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
같은 시대에 사는 벗이어도 볼 수가 없구나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
박지원(朴趾源)
벗은 제2의 나, 또는 주선인
古之言朋友者, 或稱第二五, 或稱周旋人. 是故造字者, 羽借爲朋, 手ㆍ又爲友. 言若鳥之兩羽而人之有兩手也.
맹자, 현재의 지기가 없다면 먼 과거에서 찾아라
然而說者曰尙友千古, 鬱陶哉是言也! 千古之人, 已化爲飄塵冷風, 則其將誰爲吾第二? 誰爲吾周旋耶?
양자운, 현재의 지기(知己)가 없다면 먼 미래에서 찾아라
揚子雲旣不得當世之知己 則慨然欲俟千歲之子雲. 吾邦之趙寶汝嗤之曰: “吾讀吾『玄』而目視之, 目爲子雲, 耳聆之耳爲子雲, 手舞足蹈, 各一子雲, 何必待千歲之遠哉?”
벗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吾復鬱陶焉, 直欲發狂於斯言曰: “目有時而不睹, 耳有時而不聞, 則所謂舞蹈之子雲, 其將孰令聆之孰令視之? 嗟乎! 耳目手足之生並一身, 莫近於吾. 而猶將不可恃者如此, 則孰能鬱鬱然上溯千古之前, 昧昧乎遲待千歲之後哉? 由是觀之, 友之必求於現世之當世也明矣.”
같은 시대에 살지만 만나지 못하는 벗
嗟乎! 吾讀『繪聲園集』. 不覺心骨沸熱. 涕泗橫流曰: “吾與封圭氏, 生旣並斯世矣, 所謂年相若也, 道相似也. 獨不可以相友乎? 固將友矣, 獨不可以相見乎? 地之相距也萬里, 則爲其地之遠歟?” 曰: “非然也. 嗟乎嗟乎! 旣不可得以相見乎, 則顧可謂之友乎哉? 吾不知封圭氏之身長幾尺鬚眉何如. 不可知則吾其於並世之人何哉? 然則吾將奈何? 吾將以尙友之法友之乎?”
봉규씨 문집에 대한 평가
封圭之詩盛矣哉! 其大篇發韶頀, 短章鳴璁珩. 其窈窕溫雅也, 如見洛水之驚鴻; 泓渟蕭瑟也, 如聞洞庭之落木. 吾又不知其作之者子雲歟? 讀之者子雲歟? 嗟乎! 言語雖殊, 書軌攸同, 惟其歡笑悲啼, 不譯而通, 何則? 情不外假, 聲出由衷. 吾將與封圭氏, 一以笑後世之子雲, 一以弔千古之尙友. 『燕巖集』 卷之三
해석
벗은 제2의 나, 또는 주선인
古之言朋友者, 或稱第二五,
옛적에 벗을 말하는 사람은 혹 ‘제2의 나[第二吾]’라 일컬었고,
或稱周旋人.
혹은 ‘주선인(周旋人)’이라 일컬었다.
是故造字者,
이런 까닭으로 글자를 만드는 사람은
羽借爲朋, 手ㆍ又爲友.
‘우(羽)’에서 빌려 ‘붕(朋)’이란 글자를 만들었고, 수(手)와 우(又)로 ‘우(友)’를 만들었다.
言若鳥之兩羽而人之有兩手也.
그래서 새에게 양 날개가 있다는 것은 사람에겐 두 손이 있다고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것이다.
맹자, 현재의 지기가 없다면 먼 과거에서 찾아라
然而說者曰尙友千古,
그러나 말하는 사람 중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천고 앞의 사람을 벗삼는다[尙友千古].”라고 하기도 하니,
鬱陶哉是言也!
울적하구나 이 말이여!
千古之人, 已化爲飄塵冷風,
천고의 사람은 이미 변하여 날리는 먼지나 차가운 바람이 되었으니,
則其將誰爲吾第二? 誰爲吾周旋耶?
장차 누가 나의 제2가 되겠는가? 누가 나의 주선인이 되겠는가?
양자운, 현재의 지기(知己)가 없다면 먼 미래에서 찾아라
揚子雲旣不得當世之知己
양자운은 이미 당시에 자기를 알아주는 이를 얻지 못해,
則慨然欲俟千歲之子雲.
슬퍼하며 천년 뒤의 자운(子雲)을 기다리려 했다.
吾邦之趙寶汝嗤之曰:
우리나라의 조보요(趙寶汝)가 그런 자운을 비웃으며 말했다.
“吾讀吾『玄』而目視之, 目爲子雲,
“내가 나의 『태현경(太玄經)』을 읽는데, 눈으로 그걸 보니 눈이 양자운이 되고,
耳聆之耳爲子雲, 手舞足蹈,
귀로 그걸 들으니 귀가 양자운이 되며, 손은 춤을 추고, 발은 리듬을 밟아
各一子雲, 何必待千歲之遠哉?”
