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적 욕망을 극복하여 예를 회복하라
凡二十四章.
顔淵問仁.
仁者, 本心之全德.
子曰: “克己復禮爲仁.
克, 勝也. 己, 謂身之私欲也. 復, 反也. 禮者, 天理之節文也. 爲仁者, 所以全其心之德也. 蓋心之全德, 莫非天理, 而亦不能不壞於人欲. 故爲仁者必有以勝私欲而復於禮, 則事皆天理, 而本心之德復全於我矣.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歸, 猶與也. 又言一日克己復禮, 則天下之人皆與其仁, 極言其效之甚速而至大也. 又言爲仁由己而非他人所能預, 又見其機之在我而無難也. 日日克之, 不以爲難, 則私欲淨盡, 天理流行, 而仁不可勝用矣.
程子曰: “非禮處便是私意. 旣是私意, 如何得仁? 須是克盡己私, 皆歸於禮, 方始是仁.”
又曰: “克己復禮, 則事事皆仁, 故曰天下歸仁.”
謝氏曰: “克己, 須從性偏難克處, 克將去.”
顔淵曰: “請問其目.”
目, 條件也. 顔淵聞夫子之言, 則於天理人欲之際, 已判然矣, 故不復有所疑問, 而直請其條目也.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非禮者, 己之私也. 勿者, 禁止之辭. 是人心之所以爲主, 而勝私復禮之機也. 私勝, 則動容周旋無不中禮, 而日用之間, 莫非天理之流行矣.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事, 如事事之事. 請事斯語, 顔子黙識其理, 又自知其力有以勝之, 故直以爲己任而不疑也.
○ 程子曰: “顔淵問克己復禮之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四者身之用也. 由乎中而應乎外, 制於外所以養其中也. 顔淵事斯語, 所以進於聖人. 後之學聖人者, 宜服膺而勿失也, 因箴以自警.
其視箴曰: ‘心兮本虛, 應物無迹. 操之有要, 視爲之則. 蔽交於前, 其中則遷. 制之於外, 以安其內. 克己復禮, 久而誠矣.’
其聽箴曰: ‘人有秉彝, 本乎天性. 知誘物化, 遂亡其正. 卓彼先覺, 知止有定. 閑邪存誠, 非禮勿聽.’
其言箴曰: ‘人心之動, 因言以宣. 發禁躁妄, 內斯靜專. 矧是樞機, 興戎出好, 吉凶榮辱, 惟其所召. 傷易則誕, 傷煩則支, 己肆物忤, 出悖來違. 非法不道, 欽哉訓辭!’
其動箴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志士勵行, 守之於爲. 順理則裕, 從欲惟危; 造次克念, 戰兢自持. 習與性成, 聖賢同歸.’”
愚按: 此章問答, 乃傳授心法切要之言. 非至明不能察其幾, 非至健不能致其決. 故惟顔子得聞之, 而凡學者亦不可以不勉也. 程子之箴, 發明親切, 學者尤宜深玩.
해석
凡二十四章.
모두 24장이다.
顔淵問仁.
안연이 인을 물었다.
仁者, 本心之全德.
인이라는 것은 본심의 온전한 덕이다.
子曰: “克己復禮爲仁.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사적인 욕심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이 된다.
克, 勝也.
극(克)은 이긴다는 말이다.
己, 謂身之私欲也.
기(己)는 몸의 사사로운 욕심을 말한다.
復, 反也.
복(復)은 돌이킨다는 것이다.
禮者, 天理之節文也.
예라는 것은 천리의 절문이다.
爲仁者, 所以全其心之德也.
위인(爲仁)이라는 것은 그 마음의 덕을 온전히 하는 것이다.
蓋心之全德, 莫非天理,
대체로 마음의 온전한 덕이 천리가 아님이 없고
而亦不能不壞於人欲.
또한 인욕을 무너뜨리지 않음이 없다.
故爲仁者必有以勝私欲而復於禮,
그렇기 때문에 인을 하는 사람은 반드시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게 되면,
則事皆天理, 而本心之德復全於我矣.
일이 모두 천리로 본심의 덕이 다시 나를 온전하게 한다.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하루라도 사적 욕심을 극복하여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을 허여해준다. 인을 하는 것이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 남에게 달려 있으랴?”
