 유연하다는 것이다. -과학혁명의 구조

 

정상과학의 시기에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유지되면서 평온하게 과학이 발달한다. 이 시기의 과학적 발견과 이론은 지배적인 패러다임을 증명하고 보충하며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예를 들어 2세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탄생한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os)의 천동설(天動說)1천 년 이상이나 천문학 분야에서 정상과학의 발달을 이끌었다. 학자들은 천동설을 토대로 하여 일식과 월식을 정확하게 예측했으며, 평범한 사람들은 해와 달, 밤하늘의 무수한 별들이 일정한 궤도를 가지고 운동하는 현상을 바라보면서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코페르니쿠스적 전환). 당시에는 물론 패러다임이라는 말이 없었지만 있다 해도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천동설은 단지 하나의 패러다임인 것이 아니라 진리 그 자체였으니까.

 

이렇게 단일한 패러다임이 진리로 군림하는 시기에는 설령 그 체계에 다소 어긋나는 사실이 있다 해도 패러다임이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다. 프톨레마이오스보다 500년이나 앞서 고대 그리스의 아리스타르쿠스(Aristarchus)가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한 적이 있었으나 그의 이론은 천동설에 완전히 패배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났다.

 

 

과학혁명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과정이다. 그 과정을 진화나 발전처럼 연속적인 용어가 아닌 혁명이라는 말로 부르는 이유는 과거의 패러다임에서 발견되고 해석된 이론들이 새 패러다임에서는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때문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유명한 뉴턴(Isaac Newton, 1642~1727)의 천문학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양자는 뿌리에서부터 서로 달랐다. 프톨레마이오스는 눈에 보이는 천체의 운동이라는 현상을 가지고 천동설을 구성했지만, 뉴턴은 운동이라는 현상이 아니라 그 현상의 원인을 문제 삼았다. 뉴턴은 행성계에서 운동의 현상보다 그 원인, 즉 운동을 일으킨 힘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눈으로 보기에는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 같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중심으로 고찰하면 지구는 지구보다 33만 배나 무거운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이처럼 뉴턴 역학은 천동설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관점 자체를(현상에서 원인으로) 바꿈으로써, 즉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함으로써 천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패러다임이 바뀌고 나면 마치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새로운 패러다임에 토대를 둔 새로운 발견이 홍수처럼 쏟아진다. 천왕성은 이미 17세기 말부터 천문학자들에 의해 무수히 관찰되었으나 한동안 수수께끼의 별이라고 여겨졌다. 18세기 말에 허셜(Sir John Herschel, 1792~1871)이 그것을 행성이라고 규정하자 패러다임이 바뀌었고, 그 뒤 수십 년 동안에 천문학자들은 수많은 소행성들을 발견했다.

 

 

패러다임의 개념1960년대에 유행병처럼 번져 커다란 학문적 인기를 끌었지만 동시에 많은 학자들로부터 뜻이 모호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마침내 쿤 자신마저 패러다임의 개념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후 패러다임은 오히려 자연과학보다도 인문ㆍ사회과학과 예술 분야로 널리 확산되었고, 현재는 일상적인 용어로도 사용될 정도다.

 

 

 

 

 

 

인용

목차

고구려 패러다임으로 쉬프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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