각각 하나의 자운이 되니, 하필 천 년의 멂을 기다리랴?”
벗은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에서 찾아야 한다
吾復鬱陶焉, 直欲發狂於斯言曰:
나는 다시 울적하여 곧 이 말에 발광할 것 같아서 말했다.
“目有時而不睹, 耳有時而不聞,
“눈은 이따금 보이지 않기도 하고, 귀는 이따금 들리지 않기도 한다.
則所謂舞蹈之子雲,
이른바 춤추고 리듬 타는 양자운은
其將孰令聆之孰令視之?
장차 누구로 하여금 듣게 하고 누구로 하여금 보게 하겠는가?
嗟乎! 耳目手足之生並一身, 莫近於吾.
아! 귀와 눈, 손과 발은 아울러 한 몸에서 난 것으로 나에게 이보다 가까운 게 없다.
而猶將不可恃者如此,
그러나 오히려 장차 믿을 수 없는 게 이와 같다면
則孰能鬱鬱然上溯千古之前,
누가 울적하게 천고의 이전으로 거슬러 오르며,
昧昧乎遲待千歲之後哉?
답답하게 천년 뒤를 기다리랴?
由是觀之,
이로 말미암아 그것을 보면
友之必求於現世之當世也明矣.”
벗이란 반드시 현세의 당시에서 구해야 하는 게 분명하다.”
같은 시대에 살지만 만나지 못하는 벗
嗟乎! 吾讀『繪聲園集』. 不覺心骨沸熱.
아! 내가 『회성원집(繪聲園集)』을 읽어보고 기개가 발끈하여
涕泗橫流曰:
눈물이 주루룩 흘러내림을 깨닫지 못하고 말했다.
“吾與封圭氏, 生旣並斯世矣,
“내가 봉규씨(封圭氏)와 이미 아울러 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所謂年相若也, 道相似也.
이른바 나이가 서로 같고 도가 서로 같다는 것이다.
獨不可以相友乎?
그러니 홀로 서로 벗이 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固將友矣, 獨不可以相見乎?
진실로 장차 벗이 됨에 홀로 서로 보지 않겠는가?
地之相距也萬里, 則爲其地之遠歟?”
땅에서의 서로 거리가 만 리라면 땅이 멀다고 하겠는가?”
曰: “非然也. 嗟乎嗟乎!
대답하겠다. “그렇지 않다. 아! 아!
旣不可得以相見乎, 則顧可謂之友乎哉?
이미 서로 볼 수 없는데 돌아봐 벗이라 할 수 있겠는가?
吾不知封圭氏之身長幾尺鬚眉何如.
나는 봉규씨의 신장이 몇 척인지, 수염과 눈썹이 어떤지 알지 못한다.
不可知則吾其於並世之人何哉?
알지 못하는데, 내가 같은 세상 사람이라 한들 무엇하랴?
然則吾將奈何?
그러하다면 나는 장차 어째야 하는가?
吾將以尙友之法友之乎?”
나는 장차 위로 올라가 옛 사람을 벗하는 법으로 그를 벗 삼아야 하는가?”
봉규씨 문집에 대한 평가
封圭之詩盛矣哉!
봉규씨의 시는 성대하구나!
其大篇發韶頀, 短章鳴璁珩.
장편은 탕왕의 음악인 소호(韶濩)에서 나온 것 같고, 단장은 패옥이 울리는 것만 같다.
其窈窕溫雅也, 如見洛水之驚鴻;
그윽하고 따스하며 우아함은 낙수에 놀란 기러기를 보는 것 같고,
泓渟蕭瑟也, 如聞洞庭之落木.
넓고 맑으며 소슬함은 동정호에 떨어진 잎사귀 같다.
吾又不知其作之者子雲歟? 讀之者子雲歟?
나는 알지 못하니, 지은 사람이 양자운인가? 읽는 사람이 양자운인가?
嗟乎! 言語雖殊, 書軌攸同,
아! 말이 비록 다르지만 글의 법도는 같아서,
惟其歡笑悲啼, 不譯而通, 何則?
오직 기뻐서 웃고 슬퍼서 우니, 해석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은 왜인가?
情不外假, 聲出由衷.
정이란 외부의 꾸밈이 없고 소리는 속마음에 따라 나오기 때문이다.
吾將與封圭氏, 一以笑後世之子雲,
나는 장차 봉규씨와 함께 한 편으론 후세의 자운을 비웃고
一以弔千古之尙友. 『燕巖集』 卷之三
한 편으론 천고로 거슬러 올라가 벗 삼는 것을 조문하리라.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