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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에 찾아온 유학자들, 정약용 - 주희의 인심도심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다

건방진방랑자 2022. 3. 8.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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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의 인심도심설을 비판적으로 수용하다

 

 

그러나 정약용주희가 만년에 집필한 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을 보자 마음이 달라집니다. 정적인 함양 공부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태 속에서 드러난 인심과 도심의 싸움으로 인간의 마음을 설명한 주희의 관점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지요. 급기야 주자학을 비판해왔던 정약용은 주희의 인심도심설(人心道心說)’만은 유학의 도를 잇는 핵심적인 관건이라고 극찬합니다.

 

 

맹자가 죽은 뒤 도()의 흐름이 드디어 끊어졌다. 전적들은 전국시대에 소멸되고 경전들은 진시황과 항우에 의해 불태워졌다. () 한나라 유학자들이 경전을 설명할 때 모두 문자상에서 훈고했을 뿐, 인심(人心)과 도심(道心)의 구분, 소체(小體)와 대체(大體)의 구별에서는 어떤 것이 인성(人性)이며 어떤 것이 천도(天道)인지에 대해 모두 막연하여 듣고도 알지 못했다. () 자기로써 자기를 극복하는 것은 모든 성왕(聖王)들이 마음으로 전하고 은밀하게 건네준 오묘한 뜻이요, 요긴한 말이다. 이에 밝으면 성현이 될 수 있고 이에 어두우면 곧 금수가 된다. 주자가 우리 도()의 중흥조(中興祖)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중용(中庸)의 서문을 지어서 이런 이치를 밝혔기 때문이다. 논어고금주6: 1~2

孟子之沒 道脈遂絶 籍滅于戰國 經焚于秦項 () 漢儒說經 皆就文字上 曰詁曰訓 其於人心道心之分 小體大體之別 如何而爲人性 如何而爲天道 皆漠然聽瑩 () 以己克己 是千聖百王 單傳密付之妙旨要言 明乎此則可聖可賢 昧乎此則乃獸乃禽 朱子之爲吾道中興之祖者 亦非他故 其作中庸之序 能發明此理故也

맹자지몰 도맥수절 적멸우전국 경분우진항 () 한유설경 개취문자상 왈고왈훈 기어인심도심지분 소체대체지별 여하이위인성 여하이위천도 개막연청형 () 이기극기 시천성백왕 단전밀부지묘지요언 명호차즉가성가현 매호차즉내수내금 주자지위오도중흥지조자 역비타고 기작중용지서 능발명차리고야

 

 

정약용주희를 유학의 새로운 중흥조, 공자 이후 유학을 다시 한 번 흥기시킨 대단한 인물이라고 논평합니다. 우리가 흔히 정약용을 주자학 비판자라고 알고 있던 이미지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요. 그만큼 정약용은 전통 학문에 대해 복잡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던 셈입니다. 그가 주희를 칭찬하는 까닭은 주희가 중용(中庸)에 대한 서문을 지었기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다시 말해, 중용장구서에서 인심과 도심의 관계를 밝힘으로써 맹자 이후에 끊어진 유학의 도통을 이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유학의 도를 공자의 극기복례(克己復禮), 그리고 맹자의 대체소체론(大體小體論)으로 이해하는 정약용의 고유한 관점이 깔려 있지요. 이 두 가지는 모두 하나의 자기로써 또 다른 자기를 절제하고 조절하는 공부를 의미합니다. 곧 인심이라는 육체적 욕망을 도심이라는 윤리적 마음으로 통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요. 이 인심과 도심의 대립적 구도가 주희에 이르러서야 보다 명확히 밝혀졌다고 보는 것이 정약용의 입장입니다.

 

그는 주희중용장구서(中庸章句序)에서 가장 지혜로운 성인에게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매우 어리석은 사람에게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고 말한 구절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주희의 이 말은 앞으로 어떤 성인이 태어난다 해도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까지 말합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도 인심이 없을 수 없고 가장 어리석은 사람도 도심이 없을 수 없다고 한 주자의 설명은 성인이 태어난다 해도 바뀌지 않는다. (심경밀험(心經密驗)2:29).”

 

이 구절은 모든 인간에게 육체적 욕망과 도덕적 욕망 두 가지가 병존한다는 것을 깨우쳐 줍니다. 성인이든 광인이든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보았지요.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는 육체적 욕망을 도덕적 욕망으로 조율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래서 정약용은 어떤 마음이 싹텄을 때 그것이 도덕적 마음인지 아니면 비도덕적 마음인지부터 구별하라고 말합니다. 마치 주희가 두 마음을 구별하는 정()의 공부를 강조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분한 뒤에 인심의 마음을 억누르고 도심의 마음을 길러서 배양하라고 권합니다. 이 또한 주희가 일()의 공부라고 해서 강조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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