歸, 猶與也.
귀(歸)는 허여함과 같다.
又言一日克己復禮,
또한 ‘하루라도 사욕을 극복하고 예로 돌아간다면
則天下之人皆與其仁,
천하의 사람이 모두 인을 허여한다’고 말했으니,
極言其效之甚速而至大也.
그 공효는 매우 빠르고 지극히 크다는 것을 극진히 말한 것이다.
又言爲仁由己而非他人所能預,
또한 ‘인을 하는 것이 나에게 달려 있지, 다른 사람이 참여할 수 없고,
又見其機之在我而無難也.
또한 그 기미를 봄이 나에게 있어서 어렵지 않다’라고 말한 것이다.
日日克之, 不以爲難,
날마다 사욕을 극복하는 것이 어려움이 되지 않는다면,
則私欲淨盡, 天理流行,
사욕이 맑아지고 극진해지며 천리가 유행하여
而仁不可勝用矣.
인을 이루 다 쓸 수 없게 된다.
程子曰: “非禮處便是私意.
정이천이 말했다. “예가 아닌 것은 곧 사사로운 뜻이 된다.
旣是私意, 如何得仁?
이미 사사로운 뜻이라면 어찌 인을 터득할 수 있겠는가?
須是克盡己私, 皆歸於禮,
곧 자기의 사사로움을 극복하고 극진히 하여 다 예로 돌아가야,
方始是仁.”
비로소 이것이 인이다.”
又曰: “克己復禮, 則事事皆仁,
또한 말했다. “사욕을 이겨 예로 돌아가면 일마다 다 인이기 때문에
故曰天下歸仁.”
‘천하가 인을 허여한다’고 말한 것이다.”
謝氏曰: “克己,
사량좌(謝良佐)가 말했다. “극기(克己)는
須從性偏難克處,
곧 성품의 치우치고 이기기 어려운 곳에서부터
克將去.”
장차 제거할 수 있어야 한다.”
○ ‘논어’ ‘안연(顔淵)’편의 첫 장을 극기복례장(克己復禮章)이라고 한다. 제자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극기복례가 곧 인(仁)이라고 대답했다. 공자의 근본사상인 인(仁)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설명한 장이다. 극기(克己)는 약신(約身)과 같다고 볼 수 있는데, 그렇다면 몸을 검속(檢束)한다는 뜻이 된다. 성리학자는 사사로운 욕망을 이긴다고 풀이했다. 복례(復禮)는 선왕의 예법을 실천한다, 혹은 선왕의 예법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성리학자들은 복례(復禮)는 곧 천리(天理)인 예(禮)를 회복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정약용은 예의(禮義)를 회복하는 일로 보았다.
극기복례위인(克己復禮爲仁)의 위(爲)는 ‘…이다’로 풀이하기도 하고 ‘…을 행한다’로 풀이하기도 한다. 일일(一日)은 ‘하루’ 혹은 ‘하루아침에’다. 천하귀인(天下歸仁)은 천하 사람들이 인덕(仁德)으로 향한다는 말이니, 인덕(仁德) 있는 사람에게 동조한다는 뜻이다. 정약용은 귀(歸)를 귀화(歸化)로 보았다. 일일(一日)은 인(仁)을 행하는 시간이 아주 짧은 것을 가리키고, 천하(天下)는 인(仁)의 효과가 아주 넓게 파급되는 것을 가리킨다. 그 다음의 위인(爲仁)은 인(仁)을 행한다는 뜻으로, 위(爲)는 행한다는 뜻의 동사다. 유기(由己)는 자기로부터 말미암는다는 뜻으로, 인(仁)을 행함은 자주적, 자율적 행동임을 말한 것이다. 이(而)는 역접의 접속사다. 유인호재(由人乎哉)는 ‘남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는 뜻을 지닌 반어법이다.
사심(私心)을 이기는 일은 자기 조절의 소극적 활동이지만 예의로 돌아가는 일은 사회적 보편성을 획득하는 적극적 행위다. 자기부정의 구조를 띤 이 극기복례(克己復禮)는 참된 나를 찾는 유력한 방법이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顔淵曰: “請問其目.”
안연이 “청컨대 그 조목을 묻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리니,
目, 條件也.
목(目)은 조건이다.
