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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제2의 나를 찾아서 - 4. 진정한 벗 찾기의 어려움 본문

책/한문(漢文)

제2의 나를 찾아서 - 4. 진정한 벗 찾기의 어려움

건방진방랑자 2020. 4. 4.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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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진정한 벗 찾기의 어려움

 

 

봉규씨의 시는 훌륭하다. 그 대편大篇은 소호韶頀의 음악을 펴는 듯하고, 단장短章은 옥구슬이 쟁그랑 울리는 것만 같다. 그 음전하고 온아함은 마치 낙수洛水의 놀란 기러기를 보는 것 같고, 드넓고도 소슬함은 마치 동정호에 떨어지는 낙엽 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나는 또 알지 못하겠구나. 이를 지은 자가 양자운인지, 아니면 이를 읽는 자가 양자운인지를.

아아! 말은 비록 달라도 글의 법도는 같으니, 다만 그 기뻐 웃고 슬퍼 우는 것은 번역하지 않고도 통한다. 왜 그런가? 이란 겉꾸미지 못하고, 소리는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장차 봉규씨와 더불어 한편으로 후세의 양자운을 기다림을 비웃고, 한편으로는 천고를 벗 삼는다는 말을 조문하련다.

封圭之詩盛矣哉. 其大篇發韶頀, 短章鳴璁珩. 其窈窕溫雅也, 如見洛水之驚鴻; 泓渟蕭瑟也, 如聞洞庭之落木. 吾又不知其作之者, 子雲歟? 讀之者, 子雲歟?

嗟乎! 言語雖殊, 書軌攸同, 惟其歡笑悲啼, 不譯而通. 何則? 情不外假, 聲出由衷. 吾將與封圭氏, 一以笑後世之子雲, 一以弔千古之尙友.

이제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내면 풍경이 다 떠오른다. 장편의 거작은 마치 요순堯舜의 음악이 울려 퍼지는 것만 같고, 짤막한 작품도 쟁반에 구르는 옥구슬처럼 영롱하다. 낙수洛水의 놀란 기러기의 날갯짓도 있고, 동정호로 떨어지는 구슬픈 낙엽소리도 담겨 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그가 되고, 그가 나인 것 같은 착각에 깜짝 놀라곤 한다. 사는 땅이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달라도 그의 글을 읽으면 그의 내면과 동화될 수가 있다. 어째서 그럴까? 그의 글에는 참된 정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리는 폐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아아! 그는 천만리의 밖에 있어 결코 대면하여 볼 수 없지만, 그는 2의 나임에 틀림없다. 후세의 양자운을 기다릴 것도, 아득한 천고의 고인을 찾아 헤맬 것도 없다. 그는 나다.

글의 본지에만 충실하게 읽는다면, 이 글은 연암이 회성원집繪聲園集을 읽고서, 마치 가까이에서 익히 알던 벗과 같은 지기의 심정을 느꼈음을 말한 것일 뿐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천고의 아득한 옛날에서나 벗을 찾고, 천세의 아득한 뒷날에서나 자기를 알아줄 사람을 찾는다는 말 속에 담긴 깊은 슬픔을 헤아려 볼 일이다. 연암 또한 천고의 위에서거나 천세의 뒤에서 벗을 찾을 수밖에 없는 처연한 심정을 반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당대에 정말 제 2의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나는가 싶어 기뻐했더니, 결국 그는 아무리 만나려 해도 만날 길이 없는 아득한 천만리 밖의 사람이 아닌가 말이다. 글의 끝에서 자신이 봉규씨와 함께 후세의 양자운과 천고의 벗을 웃고 조문한다 함은, 연암 자신이 봉규씨의 글에서 느낀 진한 동심同心의 교호交互를 알게 해준다. 결국 진정한 붕우, ‘2의 나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그럴진대 사람들이 천고를 벗 삼고, 천세 뒤를 기다림은 또 당연한 것이 아닌가?

이 글에서 연암이 제기하고 있는 붕우의 문제는 마장전馬駔傳에서 말하고 있는 우정의 문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붕우의 사귐이 세명리勢名利의 획득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세상에서, 진정한 우정의 소재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회성원집발繪聲園集跋에서 연암은 지식인들이 현세에서 벗을 구하지 않고 천고나 천세 후의 지기를 말하는 것을 처음에는 비웃는 듯한 어조로 출발하여, 당시 세상에서도 벗을 구하지 못하는 주제에 이미 썩어 흙먼지가 되어 버린 고인이나, 눈앞에 있지도 않은 천고 뒤의 후인을 벗 삼겠다는 것이 무슨 소리냐고 나무라고는, 끝에 가서는 결국 자신도 회심의 벗과 직접 대면하지 못하고 상우천고 하듯 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움으로 마무리 지음으로써, 진정한 붕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을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절망을 다른 층위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인용

목차

원문

작가 이력 및 작품

카자흐스탄 여행기

우리 한시를 읽다

소화시평 하권90번 해설

1. 벗을 찾겠다고 하면서 상우천고를 외치다

2. 벗을 찾겠다고 하면서 후대를 기다리다

3. 중국인의 문집을 읽고서 만나고 싶어지다

4. 진정한 벗 찾기의 어려움

5. 친구들아 다들 잘 지내고 있니

6. 지음을 잃고 보니 나는 천하의 궁한 백성이네

7. 백아가 종자기를 잃고 나서의 심정처럼

7-1. 총평

8. 한 명의 나를 알아주는 지기를 만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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