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필 - 투구행(鬪狗行)
개싸움을 당쟁에 빗대어 쓰다
투구행(鬪狗行)
권필(權韠)
誰投與狗骨 群狗鬪方狠
小者必死大者傷 有盜窺窬欲乘釁
主人抱膝中夜泣 天雨墻壞百憂集 『石洲集』 卷之二
해석
誰投與狗骨 수투여구골 | 누가 개에게 뼈를 던져 |
群狗鬪方狠 군구투방한 | 뭇 개들의 싸움이 시방 사납게 했는가? |
小者必死大者傷 소자필사대자상 | 작은 개는 반드시 죽고 큰 개는 다치니 |
有盜窺窬欲乘釁 유도규유욕승흔 | 어떤 도둑이 엿보고 넘으며 틈 타려 하네. |
主人抱膝中夜泣 주인포슬중야읍 | 개 주인은 무릎을 안고 한밤 중 울어대니 |
天雨墻壞百憂集 천우장괴백우집 | 비에 담장이 무너져 뭇 걱정거리 모이는 구나. 『石洲集』 卷之二 |
해설
이 시는 1599년에서 1600년 사이에 지은 것으로, 우의적(寓意的) 방법을 사용하여 당쟁(黨爭)을 일삼는 당시 정치에 대해 신랄(辛辣)하게 풍자하고 있다.
누가 개에게 뼈다귀 던져 주었는가(뼈다귀는 관직을 비유)? 뭇 개들이 뼈다귀를 차지하려고 사납게 싸우고 있다. 그 싸움에서 작은 놈은 반드시 죽고 큰 놈은 다치니(큰 개는 大北, 작은 개는 小北에 비유), 도둑놈이 엿보고 그 틈을 타려고 한다(도적은 왜적에 비유). 그렇게 되자 주인은 무릎 껴안고 고민하여 한밤중에 우는데(주인은 임금에 비유), 비 내려 담장 무너져 온갖 근심 모인다(담장은 국가의 방비를 비유함).
홍대용(洪大容)은 『담헌서』 「항전척독(杭傳尺牘)」에서 권필(權韠)의 시에 대해 다음과 같은 평을 내리고 있다.
“동방의 시(詩)는 신라의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과 고려의 백운(白雲) 이규보(李奎報)를 대가(大家)라고 하는데, 고운은 바탕이 시상(詩想)보다 나으나 격조(格調)가 고아(古雅)하게 웅건(雄健)하지 못하고, 백운은 어귀를 새롭고 교묘하게 만들기를 좋아하나, 운취(韻趣)가 끝내 천박(淺薄)하여 모두 편소한 나라의 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본조 이래로는 읍취헌(挹翠軒) 박은(朴誾)과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을 세상에서 동방의 이백(李白)과 두보(杜甫)라고 합니다. 비록 그러하나 읍취는 운격(韻格)은 고상하나 포근하게 웅혼한 맛이 적고, 소재는 체재는 힘차지만 초탈하여 쇄락한 기상이 없습니다. 오직 석주(石洲) 권필(權韠)이 세련되고 정확하여 깊이 소릉(少陵, 杜甫의 別號)의 여운(餘韻)을 체득하여 울연(蔚然)히 이조 중엽(中葉)의 정종(正宗)이 되나, 고상한 맛은 읍취만 못하고 웅건한 기운은 소재를 따르지 못하며, 여유 있고 담박한 풍도는 또한 국초의 여러 시인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것은 모두 선배들의 정론(定論)입니다[東方之詩 新羅之崔孤雲 高麗之李白雲 號爲大家 而孤雲地步優於展拓 聲調短於蒼健 白雲造語偏喜新巧 韻趣終是淺薄 都不出偏邦圈套 本國以來 如朴挹翠 盧蘇齋 俗稱東方李杜 雖然 挹翠韻格高爽而少沈渾之味 蘇齋體裁遒勁而無脫灑之氣 惟權石洲之鍊達精確 深得乎少陵餘韻 蔚然爲中葉之正宗 而高爽不及挹翠 遒勁不及蘇齋 悠揚簡澹之風 又不能不遜於國初諸人 此皆先輩定論].”
홍만종(洪萬宗)은 『소화시평(小華詩評)』 권하 36에서, “하늘이 부여한 재능에서 나온 시가 아니면 시라고 할 수 없다. 하늘에서 부여한 재능이 없다면 비록 눈을 파내고 심장을 도려내고 하여 종신토록 붓과 벼루를 가지고 작품을 쓴다고 해도 그가 성취한 것은 함통(唐 懿宗의 연호: 860~873) 연간의 여러 시인들을 흉내 낸 작가에 불과하다. 이러한 점은 비유하자면 색종이를 오려서 꽃을 만들면 화려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살아 있는 꽃의 빛깔과 비교해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내가 석주 권필 시의 격조를 관찰하여 보니, 화평하고 담아하였다. 그가 하늘로부터 시적 재질을 부여받았다고 생각한다[詩非天得, 不可謂之詩. 無得於天者, 則雖劌目鉥心, 終身觚墨, 而所就不過咸通諸子之優孟爾. 譬如剪彩爲花, 非不燁然, 而不可與語生色也. 余觀石洲詩格, 和平淡雅, 意者其得於天者耶].”라 하여, 권필의 시재(詩才)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 극찬(極讚)하고 있다.
또한 『소화시평(小華詩評)』 권하 54에 이안눌(李安訥)과 권필(權韠)의 시(詩)에 대한 우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내가 동명 정두경(鄭斗卿)에게 ‘석주와 동악의 시는 어느 분이 더 낫습니까?’라 여쭈었더니, 동명이 ‘석주 시는 매우 곱고 시원하며, 동악의 시는 매우 깊고 강건하다. 이를 선가에 비유하면 석주는 돈오요, 동악은 점수이므로 두 분의 문로가 비록 같지 않으나, 그 우열을 쉽게 논할 수 없다’고 하였다[余問東溟曰: “石洲ㆍ東岳詩誰優?” 東溟曰: “石洲甚婉亮, 東岳甚淵伉, 比之禪家, 石洲頓悟, 東岳漸修, 二家門路雖不同, 優劣未易論.”]”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84~18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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