顔淵聞夫子之言,
안연이 부자의 말씀을 듣고
則於天理人欲之際, 已判然矣,
천리와 인욕의 사이가 이미 분명해졌기 때문에
故不復有所疑問, 而直請其條目也.
다시 의문 나는 것이 없어 곧 그 조목을 청한 것이다.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공자께서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 말며,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非禮者, 己之私也.
비례(非禮)라는 것은 자기의 사사로움이다.
勿者, 禁止之辭.
물(勿)은 금지하는 말이다.
是人心之所以爲主, 而勝私復禮之機也.
이것은 인심이 주인된 까닭으로 사심을 이겨 예를 회복해야 하는 기미다.
私勝, 則動容周旋無不中禮,
사적인 인욕이 이겨서 사라지면 움직이고 활동할 적에 예에 맞지 않음이 없고
而日用之間, 莫非天理之流行矣.
일상생활에 천리의 유행이 아님이 없다.
○ 유명한 사물(四勿)의 가르침이다.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 묻자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이라 했다. 다시 안연이 극기(克己)를 실천하기 위한 조목(條目)에 대해 묻자, 공자는 네 가지 ‘물(勿)’을 말했다. 물(勿)은 ‘∼하지 말라’는 뜻의 금지사다.
비례물시(非禮勿視)는 눈앞의 일이 선왕 이래의 예법(禮法)이나 예의(禮義)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너는 그것을 보지 말라는 뜻이다. 비례(非禮)의 주어와 물시(勿視)의 주어가 다른데도 둘이 모두 생략되어 이어진 긴축복합문이다. 아래 세 구절도 같다. 같은 글자 수, 같은 구조, 같은 범주의 문장을 셋 이상 늘어놓는 것을 유구법(類句法)이나 누층법(累層法)이라 한다. 시(視)는 견(見)과 다르고, 청(聽)은 문(聞)과 다르다. 보려고 해서 보는 것이 시(視), 들으려고 해서 듣는 것이 청(聽)이다. 공자는 사욕(私欲)을 이기려면 시청언동(視聽言動)을 주재(主宰)하는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고 보아, 예(禮)에 부합하지 않는 일은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말고 말하려고도 행하려고도 하지 말라고 했다.
‘회남자’에 보면 증자(曾子)가 한때 몸이 말랐다가 뒤에 풍성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자하(子夏)가 그 까닭을 묻자 증자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부귀(富貴)의 즐거움을 누리려 했다가 도(道)의 훌륭함을 보고 그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두 가지가 마음속에서 다툴 때는 몸이 말랐다가, 도를 좋아하게 된 뒤로 넉넉해졌습니다[出見富貴之樂而欲之 入見先王之道又說之 兩者心戰 故臞 先王之道勝 故肥].” 당시 부귀(富貴)는 비례(非禮)와 불의(不義)의 행태였다. 사실 우리 마음에는 비례(非禮)와 불의(不義)를 따르려는 경향과 예(禮)와 정의(正義)로 나아가려는 경향이 혼재한다. 마음속에 그 둘이 교전(交戰)할 때, 안연(顔淵)이 그랬듯이 결연하게 말하자. “제가 비록 불민(不敏)합니다만, 이 말씀을 일생 사업으로 삼겠습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顔淵曰: “回雖不敏, 請事斯語矣.”
안연이 “제가 비록 행동이 민첩하진 않으나, 청컨대 이 말씀에 종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事, 如事事之事.
사(事)는 ‘일에 종사한다’라는 말의 사(事)와 같다.
請事斯語, 顔子黙識其理,
청사사어(請事斯語)는 안자가 묵묵히 그 이치를 알았고
又自知其力有以勝之,
또한 스스로 힘으로 사욕을 이길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에
故直以爲己任而不疑也.
곧장 자기의 임무로 삼아 의심함이 없었던 것이다.
○ 程子曰: “顔淵問克己復禮之目,
정이천이 말했다. “안연이 극기복례의 조목을 여쭈어,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
공자께서 ‘비례물시(非禮勿視)와 비례물청(非禮勿聽)과 비례물언(非禮勿言)과 비례물동(非禮勿動)이다’라고 말씀하셨으니,
四者身之用也.
네 가지는 몸의 쓰임이다.
由乎中而應乎外, 制於外所以養其中也.
가운데로부터 밖으로 응하여 밖을 제어하여 마음을 기르는 까닭이다.
顔淵事斯語, 所以進於聖人.
안연이 이 말씀에 종사하였으니 이런 이유 때문에 성인으로 나아간 것이다.
後之學聖人者, 宜服膺而勿失也,
후에 성인을 배우려는 사람은 마땅히 가슴속에 담아 잃지 않도록 해야 하니,
이에 잠언을 지어 스스로 경계한 것이다.
其視箴曰: ‘心兮本虛, 應物無迹.
시잠(視箴)에 말하였다. ‘마음은 본래 비어 있어 사물에 응함에 자취가 없다.
操之有要, 視爲之則.
그것을 잡음엔 요령이 있으니, 보는 것이 법칙이 된다.
蔽交於前, 其中則遷.
사물의 가림이 눈앞에서 어우러지면 마음으로 옮겨진다.
制之於外, 以安其內.
그러니 외부에서 제어하여 내면을 편안히 해야 한다.
克己復禮, 久而誠矣.’
극기복례(克己復禮)하기를 오래하면 성(誠)하여 지리라.’
其聽箴曰: ‘人有秉彝, 本乎天性.
청잠(聽箴)에 말하였다. ‘사람에겐 떳떳한 올바름이 있어 천성이 선재하는 것이다.
知誘物化, 遂亡其正.
그러나 그릇된 앎이 유혹하고 사물이 동화하여 마침내 바름을 잃게 됐다.
卓彼先覺, 知止有定.
우뚝한 저 선각자는 그칠 줄을 알고 심기가 안정됐다.
閑邪存誠, 非禮勿聽.’
그래서 간사함을 막고 성(誠)을 보존하여 예가 아니면 듣질 않아야 한다.’
其言箴曰: ‘人心之動, 因言以宣.
언잠(言箴)에 말하였다. ‘인심이 동하면 말로 서술된다.
發禁躁妄, 內斯靜專.
그러니 말을 할 때 조급하고 망령되지 않도록 하면 내면으로 고요하고 전일하게 된다.
矧是樞機, 興戎出好,
하물며 말이란 사물의 중요한 부분으로 싸움을 일으키기도 하고 관계를 풀기도 하여
吉凶榮辱, 惟其所召.
길함이나 흉함과 영화로움이나 욕됨이 오직 말로 시작된다.
傷易則誕, 傷煩則支,
너무 쉽게 말하면 궤탄한 말이 되고, 너무 번거롭게 말하면 지리한 말이 되며
己肆物忤, 出悖來違.
자기가 함부로 말하면 남들도 거슬려 대답하고, 나가는 말이 어긋나면 오는 말이 위배된다.
非法不道, 欽哉訓辭!’
법에 맞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야 하니, 공경스럽구나, 훈계의 말이여!’
其動箴曰: ‘哲人知幾, 誠之於思;
동잠(動箴)에 말하였다. ‘철인(哲人)은 기미를 알아 생각함에 성실히 하고,
志士勵行, 守之於爲.
지사(志士)는 힘써 행하여 행위함에 지킨다.
順理則裕, 從欲惟危; 造次克念,
이치에 순종하면 여유롭고, 욕망을 따르면 위태로우니 잠시잠깐이라도 생각하여
戰兢自持.
전전긍긍하며 스스로 보지(保持)해야 한다.
習與性成, 聖賢同歸.’”
습관과 본성이 이루어지면 성인과 현인이 함께 귀의하리라.’
愚按: 此章問答,
어리석은 내가 생각건대, 이장의 문답은
乃傳授心法切要之言.
심법을 전수하는 간절하고 요긴한 말이다.
非至明不能察其幾,
지극히 총명한 사람이 아니면 기미를 살필 수 없고,
非至健不能致其決.
지극히 건강한 사람이 아니면 결단함을 이룰 수가 없다.
故惟顔子得聞之,
그렇기 때문에 오직 안자는 그것을 얻어 들을 수 있었으니,
而凡學者亦不可以不勉也.
학자들은 또한 힘쓰지 않아선 안 된다.
程子之箴, 發明親切,
정자의 잠언은 발명함이 친절하니
學者尤宜深玩.
학자라면 더욱 마땅히 깊이 완미해야 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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